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7, 2014

12 years a slave 에서 나온 말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건 "I want to live, not survive"였나 정확하게 쿼팅은 안되는데. 여튼 아둥바둥 살아남기보단 삶을 누리고 싶다는 말이었다.

예전에 루쉰 공부할 때 사람들이 점점 노예화되가면서 정작 자기가 노예인 줄 모르고 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교수님도 누누히 사람들이 노예화되었을 때 가장 행복해하고 오히려 자유를 불안해한다는 얘기도 요즘들어 자꾸 떠오른다.

일을 하다보니 일을 자기 자신에 투영해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vocational한 의식을 갖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vocation이 대부분 사주 마인드, 즉 甲의 입장으로 전환되면서 생긴다. 애사심도 다 좋지만 내가 왜 경영자가 아닌데 경영자들한테 감정이입해야 하나. 

또 자기 일밖에 모르는 집중력, 다 좋다. 하지만 그 밖의 세상도 있다는 걸 아예 부정해버리는 사람들이랑 말하다보면...갑갑하다. 내가 아무리 영화를 사랑하지만 내 삶이 영화는 아니다. (축구는 영화보다 한 수 아래 레벨이니까 꺼내지도 않았음) 영화 밖 사람들의 모습이 더 극적이고 때로는 믿을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내 삶은 a라고 주장하는 건 뭐 자기 생각이니까, 그렇다 치자. 근데 a', ~a, 그러니까 b나 c같은 게 존재하지도 않고 한다면 그건 'wrong'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마인드는 참기가 어렵다.

난 내 삶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게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흩뿌려지다가 한 팔십? 구십? 정도 됐을 때 아 이젠 내 삶이 이거였구나 하고 결론내리고 싶다. 3040에 결론내리면 나머지 50년은 뭐하고 사나. 지금 1년도 똑같은 게 이렇게 재미없는데.


남들이 보기엔 내 생활이 재밌어보이고 신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재밌고 신기한 일이 많다. 하지만 그 속에서 불안하고 항상 초조하면서 떠돌아다니는 순간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닌다. 남들처럼 어딘가에 뿌리박고 정착하면 사라질 문제겠지만 그러면 난 또 시들시들한 야채처럼 축 쳐져서 결국 썩어버리겠지. 

불안함의 아이콘이라는 주변의 말이 이젠 오히려 반갑다. 불안함이 없다는 건 이미 어딘가에 뿌리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는 걸 뜻할테니까. 불안하고 기민하게, 항상 공기처럼 부유하는 삶, 그리고 그 속에 내 vocation이 한 7할정도 있었으면 한다. 

이렇게 쓰고 있는 와중에 내일 업무를 보니까 omg..... 앞에 한 소리 다 뻥이고 하루만 쉬고싶다 챔피언스 리그 정말 '헐'이다. 

Sunday, February 16, 2014

압박

오늘은 일요일이었고 나는 off였다. 
수요일 선덜랜드와의 경기가 취소되면서 자의반타의반으로 쉬게 되었지만, 뭐 on duty 상태였으니 예외로.

어제 경기가 끝나고 집에 와서 씻고 정도전 보고 잠드는데 아 영화사, 또 할 일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쉽사리 잠은 안왔다. 그래도 일요일 밤 열한 시까지 보내면 되겠다하는 위안을 가지고 잠이 들었다.

꿈에서 계속 식은땀이 날 정도로 마감 압박에 시달렸다. 원래 태스크를 받으면 바로 해버리는 편인데 요즘은 미뤘다가 last minute를 지켜서 하는 이상한 버릇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이리저리 쫓기고 도망다녔다.

소리를 지르며 깨보니 다섯 시였다. 어제 잠든 게 아마 한 시 반 정도였던 것 같은데. 늦잠을 좀 자볼까 하던 계획은 어김없이 실패하고 나는 평소처럼  또 침대를 나섰다. '한글학교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어그적어그적 일어나는데 불현듯 난 어제 수업을 했다는 게 떠올랐다.

"아..."

정말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모르고, 눈을 떴다 감으면 벌써 하루가 끝나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거라고 이러고 있는 걸까 계속 이 생각이 들었다.

