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19, 2016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2016)

1.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2013년 11월이다. BIFF는 10월이라 다른 담당자가 마켓 자료를 보라고 전달해준 걸 봤는데 "족구왕"에 별 다섯.

그리고 족구왕은 1년뒤에 개봉됐는데, 그때 즈음 다시 보고 나서 아.. 이런 영화가 한국에 있다니 하면서 박수를 쳤다. 너무 좋아서 영어로도 리뷰쓰고 이리저리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블로그에 그 해의 한국영화 으뜸이로 족구왕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잉투기는 안되고 족구왕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다. 똑같은 심각한 이야기를 해도 재밌으면 본다. '상업영화'의 성공 1순위는 재미다.

2.
왜 범죄의 여왕 얘기를 하면서 족구왕 얘기를 꺼냈냐면 범죄의 여왕은 족구왕 제작사(광화문시네마)에서 만들었다. 작년인가 올 초였나 마켓에서 광화문시네마 신작이 나온다는 얘기 듣고 꽤 기다렸던 영화다.


영화가 족구왕처럼 밝거나 경쾌하진 않지만 그림이 좀 비슷하다. 만약 족구왕의 만섭이 세상의 풍파를 거치고 때묻은 상태가 돼, 결국 이 고시촌에 들어온다면 덕구같이 되지 않았을까?

복학이라는 1차 위기를 거쳐 졸업해보니 세상은 이미 3포, 5포, 헬조선, 이생망에 문송한 곳이 돼버렸다. 갈 곳은 이제 '개천에서 용날 수 있다는' 고시촌밖에 없다. 여기에는 경찰 공무원, 사시 같은 우리 사회의 '용'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고시촌이 희망의 공간이 아니라 도피의 공간, 생존의 공간인 사회 밑바닥 사람들도 같이 엮여 있다. 개태는 길거리 태생이다. 그냥 그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 여기가 고향인 사람이다. 뉴스에서도 고시촌 얘기가 나오면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린 사람과 여기가 생존의 공간인 사람들이 나오는데 영화에서 그 공간은 잘 분리돼있다. 빼곡한 포스트잇과 할 수 있다는 겪언이 이곳을 탈출하려는 '개천'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배달음식과 컴컴하고 퀴퀴한 방안의 모습은 여기가 그냥 삶이 돼버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

3.
영화 속 고시촌을 보면서 청킹 맨션이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녹색빛이 감도는 제한된 공간에서 주인공들은 뛰어다닌다. 미경은 임청하를 떠올리게 하는 무릎 기장의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이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 막 오 똑같아 이런 건 아닌데 갖힌 공간, 그리고 폐쇄적이고 희망없는 이미지가 청킹맨션을 닮은 것 같았다. (물론 홍콩 다녀온지 얼마 안돼서 모든 잔상이 홍콩이랑 겹쳐보일 수도 있다.)





4.
영화는 12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도요금이 나온 걸 이상하게 여긴 고시생 엄마가 고시촌에 와서 범죄를 밝혀낸다는 스토리다. 꽤 엮어놓으려고 했지만 사실 절반 지나면 범인은 누구겠구나 하고 답은 나온다.

그래도 끝까지 보고 싶은 건 왜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걸 만든 사회의 모습이 구석구석 잘 녹아있어서다.

5.
영화에서 사회 문제를 얘기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너무 단편적으로 '헬조선' 하고 외치는 것보다, 영화니까 우선 재밌게 즐기돼 아 이런 얘기아 이거였구나 하고 해석해갈만한 여지를 남기는 게 보는 사람도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출장 전에 밤새서 보고 너무 재밌어서 몇 번 더 봤는데,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다. (19세인데도 불구하고 결론이 너무 빤하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와서 '울어라' '슬퍼라' 하고 강요하는 영화들 사이에 뭔가 다른 움직임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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