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거에 읽었거나 봤던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줄거리도 다 알고 반전도 다 알지만, 주체인 내가 바뀌어서다.
요즘 새로운 책 대신 5~6년 전에 읽던 책들을 다시 꺼내 보는데 (eg. 기타노 다케시, 김중혁, 허지웅) 분명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데 새롭다. 사실 수필이나 에세이는 그 시대 이슈에 영향받는 것도 커서 새로운 것보다는 그냥 술술 읽혀서 뭔가 하기 싫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나는 놀지 않는다의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읽는다.
가장 새로운 건 책이 접힌 지점을 보거나 책에 쳐진 밑줄, 메모를 볼 때다. 그때는 무슨 지적 허영이 그렇게 가득했는지 왜 이런 걸 좋다고 별표에 밑줄에 접어놓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한테는 이 책의 이 문장이 엄청난 ####였지만 지금은 아,... 요정도나 음....? 하는 의문을 남기는 것도 많다.
2.
요즘 한국 극장가는 재개봉 열풍이다. 뭐 특정한 장르, 감독, 국가를 따질 것 없이 다 재개봉한다. 동네 극장에서도 하루에 한 편정도는 재개봉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영화배급사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도 돼서 리스크도 적다. 게다가 한국 영화 덕후들은 (사실 이건 영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예술 매니아 전반적으로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특정한 장르에 편식하기 보다 그냥 좋은 건 다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옛날 영화를 틀어주면 어느 정도 티켓 세일즈는 보장받는다. 브로셔도 새로 찍을 필요 없으니 비용도 절약된다. 팬 입장에서는 우리 오빠/언니의 뽀송한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서로 어느 정도 또이또이하게 계산이 맞는 장사다.
3.
물론 여기 나도 포함해서.
<굿 윌 헌팅>은 로빈 윌리암스 스페셜로 해서 재개봉 됐다. (근데 재개봉하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왜 없는거지?)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랑 묶여서 같이 주목받은 건 '세상에서 버림받은 천재'가 '자기를 이해해주는' "참스승"을 만나서 '세상과 화해'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라서 라고 생각한다. (위플래시-플래쳐같이 타이거 티쳐까지 '진정한 스승'이라고 해석되는 판국이니)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내가 무척이나 똑똑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때여서 나한테도 이런 '선생님'이 필요하다, 세상은 왜 천재를 알아봐주지 않는거지 이러면서 끄적였다.
몇년이지나고 내가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면서 자기위안을 수십 번이고 되풀이하고, 지금 다시 보니까 천재보다는 그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그니까 영화에서도 그렇게 크게 안나오는 사람들한테 더 시선이 간다.
4.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척이었다면 과연 윌과 저렇게 오랜 시간 같이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션 교수도 대놓고 말했다. "척은 너한테 형제지, 영감을 주는 사람은 아냐"라고. 그니까 둘은 다른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는 엄청난 천재, 하나는 그냥 아이리쉬 블루컬러. 둘이 같이 해온 세월동안 아무리 척이 아무리 멍청하고 배운 게 없어도 지내다보면 기본적으로 윌이 나랑은 다른 비범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질투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순수한 우정을 지킬 수 있었을까.
특히 "나는 차에서 내려서 너희 집 문을 두드릴 때까지가 가장 설레. 니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났으면"이라고 하는 대사를 보면 얘는 정말 천성이 에인절인건지 그냥 자기 친구가 잘되는 게 '악의없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다.
그냥 다 포기하고 대충 산다는 윌한테 오히려 "내가 너였으면 그렇게 안살았어. 내가 갖고 싶어도 못갖는 그런 능력을 그렇게 쓴다는 건 오히려 우리를 모욕하는거야"라면서 화내는 장면에서 맷 데이먼이랑 벤 애플렉이 정말 '우정'이 뭔지 이 영화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5.
램보 교수는 노력을 죽어라 했다. 주어진 능력도 있겠지만, 그걸 알고 깨우치고 이걸 빛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갈고닦아서 겨우 1캐럿 정도의 다이아몬드가 됐다. 아니 많이 쳐줘서 3~4캐럿이라고 치자.