결국 침대에서 밍기적대면서 늦잠을 다시 청하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니 여섯 시 반.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안와서 결국 아침을 먹고 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해야할 일들은 명확한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열한 시까지 이것저것 보다가 오랜만에 엄마아빠랑 전화를 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했는데 영화사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한 달에 한 번? 한국 친구들이랑 문자도 확연히 줄었다.

엄마가 "우리 세 식구 지금 티비봐"라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남동생이 기숙사에 들어가고 나는 여기 있고. 복작대던 집안이 텅 비어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그냥 서운하고 속상했다.

전화를 마치고 기분전환삼아 운동을 가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거울을 보는데 입술이 다 부르텄고 입안은 다 헐어있었다. 결국 또 주저앉아서 내가 여기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러고 있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30분간 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는건지.

난 행복한걸까. 

첼시


회사는 축제, 나는 혼자 의욕상실한 날.

첼시는 나한테 조금 많이 특별한 팀이다. 
이 팀을 응원하고 뭐 그런 문제가 아니다. (문제일 수도 있겠다)

2005년에 수원이 제일 화려했을 때 느닷없이 투어와서는 아 이런 팀도 있구나, 이런 축구도 있구나 했던 게 엇그제같다. 야자째고 몰래 갔다와서 엄청 힘들게 본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리고 한 8년 지나고 재작년 말에 한참 영국에서 힘들 때, 런던으로 무작정 내려가서 슬론 스퀘어부터 사우스 켄싱턴, 그 부근을 막 걷는데 딱 보니까 갑자기 첼시 구장이 나오네? 지금도 그 동네 위치 지도가 머리에는 안그려지지만 그 때 그 길, 그리고 그 분위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첼시는 그날 이후로 나한테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 첫 외국팀이 됐다.

첼시에서 제일 좋은 뭔가를 뽑으라면 난 단연 무리뉴. 
무리뉴 감독이 rude하고 arrogant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그래도 나는 자기 색깔이 강한 무리뉴가 좋다. 남들이 다 티키타카에 흔들릴 때 혼자 걸레수비 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경기장 안에서는 계속 뭔가 흥행 코드를 던지는 비즈니스 마인드도 전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경기를 보는데 팬들이 감독의 콜을 더 많이 외치는 걸 보고 이 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새삼스레 실감하게 됐다. 

어제 프레스 듣다가 '이기면 이기는거고 지면 지는거다. 무승부는 없다' 이 말을 하는데 무리뉴의 캐릭터가 딱 드러나서 좋았다. 여우처럼 치고빼는 스타일은 아니고 돌직구는 막 던져서 기분나쁜데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여튼 내 눈앞에서 요베티치가 골을 넣었고, 나스리가 골을 넣었는데 기분이 묘하다. 지금까지 첼시를 직접 본 건 세 번, 그리고 일하면서 본 것까진 네 번인데 오늘 처음 졌다. 2005년 야자째고 경기보러갔던 내가 지금 영국 맨체스터에서 프레스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처음 눈앞에서 보는 첼시의 패배도 그렇고. 

내 눈앞의 첼시에서 2005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의 내가 지금 내 모습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일도 늦게 끝나 피곤하긴 한데 생각까지 복잡해지면서 잠이 오질 않는다. 

Friday, February 14, 2014

외로움

1. 외로움 많이 안탄다고 느꼈는데 금요일 밤 텅빈 집 안에서 혼자 수프 끓이려고 있으니 처량맞기 그지없다. 피곤한 것도 피곤한 거고 우선은 지금 해야할 일이 정신없이 밀려오는 데 의욕이 전혀 없다. 

내일 한글학교도 가야하고 프레스박스도 들어가게 돼서 또 이래저래 복잡한데 으어, 왜 의욕은 샘솟지 않는 걸까 하면서 또 한 번 벽치고 벽치고 벽치고.

마음을 가다듬고자 아까 사온 브로콜리 다듬어서 수프를 끓이는데 꽉찬 냉장고가 내 머릿속마냥 복잡하고 답답하다. 원래 냉장고 채워놓는 거 진짜 싫어했는데 요즘 시간이 남다보니까 냉장고는 더 차고 내 머릿속은 터질 것 같이 변해버렸다.

