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28, 2016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1.
What is the most disturbing film you've ever watched?

사람마다 호불호의 성격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명작이라고 생각할 영화의 경우도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다.

예술이 다양해질 수 있는 건 이 호불호의 스펙트럼이 정말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한테는 안티 크라이스트같은 신성모독 영화를 보면 극장에서 뛰쳐 나가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한테는 인간지네같은 영화가 그럴 수도 있다. 칸에서 항상 모든 영화가 호평받는 것도 아니고 평론가들이 영화가 불쾌하다고 보다가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나는 앞에 말한 영화 둘 다 힘들고 가리는 영화가 보는 영화보다 더 많다. disturbing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 블랙스완같은 심리적으로 쪼는 영화도 내내 시달려서 나한테는 디스터빙하고 부산행같은 경우도 그냥 힘들다. 주온같은 건 상상도 못하고 쏘우? 어휴... 히치콕도 멘탈이 힘들다. 예전에 극장판에서 봤던 아모레스 페로스에서는 투견장면+뭔가 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힘들어서 보다 나왔다. 박찬욱 영화도 JSA 빼고는 다 후폭풍에 시달려서 복수는 나의 것은 한 번 보고 극장판에서 보다가 나왔다. 이렇게 쓰니 볼 수 있는 게 몇 없구나. 디즈니와 함께 동화의 나라에서 평생 살리라.


2.
극장의 경우라면 이런 영화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니까 박스 오피스로 그 선택의 답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일하는 업계처럼 선택권이 제한된 경우라면? 그리고 내가 그 영화를 틀거나 보지 않더라도 옆좌석에서 보는 게 내 시야를 침해한다면? 이럴 경우에는 더 예민하게 여러 사람의 '취향'과 '호불호'의 레벨을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종교, 민족, 인종, 성적 취향 등등 모든 게 다 고려돼야 한다.

최근에 Delta에서 Carol을 편집해서 선재해서 문제가 됐다.
http://www.huffingtonpost.com/entry/airline-carol-kissing-edited-out_us_57a62cc8e4b021fd9878cce8

사실 나는 이 선택도 이해는 간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오픈 마인드일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서 자기가 불쾌함을 겪었다고 생각할 경우 (선택하지 않은 영화에 대해 노출되면서) 생기는 컴플레인은 결국 항공사가 다 떠안아야 한다.


3.
<아가씨>도 사실 일하면서 당연히 안되겠지, 하고 그냥 선택지에서 생각도 안하고 넘어갔다. 나도 예전에 편집 안하고 넣었다 문제가 된 적 있어서 작년부터는 거의 안전빵인 옵션만 찾게 되고 몸을 사린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항공사에서 컨펌이 났다. 그리고 오늘 메일을 주고받다가 띵해졌다. 나는 당연히 몸을 사려야 하니 'LGBT' 슬레이트를 넣을까? 했는데

"if we state this movie as LGBT, some pax might be feel discriminated"

라고 답이 왔다. 그냥 영화는 영화지 이걸 LGBT라고 나누고 하는게 오히려 더 차별적이고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그냥 원래 기준대로 LGBT 성적 장면이 아니라 그냥 성적 장면이라고만 넣자고 한거다.

뭔가 띵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떠올리면 결국 동성애 영화라는 카테고리가 먼저 뜨는데 그냥 예술, 영화로만 보자..이러는 쿨함 앞에서 몸사리던 내가 멋쩍어진 기분이었다.


4.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이 영화는 정말 미장센에 매우 많이 힘줬다. 감독님은 문어괴수물이 뭔지 몰랐다고 인터뷰에서 그러셨지만 과연? 물론 미술팀이 잘 알았겠지만..



영화는 정말 잘 꾸며졌다. 이 시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는 감독들한테 매혹적인 시기다. 동서양의 이질성이 한데 모여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는 피지배인 조선인과 지배인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이라는 세 계급이 뭉쳐서 특이한 질서 관계가 나타난다.

어딘가에도 끼기도 애매한 이 시대에서 어떤 감독은 청춘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투사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예술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실 이 시대에 '굳이' 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차이로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냥 지금 어디 개도국 한복판에 껴놔도 될 거 같고. '돈의 맛'이나 '하녀'처럼 지금 한국 사회로 껴놔도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로 끌고간 건 그냥 예뻐서? 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난번에 쓴 <덕혜옹주>처럼 이 시기가 주는 묘한 분위기,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시기라 여기로 끌고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조선 얘기를 하면서 이런 이미지까지 끌어다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새로운 그림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감독이라면 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호불호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호도 아니고 불호도 아니고 그냥 음 괜찮네 하다가도 이게 박찬욱 영화라면 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박찬욱하면 떠올랐던 이미지랑은 정말 따로 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나한테는 아직도 복수 3부작의 박찬욱이 더 크게 자리잡혀서인지도 모르겠다. 박쥐나 스토커가 나한테 그렇게 감흥이 없기도 했고.

여성 해방적이라고 하는 부분도 이해는 가는데 또 어떻게 보면 그런가? 왜 굳이 그걸 저렇게 말하지? 이렇게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다. '굳이' 나와야 했나 싶었던 노출도 좀 있었고, 왜 이렇게 갑작스럽지? 할 정도로 감정이 설명 안되고 점프점프 돼는 것 같았다.

나는 히데코는 왜 타마코한테 관심을 '보였는지' 그게 이해가 안됐다. 감정이란게 점에서 점으로 레벨업해서 점프하는 게 아니라 선으로 이어져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방향성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더더욱.


5.
영화도 사실 외국 친구랑 봤다. 한국어를 잘하긴 하는데, 그냥 '이런' 한국 영화를 같이 봐도 될까? 라는 마음이 영화 내내 계속 눈치를 보게 했다.

이 영화에 관해 나는 결국 나는 '아무한테도 불편을 끼치지 않겠다'는 작은 친절을 가지고 결국 더 큰 차별과 불편함을 만들었던것 같다. 괜히 이게 거슬리진 않을까, 하나하나 괜히 움츠러들고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 남한테 거스르지 않고 그냥 저냥 모난돌이 안되어 가려다가 오히려 작은 친절 큰 민폐를 만드는 삶을 살면서도 나 스스로는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사려깊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Wednesday, September 21, 2016

덕혜옹주 (The Last Princess, 2016)

1.
국사를 공부하면서 '명성황후는 이미연이 아니다'를 외친 것처럼 이 영화를 볼 때는 '덕혜옹주는 손예진이 아니다'를 반복하고 시작해야 한다.

손예진이 아무리 눈물을 뚝뚝 흘리고 처연하게 쳐다보더라도 "저건 사실이 아니다" 라고 손예진 매직에 걸려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마지막 황녀라는 게 주는 신비감, 안타까움은 명운을 다한 나라에는 꼭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제정 러시아의 아나스타샤도 그렇고, 엘리자벳도 있다. 성별은 다르지만 청의 푸이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우 왕자 얘기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즈음만 하면 인터넷에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덕혜옹주는 소설로도 나와서 꽤 인기를 끈 걸로 안다. 망한 나라의 고명딸 얘기니 얼마나 짠하고 슬플까.


