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요일 저녁,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에 생과일 주스가 나온다. 또 쥬시나 뭐 이런 게 먹거리 엑스파일에 걸렸나 해서 방송을 찾아봤다.
문제 요지는 이거다.
1) 비위생적이다(버린 걸 재활용, 해동 관리가 제대로 안됌)
2) MSG를 넣는다 (역시 MSG=마싰고)
3) 시럽을 넣는다
1)이야 당연히 식품 관리의 문제니 관리하고 지적하는게 맞는데, 2)랑 3)은 잘 모르겠다.
3천원 가량의 돈을 내고 거기서 향이 좋은 고품격의 생과일의 맛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채울 가공의 뭔가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즉석 생과일 주스를 잘 안먹어서 모르겠는데, 원래 과일주스를 제대로 만들려면 더 많은 양의 과일이 필요하고, 더 비싸다.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마켓에서도 오렌지 한 무더기에 2유로지만 종이컵만한 주스 한 잔에는 3유로다.)
물론 2)와 3)의 사실을 속인 회사는 잘못했지만, 제대로 돈을 주고 소비하는 문화가 있었더라먼 저런 '사기극'은 발생하지 않았을거다.
2.
사실 얘기하려고 한 건 주스가 아니라..가성비다.
나는 가성비라는 말이 너무 싫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는데는 뭐라고 안 하겠지만 내가 쓰고 먹는데 "어머 저거 저렇게 하면 더 싼데" "가성비로는 이게 최고라니까" 하면서 내 소비가 마치 흥청망청인거 마냥 말하는 게 너무 싫다. 가격을 용량으로 나누는 걸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게 별로라 안하는거다.
나는 그냥 돈 더 내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좋다. 엄청나게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쭉 그랬다.
"그거 모으면 1년이면 얼마고 5년이면 얼마고.."
네네네, 잘 알겠습니다만.
나는 그렇게 지금 내 현재 행복을 팔아서 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가성비가 좋은 것과 정말 좋은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난 좀 더 내가 좋은 걸 좇고 싶다.
물인지 보리차인지 알 수 없는 액체를 마시는 대신 제대로 크레마가 올라온 커피를 마시고 싶고, 할인 특가를 누리기 위해 줄을 서기보단 그냥 제 돈주고 편하게 먹는 게 좋다.
사회 전체가 자꾸 가성비만 따지다 보니까 다같이 낮은 수준의 소비로 평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전에 트위터에서 본 말처럼 정말 "압도적인" 수준의 경험을 해서 한 번 기준을 제대로 잡아줄 필요가 있다. 그게 화장품이건 음식이건 술이건 간에. 그래야 좋고 나쁨의 기준이 생기고 사람의 '취향'이라는 게 생긴다.
백종원이 별로 싫진 않지만 백종원 식의 프랜차이즈에는 엄청나게 거부반응이 드는 것도 '우리는 가성비', '원가절감' '거품 뺀'다는 식으로 해서 고급 수준의 음식을 '거품'으로 매도해서다. 빽다방 커피가 싸고 그게 그거다라고 하지만 제대로 커피를 크레마 내서 하는거랑 그냥 큰 잔에다가 물붓고 언제 로스팅했을지 모를(그리고 원산지도 모를) 샷을 섞어주는 거랑은 맛이 다르다. 라떼도 순수한 우유와 샷의 맛이 아니라 정체모를 식물성 휩을 잔뜩 올려놓고 "우리는 양이 더 많아" "니네는 속아왔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취향은 다시 퇴화된다.
원료가 같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다르면 결과가 다른데 이 과정 자체를 무시하는 게 싫다. 백종원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백종원을 대표로 하는 그 '가성비' 족들은 대체로 "저렴이"가 "고렴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면서 모든 '전문가'들의 노력을 다 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대해 존경하는 홍여사님은 몇 년전에 비싼 화장품에 대해서 "똑같은 콩으로 만들더라도 어떻게 만들면 된장이고 어떻게 만들면 두분데... 원료 같다고 결과가 같냐"며 '비싼 건 어느 정도의 이유는 있다'고 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화장품 얘기를 해보면 그것도 다르다. 텍스쳐의 차이가 효과를 좌우한다. 색조도 마찬가지. 그런데 단순히 "들어가는 원료 같고 공장 같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결과를 예견하는 건 앞에서 된장과 두부를 같다고 보는 거랑 마찬가진거다. 거기서 배합과 텍스처 만드는 것, 발효, 이런 등등의 과정들이 모여서 차이를 만든다.