2. 하프텀 맞이 겸 (솔로지만 손재주는 넘쳐나는 사람의) 발렌타인데이 기념도 있고, 애들한테 내일은 올림픽이랑 이런 저런 운동에 관한 거 하려고 해서 사탕 메달을 만들었다.

재료도 조악하고 우선은....사탕이 안예뻐서 만들고 나니까 다시 뜯어서 새로 하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같아졌지만 그래도 내일 수업을 해야하니까...이 생각으로 꾹 참고 내려놨다. 다섯 개 만드는 데 세 개째부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눈물이 날 뻔. 애들 숫자에 맞춰 다섯 개 완성하고 나니 머리가 깨끗해졌다. 앞으로 금요일 저녁에 애들을 위한 뭔가를 만들까보다.




3. 아무리 맨체스터 시티에 한국 선수가 없어도, 한국이랑 전혀 연관없어보여도 내가 해석하기에 따라 트래픽은 트리플이 되는구나. 



운동다녀와서 내가 왜 발렌타인 어쩌고저쩌고 써야하나 짜증이 몰아쳤다가 이 대신 안중근 의사 쓴거였는데, 지금까지 개별 기사중에서 역대급을 넘어 최고 조회수가 나왔다.

로컬라이즈 컨텐츠에 대한 것들이 감이 잘 안잡혔는데 이걸 보니까 앞으로 방향을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 또 아리송하다. 내일 리뷰쓰려면 또 아휴....

능력부족인 게 요즘 확확 느껴지는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Monday, February 10, 2014

일상

1.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가려 했으나 몸이 찌뿌드등, 결국 또 집에서 열두시까지 일하다가 '첼시'티켓을 위해 기어나갔다. 

회사에는 Sylvie밖에 없었고 오늘 분명 full, busy 할 거라고 예상한 스케줄은 텅- 텅.

우리 매니저는 이제 한 달에 몇 번씩 회식을 하자고. 이봐요.....이러지 맙시다 우리 양심이 있으면....집에서 쉬게 좀 ㅠㅠ


여하튼 샀다. 토레스도 나온댔고 테리도 다음 경기엔 나온댔고, 우리 회사 미디어팀은 "이제 망했어" 이러고 있고 ㅋㅋㅋ (오늘 표정이 정말 영혼이 털려보였다) 
확실히 페르난딩요가 있고 없고랑 경기 클래스가 달라지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아게로만 본다 이거지.......
여기서 일하면서 제일 좋은 건 티켓 직원 할인가. FA컵 1층을 15파운드에 그리고 바르셀로나 보러 25파운드라고 하면 다들 '부럽다' 하겠지. 하지만 네, 그게 전부에요. 축구가 내 삶의 전부는 아닌데 ㅜㅜ

2. 요즘 수프 끓이기에 빠졌다. 핸드 믹서 산 지 일주일도 안돼서 감자+당근에 이어 고구마+당근, 이젠 집에 남아돌던 브로콜리+버섯, 근데 내 입맛엔 역시 브로콜리+버섯에 치즈 넣은 거. 날씨가 좀 쌀쌀하다보니까 저런 게 무지하게 땡긴다.
내일은 집에 또 굴러다니는 야채를 열심히 찾아봐야지. 아마 토마토 수프가 될 가능성이 80퍼센트가 넘는다. 


3. 출근하다가 갑자기 확 삘받아서 부츠에서 레블론 립스틱 겟. 삘을 셀프리지에서 안 받은 게 어디냐 하는 마음+입술은 하난데, 화장 요즘 거의 안하는데 왜 샀을까 하는 마음.
그래도 오드리 햅번이 영화에서 바르고 나온 전설 아닌 레전드인 립스틱이라 맨날 써보고는 싶었으니까.

그런데 써보니까 난 오드리 햅번이 아니잖아?^^ 로마의 휴일 보고 파리가서 머리자르고 운 걸 벌써 까먹었구나...