3.
영화 보는데 내가 알던 허진호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내 갸우뚱했다. "라면먹고 갈래요?"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만들었던 감독인데, 왜 이렇게 빤한 얘기만 하고 있는거지.

여기서 주인공은 여자지만, 전형적인 '공주마마', '핑거프린세스'다.

1919년 첫 씬부터 아기씨는 아바마마와 대신들이 있는 곳을 뛰어다닌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귀여운 내 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옹주인데 저렇게 상황파악이 안됐을까. 왕족이 가져야 할 규범 대신 전형적인 '막내 딸' 이미지가 이겼다.

영화에서 덕혜옹주는 아무 것도 아니다. 독립 운동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친일파도 아닌 정말 방관자, 투명인간처럼 보인다.

물론 손예진은 연기를 잘한다. 연애시대에서 보여줬던 등으로 우는 것 같은 느낌이 여기서도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비밀은 없다>가 개봉했는데 거기서는 빡 힘주고 날 세워서 연기했다면 여기서는 누르고 눌러서 '한국의 정한이 애이불비'의 감정을 표현했다랄까. (아 이 말 진짜 싫어하는데) 근데 나머지 배우들도 연기를 잘해서 덕혜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거나 이런 건 없다. 소설을 안 읽어서 모르겠는데 원작에서도 이렇게 그냥 아무런 존재감없고 관찰자로만 나오는 지 궁금하다. 영화에서 덕혜옹주가 그나마 능동적이었던 건 한글학교를 만들고, 연설 장면 정도?


4.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옹주마마' 하면서 무릎꿇고 큰절했을까도 의문이며, 아나키즘 혁명 계열들이 과연 앙시엥 레짐의 잔재인 '옹주'라는 존재를 환영했을까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덕혜옹주가 주가 돼야 할 영화에서 왜 애써서 이우 왕자의 영웅적인 면모를 끌어올렸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사실도 아님), 그에 반해 오빠인 영친왕은 너무 일본 만화캐릭터에서 주인공 옆 배경3정도로 나올 인물같은 캐릭터로 나와서 별로였다.

김장한이라는 충성심 넘치는 정혼자의 끝을 모르는 사랑도 음? 싶었다. 한택수라는 인물도 너무 전형적인 '악한' 일본인으로만 나와서 과연 저랬을까? 너무 스테레오 타입들을 두 시간동안 꽉꽉 눌러담아서 빤하고 빤한 영화같았다.

물론 이해로 영화를 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팩트인 척 하면서 픽션만 남아있는 팩'션'의 경우에는 저런 '픽션', 그러니까 역사적 가정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으며 왜 저러는 건지 의아하게 된다.

일본이랑 관계가 삐걱대면서 일제강점기 얘기를 다룬 영화들이 많다. 암살도 있고 밀정도 있고. 이 영화는 팩트보다는 그냥 이 시기의 안타까운 설정만 남고, 정말 그 시대에 대한 어떤 의미를 뒀는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 이 영화랑 비교하기에는 앞의 두 영화가 아니라 그냥 그 시대 분위기만 따온 '아가씨'같은 영화랑 비교하는 게 오히려 더 적절한 것 같다.


5.
손예진은 정말 미친듯이 연기를 잘한다. 영화에서 원래 이렇게까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정신병자처럼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깜짝 놀랐다.

남자 쎈 캐릭터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상업영화판에서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갈대같이 연약하고 힘없는 주인공이 아니라 뭔가 쎄거나 고집있는 역할로 한 번 보고 싶다. (연애시대같은 어른느낌 나는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Friday, September 16, 2016

밀정(The Age of Shadows, 2016)

1.
대학교 입학하고 김지운 감독의 자서전(김지운의 숏컷)을 읽었다. 지금도 뭔가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그 책을 읽는다. 세련됨이 뭔지, 차분하게 자기 얘기 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내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자, 감정과잉, 자기연민에 빠지면 까리함을 잃는다는 것도.

책 덕분에 커피를 마시는 것=세련된 어른 이라는 착각에도 단단히 빠져서 커피는 커피빈, 에스프레소 세가프레도라는 공식을 거의 신념처럼 따르기도 했다. (요즘도 세가프레도 있나?)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까리하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분명 잔뜩 뛰어다닌 장면인데 땀냄새보다 우디한 향수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놈놈놈의 장총씬에서 와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잘 빠진 화면도 나오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놈놈놈 보겠다고 부산극장 앞에서 밤을 샜다. (마지막 피프의 추억)


2.
가족끼리 밀정을 봤다.
오랜만에 나온 영화라 기대가 커서 예고편도 안보고 평도 최대한 안 읽고 갔다. (잊는다 라스트 스탠드. 악마를 보았다 이후에 첫 영화라고 나는 '믿는다')

여전히 까리한 어른 남자의 얘기는 여전했다. 근데 내가 나이가 든건지, 이 감독님이 나이가 든건지, 둘 다인건지. 그 스타일리시함이 이제 막 충격적으로 좋지가 않다. 그냥 잘 빠졌구나...

밀정은 베베 꼬인 영화다. 단순하게 보면 이중첩자와 속는자, 찾는 자의 얘긴데 그게 여러 인물이 한 번에 나오면서 꼬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얘기를 생략하고 최대한 화면의 화려함에 집중하거나, 얘기를 최대한 넣어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하거나.

후자의 경우로는 암살이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를 남겼다. 그런데 밀정은 정 반대다. 밀정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밀정에 대한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그 모여있는 장면을 최대한 길쭉길쭉 수직적으로 쫙 누르게 찍어서 분위기를 그림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모든 얘기에서 대사보다는 화면이 중요하고 이야기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 책에서 쓴 것처럼 집단적  슬픔에 빠지지 않고 영화라는 영상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과다한 감정은 걷어냈다. 우리 조국이, 민족이, 이런 얘기도 최소로만 하고, 그냥 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좇는 자와 그렇지 않은 편의 입장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지적, 여자캐릭터가 별로라는 지적은 이번에도 나올 것 같다. 겉멋들었다는 느낌도 여기서 나올 수 있다. 실제로 한지민 역할은 겉돌았고 (세모 집합에 동그라미가 있는 느낌), 몇 배우는 너무나 지나치게 세련된 이미지라 약간 시대에 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모두가 다 암살처럼 친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 제국주의 시대의 스타일은 진짜 '까리함'이 넘치는 시대다. 모던 상하이, 모던 경성이 계속 영화화되는 것도 이때의 이질적인 느낌이 감독들한테는 뭔가 해보고 싶다는 도전욕구로 나왔을지 모른다.


3.
이병헌 송강호는 정말 아우라가 다르다. 놈놈놈때 이후로 이런 시기에 이런 역할 조합으로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나쁜놈과 이상한놈), 목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몸으로 삭제된 모든 이야기를 한다.

