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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15, 2013

1주년

인천공항에서 수하물 무게 초과때문에 이리저리 다시 짐싸고 멘붕와서 질질짜다가 잉글랜드 밟자마자 폰 분실. 

그리고 이렇게 벌써 일 년이 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31일에 이사를 다 마치고 짐 정리도 대충 다 하고, 열흘동안 인터넷 없이 살았더니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수천, 수백번은 외쳤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인터넷에 중독되어있었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드디어 처음으로 눈 파란 사람이랑 살아봤다. 중국, 홍콩, 태국 사람이랑 살아봤고 스페인 사람이랑 약 한 달?

뭐 제각기 다른 장단점이 있겠지만, 지금 이 커플이 나한테는 최상인 것 같다. 긍정적인 마인드, 유럽 탙이밍을 볼 수도 있고.

담요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ㅋ
쇼파에 누워서 여자친구 무릎에 다리 올리고 영화보는데 정말 눈물나게 부럽다. ^^

뭔가 해야할 것 같고 움직여야 할 것 같고 한데 역시나 귀찮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뭔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주에 야근과 야근 야근, 그리고 맥도날드와 칩스 깡와인으로 막판에 완전 컨디션이 망가진 후로 모든 게 귀찮다. 

이제 날씨는 추워졌고 다시 내가 힘들어하는 겨울이 왔다. 
빨래해야하는데 언니가 영활 보네. 그래도 저 모습이 눈물나게 부럽다 하하하

뭐라고 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 버티다 가겠다. 잘 부탁해 영국!

Wednesday, August 14, 2013

8월 14일

1. 집 다시 뷰잉! 이번에는 23층, 더 비싸더라도 나가야지. 아우 진짜 음식 소스 썼으면 뚜껑닫고, 기본적으로 예의는 지킵시다.

2. 사람이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한다는 말에 무한 동감. 좋은 동네에 좋은 사람이 더 많을 확률도 요즘 공감. 한국가면 무조건 청약 열심히 부어서 집사야지.

3. 맥의 개미지옥에 빠짐. 임패션드, 니키, 그리고 아마 러시안레드나 행아웃 하나 더 지를듯. 그동안 나한테 립스틱이 왜 안어울리나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내가 계속 글로시한 걸 사재껴서 그랬던 것 같다. 안그래도 요즘 온몸이 버석버석 건조한데 이젠 끝이다. 

4. 버릴 것 하나하나 정리중. 그릇을 28센티미터를 사야하나 21센티+28센티 섞어사야하나 고민이네.

5. 요즘 운동을 꾸준히 정말 죽을만치 땀흘려 했더니 피부가 급 좋아졌다. 그래 엄마 말대로 비싼 거 쳐바르는 것보다 내가 움직여야지. 하. 근데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ㅠ.ㅠ 

6. 세탁기 수리비 내고 디파짓 받아서 빨리 나가고 싶다. 

Tuesday, August 13, 2013

8월 13일

일한지는 두 달째.
일의 능률이나 내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건 모르겠다.

시티 라이브, 몇 번의 친선경기, 팀 멤버들이랑 주말마다 드링킹, 노팅엄, 리버풀
그리고 집문제, 팀 메이트랑 삐그덕삐그덕
몸은 점점 지쳐가고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추운 시즌은 다가오고 있다.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그것보다 내가 여기서 있는 게 맞는 걸까?
지난 목요일 이후로 내 모든 게 다 셋업된 것 같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던가 갑자기 이래버리니 불편하고 좀 심심하기도 하다.

집문제는 또 어떻게 될까. 세탁기도 고장나고 들어가기로 한 집은 문제가 생겨버리고.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어디선가 점을 찍고 있는 거라고, 그 점이 이어져 내 인생을 이끌어줄 굵은 밧줄이 될 거라고 믿으려고 한다. 하지만 절대로 오르지 않는 트래픽, 그리고 보고 싶은 엄마 아빠, 집 문제 돈 문제.

될 대로 되라 하고 싶다 요샌. 

Thursday, May 2, 2013

Braille



Forced ‘Home Alone’
-The disabled in Korea still dream a dream

President Park Geun-hye stated this government will strongly support social welfare, in particular neglected groups. She announced increases in the welfare budget and some advanced aid to minority in society.
In comparison to England where I live in now, Korean social safety net is quite well developed at some points. Compulsory courses till middle school, medical insurance systems[1] and some parts of welfare systems in parallel to universal benefits are as good as any developed countries’. But this benefit and support is the preserve of non-disabled person in Korea.
The thing I was shocked about in England at first was when I was working out at gym. It is not hard to find someone sitting on his/her wheelchair doing exercises. Usually disabled people in Korea tend to stay home; even if they want to go out, as they become the center of attention. . Disabled people in Britain perform the same tasks as non-disabled, and nobody around them (except me) is surprised or embarrassed. I am addicted to the gym, and have never seen a disabled person working out in Korea, except in rehab.
I got to see something more while living here. It is not hard to find packages with Braille printed on side, box of painkillers, jars of strawberry jam, and so many everyday goods have Braille. I asked my sister in Korea to check if Korean products have Braille either. But as expected, no such luck. . Thinking about the market in Korea, I have never seen deaf people shopping at the mall.