4. 오늘 퇴근하는데 하늘에 불난것처럼 예뻤다.
회사에 불이나 나버려라 하는 마음에(퇴근이 무려 두 시간 늦어짐) 찍었는데 그렇게 툴툴대던 마음이 하늘 보니까 사르르 풀렸다.
이정도 날씨만 되어준다면 (비만 안오고 해만 뜬다면) 좀 더 오래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5. 런던이건 리버풀이건 어디건 Eye에 타본 적은 없지만 사진 찍는 건 좋아한다. 특히 맨체스터는 우중충한 도시에 뭔가 쌩뚱맞게 뚝 떨어진 느낌이라 볼 때마다 기괴하면서도 저 알록달록한 색에 그냥 헤벌쭉 하고 웃고 만다. 


카메라가 색감을 못았네. 밤에 운동 마치고 나와서 물 한 병 사가지고 아이 보면서 멍때리면 기분이 좋다. 한 세 바퀴 돌아갈 때쯤이면 슬슬 추워지고 집에 오지만, 뭐 이런 사소한 재미가 사는 재미 아닌가.


Sunday, February 9, 2014

1. 어제 우리 회사 팀 동료님들은 친히 또 비기셨다. (내용 생략)


2. 동료님들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힘입어 어제 일도 일찍 끝나서 정도전 3회를 다 몰아봤다. 

이 드라마는 다 좋은데 왜 '정도전'인가. 정도전이라는 인물은 좋지만 말도 안되는 로맨스 끌기가 점수를 깎아먹은데다가 '무장'으로 재해석한 태조 이성계라는 캐릭터가 말도 안되게 멋있어서 마음 속으로는 자꾸 '이성계'로 읽힌다. 황산전투는 웬만한 픽션 판타지 영화보다 더 잘 만들었고, 정치가였던 이성계가 전투에서 아기발도를 향해 뛰어오르며 활을 쏜다는 설정은 신선했다. 다음주가 기대되는 이유 하나.


3. 검색어에 김무생 김주혁이 뜨길래 1박2일때문인가 싶어서 올란도&제시카네 집에 다녀오고 다시 찾아봤다. 서울에 쌓여있는 '켜'를 읽어내는 담당 피디의 능력도 대단했다. 정도전에 이어 주말에 또 다시 챙겨봐야 할 프로그램이 또 하나 생긴 것 같다. 


4. 나는 어릴 때 마포에 살았고, 탑동 국민학교에 입학해 영서 초등학교를 4년 다니고 다시 대학을 마포구 신수동으로 갔다. 전학을 자주 다니기도 하고 학원에 다니느라 별 추억이 없다. 초등학교 친구는 5학년때 다시 전학오면서 만난 혜진이가 전부고, 중학교때 친구는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이 친구가 결국 고등학교 친구가 되고 대학친구가 되고 그래버렸지만. '초등학교 동창'이나 '중학교 동창'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은 게 지금도 조금은 아쉽다.

오늘 방송이 끝나고 곱씹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곳에서 나는 한 층 한 층 또 추억을 켜켜히 쌓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홍콩도 이제는 아련한 기억이고, 수원을 다시 생각하면 이젠 웃음이 난다. 성신여대 앞에서 한성대까지 이어지는 그 길을 떠올리면 추운 겨울밤, 철없던 새내기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그립고 아련한 순간이 될 거란 걸 분명히 아는데, 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견디기 힘든걸까. 

올란도나 제시카도 무척 보고 싶을 것 같고, 테스코에 쌓여있는 달디 단 빵, 과자, 케이크를 생각하며 입맛 다시는 순간도 오겠지. 

또 무슨 추억이 있나? 아직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멀어지게 되면 불현듯 나타나 그리워지게 만들겠지. 

그리운 순간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홍콩, 베이징, 신수동, 인계동, 경주에서 내리쬐던 햇살까지. 

Friday, February 7, 2014

신의 한 수

1. Sylvie가 우리집에 지내면서 수프를 한 번 해줬다. 수프=캠벨, 헤인즈라 처음엔 읭 이랬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핸드 믹서를 사고 다시 또 블랜더(aka 도깨비방망이)까지 사버리고 말았다.

