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7, 2014

신의 한 수

1. Sylvie가 우리집에 지내면서 수프를 한 번 해줬다. 수프=캠벨, 헤인즈라 처음엔 읭 이랬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핸드 믹서를 사고 다시 또 블랜더(aka 도깨비방망이)까지 사버리고 말았다.

워낙 추위도 잘타고 리퀴드한 음식들을 좋아해서 (물론 이것만 먹는 게 아니라 여기다가 빵도 함께) 벌써 수프 큰 냄비로 두 번이나 더 해먹었다.

처음에는 감자+당근+양파+코코넛 밀크로 했는데 오늘은 집에 며칠동안 굴러다니던 고구마+당근+양파+더블크림으로 도전! 스파이스로 맨날 큐민만 넣었다가 오늘은 넛맥도 넣어봤다.




사서 먹는 수프는 짜고 혀가 아려서 맨날 물이나 우유 더 부어서 끓여먹었는데, 이렇게 해먹은 수프랑은 천양지차다. 

당근을 아마 평생 살면서 가장 많이 먹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나라 당근은 한국처럼 향이 강하지도 않고 오히려 넣으면 색도 예뻐져서 벌써 2킬로짜리 두 팩을 다 수프로 끓여버렸다.

이 나라에 살면서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재료들에 도전하는 게 재밌다. 
며칠전에 해먹은 고르곤졸라 피자도 그렇고, 큐민이나 타라곤, 튜메릭같은 스파이스들을 한국이었다면 들어보지도 못했을지도. (요리프로에서 저런 게 나오면 맨날 짜증내고 아씨 뭐야, 이러고 끈 기억이 남) 지금 찾아보니까 튜메릭이 강황이라네. 아 이건 카레에서 많이 들어봤는데.

2. 평소 아침엔 일어나서 블렌더로 스무디 한 잔 갈아마시고 스트레칭하고 잠깐 일하다가 다시 빵을 먹는다. 빵은 Fig and Sparrow라는 카페&베이커리에서 파는 홀밀 사워도우나 아니면 펜넬이 들어간 호밀빵 이 두 종류로 골라먹는 중.

혼자 살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한 끼라도 '떼우고' 가면 그게 정신적으로 굉장히 크게 영향을 준다. 시간을 '떼우고' 배를 '채우고', 일상이 Living 이 아니라 surviving이 되어버릴까봐 오히려 먹는 거 하나하나에 한국에서보다 더 힘주면서 먹고 있다.

3. 내일은 매치데이라 한글학교를 다녀오면 또 일해야해서 Sylvie랑 Jonathan 불러서 피자 먹으면서 일하기로 했다.



페퍼로니+버섯 잔뜩 깔고 집에 남아 뒹구는 치즈 다 뿌리고 더블크림 살짝 뿌려서 냉장고에 집어넣어놨다. 준비하는 게 오래걸리진 않지만 분명 한글학교 다녀오면 그 짧은 시간에도 배고프다고 짜증낼 게 보여서 배부른 지금 미리 해놨다. 바질도 살짝 뿌렸는데 내일 잘 구워졌으면 좋겠다.

4.  엄마가 아프다는데 지금 내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있는 수프 한 대접 떠서 엄마 침대맡에 가져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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