공연도 마찬가지고 모든 게 마찬가지다. 가격이 높아지는 건 중간 마진 장난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만큼 인풋이 있어서다. 맨유 티켓 가격이 하늘을 찔러도 사람들은 돈을 더 내고라도 최고의 경기를 보고 싶지, 싸다고 저기 저 볼튼이나 아니면 뭐 블랙풀 이런 걸 보려고 하지 않는거랑 마찬가지다.
취향에 투자하는 걸 경제적 효용성으로 따지다보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3.
앞에 나온 것들은 내 생각이니까 남한테 강요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서 돈을 모아서 행복하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일이고, 나는 덜 모으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고 나한테는 이게 더 맞는 방법인 것 같다.
예전에 기타노 다케시 책에서 그 어머니가 "세일할 때는 줄서지 말것"이라고 가르쳤다는데 나는 동의했다. '가성비'가 좋은 상황이 왔을 때 소비를 하게 하는 사회에 맞춰 살지 말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살라는 걸 가르친거다.
4.
그럼으로 나는 내일 내 취향을 기르기 위해 전문가가 정성껏 내려준 커피를 마셔야겠다.
7천원에 두어 시간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쓰겠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각성해서 새나라의 일꾼이 돼어 다시 일할테니까. 포드의 생산라인 못잖은 커피-일 라인은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컨베이어벨트가 돼서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일하게 만든다. 일하자. 일요일이니까 일을 하고 월요일엔 또 일을 해야지.
라떼 맛있는 집이 집앞에 딱 생겼으면 좋겠다. 양은 적더라도 재료 안 아끼고 잘 내리는.
일요일 저녁,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에 생과일 주스가 나온다. 또 쥬시나 뭐 이런 게 먹거리 엑스파일에 걸렸나 해서 방송을 찾아봤다.
문제 요지는 이거다.
1) 비위생적이다(버린 걸 재활용, 해동 관리가 제대로 안됌)
2) MSG를 넣는다 (역시 MSG=마싰고)
3) 시럽을 넣는다
1)이야 당연히 식품 관리의 문제니 관리하고 지적하는게 맞는데, 2)랑 3)은 잘 모르겠다.
3천원 가량의 돈을 내고 거기서 향이 좋은 고품격의 생과일의 맛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채울 가공의 뭔가가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즉석 생과일 주스를 잘 안먹어서 모르겠는데, 원래 과일주스를 제대로 만들려면 더 많은 양의 과일이 필요하고, 더 비싸다.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마켓에서도 오렌지 한 무더기에 2유로지만 종이컵만한 주스 한 잔에는 3유로다.)
물론 2)와 3)의 사실을 속인 회사는 잘못했지만, 제대로 돈을 주고 소비하는 문화가 있었더라먼 저런 '사기극'은 발생하지 않았을거다.
2.
사실 얘기하려고 한 건 주스가 아니라..가성비다.
나는 가성비라는 말이 너무 싫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겠다는데는 뭐라고 안 하겠지만 내가 쓰고 먹는데 "어머 저거 저렇게 하면 더 싼데" "가성비로는 이게 최고라니까" 하면서 내 소비가 마치 흥청망청인거 마냥 말하는 게 너무 싫다. 가격을 용량으로 나누는 걸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게 별로라 안하는거다.
나는 그냥 돈 더 내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좋다. 엄청나게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쭉 그랬다.
"그거 모으면 1년이면 얼마고 5년이면 얼마고.."
네네네, 잘 알겠습니다만.
나는 그렇게 지금 내 현재 행복을 팔아서 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가성비가 좋은 것과 정말 좋은 것이 같지 않기 때문에 난 좀 더 내가 좋은 걸 좇고 싶다.