특히 이병헌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감독님은 여기다가 나레이션도 넣은 것 같은데, 근데 난 그게 좀 별로였다. 담백하게 잘 가던 영화에서 마지막에 너무 심심할까봐 갑자기 조미료를 팍 넣은 느낌? 그냥 그 장면에서 덤덤하게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은 신기한게 얼굴이 물론 잘생겼고 목소리가 멋있고.. 아 갖출 건 갖췄구나. 근데 키가 큰 편도 아니고 프로포션이 좋은 것도 아닌데 전신컷이 많이 나와야 하는 이런 영화에서 빛난다.

송강호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잊기 쉬운 '송강호는 키가 크다'는 사실을 이번에 반박이나 하듯 길게 늘어진 트렌치나 제복을 입고 나온다. 둘 조합이 나오는 '자' 부분에서는 그냥 별거 없이 웃기면서도 쫄린다.




이에 비해 다른 배우들이 좀 밀리는 느낌이었고 엄태구는 언제나 그랬듯 좋긴 한데 이번이 특별히 좋았나? 는 잘 모르겠다.


4.
영화 음악을 잘 쓰는 분이기도 하고 놈놈놈에서 워낙 잘 나와서 기대했는데 쏘쏘. 예측가능한 음악들이었고, 뭔가 싱겁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게 떠오르거나 (이상하게 마지막 장면에서는 헤이트풀8, 바스타즈가 강렬하게 겹쳐보였다).

엔딩 크레딧을 다 볼 정도로 영화 매니아나 애호가는 아닌데, 일이 일이다보니 아 이 영화는 여기꺼구나 하고 해외배급까진 보고 나오는데. 그때 나온 음악이 제일 신나고 좋았다. 당분간 노동요가 될 느낌.


5.
가족끼리 일요일이나 쉬는 날 조조 보는 게 좋다. 이런 시기에 이렇게 텐트폴 무비가 나오면 다섯이 쪼르륵 앉아서 보고 들어가는 게 좋다. 다음 이호연 휴가때는 뭐가 나오려나.


6.
공유는 감방안에 있는데도 카누 광고 보는 느낌 (그 커피갑 안에 있는 광고). 그래도 잘생김이 넘쳐서 보는 내내 시선고정.




Thursday, September 15, 2016

Politically Correctness

1. 
카림 압둘 자바는 슬램덩크에서 처음 알았다. 1학년이었던 카림 압둘 자바가 이끌던 팀이 지난해 NCAA 우승한 상급생 팀을 이겼다는..안경쓴 이상한 슈팅폼 한 선수라는 것만 알았다.


그리고 가끔가다 영상 찾아보는 정도였는데 오늘 느즈막히 열어본 타임에 압둘-자바가 쓴 글이 있었다.



농구선수가 왠 글? 했는데 PC함에 대해 기대 이상으로 썼다. (정기구독한지 2년차에 깨달음)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운동선수가 나오지 않는가 한탄하다가(이게 다 SKY 위주의 엘리트체육때문이다, 농구는 중앙대지, 허재 짱..이런 대화로 오간 건 함정) 어제 나온 토익 성적에 자극받고 (맨날 RC에서 무너짐) 꽤 괜찮은 부분만 번역했다. 

번역을 다 한 게 아니라 내가 인상깊은 부분만 번역해놔서 문맥이 짤릴 수도 있고 내 영어실력은 매일매일 퇴보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 보다가 지적할 게 있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2.


많은 정치인에 따르면 미국에는 지카나 에볼라를 합친 것보다 더 위험한 질병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PC함은 사회적 관용 (똘레랑스)이 위협이 되거나 지나치다고 생각한 이들이 자주 쓰는 관용구가 됐다. 특히 2016년 대선에서는 가장 신랄하게 이 문제에 대해 다룬다.


대략 60퍼센트에 이르는 미국인들은 PC 논쟁이 국가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PC함이 너무 지나치게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마다 크게 다르다. 민주당의 두 배 정도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를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18퍼센트만이 지금 우리가 충분히 PC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미국인에게 미국의 주류에 대한 낭만적 환타지와 현재 현실을 조화시키는 것은 무척 어렵다.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중에서 이혼하지 않은 이성애자 부부 밑에 사는 비율은 4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1960년대 이 비율은 73퍼센트였다. Mayberry(*주- 1960년대 미국 TV 프로그램 이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현재 그 누구에 대해서라도 모욕이나 불쾌함, 하찮게 여기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새로운 극단적인 PC함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또 부적절하게 향해있다. 우리 모두 이해는 한다. 이는 마치 공무원들이 매일매일 인지된 둔감성에 대해 과민반응하는 리포트를 만드는 것 같다. 예일대학교 조사에 따르면 63퍼센트의 대학생들은 교수가 어떤 공격적인 말을 하거나 감정적 상처를 줄 수 있는 어떠한 행위를 하기 전에 미리 '경고'를 해주길 원한다.


애지중지하는 접근법은 UCLA 학생 25명이 교수에 대해 연좌 농성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수가 학부 수준의 에세이에서 문법과 맞춤법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학생들은 교수가 학생의 인종에 따른 "적대적인 분위기를 캠퍼스에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뉴햄프셔대학의 학생들은 공격적인 언사를 피할 수 있도록 리스트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American (이 단어를 사용한다면 아메리카 대륙에 United States 만 있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Homosexual (PC한 버전은 "같은 성간의 사랑, Same-gender-loving"), eldery ("People of Advanced Age"), 그리고 healthy (“nondisabled”)  같은 게 있다.

*이 부분에서 예전에 우리나라의 "장애우", "새터민", 그리고 지금 청소 노동자를 부르는 "여사님"이 생각났다.  번역할 말이 딱히 생각 안나서 영어로 남겨놨는데 이건 진짜 Happy Holidays를 뛰어넘는다. (이 얘기도 원문에 나옴)


우리는 헬리콥터 부모를 비웃지만,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을 보호하는 모든 안전 법 조항과 정책을 없애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PC함이 지적하려고 했던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이것이 현상을 더 개선했는지에 대해 물을 수 있다.
여기에 이것(PC)함이 실제 작용했다는 증거가 있다. 코넬 대학교의 조사에 따르면 PC함은 이성간이 함께 일할 때 창의성을 더 도울 수 있다. "(PC함)은 다른 성간과 인터액트 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여 아이디어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잭 곤살로 조직행동 교수는 말한다. "이성간 그룹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면 남녀 모두 그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는데 도움된다."

* 선비충 논쟁도 생각나고, 성희롱 관련 가이드라인들도 생각나는 항목.

여전히 (PC함) 반대자들은 극단적인 예를 들며, PC함이 인종차별, 여성혐오 (misogyny), 호모포비아가 미국 문화 기반에 내포돼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전에 했던 행동을 반복한다.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PC함을 조롱하는 것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것들(문제들)이 존재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PC함 반대자)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진짜 문제는 '회복'이다. 이는 백신 부정론자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하는 것과 같다. 

- 너 왜 그렇게 심각해? 쉽게 쉽게 하자, 그게 뭐가 중요한데, 이런 말들의 위험성이 이 문단 안에 다 들어가있다. 하고 싶은 말을 이 아저씨가 잘 써줬다. 