그런데 자기 눈 앞에 지금 제일 적게 쳐도 50~60은 됄, 다이아몬드 원석, 그것도 아주 특이한 색깔을 품은 순수한 원석이 눈에 딱 보인거다. 갈고닦았을 때 뭐가 될지 모를 그 원석이 자기가 원석인 걸 알고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되는 걸 아는데도 그 능력을 허비하는 게 보인다.
이 사람은 질투도 났겠지만, 똑똑한 사람이니까 자기 주제 파악도 빠르다. 나는 안됀다. KO 패,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원석을 제대로 갈고 닦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인 궁금함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학자니까 윌이 수학적으로 뭔가 하나를 터뜨릴 수 있는거고,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겠지.
그래서 자기딴에는 최선을 다하는데, 이 스무살 넘은 원석은 그냥 이걸 낭비한다. 자기한테 주어졌으면 좋았을 이 재능을 낭비하는 걸 보고만 있으니 속이 탄다. 내가 저 능력이 있었다면 더 갈고 닦아서 뭔가를 하나 딱 했을텐데 이런 간절함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질투도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램보 교수가 불타는 수학 수식을 겨우 붙잡고, 나는 이걸 풀 수 없다 라고 하는 장면에서 무장해제된 듯이 울었다. 누군가한테는 정말 간절했을 그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낭비돼고 있다는 사실에 나를 끼워넣어서 극장 안에서 혼자 울었다.
6.
요즘 내 한계, 내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 주제파악을 하는 과정중이다. 그냥 여기까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더 명확해지는 상황이 다가왔을 때 나보다 좀 더 잘난 누군가를 바라보며 나는 질투심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십년 후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면 또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7.
사운드 트랙도 어릴때 들었을때는 뭔가 밋밋했는데, 영화 다시 보고 와서 지금 사흘째 엘리엇 스미스만 무한 반복중.
과거에 읽었거나 봤던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줄거리도 다 알고 반전도 다 알지만, 주체인 내가 바뀌어서다.
요즘 새로운 책 대신 5~6년 전에 읽던 책들을 다시 꺼내 보는데 (eg. 기타노 다케시, 김중혁, 허지웅) 분명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데 새롭다. 사실 수필이나 에세이는 그 시대 이슈에 영향받는 것도 커서 새로운 것보다는 그냥 술술 읽혀서 뭔가 하기 싫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나는 놀지 않는다의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읽는다.
가장 새로운 건 책이 접힌 지점을 보거나 책에 쳐진 밑줄, 메모를 볼 때다. 그때는 무슨 지적 허영이 그렇게 가득했는지 왜 이런 걸 좋다고 별표에 밑줄에 접어놓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한테는 이 책의 이 문장이 엄청난 ####였지만 지금은 아,... 요정도나 음....? 하는 의문을 남기는 것도 많다.
2.
요즘 한국 극장가는 재개봉 열풍이다. 뭐 특정한 장르, 감독, 국가를 따질 것 없이 다 재개봉한다. 동네 극장에서도 하루에 한 편정도는 재개봉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영화배급사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도 돼서 리스크도 적다. 게다가 한국 영화 덕후들은 (사실 이건 영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예술 매니아 전반적으로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특정한 장르에 편식하기 보다 그냥 좋은 건 다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옛날 영화를 틀어주면 어느 정도 티켓 세일즈는 보장받는다. 브로셔도 새로 찍을 필요 없으니 비용도 절약된다. 팬 입장에서는 우리 오빠/언니의 뽀송한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서로 어느 정도 또이또이하게 계산이 맞는 장사다.
3.
물론 여기 나도 포함해서.
