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교 입학하고 김지운 감독의 자서전(김지운의 숏컷)을 읽었다. 지금도 뭔가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그 책을 읽는다. 세련됨이 뭔지, 차분하게 자기 얘기 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내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자, 감정과잉, 자기연민에 빠지면 까리함을 잃는다는 것도.
책 덕분에 커피를 마시는 것=세련된 어른 이라는 착각에도 단단히 빠져서 커피는 커피빈, 에스프레소 세가프레도라는 공식을 거의 신념처럼 따르기도 했다. (요즘도 세가프레도 있나?)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까리하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분명 잔뜩 뛰어다닌 장면인데 땀냄새보다 우디한 향수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놈놈놈의 장총씬에서 와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잘 빠진 화면도 나오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놈놈놈 보겠다고 부산극장 앞에서 밤을 샜다. (마지막 피프의 추억)
2.
가족끼리 밀정을 봤다.
오랜만에 나온 영화라 기대가 커서 예고편도 안보고 평도 최대한 안 읽고 갔다. (잊는다 라스트 스탠드. 악마를 보았다 이후에 첫 영화라고 나는 '믿는다')
여전히 까리한 어른 남자의 얘기는 여전했다. 근데 내가 나이가 든건지, 이 감독님이 나이가 든건지, 둘 다인건지. 그 스타일리시함이 이제 막 충격적으로 좋지가 않다. 그냥 잘 빠졌구나...
밀정은 베베 꼬인 영화다. 단순하게 보면 이중첩자와 속는자, 찾는 자의 얘긴데 그게 여러 인물이 한 번에 나오면서 꼬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얘기를 생략하고 최대한 화면의 화려함에 집중하거나, 얘기를 최대한 넣어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하거나.
후자의 경우로는 암살이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를 남겼다. 그런데 밀정은 정 반대다. 밀정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밀정에 대한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그 모여있는 장면을 최대한 길쭉길쭉 수직적으로 쫙 누르게 찍어서 분위기를 그림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모든 얘기에서 대사보다는 화면이 중요하고 이야기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 책에서 쓴 것처럼 집단적 슬픔에 빠지지 않고 영화라는 영상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과다한 감정은 걷어냈다. 우리 조국이, 민족이, 이런 얘기도 최소로만 하고, 그냥 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좇는 자와 그렇지 않은 편의 입장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지적, 여자캐릭터가 별로라는 지적은 이번에도 나올 것 같다. 겉멋들었다는 느낌도 여기서 나올 수 있다. 실제로 한지민 역할은 겉돌았고 (세모 집합에 동그라미가 있는 느낌), 몇 배우는 너무나 지나치게 세련된 이미지라 약간 시대에 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모두가 다 암살처럼 친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 제국주의 시대의 스타일은 진짜 '까리함'이 넘치는 시대다. 모던 상하이, 모던 경성이 계속 영화화되는 것도 이때의 이질적인 느낌이 감독들한테는 뭔가 해보고 싶다는 도전욕구로 나왔을지 모른다.
3.
이병헌 송강호는 정말 아우라가 다르다. 놈놈놈때 이후로 이런 시기에 이런 역할 조합으로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나쁜놈과 이상한놈), 목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몸으로 삭제된 모든 이야기를 한다.
특히 이병헌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감독님은 여기다가 나레이션도 넣은 것 같은데, 근데 난 그게 좀 별로였다. 담백하게 잘 가던 영화에서 마지막에 너무 심심할까봐 갑자기 조미료를 팍 넣은 느낌? 그냥 그 장면에서 덤덤하게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은 신기한게 얼굴이 물론 잘생겼고 목소리가 멋있고.. 아 갖출 건 갖췄구나. 근데 키가 큰 편도 아니고 프로포션이 좋은 것도 아닌데 전신컷이 많이 나와야 하는 이런 영화에서 빛난다.
송강호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잊기 쉬운 '송강호는 키가 크다'는 사실을 이번에 반박이나 하듯 길게 늘어진 트렌치나 제복을 입고 나온다. 둘 조합이 나오는 '자' 부분에서는 그냥 별거 없이 웃기면서도 쫄린다.
이에 비해 다른 배우들이 좀 밀리는 느낌이었고 엄태구는 언제나 그랬듯 좋긴 한데 이번이 특별히 좋았나? 는 잘 모르겠다.
4.
영화 음악을 잘 쓰는 분이기도 하고 놈놈놈에서 워낙 잘 나와서 기대했는데 쏘쏘. 예측가능한 음악들이었고, 뭔가 싱겁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게 떠오르거나 (이상하게 마지막 장면에서는 헤이트풀8, 바스타즈가 강렬하게 겹쳐보였다).
엔딩 크레딧을 다 볼 정도로 영화 매니아나 애호가는 아닌데, 일이 일이다보니 아 이 영화는 여기꺼구나 하고 해외배급까진 보고 나오는데. 그때 나온 음악이 제일 신나고 좋았다. 당분간 노동요가 될 느낌.
5.
가족끼리 일요일이나 쉬는 날 조조 보는 게 좋다. 이런 시기에 이렇게 텐트폴 무비가 나오면 다섯이 쪼르륵 앉아서 보고 들어가는 게 좋다. 다음 이호연 휴가때는 뭐가 나오려나.
6.
공유는 감방안에 있는데도 카누 광고 보는 느낌 (그 커피갑 안에 있는 광고). 그래도 잘생김이 넘쳐서 보는 내내 시선고정.
