1.
What is the most disturbing film you've ever watched?
사람마다 호불호의 성격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명작이라고 생각할 영화의 경우도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다.
예술이 다양해질 수 있는 건 이 호불호의 스펙트럼이 정말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한테는 안티 크라이스트같은 신성모독 영화를 보면 극장에서 뛰쳐 나가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한테는 인간지네같은 영화가 그럴 수도 있다. 칸에서 항상 모든 영화가 호평받는 것도 아니고 평론가들이 영화가 불쾌하다고 보다가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나는 앞에 말한 영화 둘 다 힘들고 가리는 영화가 보는 영화보다 더 많다. disturbing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 블랙스완같은 심리적으로 쪼는 영화도 내내 시달려서 나한테는 디스터빙하고 부산행같은 경우도 그냥 힘들다. 주온같은 건 상상도 못하고 쏘우? 어휴... 히치콕도 멘탈이 힘들다. 예전에 극장판에서 봤던 아모레스 페로스에서는 투견장면+뭔가 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힘들어서 보다 나왔다. 박찬욱 영화도 JSA 빼고는 다 후폭풍에 시달려서 복수는 나의 것은 한 번 보고 극장판에서 보다가 나왔다. 이렇게 쓰니 볼 수 있는 게 몇 없구나. 디즈니와 함께 동화의 나라에서 평생 살리라.
2.
극장의 경우라면 이런 영화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니까 박스 오피스로 그 선택의 답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일하는 업계처럼 선택권이 제한된 경우라면? 그리고 내가 그 영화를 틀거나 보지 않더라도 옆좌석에서 보는 게 내 시야를 침해한다면? 이럴 경우에는 더 예민하게 여러 사람의 '취향'과 '호불호'의 레벨을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종교, 민족, 인종, 성적 취향 등등 모든 게 다 고려돼야 한다.
최근에 Delta에서 Carol을 편집해서 선재해서 문제가 됐다.
http://www.huffingtonpost.com/entry/airline-carol-kissing-edited-out_us_57a62cc8e4b021fd9878cce8
사실 나는 이 선택도 이해는 간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오픈 마인드일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서 자기가 불쾌함을 겪었다고 생각할 경우 (선택하지 않은 영화에 대해 노출되면서) 생기는 컴플레인은 결국 항공사가 다 떠안아야 한다.
3.
<아가씨>도 사실 일하면서 당연히 안되겠지, 하고 그냥 선택지에서 생각도 안하고 넘어갔다. 나도 예전에 편집 안하고 넣었다 문제가 된 적 있어서 작년부터는 거의 안전빵인 옵션만 찾게 되고 몸을 사린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항공사에서 컨펌이 났다. 그리고 오늘 메일을 주고받다가 띵해졌다. 나는 당연히 몸을 사려야 하니 'LGBT' 슬레이트를 넣을까? 했는데
"if we state this movie as LGBT, some pax might be feel discriminated"
라고 답이 왔다. 그냥 영화는 영화지 이걸 LGBT라고 나누고 하는게 오히려 더 차별적이고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그냥 원래 기준대로 LGBT 성적 장면이 아니라 그냥 성적 장면이라고만 넣자고 한거다.
뭔가 띵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떠올리면 결국 동성애 영화라는 카테고리가 먼저 뜨는데 그냥 예술, 영화로만 보자..이러는 쿨함 앞에서 몸사리던 내가 멋쩍어진 기분이었다.
4.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이 영화는 정말 미장센에 매우 많이 힘줬다. 감독님은 문어괴수물이 뭔지 몰랐다고 인터뷰에서 그러셨지만 과연? 물론 미술팀이 잘 알았겠지만..
영화는 정말 잘 꾸며졌다. 이 시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는 감독들한테 매혹적인 시기다. 동서양의 이질성이 한데 모여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는 피지배인 조선인과 지배인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이라는 세 계급이 뭉쳐서 특이한 질서 관계가 나타난다.
