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 언니는 사흘간 우리집에서 보내고 어제 돌아갔다.
며칠동안 여러 요리를 배웠고, 피자는 '집에서 해먹는 요리'라는 새삼 새로운 사실에 놀라며
연이어 이틀간 피자를 짠!
참치 넣고 한 피자도 맛있었지만 나는 역시 고르곤졸라아아. 꼬리꼬리한 냄새가 역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또 고르곤졸라의 묘미. 진짜 해놓고 그동안 내가 돈을 헛것에 썼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간단하고 쉬웠다.
일요일엔 오랜만에 리버풀에 갔다. 존이랑 7월에 갔을 때도 바람이 찼는데 여전히 찼다. 매번 기차를 타고 가다가 Sylvie의 차를 타고 가니까 30분이명 슝 가더라.
가는 길에 마음이 무거워서 헛 농담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가끔은 침묵의 무거움도 견뎌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요즘 영국은 해도 길어지고 날씨도 맑은 날이 많다. 신기하게도 영국답지 않은 이런 날씨가 계속 되니까 밖에도 좀 더 나가고 해야하는데 요즘 거의 집에 있는다. 회사- 집- 운동이 전부인 일상?
회사도 스트레스지만 그냥 나도 조금 지친 것 같아서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내는 것 같다.
게다가 이날 아빠 생신이었는데, 이날 저녁 Sylvie가 너무 힘들어해서 전화도 못하고 그냥 넘길 뻔 했다. (아빠는 내심 서운해 하신 듯)
Sylvie는 대화로 얘기를 풀어가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흠... 난 잘 모르겠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인연이 아닐 수 있다는 걸, 그리고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있는 동안 우리집에서 여러 요리도 하고 같이 영화도 보러가고 전시도 보고 이래저래 나도 좀 오랜만에 집다운 집에 있던 것 같다.
특히 이건 당근의 재발견!
내 블로그가 무슨 요리 블로그화 되는 것 같은 느낌...
큐민, 타라곤, 카다...뭐랬드라? 여튼 새로운 향신료들을 맛볼 때마다 신기하고 재밌다.
바질, 타임이 전부였던 내 레시피에 이제 더 다양한 양념이 생기니까 또 뭔가를 해보고 싶다.
어제 경기장에서 벌벌 떨다가 집에 와서 당근수프 한 접시 먹고 나니까 몸이 좀 녹는 것 같았다.
첼시를 처음 본 건 빅버드였다. (물론 이전에도 첼시는 알았다)
그 때 우리 오빠도 창창한 나이, 딱 지금 내나이 아니 내 나이보다 어린 스물 다섯.
조 콜도 있었고, 첼시는 우승도 했고.
거의 10년만에 다시 첼시를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램반장,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존 테리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여긴 영국이고, 우리 오빠는 이제 수원에 없다. 교복을 입고 있던 나는 회사 컴퓨터를 잡고 코멘트를 달고 있었다.
세월이 빠른 걸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가버린 세월에 그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다시 한 번 고민하고 반성하게 됐다.
이곳에 있으면서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 이곳에서 하는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인거지? 맨날 나를 짓누르는 이 두 질문, 그리고 과연 내가 뭐가 되려고 이러고 있는지 이런 고민들은 24/7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고 있다.
봄이 오는 듯 했는데 창밖에 아직도 비바람이 매섭다. 이 지난한 겨울이 언제쯤이면 끝나려나.
(+) 정신없는 머릿속만큼 지금 일기 내용도 두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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