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16, 2016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1.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이렇게 재지 않았을텐데, 내가 몇년전만 됐어도 그냥 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조금 더 움츠러들고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건 속물로 가득한 미친 세상에서 개츠비는 혼자만 다른 길을 걷고 있어서다.


2.
며칠전에 기내 영화에서 바즈 루어만의 개츠비가 있길래 공짜로 주는 화이트 와인 세 잔이랑 함께 영화를 봤다. 그리고 한국에 오자마자 또 다시 찾아 봤다.

이해갈 것 같지 않았던 데이지가 조금씩 더 이해가 됐고 개츠비의 안쓰러움보다는 데이지의 선택에 동감했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되는건가.

개츠비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라고"하는데 마음이 어쨌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는 데이지의 표정이 이해가 갔다. 다 내려놓기에 이미 쥐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 계산을 해야 한다. 그냥 던져버리기엔 위험이 너무 크다. 데이지를 욕하기에 이미 둘이 떨어진 시간은 너무 길어져버렸다. 그동안 개츠비는 "내가 성공해서 호강시켜줄게"라는 생각으로 불태우고 있었지만, 데이지는 이미 다른 삶에 적응해있었다. 사랑보다 사람이 옆을 채워준다는 게 생각보다 크다.

3년전 처음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을 때랑은 다른 느낌이라 놀랐다.


3.
바즈 루어만 버전 개츠비는 맨체스터에서 처음 봤다. 한창 너무 힘들어서 다 때려치고 집에 가자, 이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내 생일 한 1주 전이었나? 존이 맨체스터에 와서 밥먹재서 밥도 먹고 영화를 봤다.

영화가 막 슬픈 것도 아닌데 펑펑 울었다. 그리고 에라 망한 인생 어디 1년 더 논다고 더 망할까 하고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생일이 칸느 기간이라 파리에도 칸느 영화제 포스터가 가득 붙어있었고, 개츠비도 그 구석에 있었다. 파리에서는 프랑스어 더빙판으로 또 한 번 봤다. 영화에서 캐리 멀리건 머리가 너무 예뻐서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70유로였나? 주고 저 머리 했다가 또 울면서 맨체스터에 돌아왔던 기억도 난다. 동양인의 모질과 서양인의 모질은 다르다. 매우 많이 아주.


이 영화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고 하면 어색하겠지만, 그냥 나는 그때 개츠비처럼 되고 싶었다.

"왜 여기 와서 이 고생해요?" "빨리 돌아와" "너 돌아오면 나이 몇인줄 알아?" "한국에서 잘 안됐어요?" 이런 말들에 질려있을 때 개츠비처럼 그냥 한 번 끝이 보이더라도 밀고나갈 위안을 얻었다. 영국에 온 건 도망이 아니라 도전이었다는 걸 증명해보고 싶었다. 바즈 루어만 영화의 화려한 불빛을 바라보며 나도 어떤 방법이 됐든 내 방식대로 한 번만 더 해보고 가자, 그렇게 영화 한 편으로 1년 반을 더 버티다 왔다.



4.
영화가 책보다 좋은 이유는 사운드트랙 때문도 있다.



"나는 어리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넌 나를 사랑할 거야"하는 데이지 시점 가사를 듣다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다 이렇게 간사한 거 아닌가.. 사실 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마 이 가사도 처음 듣고 감탄했다. 세상은 내 중심이고 모두가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나는 변해도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이게 당연한 마음이니까.


5.
데이지의 마음이 이해가는 이 시점에, 나는 다시 또 개츠비처럼 무모한 도전을 할 것 같다. 사서 고생, 팔자 트위스트가 dna에 박혀있는건지 모르겠으나.  개츠비처럼 다 잃게 되더라도 혼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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