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족 여행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
항상 '가족이니까'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가족이라서' 맞춤을 당연히 여기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그래서 싸운다.
친구면 그냥 여행가서도 쌩하고 갈라서서 따로 다닐 수도 있겠지만 집에 함께 돌아가야 하는 가족은 그럴 수가 없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짜증과 불만을 내재화한 사람은 그냥 이 짜증을 사방팔방 다 튀겨내고 만다. 항상 그랬다. 내가 문제다.
2.
나는 여행이 새롭지 않다. 영국에 있을 때 석 달에 한 번은 외국을 나가려고 했고, 그게 아니면 런던이든 어디든 계속 돌아다녔다. 홍콩에 있을 때도 광저우를 가거나 마카오를 가서 내 여권은 다른 가족보다 좀 더 빼곡하게 채워졌다.
국내 여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ㅁㅁ, 제2의 ㅁㅁ라는 곳들이 넘쳐나지만 대부분 그 오리지널리티를 봤기 때문에 그냥 시큰둥하다. 비행기를 타거나 낯선 곳을 갔을 때 느껴지는 신선함이 별로 없고 모든 게 기시감이 느껴져서 재미가 없다.
가장 힘든 건 음식들. 나는 향이 풍부한 음식들보다는 플라스틱향이 느껴지는 정크푸드에 길들여진 입맛이라 생선도 안먹고, 향이 강한 김치도 못먹는다. 여행에서는 평소보다 음식을 덜 가리는 편인데, 생선만큼은 도저히 못먹겠어서 생선이 주류인 나라 (eg. 스페인, 포르투갈 혹은 이베리아 반도)에 가면 살이 빠져서 온다. 이번 여행지는 또 통영이었다. 통영은 바다고 바다는 생선. 또 고생할 게 보였다.
3.
아빠도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아빠는 새로운 걸 하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음식이 나오면 꼭 먹어봐야 하고 전시가 시작하면 꼭 가봐야 한다. 나름 '세련된'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내 감성을 기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아빠는 직접 하는 데 약하다. 그리고 '하고 싶다'는 사실이 앞서나가서 '같이 왔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종종 발생한다.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처럼 슝 혼자 나가는데 문제는 거기서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이런 점 때문에 여행에서, 특히 해외에서 아빠랑 꽤 트러블이 잦았고, 일본에서는 엄청 싸웠다. (속으로 내가 다시 가족여행을 오면 월북한다... 이 생각도 했다.)
4.
엄마는 여행을 가면 항상 준비가 완벽하다.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고, 가방에는 항상 우리 짐까지 들어가있다. 몇 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이제 니네 짐은 니가 들어'라고 하지만, 결국 엄마 가방에는 우리 신분증, 폰, 그리고 몇몇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엄마랑 부딪히는 경우는 사실 엄마랑 직접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하도 아빠한테 짜증을 내서 '지금 아빠한테 뭐하는 짓이야' 하면서 간접적인 문제다. 물론 내가 정말 싸가지도 없고, 그래서 아빠한테 오만상을 다 찌푸리면서 여행와서까지 짜증을 내고.. 그랬던 건 사실이지만 엄마랑 싸우면 그게 더 커진다.
불과 불이 맞붙으면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튀는데 그렇다... 엄마랑은 안싸우는 게 최선이다. 태국에서 엄마랑 정말 따로 갈뻔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엄마랑 붙을 징조가 보이면 이제 내가 피한다. 20년 이상 엄마랑 살면서 배운 건 이거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게 이기는 거다. 엄마한테는 이길 수가 없다.
5.
동생들은 사실 무난무난한 성격이다. 딱히 가리는 음식 없이 거기 가면 그거 먹고 저기 가면 저거 먹고, 어디서든 잘 자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휴가나온 이일병(인지 이병인지 여튼 군인)은 부대에서 대전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성심당 빵을 가득 안고 나타났고, 끊임없는 식욕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래도 이제 좀 컸다고 짐을 먼저 잡아들고 가는 거 보면 '애는 착하다.'
여동생은 그냥 잘 맞춰주는 성격이기도 하고, 여튼 나보다는 착하다. 다들 나보다는 착하다는 데 포인트가 있다. 이렇게 쓰고 보면 내가 문젠데...
6.
그래도 이번 여행은 신기하게 잘 흘러갔다.
국내외를 거치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래서 그런지 나도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회를 먹을 때는 옆에서 소세지를 구워먹었고, 생선탕을 먹을 때 옆에서 혼자 조용히 성심당 빵을 뜯었다.
