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신정 말고 음력으로 새해를 보내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유럽갈 때도 일부러 그렇게 맞췄고 대부분 그렇게 정하고 나니까 남들 시끌벅쩍하게 새로운 거 시작할 때는 조용히, 그리고 조용히 지낼 때 혼자 더 조용히 지내게 되버렸다.
올해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신정, 구정까지 가족이랑 떨어져서 지내게 된 건 처음이었고, 아마 이게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중이지만.
슬럼프가 온 건 알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 모든 게 다 아무런 가치없는 것들이 되버린 것 같다. 내가 참 초라하고 빛바래지는 것 같고, 버려진 장난감,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같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다. 스물 넷 다섯 여섯, 나이도 참 이제 복잡하다.
서류 낸 거 하나, 낼 거 수두룩, 그리고 또 뭐가 있지?
다음주에는 일도 3일만 하는데 하 그럼 이제 또 생활비는 어쩌나.
그래도 이상하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니 돌아가면 편해질 건 아는데,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될까.
그냥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는 중인걸까?
무섭고 무섭고 무섭다.
난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겁도 많고 노력을 피하게 되버린 걸까.
더 무서운 건 이 슬럼프가 얼마나 오래 갈 지, 아니 이렇게 살다 그냥 끝나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잘한다 잘한다 말이 아니라 그냥 아주 자그마한 결과라도 하나 얻을 수 있다면, 그러면 조금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피 뉴이어, 뱀의 꼬리라도 되보고 싶은 한 해. 재밌게, 신나게, 버틸 수 있을 만큼의 힘겨움만 내게 다가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