워낙 추위도 잘타고 리퀴드한 음식들을 좋아해서 (물론 이것만 먹는 게 아니라 여기다가 빵도 함께) 벌써 수프 큰 냄비로 두 번이나 더 해먹었다.

처음에는 감자+당근+양파+코코넛 밀크로 했는데 오늘은 집에 며칠동안 굴러다니던 고구마+당근+양파+더블크림으로 도전! 스파이스로 맨날 큐민만 넣었다가 오늘은 넛맥도 넣어봤다.




사서 먹는 수프는 짜고 혀가 아려서 맨날 물이나 우유 더 부어서 끓여먹었는데, 이렇게 해먹은 수프랑은 천양지차다. 

당근을 아마 평생 살면서 가장 많이 먹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나라 당근은 한국처럼 향이 강하지도 않고 오히려 넣으면 색도 예뻐져서 벌써 2킬로짜리 두 팩을 다 수프로 끓여버렸다.

이 나라에 살면서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재료들에 도전하는 게 재밌다. 
며칠전에 해먹은 고르곤졸라 피자도 그렇고, 큐민이나 타라곤, 튜메릭같은 스파이스들을 한국이었다면 들어보지도 못했을지도. (요리프로에서 저런 게 나오면 맨날 짜증내고 아씨 뭐야, 이러고 끈 기억이 남) 지금 찾아보니까 튜메릭이 강황이라네. 아 이건 카레에서 많이 들어봤는데.

2. 평소 아침엔 일어나서 블렌더로 스무디 한 잔 갈아마시고 스트레칭하고 잠깐 일하다가 다시 빵을 먹는다. 빵은 Fig and Sparrow라는 카페&베이커리에서 파는 홀밀 사워도우나 아니면 펜넬이 들어간 호밀빵 이 두 종류로 골라먹는 중.

혼자 살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한 끼라도 '떼우고' 가면 그게 정신적으로 굉장히 크게 영향을 준다. 시간을 '떼우고' 배를 '채우고', 일상이 Living 이 아니라 surviving이 되어버릴까봐 오히려 먹는 거 하나하나에 한국에서보다 더 힘주면서 먹고 있다.

3. 내일은 매치데이라 한글학교를 다녀오면 또 일해야해서 Sylvie랑 Jonathan 불러서 피자 먹으면서 일하기로 했다.



페퍼로니+버섯 잔뜩 깔고 집에 남아 뒹구는 치즈 다 뿌리고 더블크림 살짝 뿌려서 냉장고에 집어넣어놨다. 준비하는 게 오래걸리진 않지만 분명 한글학교 다녀오면 그 짧은 시간에도 배고프다고 짜증낼 게 보여서 배부른 지금 미리 해놨다. 바질도 살짝 뿌렸는데 내일 잘 구워졌으면 좋겠다.

4.  엄마가 아프다는데 지금 내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있는 수프 한 대접 떠서 엄마 침대맡에 가져다놓고 싶다. 

Wednesday, February 5, 2014

후일담


나 왜 앞머리를 안잘랐지, 왜 이렇게 쭈구리같지
한동안 살이 엄청 불었는데 이게 이 영상에서 뽝 하고 터졌다.

이런 걸 처음 해보는 건 아니지만 규모가 이전에는 사부작사부작 개미 수준이었다면
이건 올리자마자 1500 클릭 빡 올라가는 거 보고 놀랄 노자였다.




회사에서는 이날 나이키 촬영도 했는데, 나는 매니저한테 소심하게 반항한답시고 풀 아디다스 착장하고 출근했다가 이렇게 뙇...
머리도 못감고 간 날 이렇게 요정님을 영접하다니 ^_ㅜ
화장을 하면 예뻐지는 게 아니라 안하면 이상하다는 걸 이 영상으로 바로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이 영상으로 내 생존을 확인하게 되고..
온갖 사람들한테 앞머리 잘라라 살빼라, 하 이런 소리 듣자고 올라간 게 아닐텐데 ^.ㅜ

한국 미디어에서도 이거 보고 매니저한테 연락왔다는 소리를 듣고 좀 설렜다.
내가 헛짓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내가 하는 걸 한국에서도 다 보고 있구나
이 생각에 오늘 자청해서 야근+보고서 작성중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난 짜증을 낼거야, 그럴거야...