우리는 그(트럼프)의 프랫 보이 (미국 대학 사교클럽)같은 유머에 웃기도 하고 그를 직설적 화법의 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혹은 그녀를 '질'이라고 부르는데에는 중대한 문제가 따른다. 우리가 이러한 맥락에서 웃을 때마다, 우리는 여성의 내러티브가 남성의 그것보다 낮다는 것을 지지하는 셈이다. 남성 코치가 경기중인 팀의 선수들한테 "아가씨"라고 부르거나 "치마를 좀 올려라"라고 할 때마다, 우리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는 분위기를 영구화하는 것이다



3.
문제에 대해 입다물거나 조롱하기는 쉽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예민폐"들의 불편함에 의해 해결되어 왔다. Microaggression이 일반화되가는 사회에서 이런 예민함, 감수성도 없다면 그게 진짜 지옥이지. 

서강대학교

1.
집단에 속하는 게 너무너무 싫다. 나는 그냥 개별적 존재였으면 좋겠고 우리는 ㅁㅁ니까 ㅇㅇ해야 해 이런 것들이 싫다. 4년전 영국에 간 것도 그런 내 커넥션들을 다 끊고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물론 갔더니 한국인 ㅁㅁㅁ가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페이스북에 출신지역과 학교를 밝히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건 너무 유세떠는 것 같아서 싫다. 성격이 모난 돌이라 '우리가' 라고 하는 것보다 '내가' 라고 하는 게 더 좋다. 이건 내 연결고리니까. 우리 엄마보다는 내 엄마, 우리 회사보다는 내 회사가 더 좋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꿀같은 연휴에 학교 앞 거구장 건물 스타벅스에 앉아 학교 얘기를 하는 건 정말 '우리 학교'가 망할 것 같아서다. ㅋㅋㅋ


3.
학교를 7년 다녔지만 카톨릭 학교라는 정체성은 잘 모르고 살았다. 채플도 없고, 기독교적 인간학 하나 들었던 게 전부였다. 오히려 학교에서 주역을 배우고 타 종교에 대해 공부했다. 부휴와 개강미사에 맞춰 수업 시간표를 짤때도 이게 '종교적'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한 수업이라도 더 빼먹을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었다. 고학년되면 그것도 의미없이 나와서 성당에서 나눠주는 음식 받아먹기도 했지만.)

이 학교의 장점이자 가장 큰 특징(내가 다닌 과, 혹은 나 한정일 수 있음)은 자유주의, 방임주의, 개인주의다. 그냥 이러이런게 있다, 할테면 해라 이런 분위기라서 열심히 찾아 들으면 좋은 것도 많지만 또 어영부영하다간 이 학교의 존재는 뭐냐, 야경학교냐 이런 극단적인 형태가 되기도 한다. 선후배관계도 복전이고 휴학에 교환이 섞이면서 좀 느슨하다. (내가 다닌 과 혹은 나 한정일 수 있음 22) 그 덕분에 대학때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치열하게 살았다. 물론 입학할 때는 이런 걸 모르고 들어왔으니 100퍼센트 만족한 건 아니었다. 시험에서 몇 번 써먹기도 했지만, 옆학교에 대한 아쉬움은 꽤 컸다. 그게 학기 초에 열등감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산 것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에 대한 만족도는 89정도?


4.
학교에서 곶감 빼먹듯 빼먹은 것도 꽤 많았다. 나때만 해도 알바트로스 장학금 뭐 이런 게 있어서 한 달에 글 하나씩 쓰면 10만원정도 장학금을 받는 공모전도 있었다. (나는 한 100정도 채운 것 같다.) 학교에서 받은 돈을 계산해보니 공모전에 다소니 근로장학금 정도를 계산하면 한 학기 등록금은 번 것 같다. (우리 학교는 심지어 등록금도 타 학교에 비해서는 싸다. 신촌에서 삼남매가 다녔는데 내가 등록금이 제일 쌌다. 물론 학번탓도 있겠지만) 다소니 제도도 나는 참 좋다고 생각한다. 단지 일을 하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도우면서 내가 그나마 좀 쓸만한 인간이구나 하는 걸 인정하게 한다. 내가 이 상황을 겪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을 'neglected voice'에 대해 알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냥 주어진 트랙이 아니라 니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봐, (대신 찾는 것도 니가 해)라는 분위기는 미지의 세계 탐험같았다. 교환학생같은 것도 다 이렇다. 알고 있으면 꽤 좋은 시스템을 잘 갖춘 꽤 괜찮은 학교다.


5.
예전에도 쓴 적 있고, (http://mariewithredhoodie.blogspot.kr/2016/04/blog-post.html) 이 글 쓰려고 도서관 계정 찾아보니 빌려 읽은 책은 한 500권정도고 내 이름으로 신청해서 구입한 책은 한 50권정도 되는 것 같다. 학교에서 굳이 이런 걸 왜?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책도 신청하면 아무런 검열이나 제약 없이 구입해서 볼 수 있었다. 내 현재 모습은 서강의 자유가 만들고 빚은 결과물이었다. 실제로 우리 학교는 도서관 숫자도 작고 외부 도서관이나 이런 건 없지만, 장서 종류로는 압도적이다. 로욜라에 들어가면 느껴지는 라벤더 향기 비슷한 방향제와 수직 구조의 도서관의 모습은 '뭔가 더 알고 싶다'는 묘한 자극이 됐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그냥 '알고 싶은 뭔가'가 생기면 도서관에 가서 찾았고, 답이 아니더라도 참고할 만한 뭔가가 있었다. 나라는 인간을 스무살 넘어서부터 더 알게 하고 더 자라게 한 건 엄마아빠의 보살핌도 있겠지만, 서강이 만들어준 자유로운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6.
그런데 서강이 망할 위험이다. ㅋㅋㅋ

8년동안 존재조차 모르던 예수회가 나와서 갑자기 잘 진행되던 사업을 막고, 이사회와 총장을 자기네 사람으로 앉히려고 한다고 한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평생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나와서 존폐위기까지 몰고가니 당황스럽다.

아직도 나는 저 사람들의 저의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해서라도 지켜내야 할 그들의 '가치'는 무엇이며 그것이 재학생과 졸업, 동문들의 희망을 꺾어가면서까지 지켜야할만큼 숭고하고 위대한 일인지.

예수회는 행동주의적인 특징을 갖는다. 카톨릭이 종교개혁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던 건 이런 '행동대장'이 시의적절하게 나타나서다. 필요없는 건 과감하게 탈피하고 교인들이 대부분 지식층이었다(고 한다.)

그런 예수회가 한국예수회가 되면서 한국패치를 찍었는지 갑자기 이유도 없는 명분에 집착하는 고리짝같은 집단이 돼버렸다. 도대체 왜? 라는 답도 모른채 지금 학교 일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다.

아니 진짜 잘 돼가던 남양주 사업(나 입학할 때부터 있던)을 막는 이유를 하나라도 알면 답답하진 않을텐데, 이건 무슨 미운 일곱살 생떼쓰듯 이건 안돼 저건 안돼 이러고 있는 꼴을 보자니 집단 정신병이라도 걸린건가 궁금하다.