In Korea, people easily tend to think that disabled people cannot be independent and are always reckoned to be persons who have to be nursed. A few years ago, there was a social campaign that aiming to change the phrase ‘disabled people’ to ‘disabled friend’ to make disabled people be more familiar to non-disabled people. But this is apparently a self-centered idea of non-disabled people and it can be considered a part of an arrogance of non-disabled people. Disabled people are not object of pity; they do not need to be our friend. What they really want is neither money nor economic subsidies[2], they just hope to go out without public attention, as non-disabled people do, as part of the society member. Changed our biased and prejudiced views of disabled people as unable to care for themselves is more important than economic benefits. So we should speak to our President, ‘It’s attitude, stupid!’.



[1] This well developed universal system also cannot be characteristic of Korean welfare since Park’s cabinet decides to privatize medical insurance system.
[2] Of course, this responses are from middle class, who can afford to attend university, our society’s neglected in welfare area still exists.  

Saturday, January 5, 2013

John

어제는 멍때리고 먹고 놀고 오늘은 Sheffield 가서 John을 만났다.

A Road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끊이지 않던 음악, 구불구불한 길, 편두통에 감기 몸살기운까지 겹쳐서 내리자마자 토할 뻔 했다.

John을 만나서 점심을 먹고 대학교 구경도 하고, 책이랑 프린트로 빽빽한 John의 책상을 보면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변함없이 열심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 홍콩 생활도 생각났다. 

We are growing up, or grown. Everything changed.
아무 것도 예전과 같은 것은 없었다. 내 불안함과 불안정한 생활만 제외한다면 모든 사람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한테 이제 괜찮냐고 묻는 말에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 했지만, 꿋꿋이 잘 참았다. 2011년 5월 23일 새벽에 울던 그 때만으로도 충분했다. 맥주 한 잔, 그리고 아쉬운 헤어짐. 그래 이젠 우리는 더이상 South Tower에서 만나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같이 수업을 들을 수도 없다. 더이상 밥을 같이 먹자고 기다릴 필요도 없고, 그냥 모든 게 그때와 같지 않다.















집에 와서 결국 또 미련하게 다시 집어넣어봤다. 서류는 다 접수됐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결국 다 떨어진거잖아. 요즘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지 살도 찌고 두통에 피부 트러블까지. 악순환인 것 같다. 다운되지 않으려고, 힐링캠프에서 나오는 배우들처럼 내가 프림죽만 먹고 한 달간 살아야하는 그런 처지도 아니잖아, 하면서 나를 위로하지만 그 사람들은 꿈이라도 있었지 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또 울고 싶어진다.

서류 기다리는 건 여섯 개. 아니라면 미련없이 가자.

I have been escaping reality, but I will be sucked into accepting reality at some point which means going back Seoul. And it's coming up soon. 

Tuesday, January 1, 2013

Life of PI

새해 첫날, 어제 먹은 라면이 과했는지 아침은 커피 세 잔, 그리고 (비싼) 사과로 떼우고
이리저리 뒹굴대다가 YAMCHA.



샤오롱빠오, 새우 덤플링, 그리고 챠슈빠오!
여기에 솔티에그콘지랑 이채현이 먹고싶다고 난리난리친 포크챠오미엔

배터지게 먹고 20파운드. 음 내 1주일 식비지만 이제 얼마 안남았으니 열심히 흡입.
챠슈빠오랑 샤오롱빠오가 제일 맛있다. 콘지는 먹으면 배도 부르고 왠지 엄마가 끓여준 닭죽맛이 살짝 나서 조금 위로가 됀다.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랄까....(닭알수프이겠지만)

다 먹고 LIFE OF PI 보러 갔는데 ANG LEE는 천재인듯.
커피를 마셔서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3분정도 빠졌는데 스토리는 이미 다 아니까 뭐.
사실 스토리 자체가 흥미있는 건 아니지만, 그 영상, 특히 태평양 한 가운데 밤바다 모습은 무섭게 아름다웠다. 막 그 속에 빨려들어갈 상상을 하니까 아찔하면서도 한 번 해보고 싶은 느낌?

마지막에 그게 당신의 엄마였고, 그게 요리사였고.....이 대사에서 어떤 게 아름답겠나, 이 얘기까지.

말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삶, 그리고 삶의 원동력. Richard Parker, 난 지금 그런 'something'이 필요하다.



저녁에는 뭐 사다 먹을까 하다가 결국 매운 거 먹고 싶어서 깻잎+버섯양파파프리카볶음+김에 쌀밥
매운 거 먹으니까 풀린다. 지금 조금 위장이 쓰리긴 하지만 느글느글한 매쉬드포테이토보단 이게 훨씬 맛있다.

내일부터는 다시 gym 시작! 아침 새벽에 가서 땀 흠뻑 흘리고 올 생각하니까 벌써 두근두근.