어딘가에도 끼기도 애매한 이 시대에서 어떤 감독은 청춘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투사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예술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실 이 시대에 '굳이' 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차이로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냥 지금 어디 개도국 한복판에 껴놔도 될 거 같고. '돈의 맛'이나 '하녀'처럼 지금 한국 사회로 껴놔도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로 끌고간 건 그냥 예뻐서? 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난번에 쓴 <덕혜옹주>처럼 이 시기가 주는 묘한 분위기,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시기라 여기로 끌고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조선 얘기를 하면서 이런 이미지까지 끌어다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새로운 그림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감독이라면 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호불호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호도 아니고 불호도 아니고 그냥 음 괜찮네 하다가도 이게 박찬욱 영화라면 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박찬욱하면 떠올랐던 이미지랑은 정말 따로 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나한테는 아직도 복수 3부작의 박찬욱이 더 크게 자리잡혀서인지도 모르겠다. 박쥐나 스토커가 나한테 그렇게 감흥이 없기도 했고.
여성 해방적이라고 하는 부분도 이해는 가는데 또 어떻게 보면 그런가? 왜 굳이 그걸 저렇게 말하지? 이렇게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다. '굳이' 나와야 했나 싶었던 노출도 좀 있었고, 왜 이렇게 갑작스럽지? 할 정도로 감정이 설명 안되고 점프점프 돼는 것 같았다.
나는 히데코는 왜 타마코한테 관심을 '보였는지' 그게 이해가 안됐다. 감정이란게 점에서 점으로 레벨업해서 점프하는 게 아니라 선으로 이어져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방향성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더더욱.
5.
영화도 사실 외국 친구랑 봤다. 한국어를 잘하긴 하는데, 그냥 '이런' 한국 영화를 같이 봐도 될까? 라는 마음이 영화 내내 계속 눈치를 보게 했다.
이 영화에 관해 나는 결국 나는 '아무한테도 불편을 끼치지 않겠다'는 작은 친절을 가지고 결국 더 큰 차별과 불편함을 만들었던것 같다. 괜히 이게 거슬리진 않을까, 하나하나 괜히 움츠러들고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 남한테 거스르지 않고 그냥 저냥 모난돌이 안되어 가려다가 오히려 작은 친절 큰 민폐를 만드는 삶을 살면서도 나 스스로는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사려깊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What is the most disturbing film you've ever watched?
사람마다 호불호의 성격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명작이라고 생각할 영화의 경우도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다.
예술이 다양해질 수 있는 건 이 호불호의 스펙트럼이 정말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한테는 안티 크라이스트같은 신성모독 영화를 보면 극장에서 뛰쳐 나가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한테는 인간지네같은 영화가 그럴 수도 있다. 칸에서 항상 모든 영화가 호평받는 것도 아니고 평론가들이 영화가 불쾌하다고 보다가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나는 앞에 말한 영화 둘 다 힘들고 가리는 영화가 보는 영화보다 더 많다. disturbing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 블랙스완같은 심리적으로 쪼는 영화도 내내 시달려서 나한테는 디스터빙하고 부산행같은 경우도 그냥 힘들다. 주온같은 건 상상도 못하고 쏘우? 어휴... 히치콕도 멘탈이 힘들다. 예전에 극장판에서 봤던 아모레스 페로스에서는 투견장면+뭔가 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힘들어서 보다 나왔다. 박찬욱 영화도 JSA 빼고는 다 후폭풍에 시달려서 복수는 나의 것은 한 번 보고 극장판에서 보다가 나왔다. 이렇게 쓰니 볼 수 있는 게 몇 없구나. 디즈니와 함께 동화의 나라에서 평생 살리라.
2.
극장의 경우라면 이런 영화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니까 박스 오피스로 그 선택의 답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일하는 업계처럼 선택권이 제한된 경우라면? 그리고 내가 그 영화를 틀거나 보지 않더라도 옆좌석에서 보는 게 내 시야를 침해한다면? 이럴 경우에는 더 예민하게 여러 사람의 '취향'과 '호불호'의 레벨을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종교, 민족, 인종, 성적 취향 등등 모든 게 다 고려돼야 한다.
최근에 Delta에서 Carol을 편집해서 선재해서 문제가 됐다.
http://www.huffingtonpost.com/entry/airline-carol-kissing-edited-out_us_57a62cc8e4b021fd9878cce8
사실 나는 이 선택도 이해는 간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오픈 마인드일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서 자기가 불쾌함을 겪었다고 생각할 경우 (선택하지 않은 영화에 대해 노출되면서) 생기는 컴플레인은 결국 항공사가 다 떠안아야 한다.