7.
나는 우리 학교의 자유로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으면 좋겠다. 예수회가 진짜로 '진리에 순종한다'면 그 진리가 단지 소수 '교인'의 진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진리'에 순종해, 현명한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Tuesday, September 13, 2016

김종욱 찾기 (Finding Mr.Destiny, 2010)

1.
하루키는 그랬다. "라오스에 가면 뭐가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도시에 여행을 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여행은 특별한 것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거기 있으면서 여행을 하면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한때 후지와라 신야처럼 뭔가 방랑하면서 영혼의 자유와 내면의 진리를 찾고자 했는데 여행하다보면 그런 건 없다. 그냥 세끼 밥 먹다보면 아 그냥 먹는구나..딱딱한 벙커베드가 지칠때쯤이면 방안의 푹신한 침대가 그립다. (그래도 요즘은 호스텔 안가서 벙커베드는 벗어났다.)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떠나지 않더라도 그냥 자기 마음을 어떻게 고쳐먹냐 그게 더 중요하다. 괜히 Traveler's heart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나 대학 입학즈음에는 한때 인도 여행 붐이 일었고 그게 산티아고 순례길, 그리고 요즘에는 제주도로 옮겨간 것 같다. 거기에 가면 내 영혼이 밑바닥부터 쫙 바뀔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가지만, 가면 한국 사람 동창회 할 수 있을 정도로 바글바글하다. 어딜 가도 한국사람은 많다.

2.
뒤늦게 김종욱 찾기를 봤다. 뮤지컬을 안좋아해서 원작도 안봤고 이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한국에 없어서 (홍콩에서 내 영혼을 찾고 있었으나 Fail...) 때를 놓쳤다.

김종욱이라는 첫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사실 내용이 별거 없고 공유가 내용이고 임수정이 개연성인것 같은 그냥 달달한 영화다.

왜 다들 조르푸르조르푸르 하는지 몰랐는데 이 영화가 조르푸르에서 만난 로맨스때문에 시작된 거였다. 역시 어딜 가도 한국인은 많다. 이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가지만 나는 여행가서 한국인을 만난 기억이 그닥 없다.

지금 기억해보면 싸이에 캡쳐되서 돌아다니던 대사가 꽤 많이 있었다. 끝내는 게 싫어서 마지막 음식은 남겨놓는다던가 (실제로 이런 사람도 있었음, 그땐 왜저래? 했는데 영화 하나가 사람 베렸다.) 인연을 붙잡아아 운명이 된다던가, 용기가 없는게 아니라 절실하지 않았다 뭐 이런 류.

여행에서 생기는 우연에 뭔가 가치를 부여하고 괜히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말랑말랑한 얘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포선셋, 선라이즈도 사실 '여행의 우연'을 부추기는 것 같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별로다.) 나는 여행갈 때 스트레이트로 하고 싶은 거 하기 싫은 거 끝나면 바로 끝내고 오는 편이라 왜 저렇게 안하던 짓들을 해놓고 다들 낭만이니 청춘이니 하는건가 싶다. 운명이니 인연이니, 그런 것도 잘 안믿는다. 나는 친해지고 싶으면 대놓고 쓸데없이 말걸고 자꾸 들이대는 편이라.....

그래도 인도라는 잘 모르는 여행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물론 내용의 대부분은 한국이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적이다.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우유부단한 남주나 너무 '무례하고' '무식할' 정도로 막무가내인 여주는 이해가 힘들었지만, 마지막을 피해가려는 여주 모습에서 귀국일을 차일피일 미루던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결국 맞이할 마지막이라면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다. 어떻게 미뤄서 질질 끌어대더라도 어쨌든 아쉬움은 남고, 끝맺음은 해야 한다.

3.
영화에서 본 것처럼 여행을 다니면 내가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도 만나고 안해본 것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추억도 남기면 내가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여행광까지는 아니지만 안다니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대로다. 한국에서의 나와 타지에서의 '나'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영어로 말할 때 목소리가 좀 간사해진다는 걸 빼면 그냥 별반 다른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정적이 있는 걸 싫어하고, 낯을 어디서든 가리고, 카페에서 멍 때리면서 앉아있다 하루를 보내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계속 내 취향을 쌓아나간다. 아무리 새로운 나라에 가고 낯선 도시에 있더라도 내가 강아지가 바글바글한 공원에 앉아 선베이딩을 즐기며 여유를 부리진 않을 거고, 자연광경에 취해서 넝마같은 알라딘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싸돌아다니진 않을 거란 걸 잘 안다. 나는 여전히 도시가 좋고, 사람들의 북적임이 좋고,  잘 모르는 사람한테 낯을 가린다. 그러니까 여행 분위기에 취해서 비포 선라이즈처럼 낯선 사람이랑 쌩뚱맞은 도시에서 뻘짓을 할 그런 확률은 0에 수렴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여행을 하는 건 그런 내 취향을 계속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이 좋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뭘 싫어하는 지 확고해졌고, 이제 쓸데없는 돈낭비도 조금씩 줄어들게 됐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하나에 고정되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괜한데 힘빼지 않아서 좋다.


4.
다음 여행도 아마 파리나 맨체스터가 될 것 같지만, 좀 더 힘빠지기 전에 멀고 힘든 나라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은 든다. 안해보고 "난 싫어" 하는 것보다 해보고 "해봤는데 별로야"라고 해야 후회도 없으니.


5.
회사 일로 보는 영화는 이렇게 길게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드는데 공유매직은 무섭다.


노스페이스는 이제 좀 유행지났으니 파타고니아 플리스 입고 멀리 몸고생하는 여행이나 가볼까.

Monday, September 12, 2016

Cafe Society (2016)

1.
이 영화를 5월에 봐서 이건 일종의 '기억 복원'이다. 영화에 대한 얘기보다는 파리에 대한 기록에 더 가깝다.

프랑스에 가면 항상 영화를 한 편씩 본다. '영화는 유럽, 그중에서는 프랑스'라는 마인드가 있어서 그런지 꼭 현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물론 나는 프알못이고 프랑스는 자막을 싫어하지? 그래서 꼭 '영어'로 된 영화를 '자막'으로 하는지 확인하고 봐야한다. 작년에는 매드맥스를 프랑스어로 봤다가 한국 와서 다시 보고 '오오' 했다.

올해 5월에 칸느가 시작되고서 파리에 있었다. 운 좋은 건 아니다. 의도했으니까. 내 생일이 칸이랑 비슷해서 항상 그렇게 된다. 이건 자랑이다. 이렇게 자랑하려고 열일했고 여긴 내 공간이니 맘껏 자랑해야지.

퐁피두에서 전시를 보다가 비가 와서 앞에 있는 극장에 들어갔다. 칸느 스페셜이 한다고 했다. 경쟁작 몇 편, 비경쟁작 몇 편을 (먼저인지는 모르겠음) 상연했다. 아가씨는 없었고, 곡성은 한국가서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다 못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꺼는 상영 리스트에 아쉽게 없었고, 영어권 영화중에서 유일한 선택지는 <카페 소사이어티>였다.