<굿 윌 헌팅>은 로빈 윌리암스 스페셜로 해서 재개봉 됐다. (근데 재개봉하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왜 없는거지?)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랑 묶여서 같이 주목받은 건 '세상에서 버림받은 천재'가 '자기를 이해해주는' "참스승"을 만나서 '세상과 화해'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라서 라고 생각한다. (위플래시-플래쳐같이 타이거 티쳐까지 '진정한 스승'이라고 해석되는 판국이니)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내가 무척이나 똑똑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때여서 나한테도 이런 '선생님'이 필요하다, 세상은 왜 천재를 알아봐주지 않는거지 이러면서 끄적였다.
몇년이지나고 내가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면서 자기위안을 수십 번이고 되풀이하고, 지금 다시 보니까 천재보다는 그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그니까 영화에서도 그렇게 크게 안나오는 사람들한테 더 시선이 간다.
4.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척이었다면 과연 윌과 저렇게 오랜 시간 같이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션 교수도 대놓고 말했다. "척은 너한테 형제지, 영감을 주는 사람은 아냐"라고. 그니까 둘은 다른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는 엄청난 천재, 하나는 그냥 아이리쉬 블루컬러. 둘이 같이 해온 세월동안 아무리 척이 아무리 멍청하고 배운 게 없어도 지내다보면 기본적으로 윌이 나랑은 다른 비범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질투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순수한 우정을 지킬 수 있었을까.
특히 "나는 차에서 내려서 너희 집 문을 두드릴 때까지가 가장 설레. 니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났으면"이라고 하는 대사를 보면 얘는 정말 천성이 에인절인건지 그냥 자기 친구가 잘되는 게 '악의없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다.
그냥 다 포기하고 대충 산다는 윌한테 오히려 "내가 너였으면 그렇게 안살았어. 내가 갖고 싶어도 못갖는 그런 능력을 그렇게 쓴다는 건 오히려 우리를 모욕하는거야"라면서 화내는 장면에서 맷 데이먼이랑 벤 애플렉이 정말 '우정'이 뭔지 이 영화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5.
램보 교수는 노력을 죽어라 했다. 주어진 능력도 있겠지만, 그걸 알고 깨우치고 이걸 빛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갈고닦아서 겨우 1캐럿 정도의 다이아몬드가 됐다. 아니 많이 쳐줘서 3~4캐럿이라고 치자.
그런데 자기 눈 앞에 지금 제일 적게 쳐도 50~60은 됄, 다이아몬드 원석, 그것도 아주 특이한 색깔을 품은 순수한 원석이 눈에 딱 보인거다. 갈고닦았을 때 뭐가 될지 모를 그 원석이 자기가 원석인 걸 알고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되는 걸 아는데도 그 능력을 허비하는 게 보인다.
이 사람은 질투도 났겠지만, 똑똑한 사람이니까 자기 주제 파악도 빠르다. 나는 안됀다. KO 패,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원석을 제대로 갈고 닦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인 궁금함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학자니까 윌이 수학적으로 뭔가 하나를 터뜨릴 수 있는거고,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겠지.
그래서 자기딴에는 최선을 다하는데, 이 스무살 넘은 원석은 그냥 이걸 낭비한다. 자기한테 주어졌으면 좋았을 이 재능을 낭비하는 걸 보고만 있으니 속이 탄다. 내가 저 능력이 있었다면 더 갈고 닦아서 뭔가를 하나 딱 했을텐데 이런 간절함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질투도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램보 교수가 불타는 수학 수식을 겨우 붙잡고, 나는 이걸 풀 수 없다 라고 하는 장면에서 무장해제된 듯이 울었다. 누군가한테는 정말 간절했을 그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낭비돼고 있다는 사실에 나를 끼워넣어서 극장 안에서 혼자 울었다.
6.
요즘 내 한계, 내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 주제파악을 하는 과정중이다. 그냥 여기까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더 명확해지는 상황이 다가왔을 때 나보다 좀 더 잘난 누군가를 바라보며 나는 질투심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십년 후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면 또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7.
사운드 트랙도 어릴때 들었을때는 뭔가 밋밋했는데, 영화 다시 보고 와서 지금 사흘째 엘리엇 스미스만 무한 반복중.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