Tuesday, February 4, 2014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
-신경림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
돌아가길 단념하고 낯선 처마 밑에 쪼그려 앉자
들리는 말 뜻 몰라 얼마나 자유스러우냐
지나는 행인에게 두 손 벌려 구걸도 하마
동전 몇닢 떨어질 검은 손바닥

그 손바닥에 그어진 굵은 손금
그 뜻을 모른들 무슨 상관이랴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은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아직은 겨울

실비 언니는 사흘간 우리집에서 보내고 어제 돌아갔다.
며칠동안 여러 요리를 배웠고, 피자는 '집에서 해먹는 요리'라는 새삼 새로운 사실에 놀라며


연이어 이틀간 피자를 짠!
참치 넣고 한 피자도 맛있었지만 나는 역시 고르곤졸라아아. 꼬리꼬리한 냄새가 역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또 고르곤졸라의 묘미. 진짜 해놓고 그동안 내가 돈을 헛것에 썼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간단하고 쉬웠다.

일요일엔 오랜만에 리버풀에 갔다. 존이랑 7월에 갔을 때도 바람이 찼는데 여전히 찼다. 매번 기차를 타고 가다가 Sylvie의 차를 타고 가니까 30분이명 슝 가더라.

가는 길에 마음이 무거워서 헛 농담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가끔은 침묵의 무거움도 견뎌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요즘 영국은 해도 길어지고 날씨도 맑은 날이 많다. 신기하게도 영국답지 않은 이런 날씨가 계속 되니까 밖에도 좀 더 나가고 해야하는데 요즘 거의 집에 있는다. 회사- 집- 운동이 전부인 일상?

회사도 스트레스지만 그냥 나도 조금 지친 것 같아서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내는 것 같다.

게다가 이날 아빠 생신이었는데, 이날 저녁 Sylvie가 너무 힘들어해서 전화도 못하고 그냥 넘길 뻔 했다. (아빠는 내심 서운해 하신 듯)

Sylvie는 대화로 얘기를 풀어가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흠... 난 잘 모르겠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인연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그리고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있는 동안 우리집에서 여러 요리도 하고 같이 영화도 보러가고 전시도 보고 이래저래 나도 좀 오랜만에 집다운 집에 있던 것 같다.


특히 이건 당근의 재발견! 
내 블로그가 무슨 요리 블로그화 되는 것 같은 느낌...

큐민, 타라곤, 카다...뭐랬드라? 여튼 새로운 향신료들을 맛볼 때마다 신기하고 재밌다.
바질, 타임이 전부였던 내 레시피에 이제 더 다양한 양념이 생기니까 또 뭔가를 해보고 싶다.

어제 경기장에서 벌벌 떨다가 집에 와서 당근수프 한 접시 먹고 나니까 몸이 좀 녹는 것 같았다.


첼시를 처음 본 건 빅버드였다. (물론 이전에도 첼시는 알았다)
그 때 우리 오빠도 창창한 나이, 딱 지금 내나이 아니 내 나이보다 어린 스물 다섯.
조 콜도 있었고, 첼시는 우승도 했고.

거의 10년만에 다시 첼시를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램반장,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존 테리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여긴 영국이고, 우리 오빠는 이제 수원에 없다. 교복을 입고 있던 나는 회사 컴퓨터를 잡고 코멘트를 달고 있었다.

세월이 빠른 걸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가버린 세월에 그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반성하게 됐다.

이곳에 있으면서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 이곳에서 하는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인거지? 맨날 나를 짓누르는 이 두 질문, 그리고 과연 내가 뭐가 되려고 이러고 있는지 이런 고민들은 24/7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고 있다.


봄이 오는 듯 했는데 창밖에 아직도 비바람이 매섭다. 이 지난한 겨울이 언제쯤이면 끝나려나. 

(+) 정신없는 머릿속만큼 지금 일기 내용도 두서가 없다. 


Saturday, February 1, 2014

이적시장 끝!

