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years a slave 에서 나온 말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건 "I want to live, not survive"였나 정확하게 쿼팅은 안되는데. 여튼 아둥바둥 살아남기보단 삶을 누리고 싶다는 말이었다.
예전에 루쉰 공부할 때 사람들이 점점 노예화되가면서 정작 자기가 노예인 줄 모르고 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교수님도 누누히 사람들이 노예화되었을 때 가장 행복해하고 오히려 자유를 불안해한다는 얘기도 요즘들어 자꾸 떠오른다.
일을 하다보니 일을 자기 자신에 투영해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vocational한 의식을 갖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vocation이 대부분 사주 마인드, 즉 甲의 입장으로 전환되면서 생긴다. 애사심도 다 좋지만 내가 왜 경영자가 아닌데 경영자들한테 감정이입해야 하나.
또 자기 일밖에 모르는 집중력, 다 좋다. 하지만 그 밖의 세상도 있다는 걸 아예 부정해버리는 사람들이랑 말하다보면...갑갑하다. 내가 아무리 영화를 사랑하지만 내 삶이 영화는 아니다. (축구는 영화보다 한 수 아래 레벨이니까 꺼내지도 않았음) 영화 밖 사람들의 모습이 더 극적이고 때로는 믿을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내 삶은 a라고 주장하는 건 뭐 자기 생각이니까, 그렇다 치자. 근데 a', ~a, 그러니까 b나 c같은 게 존재하지도 않고 한다면 그건 'wrong'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마인드는 참기가 어렵다.
난 내 삶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게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흩뿌려지다가 한 팔십? 구십? 정도 됐을 때 아 이젠 내 삶이 이거였구나 하고 결론내리고 싶다. 3040에 결론내리면 나머지 50년은 뭐하고 사나. 지금 1년도 똑같은 게 이렇게 재미없는데.
남들이 보기엔 내 생활이 재밌어보이고 신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재밌고 신기한 일이 많다. 하지만 그 속에서 불안하고 항상 초조하면서 떠돌아다니는 순간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닌다. 남들처럼 어딘가에 뿌리박고 정착하면 사라질 문제겠지만 그러면 난 또 시들시들한 야채처럼 축 쳐져서 결국 썩어버리겠지.
불안함의 아이콘이라는 주변의 말이 이젠 오히려 반갑다. 불안함이 없다는 건 이미 어딘가에 뿌리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는 걸 뜻할테니까. 불안하고 기민하게, 항상 공기처럼 부유하는 삶, 그리고 그 속에 내 vocation이 한 7할정도 있었으면 한다.
이렇게 쓰고 있는 와중에 내일 업무를 보니까 omg..... 앞에 한 소리 다 뻥이고 하루만 쉬고싶다 챔피언스 리그 정말 '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