프랑스인 티켓 판매원 아줌마는 "너 영어 알아들음?"라고 프랑스어로 나한테 물어본 것 같다. 물론 나는 프랑스어를 못하기 때문에 내 추측이다. 나는 아주 자신있게 내 유효기간이 2년이나 더 남은 국제학생증을 들이밀며 학생할인까지 받아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2.
나한테 우디 앨런은 뉴욕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 영어를 하고, 뉴욕을 담는다. 물론 이 영화도 그렇고 미드나잇 인 파리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처럼 뉴욕이 아닌 영화도 있지만, 그냥 이 사람의 영화는 다 뉴요커의 이야기같다.



처음 <애니홀>을 보고 이렇게 영화에서 말이 많을 수 있구나 했다. 대사를 글로 옮기면 다 말도 안되고 뭔 소린가 싶은 중언부언인데 그게 영화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사건을 만든다. 몸을 써가면서 낄낄대는 서부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랑은 조금 다른 지점은 여기다. 이야기를 생각하고, (마치 아재개그처럼) 들을때는 음..하다가 한 두 시간 지나거나 아니면 새벽 두 시쯤 혼자 그걸 떠올리고 낄낄 웃는다.

블루 재스민에서는 재스민이 자기의 사치를 포장하기 위해 이말저말 다 떠벌거리면서 결국엔 공허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들이 자기의 말에 더 귀기울여달라고 그렇게 건조한 말을 끊임없이 내뱉는다.

이 영화에서 그런 역할은 제시 아이젠버그다. 아직까지 소셜 네트워크의 너드가 더 익숙한데 여기서는 '그래도 그나마 조금은' 심각해보이는 역할이랄까. 근데 제시 아이젠버그도 어려보이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그냥 힙스터 조무래기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둘 다 역할에 딱 맞는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특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맨날 떡진 머리에 삐딱한 차림을 하다가 여기서 '꿈에서나 볼법한 아름다운 미녀 첫사랑'이 돼서 짠 나타나서 더 역할에 몰입이 안된 것 같다. (근데 평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제일 좋았다.. 이상하네...)

둘 다 나한테 너무 어린 이미지라서 아직은 꿈을 좇고 '환상의 나라'에 살 것 같은 이미지인데 마치 불혹의 위기를 겪는 얘기를 하고 있어서 자꾸 케이트 블란쳇의 자스민과 비교됐다.


3.
바비는 꿈의 동산, 헐리우드로 왔지만 결국 한계를 깨닫고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꿈은 시들해지고 뉴욕의 현실에 발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러다 다시 첫사랑 보니랑 재회하다가 영화는 먹먹하게 끝난다.


4.
보니를 보자마자 생각난 건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였다. 비슷하다. 돈많은 남자와 순수한 사랑 사이에서 돈을 택하지만, 약간의 후회는 있는? 그런 캐릭터지만 보니는 그래도 데이지보다는 더 밍기적대는 게 심하다. 그래서 더 정이 안간다.

데이지는 결국 자기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감정을 버리고 이성적 판단을 하지만, 보니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멍하게 바라보면서 이도저도 모를..그런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비친다. 이건 마치 '나는 사랑은 하지만 욕은 먹기 싫어', 차라리 데이지처럼 b**ch가 되던가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내가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안좋아해서 보니를 싫어하는 걸 수도 있지만 역할 자체가 욕 먹기는 싫지만 사랑은 좋아. 그니까 eat and have a cake 하겠다는 이런 태도가 너무 싫다. 하나만 해라.

이에 반해서 바비는 개츠비보다는 현실적이다. 개츠비가 무조건 직진이었다면 바비는 우회도 하고 뒤로도 가고 아니면 다시 돌아가는 '유두리'있는 사랑을 한다. 베로니카한테 꿈은 꿈일뿐이라고 하면서 위로하지만 그 뒤의 표정은 과연 꿈이었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하니까.


5.
우디 앨런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사랑에 대해 예전같았으면 "부도덕", "불륜", "이런 더러운" 이랬겠지만, 살다보니까 사람 마음이 과연 그렇게 딱 잘라 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간통도 아니고, 도망가서 범법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냥 가슴 한 구석에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걸 어쩌겠나. 그게 있어도 잘 누르고 살 수 있다면 되는거지.

영화가 끝나고 바에서 혼자 술 마시면서 그냥 저런 추억 하나 없는 게 오히려 더 슬픈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6.
이 글을 쓰는데 여진이 났다. 괜히 앞에 도덕이고 뭐고 이런 얘기 했다가 벌받은 거 아닌가 무섭다. 착하게 살아야지. ㅎ



Friday, September 9, 2016

천성

1.
어릴 때 할머니 손에서 컸다. 내 기억속의 할머니는 항상 설거지를 했고 바닥의 먼지를 쓸고 닦았으며, 매 순간 머리카락 하나까지 주워서 치울 정도로 깔끔했고 부지런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든 게 정갈하고 깔끔했다. 할머니 집은 이곳저곳이 오래됐지만 항상 반들반들하게 청소가 돼 있었다.

이런 성격을 많이 닮은 우리 아부지, 내가 맨날 이부장님 이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우리 아빠도 마찬가지다. 술을 그렇게 좋아해서 새벽 늦게 들어와도 다음날 더 일찍 일어난다. 이유인즉슨,

"술 좋아하면서 게으르기까지 하면 안된다. 술 마신 날은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래야 술 마시는 게 책잡힐 일이 아니라 술 좋아하는 넉살좋은 사람이 된다." 고 했다. 은퇴한 지 몇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빠는 일찍 일어난다.

나는 그게 나한테 내려온 유전자일 '줄' 알았다.


2.
나는 이씨 집안의 이런 유전자는 전혀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엄마가 게으른 건 아니다만...) 물론 보고 자란 게 있어 쪼고 쪼아서 겨우겨우 부지런한 척은 해보려고 하지만 내 마음속의 부지런함과 내 천성은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9월 9일 오후 14시 44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오늘까지 하려고 한 서류는 계속 그 상태로 답보중이고, 엑셀의 칸 몇 개도 채우지 못했다. 운동 다녀와서도 물 먹은 솜마냥 계속 멍하니 멍 때리고 있었다. 이게 요 며칠 사이의 일이다. 이상하게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정말 매번 마감날 "욕욕욕" 온갖 욕을 입에 물고 시간과 싸워 끝내는 습관이 들었다. 예전에는 마감일이 아니라 시작일을 기준으로 일을 처리했는데, 그랬던 이주현은 고인이 되었고, 이제 서반야산 게으름만 잔뜩 얻어가지고 돌아온 이마리가 그 자리에 있다.

플래너를 쓰고 시간을 쪼개고 짐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다니면서 부지런을 떨어보려고 하지만, 천성이라는 덫은 나를 항상 게으른 상태로 끌고 간다. 요 며칠 몰스킨이 어디있는지 챙겨보지도 않았다. 아마 백지로 일주일을 나는 건 처음일 것 같은데 어디까지 게을러질 수 있나 테스트나 해볼까.