3.
<아가씨>도 사실 일하면서 당연히 안되겠지, 하고 그냥 선택지에서 생각도 안하고 넘어갔다. 나도 예전에 편집 안하고 넣었다 문제가 된 적 있어서 작년부터는 거의 안전빵인 옵션만 찾게 되고 몸을 사린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항공사에서 컨펌이 났다. 그리고 오늘 메일을 주고받다가 띵해졌다. 나는 당연히 몸을 사려야 하니 'LGBT' 슬레이트를 넣을까? 했는데
"if we state this movie as LGBT, some pax might be feel discriminated"
라고 답이 왔다. 그냥 영화는 영화지 이걸 LGBT라고 나누고 하는게 오히려 더 차별적이고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그냥 원래 기준대로 LGBT 성적 장면이 아니라 그냥 성적 장면이라고만 넣자고 한거다.
뭔가 띵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떠올리면 결국 동성애 영화라는 카테고리가 먼저 뜨는데 그냥 예술, 영화로만 보자..이러는 쿨함 앞에서 몸사리던 내가 멋쩍어진 기분이었다.
4.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이 영화는 정말 미장센에 매우 많이 힘줬다. 감독님은 문어괴수물이 뭔지 몰랐다고 인터뷰에서 그러셨지만 과연? 물론 미술팀이 잘 알았겠지만..
영화는 정말 잘 꾸며졌다. 이 시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는 감독들한테 매혹적인 시기다. 동서양의 이질성이 한데 모여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는 피지배인 조선인과 지배인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이라는 세 계급이 뭉쳐서 특이한 질서 관계가 나타난다.
어딘가에도 끼기도 애매한 이 시대에서 어떤 감독은 청춘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투사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예술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실 이 시대에 '굳이' 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차이로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냥 지금 어디 개도국 한복판에 껴놔도 될 거 같고. '돈의 맛'이나 '하녀'처럼 지금 한국 사회로 껴놔도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로 끌고간 건 그냥 예뻐서? 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난번에 쓴 <덕혜옹주>처럼 이 시기가 주는 묘한 분위기,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시기라 여기로 끌고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조선 얘기를 하면서 이런 이미지까지 끌어다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새로운 그림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감독이라면 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호불호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호도 아니고 불호도 아니고 그냥 음 괜찮네 하다가도 이게 박찬욱 영화라면 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박찬욱하면 떠올랐던 이미지랑은 정말 따로 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나한테는 아직도 복수 3부작의 박찬욱이 더 크게 자리잡혀서인지도 모르겠다. 박쥐나 스토커가 나한테 그렇게 감흥이 없기도 했고.
여성 해방적이라고 하는 부분도 이해는 가는데 또 어떻게 보면 그런가? 왜 굳이 그걸 저렇게 말하지? 이렇게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다. '굳이' 나와야 했나 싶었던 노출도 좀 있었고, 왜 이렇게 갑작스럽지? 할 정도로 감정이 설명 안되고 점프점프 돼는 것 같았다.
나는 히데코는 왜 타마코한테 관심을 '보였는지' 그게 이해가 안됐다. 감정이란게 점에서 점으로 레벨업해서 점프하는 게 아니라 선으로 이어져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방향성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더더욱.
5.
영화도 사실 외국 친구랑 봤다. 한국어를 잘하긴 하는데, 그냥 '이런' 한국 영화를 같이 봐도 될까? 라는 마음이 영화 내내 계속 눈치를 보게 했다.
이 영화에 관해 나는 결국 나는 '아무한테도 불편을 끼치지 않겠다'는 작은 친절을 가지고 결국 더 큰 차별과 불편함을 만들었던것 같다. 괜히 이게 거슬리진 않을까, 하나하나 괜히 움츠러들고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 남한테 거스르지 않고 그냥 저냥 모난돌이 안되어 가려다가 오히려 작은 친절 큰 민폐를 만드는 삶을 살면서도 나 스스로는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사려깊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