대학교 입학하고 김지운 감독의 자서전(김지운의 숏컷)을 읽었다. 지금도 뭔가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그 책을 읽는다. 세련됨이 뭔지, 차분하게 자기 얘기 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내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자, 감정과잉, 자기연민에 빠지면 까리함을 잃는다는 것도.
책 덕분에 커피를 마시는 것=세련된 어른 이라는 착각에도 단단히 빠져서 커피는 커피빈, 에스프레소 세가프레도라는 공식을 거의 신념처럼 따르기도 했다. (요즘도 세가프레도 있나?)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까리하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분명 잔뜩 뛰어다닌 장면인데 땀냄새보다 우디한 향수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놈놈놈의 장총씬에서 와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잘 빠진 화면도 나오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놈놈놈 보겠다고 부산극장 앞에서 밤을 샜다. (마지막 피프의 추억)
2.
가족끼리 밀정을 봤다.
오랜만에 나온 영화라 기대가 커서 예고편도 안보고 평도 최대한 안 읽고 갔다. (잊는다 라스트 스탠드. 악마를 보았다 이후에 첫 영화라고 나는 '믿는다')
여전히 까리한 어른 남자의 얘기는 여전했다. 근데 내가 나이가 든건지, 이 감독님이 나이가 든건지, 둘 다인건지. 그 스타일리시함이 이제 막 충격적으로 좋지가 않다. 그냥 잘 빠졌구나...
밀정은 베베 꼬인 영화다. 단순하게 보면 이중첩자와 속는자, 찾는 자의 얘긴데 그게 여러 인물이 한 번에 나오면서 꼬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얘기를 생략하고 최대한 화면의 화려함에 집중하거나, 얘기를 최대한 넣어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하거나.
후자의 경우로는 암살이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를 남겼다. 그런데 밀정은 정 반대다. 밀정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밀정에 대한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그 모여있는 장면을 최대한 길쭉길쭉 수직적으로 쫙 누르게 찍어서 분위기를 그림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모든 얘기에서 대사보다는 화면이 중요하고 이야기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 책에서 쓴 것처럼 집단적 슬픔에 빠지지 않고 영화라는 영상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과다한 감정은 걷어냈다. 우리 조국이, 민족이, 이런 얘기도 최소로만 하고, 그냥 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좇는 자와 그렇지 않은 편의 입장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지적, 여자캐릭터가 별로라는 지적은 이번에도 나올 것 같다. 겉멋들었다는 느낌도 여기서 나올 수 있다. 실제로 한지민 역할은 겉돌았고 (세모 집합에 동그라미가 있는 느낌), 몇 배우는 너무나 지나치게 세련된 이미지라 약간 시대에 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모두가 다 암살처럼 친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 제국주의 시대의 스타일은 진짜 '까리함'이 넘치는 시대다. 모던 상하이, 모던 경성이 계속 영화화되는 것도 이때의 이질적인 느낌이 감독들한테는 뭔가 해보고 싶다는 도전욕구로 나왔을지 모른다.
3.
이병헌 송강호는 정말 아우라가 다르다. 놈놈놈때 이후로 이런 시기에 이런 역할 조합으로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나쁜놈과 이상한놈), 목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몸으로 삭제된 모든 이야기를 한다.
특히 이병헌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감독님은 여기다가 나레이션도 넣은 것 같은데, 근데 난 그게 좀 별로였다. 담백하게 잘 가던 영화에서 마지막에 너무 심심할까봐 갑자기 조미료를 팍 넣은 느낌? 그냥 그 장면에서 덤덤하게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은 신기한게 얼굴이 물론 잘생겼고 목소리가 멋있고.. 아 갖출 건 갖췄구나. 근데 키가 큰 편도 아니고 프로포션이 좋은 것도 아닌데 전신컷이 많이 나와야 하는 이런 영화에서 빛난다.
송강호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잊기 쉬운 '송강호는 키가 크다'는 사실을 이번에 반박이나 하듯 길게 늘어진 트렌치나 제복을 입고 나온다. 둘 조합이 나오는 '자' 부분에서는 그냥 별거 없이 웃기면서도 쫄린다.
이에 비해 다른 배우들이 좀 밀리는 느낌이었고 엄태구는 언제나 그랬듯 좋긴 한데 이번이 특별히 좋았나? 는 잘 모르겠다.
4.
영화 음악을 잘 쓰는 분이기도 하고 놈놈놈에서 워낙 잘 나와서 기대했는데 쏘쏘. 예측가능한 음악들이었고, 뭔가 싱겁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게 떠오르거나 (이상하게 마지막 장면에서는 헤이트풀8, 바스타즈가 강렬하게 겹쳐보였다).
엔딩 크레딧을 다 볼 정도로 영화 매니아나 애호가는 아닌데, 일이 일이다보니 아 이 영화는 여기꺼구나 하고 해외배급까진 보고 나오는데. 그때 나온 음악이 제일 신나고 좋았다. 당분간 노동요가 될 느낌.
5.
가족끼리 일요일이나 쉬는 날 조조 보는 게 좋다. 이런 시기에 이렇게 텐트폴 무비가 나오면 다섯이 쪼르륵 앉아서 보고 들어가는 게 좋다. 다음 이호연 휴가때는 뭐가 나오려나.
6.
공유는 감방안에 있는데도 카누 광고 보는 느낌 (그 커피갑 안에 있는 광고). 그래도 잘생김이 넘쳐서 보는 내내 시선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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