다음주까지 아무 것도 안생기면, 한국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정말 간절하게, 여기 더 있고 싶다. 
서울행이 아니라 런던행이 됐으면. 정말, 간절히.

Saturday, December 29, 2012

긴 겨울

불안하고 외롭다.
끝없는 늪으로 빠지는 느낌.

끊임없이 나가려고 하지만 결국 공허한 느낌은 떨쳐낼 수가 없다.

Friday, December 28, 2012

Sis's coming!

오랜만에 집에서 먹는 아침.
사과도 두 개나 먹었다. 

남은 야채도 우걱우걱 먹었다.
요즘 eat pray love에서 eat만 열심히 지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턴 같이 했던 수정이랑 수정이 남자친구 rickie의 마음이 담긴 예쁜 소포
처음에는 글씨가 한국사람은 안같고 뭔가 했는데(수정이가 소포간다는 말도 새벽에 봐서 뭔가 했네)
보고서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래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조금 위안도 되면서.
한국에 돌아가야하나 다시 한 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고추장은 이미 뜯었고, 떡볶이는 내일 채현이랑 해먹을 것 같고 음 또 뭐지...

채현이 와서 점심에는 남은 음식 싹쓸이, 저녁에는 한식 만찬.
아침부터 준비한 결과가 있었다. 




불고기, 오뎅+버섯+양파볶음, 김치찌개, 양상추 데친 것, 어제 남은 돼지고기.
매운 거 먹으니까 속이 확 풀리면서 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국 지사직 신청을 했다. 이러려고 여기 나왔나 싶지만, 제발 어디든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최대한 빨리.

이제는 일하고 싶다.
연말인데 뭔가 연말 느낌은 안나고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한국에서 날아온 엄마아빠의 정성이 담긴 소포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가고.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내 삶은 점점 걱정만 늘어가는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무겁다.

내일은 제발, 내일은 제발, 정말 퍽킹 크리스마스라고 할 정도로 왜 자꾸 크리스마스 연휴라고 쉬는 건지 모르겠다.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빨리 말이라도 해주지. 답답하고 속상하다.

Thursday, December 27, 2012

24-25
BUXTON

25-26
LIVERPOOL

First boxing day
1 scarf, 2 denim shirts
tons of fish balls and food
got fatty belly again -.-

MANCHESTER, I MISSED HERE!!












서류 제출 완료
내일은 이제 채현이 온다!

Sunday, December 23, 2012

daytrip


오늘 아침은 군산미라밥을 응용한 맨체스터마리스튜. 근데 양을 좀 적게 해야지, 다음에는 치즈 한 장 감자 반 개, 그리고 버섯이랑 야채를 더 넣어야 겠어 조금 느끼함.













토요일 이후로 살이 급격히 찐 게 느껴져(아직 일요일임) 나가서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어제랑 달리 춥지도 않고 햇살도 좋았다. 모리슨인가? 거기를 한 번 가보자는 게 처음 목표였다. eatGoody 회식에서 난 여기도 안가보고 저기도 안가보고 솔직히 길 이름 아는 거라곤 프린세스스트리트가 전부라는 걸 알고 나한테도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그냥 구글맵 스캔떠서 나갔다.

첫 음악은 goBack. 다이나믹 듀오 노래가 요즘따라 와닿는다. 리쌍 노래도.

우선 타이판 슈퍼를 지나서 계속 걸었다. 한 한 시간 걸었나? 이 동네에 이런 데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아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구나, 나는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논현동 오피스텔 같은데 살아놓고는 여기 시끄럽다고 불평했던 거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도 해주고(이게 며칠만에 처음으로 사람이랑 말한 거였음) 음악도 들으면서 신나게 걸었다. 아침이랑 점심을 너무 과식해서 진짜 너무너무 속이 안좋았는데 걸으니까 그래도 좀 나아진 느낌이었다. 기침이랑 재채기가 심해서 가다가 지구가 부서질 것처럼 재채기를 한 건 문제였지만.

가다보니 교회도 많고 공원도 많고, 걸을 공원도 많고.
햇살이 눈부셔서 그냥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 우선 춥지 않은 게 어디며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나한테 주어지는 것도 큰 행복인 것 같았다.

혼자 이렇게 지내면서 예전처럼 아프지도 않고 누군가로 인해 마음졸이지도 않고,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공기도 좋고 화장 안한 맨 얼굴이라 공기가 피부 밑까지 들어오는 것 같아 기분은 더 상쾌해졌다.







걷다보니까 또 CURRY MILE이 나왔다. 여기가 거기구나, 
그리고 MU라는 데를 처음으로 들어가봤다. 
와 이게 대학이구나, 사실 정말 세계 50위권 대학을 내가 뭐 가봤어야 알지.

근데 정말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상관없이 그냥 공부에만 푹 빠져서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그러면서 대학을 다시 다니고 싶어졌다. 

쓸데없이 걔 생각이 난 건 내가 너무 외로워서라고 자기 위안, 정신 승리.





이 모습을 이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그때까지 즐겁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