아침에 커피 드리퍼까지 준비한 덕에 나름 만족할만한 시작을 해서 그런지 그냥 모든 게 아름다웠다. 바다가 보이는 콘도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다 참을만 하다. 아 이게 참 단순한거였는데 왜 지금까진 이걸 모르고 그냥 없는거에만 짜증을 냈을까. 결국 모든 건 다 커피의 문제였던건가. (마지막 가족 여행은 캄보디아였는데 그때 커피가 정말 최악의 커피 3선안에 꼽을 수 있다. 커피에서 오이향이 났다)
더웠지만 생각보다 버틸만 했고, 아빠도 앞서나가기 보다는 어느 정도 가족과 함께 속도를 맞췄다. 이제 엄마 가방에 모든 걸 구겨넣기보다는 각자 자기 취향대로 가방을 매거나 주머니에 넣는다.
같은 장소에서 3분 이상 못있고 짜증내던 나도 지쳤는지 그냥 털썩 주저 앉는다. 그러고 보니까 여러 모습도 보이고 낄낄대며 동생들이랑 사진도 찍는다. 아마 이번 여행이 가족이랑 사진을 제일 많이 찍은 것 같다. 아빠의 새로산 갤7로 사기도 몇 번 치면서 그렇게 하하호호 하다보니 싸움도 짜증도 줄었다. (없다는 아니다. 줄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돌아가서 여행하면서 낯설 정도였다. 이제 한 번쯤 터질 때가 됐는데 왜지? 왜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엄마가 아팠던 걸 빼면) 너무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7.
결국 맞춰짐의 문제다.
요즘 내가 단체 사회성이 결여됐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동안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성불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내 중심으로 모든 걸 맞췄다. 나를 굽히기 싫어서 결국 혼자 떠나버리기를 반복했다. 조금만 더 이해하고 참았더라면 이런 정도까지는 안갔을 텐데. 맞춤을 강요하기 보다 내가 조금 더 맞춰졌다면, 계속 이런 후회가 든다.
그런데 장담컨데 나는 아마 다시 여행을 가면 또 싸우겠지. 아마 그럴거다. 사람은 쉽게 안변하니까.. 아 진짜 쓰고 나니까 내가 괴물같네.
가족 여행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
항상 '가족이니까'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가족이라서' 맞춤을 당연히 여기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그래서 싸운다.
친구면 그냥 여행가서도 쌩하고 갈라서서 따로 다닐 수도 있겠지만 집에 함께 돌아가야 하는 가족은 그럴 수가 없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짜증과 불만을 내재화한 사람은 그냥 이 짜증을 사방팔방 다 튀겨내고 만다. 항상 그랬다. 내가 문제다.
2.
나는 여행이 새롭지 않다. 영국에 있을 때 석 달에 한 번은 외국을 나가려고 했고, 그게 아니면 런던이든 어디든 계속 돌아다녔다. 홍콩에 있을 때도 광저우를 가거나 마카오를 가서 내 여권은 다른 가족보다 좀 더 빼곡하게 채워졌다.
국내 여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ㅁㅁ, 제2의 ㅁㅁ라는 곳들이 넘쳐나지만 대부분 그 오리지널리티를 봤기 때문에 그냥 시큰둥하다. 비행기를 타거나 낯선 곳을 갔을 때 느껴지는 신선함이 별로 없고 모든 게 기시감이 느껴져서 재미가 없다.
가장 힘든 건 음식들. 나는 향이 풍부한 음식들보다는 플라스틱향이 느껴지는 정크푸드에 길들여진 입맛이라 생선도 안먹고, 향이 강한 김치도 못먹는다. 여행에서는 평소보다 음식을 덜 가리는 편인데, 생선만큼은 도저히 못먹겠어서 생선이 주류인 나라 (eg. 스페인, 포르투갈 혹은 이베리아 반도)에 가면 살이 빠져서 온다. 이번 여행지는 또 통영이었다. 통영은 바다고 바다는 생선. 또 고생할 게 보였다.
3.
아빠도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아빠는 새로운 걸 하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음식이 나오면 꼭 먹어봐야 하고 전시가 시작하면 꼭 가봐야 한다. 나름 '세련된'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내 감성을 기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아빠는 직접 하는 데 약하다. 그리고 '하고 싶다'는 사실이 앞서나가서 '같이 왔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종종 발생한다.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처럼 슝 혼자 나가는데 문제는 거기서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이런 점 때문에 여행에서, 특히 해외에서 아빠랑 꽤 트러블이 잦았고, 일본에서는 엄청 싸웠다. (속으로 내가 다시 가족여행을 오면 월북한다... 이 생각도 했다.)
