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September 13, 2016

김종욱 찾기 (Finding Mr.Destiny, 2010)

1.
하루키는 그랬다. "라오스에 가면 뭐가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도시에 여행을 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여행은 특별한 것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거기 있으면서 여행을 하면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한때 후지와라 신야처럼 뭔가 방랑하면서 영혼의 자유와 내면의 진리를 찾고자 했는데 여행하다보면 그런 건 없다. 그냥 세끼 밥 먹다보면 아 그냥 먹는구나..딱딱한 벙커베드가 지칠때쯤이면 방안의 푹신한 침대가 그립다. (그래도 요즘은 호스텔 안가서 벙커베드는 벗어났다.)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떠나지 않더라도 그냥 자기 마음을 어떻게 고쳐먹냐 그게 더 중요하다. 괜히 Traveler's heart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나 대학 입학즈음에는 한때 인도 여행 붐이 일었고 그게 산티아고 순례길, 그리고 요즘에는 제주도로 옮겨간 것 같다. 거기에 가면 내 영혼이 밑바닥부터 쫙 바뀔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가지만, 가면 한국 사람 동창회 할 수 있을 정도로 바글바글하다. 어딜 가도 한국사람은 많다.

2.
뒤늦게 김종욱 찾기를 봤다. 뮤지컬을 안좋아해서 원작도 안봤고 이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한국에 없어서 (홍콩에서 내 영혼을 찾고 있었으나 Fail...) 때를 놓쳤다.

김종욱이라는 첫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사실 내용이 별거 없고 공유가 내용이고 임수정이 개연성인것 같은 그냥 달달한 영화다.

왜 다들 조르푸르조르푸르 하는지 몰랐는데 이 영화가 조르푸르에서 만난 로맨스때문에 시작된 거였다. 역시 어딜 가도 한국인은 많다. 이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가지만 나는 여행가서 한국인을 만난 기억이 그닥 없다.

지금 기억해보면 싸이에 캡쳐되서 돌아다니던 대사가 꽤 많이 있었다. 끝내는 게 싫어서 마지막 음식은 남겨놓는다던가 (실제로 이런 사람도 있었음, 그땐 왜저래? 했는데 영화 하나가 사람 베렸다.) 인연을 붙잡아아 운명이 된다던가, 용기가 없는게 아니라 절실하지 않았다 뭐 이런 류.

여행에서 생기는 우연에 뭔가 가치를 부여하고 괜히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말랑말랑한 얘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포선셋, 선라이즈도 사실 '여행의 우연'을 부추기는 것 같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별로다.) 나는 여행갈 때 스트레이트로 하고 싶은 거 하기 싫은 거 끝나면 바로 끝내고 오는 편이라 왜 저렇게 안하던 짓들을 해놓고 다들 낭만이니 청춘이니 하는건가 싶다. 운명이니 인연이니, 그런 것도 잘 안믿는다. 나는 친해지고 싶으면 대놓고 쓸데없이 말걸고 자꾸 들이대는 편이라.....

그래도 인도라는 잘 모르는 여행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물론 내용의 대부분은 한국이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적이다.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우유부단한 남주나 너무 '무례하고' '무식할' 정도로 막무가내인 여주는 이해가 힘들었지만, 마지막을 피해가려는 여주 모습에서 귀국일을 차일피일 미루던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결국 맞이할 마지막이라면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다. 어떻게 미뤄서 질질 끌어대더라도 어쨌든 아쉬움은 남고, 끝맺음은 해야 한다.

3.
영화에서 본 것처럼 여행을 다니면 내가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도 만나고 안해본 것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추억도 남기면 내가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여행광까지는 아니지만 안다니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대로다. 한국에서의 나와 타지에서의 '나'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영어로 말할 때 목소리가 좀 간사해진다는 걸 빼면 그냥 별반 다른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정적이 있는 걸 싫어하고, 낯을 어디서든 가리고, 카페에서 멍 때리면서 앉아있다 하루를 보내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계속 내 취향을 쌓아나간다. 아무리 새로운 나라에 가고 낯선 도시에 있더라도 내가 강아지가 바글바글한 공원에 앉아 선베이딩을 즐기며 여유를 부리진 않을 거고, 자연광경에 취해서 넝마같은 알라딘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싸돌아다니진 않을 거란 걸 잘 안다. 나는 여전히 도시가 좋고, 사람들의 북적임이 좋고,  잘 모르는 사람한테 낯을 가린다. 그러니까 여행 분위기에 취해서 비포 선라이즈처럼 낯선 사람이랑 쌩뚱맞은 도시에서 뻘짓을 할 그런 확률은 0에 수렴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여행을 하는 건 그런 내 취향을 계속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이 좋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뭘 싫어하는 지 확고해졌고, 이제 쓸데없는 돈낭비도 조금씩 줄어들게 됐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하나에 고정되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괜한데 힘빼지 않아서 좋다.


4.
다음 여행도 아마 파리나 맨체스터가 될 것 같지만, 좀 더 힘빠지기 전에 멀고 힘든 나라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은 든다. 안해보고 "난 싫어" 하는 것보다 해보고 "해봤는데 별로야"라고 해야 후회도 없으니.


5.
회사 일로 보는 영화는 이렇게 길게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드는데 공유매직은 무섭다.


노스페이스는 이제 좀 유행지났으니 파타고니아 플리스 입고 멀리 몸고생하는 여행이나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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