물인지 보리차인지 알 수 없는 액체를 마시는 대신 제대로 크레마가 올라온 커피를 마시고 싶고, 할인 특가를 누리기 위해 줄을 서기보단 그냥 제 돈주고 편하게 먹는 게 좋다.
사회 전체가 자꾸 가성비만 따지다 보니까 다같이 낮은 수준의 소비로 평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전에 트위터에서 본 말처럼 정말 "압도적인" 수준의 경험을 해서 한 번 기준을 제대로 잡아줄 필요가 있다. 그게 화장품이건 음식이건 술이건 간에. 그래야 좋고 나쁨의 기준이 생기고 사람의 '취향'이라는 게 생긴다.
백종원이 별로 싫진 않지만 백종원 식의 프랜차이즈에는 엄청나게 거부반응이 드는 것도 '우리는 가성비', '원가절감' '거품 뺀'다는 식으로 해서 고급 수준의 음식을 '거품'으로 매도해서다. 빽다방 커피가 싸고 그게 그거다라고 하지만 제대로 커피를 크레마 내서 하는거랑 그냥 큰 잔에다가 물붓고 언제 로스팅했을지 모를(그리고 원산지도 모를) 샷을 섞어주는 거랑은 맛이 다르다. 라떼도 순수한 우유와 샷의 맛이 아니라 정체모를 식물성 휩을 잔뜩 올려놓고 "우리는 양이 더 많아" "니네는 속아왔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취향은 다시 퇴화된다.
원료가 같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다르면 결과가 다른데 이 과정 자체를 무시하는 게 싫다. 백종원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백종원을 대표로 하는 그 '가성비' 족들은 대체로 "저렴이"가 "고렴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면서 모든 '전문가'들의 노력을 다 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대해 존경하는 홍여사님은 몇 년전에 비싼 화장품에 대해서 "똑같은 콩으로 만들더라도 어떻게 만들면 된장이고 어떻게 만들면 두분데... 원료 같다고 결과가 같냐"며 '비싼 건 어느 정도의 이유는 있다'고 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화장품 얘기를 해보면 그것도 다르다. 텍스쳐의 차이가 효과를 좌우한다. 색조도 마찬가지. 그런데 단순히 "들어가는 원료 같고 공장 같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결과를 예견하는 건 앞에서 된장과 두부를 같다고 보는 거랑 마찬가진거다. 거기서 배합과 텍스처 만드는 것, 발효, 이런 등등의 과정들이 모여서 차이를 만든다.
공연도 마찬가지고 모든 게 마찬가지다. 가격이 높아지는 건 중간 마진 장난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만큼 인풋이 있어서다. 맨유 티켓 가격이 하늘을 찔러도 사람들은 돈을 더 내고라도 최고의 경기를 보고 싶지, 싸다고 저기 저 볼튼이나 아니면 뭐 블랙풀 이런 걸 보려고 하지 않는거랑 마찬가지다.
취향에 투자하는 걸 경제적 효용성으로 따지다보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3.
앞에 나온 것들은 내 생각이니까 남한테 강요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서 돈을 모아서 행복하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일이고, 나는 덜 모으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고 나한테는 이게 더 맞는 방법인 것 같다.
예전에 기타노 다케시 책에서 그 어머니가 "세일할 때는 줄서지 말것"이라고 가르쳤다는데 나는 동의했다. '가성비'가 좋은 상황이 왔을 때 소비를 하게 하는 사회에 맞춰 살지 말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살라는 걸 가르친거다.
4.
그럼으로 나는 내일 내 취향을 기르기 위해 전문가가 정성껏 내려준 커피를 마셔야겠다.
7천원에 두어 시간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쓰겠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각성해서 새나라의 일꾼이 돼어 다시 일할테니까. 포드의 생산라인 못잖은 커피-일 라인은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컨베이어벨트가 돼서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일하게 만든다. 일하자. 일요일이니까 일을 하고 월요일엔 또 일을 해야지.
라떼 맛있는 집이 집앞에 딱 생겼으면 좋겠다. 양은 적더라도 재료 안 아끼고 잘 내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