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16, 2014

첼시


회사는 축제, 나는 혼자 의욕상실한 날.

첼시는 나한테 조금 많이 특별한 팀이다. 
이 팀을 응원하고 뭐 그런 문제가 아니다. (문제일 수도 있겠다)

2005년에 수원이 제일 화려했을 때 느닷없이 투어와서는 아 이런 팀도 있구나, 이런 축구도 있구나 했던 게 엇그제같다. 야자째고 몰래 갔다와서 엄청 힘들게 본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리고 한 8년 지나고 재작년 말에 한참 영국에서 힘들 때, 런던으로 무작정 내려가서 슬론 스퀘어부터 사우스 켄싱턴, 그 부근을 막 걷는데 딱 보니까 갑자기 첼시 구장이 나오네? 지금도 그 동네 위치 지도가 머리에는 안그려지지만 그 때 그 길, 그리고 그 분위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첼시는 그날 이후로 나한테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 첫 외국팀이 됐다.

첼시에서 제일 좋은 뭔가를 뽑으라면 난 단연 무리뉴. 
무리뉴 감독이 rude하고 arrogant하고 뭐 어쩌고 저쩌고, 그래도 나는 자기 색깔이 강한 무리뉴가 좋다. 남들이 다 티키타카에 흔들릴 때 혼자 걸레수비 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경기장 안에서는 계속 뭔가 흥행 코드를 던지는 비즈니스 마인드도 전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경기를 보는데 팬들이 감독의 콜을 더 많이 외치는 걸 보고 이 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새삼스레 실감하게 됐다. 

어제 프레스 듣다가 '이기면 이기는거고 지면 지는거다. 무승부는 없다' 이 말을 하는데 무리뉴의 캐릭터가 딱 드러나서 좋았다. 여우처럼 치고빼는 스타일은 아니고 돌직구는 막 던져서 기분나쁜데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여튼 내 눈앞에서 요베티치가 골을 넣었고, 나스리가 골을 넣었는데 기분이 묘하다. 지금까지 첼시를 직접 본 건 세 번, 그리고 일하면서 본 것까진 네 번인데 오늘 처음 졌다. 2005년 야자째고 경기보러갔던 내가 지금 영국 맨체스터에서 프레스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처음 눈앞에서 보는 첼시의 패배도 그렇고. 

내 눈앞의 첼시에서 2005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의 내가 지금 내 모습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일도 늦게 끝나 피곤하긴 한데 생각까지 복잡해지면서 잠이 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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