3.
전시도 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방정리도 좀 해야할 것 같은데 마음속에서 외침으로만 끝난다.

일을 더 늘리면 이게 좀 나아질까. 매일매일 데드라인을 챙기다보면 또 이런 천성이 잠시 숨죽일지 모른다. 근데 또 하기가 싫다. 아 이 무슨 에너지 뱀파이어 좀비 중2병같은 징징댐인지. 마지막 20대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 에라 나가서 접싯물에 코박고 죽자. 하려고 했는데 아직 옷도 안갈아입고 화장도 안했네. 이렇게 오늘 하루 더 게을러져야겠다.......


4.
나한테는 좀 더 엄격해야 할 것 같다. 오늘 핑계는 날씨가 구려서, 어제 핑계는 비가 와서, 그제 핑계는 뭔가 또 있었을텐데. 

Wednesday, September 7, 2016

굿바이 싱글 (Familyhood, 2016)



1.
혜수언니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리고 머리는 꼭 기르시고 앞으로 시그널같은 드라마나 직장의 신같은 코미디 하나만 더 찍어주세요. 아니면 짝같은 로맨스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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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굿바이 싱글>에서 생각해 볼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1) 임신한 여자애는 안돼고 임신시킨 남자애는 되는 상황
- 임신할 때 여자는 자신의 몸을 내준다. 이건 희생과 모성애 이런 말로 감싸야 할 게 아니다. 여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제로 너무 어릴 때 임신하면 위험도도 커진다) 애를 '품는다'. 남자가 펭귄처럼 알 품어줄 거 아닌 이상 여자가 임신 안한다고 뭐라고 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2인1실로 10개월 사는 게 아니라 그동안 먹을거, 입을거 다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도 어느 정도 제한받으며 산다. 왜냐고? 숭고한 '출산'의 의무를 져야 하니까. 끝나고도 축 늘어진 살을 봐야 하며 이제 육아의 고귀한 의무를 지며 모성애를 뿜어내야 할 차례다.

여기서 중학생(예고 볼 때는 그래도 고등학생은 될 줄 알았는데)이 임신을 한다. 그런데 임신시킨 남자는 국가대표로 선수권에 나간다. 여자는 국내 미술대회에서 입장을 거부당한다. 보기 안좋으니까. 차라리 새처럼 알을 낳고 부화까지는 누구든 돌볼 수 있으면 여자의 희생은 좀 더 줄어들었을까. (이건 뭐 자연의 법칙까지 다 여자희생이네)


2) 나이든 여배우
여배우라고 하는 것도 사실 웃기다. Actor는 직업이지만 Actress는 '여자'의 직업이다. 모든 직업에서 기본형은 남성이며 여성은 예외적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이든 여배우의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여자'에 주어진 역할은 제한돼 있고, 배우 시장에는 뉴페이스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니까 대중의 관심 얻기란 더더욱 어렵다. 나이든 배우들이 더 자극적인 역할에 매달리고, 보톡스건 수술이건 어쨌건 보기좋은 외모에 집착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3.
영화는 그냥저냥 재밌게 볼만하다. 우리 회사에서 딱 좋아할 스타일이다. ife에서 걸릴만한 문제들이 하나도 없다. 자막에도 심해봐야 bastard고 f나 c는 거의 없다.

한국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좀 더 직관적으로 와닿았다. 이 영화는 결국 새로운 '가족형태'를 얘기한다. 여배우와 '불알친구' 매니저(영화에서 직접 이렇게 말함.. 난 이 단어도 너무 싫지만)와 그 가족이 거의 한 가족이다. 여기서 '이모'라는 한국 가족언어는 정말 위대하다. 아줌마도 아니고 아빠친구누구아줌마가 아니라 그냥 이모라는 말로 모든 여자사람관계를 퉁칠수 있다. 그리고 새롭게 들어온 중학생까지 한 가족이 되면서 1인가족, 싱글맘같은 새로운 가족 형태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나라 제목은 제일 중심돼는 고주연의 변화에 맞춰서 굿바이 싱글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애를 가졌다고해서 싱글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어쨌든 파트너가 없는 상태는 싱글이니까 애의 유무랑은 관계없이.

영어 제목처럼 새로운 '가족'에 중점을 둔 제목이었으면 좀 더 반응이 다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족의 탄생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그건 같은 영화가 있어서 패스...)


4.
마동석은 정말 천의 얼굴이다. 그냥 무식한 근육맨이 아니라 다정한 뭔가가 있다. 파트너로 정유미에 서현진에, 앞치마 잘어울리는 근육맨이라니. 신선하다. 당분간 Don LEE 들어간 크레딧을 더 많이 볼 것 같다.


5.
같은 영화 열 번 이상 보는 것도 지겹다....하........

Sunday, September 4, 2016

Let me introduce my self

1.
며칠간 잠도 못자고 끙끙대던 일이 끝났다. 끝나고 나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장이 꼬여 나는 엉엉 기면서 사족보행으로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홍여사 매직에 빠져들어 인류가 진화하듯 이족보행을 한데 이어 과일과 술, 밀가루를 아작내고 이 글을 쓴다. 고개까지 아작냈다면 정말 KO 됐을 것 같은데 고기가 없다.

2.
나는 굉장히 의존적인 사람이다. 혼자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는 걸 요 몇년간 경험으로 깨달았다. 내 프로파일에 "이찡찡투덜"이라고 있는 건 괜한게 아니다. 정말 나는 찡찡대고 투덜댄다.

3.
요즘 주변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 지 모를 정도로 고맙다. 지금 굉장히 자존감도 낮고, 일도 짜증나고 (as always) 그리고 가장 문제는 i don't know what i do 이 상태로 몇 달간을 맴돌았다. 재미없는 일을 "vocation"이라는 말로 포장해가면서 꾸역꾸역 버티면서, 거기다가 하고 싶지 않은 1,2를 함께 하면서 이런 불만족은 더 커져갔다.

4.
작년에 탈락하고 나서 솔직히 고마웠다. 그 상태로 갔다 한들 나는 불행했을 게 1000000% 뻔하고, 혼자서 또 끙끙댔을 생각을 하면 현기증이 난다. (물론 나는 합격했을 확률이 0.0000000000001%에 수렴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때문에 굉장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기쁘다.

나이가 먹어가면 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거기다가 나처럼 '자존감 결여' or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대재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 이상의, 아니 상상 이상으로 감사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또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

나의 시덥잖은 농담을 묵묵히 참아주거나, 아니면 내 변덕스러움을 그냥 무던하게 넘겨주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게 참 고맙고 신기한 게, 인생에 힘든 시기는 한 번에 오고 그치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오는데 그때마다 내 변덕과 찡찡을 받아주는 사람이 계속 끊임없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삶에 대한 기대를 못 놓는 지 모른다.