1. 며칠 전 한국어 사이트에 올라간 한국어 영상이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다. 촬영은 30분, 대기는 세 시간.... 그래도 내가 팀에서 제일 좋아하는 선수랑 제일 잘 됐으면 하는 선수 (그리고 아무 생각없지만 애는 착한 것 같은 선수)가 잘 나와줘서 좋다.

음악이 조금 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서버에 asia-중국/일본/제3세계 이렇게밖에 없는 걸 보고 아직 멀었구나, 아니면 과연 '한국적'인 게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일본은 둘 다 별로일 것 같아서 제3세계로 가볼까 했는데 이건 뭐 갑자기 북소리가 두구당당 나오고 휘파람 소리 나오고....

그래서 이왕 한국적인 게 안될거라면 최대한 키치하고 쌈마이하고 재밌게 만들어보려고 저 음악(제목은 오리가미였음 심지어!)을 골랐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게 정론지로 갈 수도 없고 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목표는 '선데이 서울'마냥 아주 키치하고 폭소는 아니지만 볼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는데, 트위터랑 페이스북이 그렇게 조금씩 되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맨날 나는 오타인 rhf은 이제 이 정도면 한국말 아닌가.....


이제 내가 바라는 최고의 쌈마이 시나리오인 "두유노우갱냄스톼일"하면서 선수들이 말춤추며 떼로 들어와서는 "알럽 쏘뇨싀대" 한 다음에 "항국팬 요로분 싸랑해요"하면서 다같이 퇴장하는 이런 거 해보고 싶다. 




2. 어제 우리는 8시까지 온 듀티였다. 나는 당연히 망갈라? 하고 생각했는데 망했네?ㅋㅋㅋ 

3. 어쩌다보니 실비랑 같이 지내게 됐다. 나는 이 언니가 너무너무 좋기 때문에 이 언니가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니 꼭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12 years a slave (2013)

01/30/2014
@ Corner House 

12 years a slave

Director : Steve McQueen
Starring : Chiwetel Ejiofor, Bryan Batt, Michael Fassbender


1. 회사의 Sylvie 언니가 갑자기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보긴 봐야하지만 내용상 계속 미루게 되는) 12 years a slave를 봤다. 들어가기 전에 카페에서 언니는 와인 한 잔, 나는 감기걸려서 코가 찔찔대고 있던 상황이라 오랜만에 민트티를 (돈주고) 마시고 들어갔다. 이게 비극의 시작일 줄이야...

2. 영화의 줄거리는 남북 전쟁 전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자유지역이었던 뉴욕에서 사는 솔로몬이라는 흑인이 워싱턴에서 갑자기 납치되어 남부 루이지애나로 팔려가게 된다. 솔로몬이었던 이름은 사라지고 이제 플랍이라는 노예상이 붙인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음악가, 하지만 이젠 음악은 없어지고 손에는 목화솜을 쥐게 된다.

3. 여기서 주인이 두 번 바뀌게 되는데 첫 번째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착하지만 결국엔 현실에서 용납하는 내에서 잘해주는 주인, 그리고 두 번째는 마음에 병이 있어보이는 마이클 패스빈더. 영화를 보다가 자꾸만 무거워지는 주제와 채찍질 장면때문에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이래서 난 영화기자가 될 수 없다....)

4. 영화는 잘 만들어졌고,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한 꼭 알아야할 내용이지만 굳이 지금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런 '힘든 영화'는 보는 관객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멘탈이 있을 때 봐야하는데, 목요일, 그러니까 1월 30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설날 특집 영상 내보내고 오프라고 이제 랩탑을 닫는 순간! 또 다시 메일이 와서 또 또 또 또 또 ...vicious cycle이 계속되면서 오늘도 내 멘탈은 쿠크다스 조각조각 나있는 상태. 

5. 영화를 보면서 알아야하는 사실과 보고 싶은 사실이 이렇게 다르구나, 내가 남들을 탓할 게 아니었어 라고 생각하면서 한국의 변호인이 떠올랐다. 한국에 있었다면 내가 과연 변호인을 봤을까? 영화를 보는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져서 또 다른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위안받고자 한거였는데, 현실만큼이나 지독한 영화를 보면서 더 힘들어질 걸 알면서 영화 표값을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