4.
엄마는 여행을 가면 항상 준비가 완벽하다.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고, 가방에는 항상 우리 짐까지 들어가있다. 몇 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이제 니네 짐은 니가 들어'라고 하지만, 결국 엄마 가방에는 우리 신분증, 폰, 그리고 몇몇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엄마랑 부딪히는 경우는 사실 엄마랑 직접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하도 아빠한테 짜증을 내서 '지금 아빠한테 뭐하는 짓이야' 하면서 간접적인 문제다. 물론 내가 정말 싸가지도 없고, 그래서 아빠한테 오만상을 다 찌푸리면서 여행와서까지 짜증을 내고.. 그랬던 건 사실이지만 엄마랑 싸우면 그게 더 커진다.
불과 불이 맞붙으면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튀는데 그렇다... 엄마랑은 안싸우는 게 최선이다. 태국에서 엄마랑 정말 따로 갈뻔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엄마랑 붙을 징조가 보이면 이제 내가 피한다. 20년 이상 엄마랑 살면서 배운 건 이거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게 이기는 거다. 엄마한테는 이길 수가 없다.
5.
동생들은 사실 무난무난한 성격이다. 딱히 가리는 음식 없이 거기 가면 그거 먹고 저기 가면 저거 먹고, 어디서든 잘 자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휴가나온 이일병(인지 이병인지 여튼 군인)은 부대에서 대전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성심당 빵을 가득 안고 나타났고, 끊임없는 식욕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래도 이제 좀 컸다고 짐을 먼저 잡아들고 가는 거 보면 '애는 착하다.'
여동생은 그냥 잘 맞춰주는 성격이기도 하고, 여튼 나보다는 착하다. 다들 나보다는 착하다는 데 포인트가 있다. 이렇게 쓰고 보면 내가 문젠데...
6.
그래도 이번 여행은 신기하게 잘 흘러갔다.
국내외를 거치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래서 그런지 나도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회를 먹을 때는 옆에서 소세지를 구워먹었고, 생선탕을 먹을 때 옆에서 혼자 조용히 성심당 빵을 뜯었다.
아침에 커피 드리퍼까지 준비한 덕에 나름 만족할만한 시작을 해서 그런지 그냥 모든 게 아름다웠다. 바다가 보이는 콘도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다 참을만 하다. 아 이게 참 단순한거였는데 왜 지금까진 이걸 모르고 그냥 없는거에만 짜증을 냈을까. 결국 모든 건 다 커피의 문제였던건가. (마지막 가족 여행은 캄보디아였는데 그때 커피가 정말 최악의 커피 3선안에 꼽을 수 있다. 커피에서 오이향이 났다)
더웠지만 생각보다 버틸만 했고, 아빠도 앞서나가기 보다는 어느 정도 가족과 함께 속도를 맞췄다. 이제 엄마 가방에 모든 걸 구겨넣기보다는 각자 자기 취향대로 가방을 매거나 주머니에 넣는다.
같은 장소에서 3분 이상 못있고 짜증내던 나도 지쳤는지 그냥 털썩 주저 앉는다. 그러고 보니까 여러 모습도 보이고 낄낄대며 동생들이랑 사진도 찍는다. 아마 이번 여행이 가족이랑 사진을 제일 많이 찍은 것 같다. 아빠의 새로산 갤7로 사기도 몇 번 치면서 그렇게 하하호호 하다보니 싸움도 짜증도 줄었다. (없다는 아니다. 줄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돌아가서 여행하면서 낯설 정도였다. 이제 한 번쯤 터질 때가 됐는데 왜지? 왜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엄마가 아팠던 걸 빼면) 너무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7.
결국 맞춰짐의 문제다.
요즘 내가 단체 사회성이 결여됐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동안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성불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내 중심으로 모든 걸 맞췄다. 나를 굽히기 싫어서 결국 혼자 떠나버리기를 반복했다. 조금만 더 이해하고 참았더라면 이런 정도까지는 안갔을 텐데. 맞춤을 강요하기 보다 내가 조금 더 맞춰졌다면, 계속 이런 후회가 든다.
그런데 장담컨데 나는 아마 다시 여행을 가면 또 싸우겠지. 아마 그럴거다. 사람은 쉽게 안변하니까.. 아 진짜 쓰고 나니까 내가 괴물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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