5.
내 마음속에서 말하고 싶은 건 무한대인데 그걸 단지 "고마워"라고 말하자니 억울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보다 더한데. 한글이 그정도인건지 아니면 내 한국어 능력이 그정도인건지 그냥 '고맙다'라고만 말하잔니 억울하다. 난 그게 아닌데. 그 고마움을 단지 새벽에 "자니" 와 함꼐 '아재개그' (나는 이 어이없는 언어유희를 2012년부터 해왔으니, 아재랑은 거리가 멀다고 하고 싶다.)로밖에 할 수가 없다. 나는 남한테 받는데는 익숙하지만, 이걸 돌려주는데는 한없이 멍청하다. 그래도 내 철없는 감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여지껏 있다는 데 나는 오늘도 감사하다.

6.
내일 술이 깨면 이걸 부끄러워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 모여 나는 내 삶을 켜켜이(히?) 쌓아갈 수 있었고, 그래서 오늘도 버텨나갈 수 있다.

7.
바람이 있다면 내가 버텨주는 만큼 그 사람들한테도 내가 '믿을만한' 무언가가 됐으면 좋겠다. 그만큼 내가 자라있고, 내가 쓸만했으면 좋겠다. 

Thursday, September 1, 2016

Good Will Hunting (1997)

1.
과거에 읽었거나 봤던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줄거리도 다 알고 반전도 다 알지만, 주체인 내가 바뀌어서다.

요즘 새로운 책 대신 5~6년 전에 읽던 책들을 다시 꺼내 보는데 (eg. 기타노 다케시, 김중혁, 허지웅) 분명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데 새롭다. 사실 수필이나 에세이는 그 시대 이슈에 영향받는 것도 커서 새로운 것보다는 그냥 술술 읽혀서 뭔가 하기 싫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나는 놀지 않는다의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읽는다.

가장 새로운 건 책이 접힌 지점을 보거나 책에 쳐진 밑줄, 메모를 볼 때다. 그때는 무슨 지적 허영이 그렇게 가득했는지 왜 이런 걸 좋다고 별표에 밑줄에 접어놓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한테는 이 책의 이 문장이 엄청난 ####였지만 지금은 아,... 요정도나 음....? 하는 의문을 남기는 것도 많다.


2.
요즘 한국 극장가는 재개봉 열풍이다. 뭐 특정한 장르, 감독, 국가를 따질 것 없이 다 재개봉한다. 동네 극장에서도 하루에 한 편정도는 재개봉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영화배급사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도 돼서 리스크도 적다. 게다가 한국 영화 덕후들은 (사실 이건 영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예술 매니아 전반적으로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특정한 장르에 편식하기 보다 그냥 좋은 건 다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옛날 영화를 틀어주면 어느 정도 티켓 세일즈는 보장받는다. 브로셔도 새로 찍을 필요 없으니 비용도 절약된다. 팬 입장에서는 우리 오빠/언니의 뽀송한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서로 어느 정도 또이또이하게 계산이 맞는 장사다.


3.
물론 여기 나도 포함해서.

<굿 윌 헌팅>은 로빈 윌리암스 스페셜로 해서 재개봉 됐다. (근데 재개봉하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왜 없는거지?)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랑 묶여서 같이 주목받은 건 '세상에서 버림받은 천재'가 '자기를 이해해주는' "참스승"을 만나서 '세상과 화해'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라서 라고 생각한다. (위플래시-플래쳐같이 타이거 티쳐까지 '진정한 스승'이라고 해석되는 판국이니)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내가 무척이나 똑똑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때여서 나한테도 이런 '선생님'이 필요하다, 세상은 왜 천재를 알아봐주지 않는거지 이러면서 끄적였다.

몇년이지나고 내가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면서 자기위안을 수십 번이고 되풀이하고, 지금 다시 보니까 천재보다는 그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그니까 영화에서도 그렇게 크게 안나오는 사람들한테 더 시선이 간다.


4.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척이었다면 과연 윌과 저렇게 오랜 시간 같이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션 교수도 대놓고 말했다. "척은 너한테 형제지, 영감을 주는 사람은 아냐"라고. 그니까 둘은 다른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는 엄청난 천재, 하나는 그냥 아이리쉬 블루컬러. 둘이 같이 해온 세월동안 아무리 척이 아무리 멍청하고 배운 게 없어도 지내다보면 기본적으로 윌이 나랑은 다른 비범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질투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순수한 우정을 지킬 수 있었을까.

특히 "나는 차에서 내려서 너희 집 문을 두드릴 때까지가 가장 설레. 니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났으면"이라고 하는 대사를 보면 얘는 정말 천성이 에인절인건지 그냥 자기 친구가 잘되는 게 '악의없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다.

그냥 다 포기하고 대충 산다는 윌한테 오히려 "내가 너였으면 그렇게 안살았어. 내가 갖고 싶어도 못갖는 그런 능력을 그렇게 쓴다는 건 오히려 우리를 모욕하는거야"라면서 화내는 장면에서 맷 데이먼이랑 벤 애플렉이 정말 '우정'이 뭔지 이 영화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5.



램보 교수는 노력을 죽어라 했다. 주어진 능력도 있겠지만, 그걸 알고 깨우치고 이걸 빛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갈고닦아서 겨우 1캐럿 정도의 다이아몬드가 됐다. 아니 많이 쳐줘서 3~4캐럿이라고 치자.

그런데 자기 눈 앞에 지금 제일 적게 쳐도 50~60은 됄, 다이아몬드 원석, 그것도 아주 특이한 색깔을 품은 순수한 원석이 눈에 딱 보인거다. 갈고닦았을 때 뭐가 될지 모를 그 원석이 자기가 원석인 걸 알고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되는 걸 아는데도 그 능력을 허비하는 게 보인다.

이 사람은 질투도 났겠지만, 똑똑한 사람이니까 자기 주제 파악도 빠르다. 나는 안됀다. KO 패,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원석을 제대로 갈고 닦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인 궁금함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학자니까 윌이 수학적으로 뭔가 하나를 터뜨릴 수 있는거고,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겠지.

그래서 자기딴에는 최선을 다하는데, 이 스무살 넘은 원석은 그냥 이걸 낭비한다. 자기한테 주어졌으면 좋았을 이 재능을 낭비하는 걸 보고만 있으니 속이 탄다. 내가 저 능력이 있었다면 더 갈고 닦아서 뭔가를 하나 딱 했을텐데 이런 간절함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질투도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램보 교수가 불타는 수학 수식을 겨우 붙잡고, 나는 이걸 풀 수 없다 라고 하는 장면에서 무장해제된 듯이 울었다. 누군가한테는 정말 간절했을 그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낭비돼고 있다는 사실에 나를 끼워넣어서 극장 안에서 혼자 울었다.


6.
요즘 내 한계, 내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 주제파악을 하는 과정중이다. 그냥 여기까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더 명확해지는 상황이 다가왔을 때 나보다 좀 더 잘난 누군가를 바라보며 나는 질투심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십년 후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면 또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7.
사운드 트랙도 어릴때 들었을때는 뭔가 밋밋했는데, 영화 다시 보고 와서 지금 사흘째 엘리엇 스미스만 무한 반복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