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24, 2016

여행 준비

1. 
이번 여행은 많이 무모했다.

엄마아빠를 일본 보내드리고서 나도 뭔가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한 40퍼센트 정도는 차 있었지만 그래도 작년처럼 또 그런 '미친 짓'을 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참자 참자...했다.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 참다가 생일 즈음이 다가오면 혼자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맹렬하게 든다. 광저우-파리-베를린-파리 이렇게 몇 번을 혼자 지내고 나니까 더더욱. 이번에는 조용히 집에서 혼자 보내봐야지 했는데.


2.
시험에서 바라던 결과가 안 나왔다. 할일이 없어 책을 열심히 읽었다. 화집도 봤다.

우연히 사진을 보다가 피카소 그림을 봤다. Massacre in Korea (신천에서의 학살?)
스트라이프를 입고서 고집센 눈을 한 할배가 'I don't seek, I find'라고 말하면서 나보고도 발견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이 그림을 보고 두근댔던 게 기억났다. 다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말라가-파리를 가기로 했다. 오직 피카소 뮤지엄을 보려고. 니스쪽에도 하나 있는데 작년에 니스-칸을 갔을 때 도시 인상이 별로라서 거기는 뺐다. 

마드리드에서 게르니카도 볼까 했는데 스페인에서 너무 늘어질 것 같아서 그냥 바르셀로나-말라가로 만족하기로 했다. 게르니카는 마드리드에 있을 때 네 번이나 봤으니까 아직은 괜찮다 하면서 다음 여행(은 이미 확정된 것)으로 미뤘다.

일본에 있는 엄마아빠한테도 거의 '카톡통보'로 "나 여행가" 라고 보내고는 여행을 질렀다.


2.
5월 5일

비행기표를 찾다보니까 중국항공사 제외하고, 영국 랜딩만 아니면 유럽가는 건 80이 적정선이 된 것 같다. 마지막 비수기인데다가 직항도 아니니 딱 이정도면 준수하네 하고서 BA로 끊었다. 
돌아오는 게 새벽 비행기라 공항 노숙을 해야할까 싶었는데 뭐 그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우선 질렀다.

Barcelona in- Paris Out, (transfer at LHR)

5월 6일
바르셀로나 숙소를 예약했다. 난생 처음 '호텔'로 여행을 간다. 세상 좋아졌다.... 돈 없다고 24인실 호스텔 쓰던 내가 5년도 안돼서 호텔이라니! 출장때는 몇 번 가봤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여행에서 호텔을 쓴다는 게 좋았다. 별 두개짜리 그닥 비싼 호텔은 아니었어도 혼자 방에서 뒹굴뒹굴할 생각을 하니 이베리아반도 공포증도 좀 사그라들었다.

말라가는 숙소가 호텔은 죄다 바닷가 근처고 시내 중심은 내 버짓을 너무 넘어섰다. 어쩌나..다시 원래대로 호스텔을 예약했다. 

파리는 자주 가던 수도원 호스텔로 가기로 했다. 3박을 하니 예약이 안되는데 2박+1박으로 쪼개서 넣어보니 됀다. 오 야-르. 아침마다 에펠탑 앞에서 산책해야지 하는 기쁜 마음으로 또 예약을 마쳤다. 
공항 노숙을 하면 분명 돌아와서 사나흘은 누워 골골댈 것 같아 마지막 밤은 샤를 드골 근처의 호텔을 에약했다. (이 호텔 절대 하지 말라고 나중 글에 꼭 써야지. 정말 아휴.....ㅋㅋㅋㅋ)

5월 7일
이동하는 비행기 예약을 마쳤다.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때만 타는 '피치 항공'보다 더 싫은 '라이언에어'를 한 번 타야한다는 게 좀 싫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돈 더 주고 좌석배정+짐 패키지로 했으니 좀 낫겠지. 

에어 유로파는 LCC인것 같은 데 스카이 팀이었다. 라이언에어로 좌석배정+짐 패키지 했을 때보다 한 10유로정도 비싼데 스카이팀 마일리지, 기내 음료까지 생각하면 이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환전은 인터넷으로 하고 공항에서 받기로 했다. 위비톡인가 광고에서 막 나오던 걸 처음 써봤는데 나쁘지 않다? 면세 적립금을 친구들한테 퐁퐁 나눠주면서 인심도 썼다. 


3. 
여행 준비는 가서 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뮤지엄이 하나, 말라가에는 두 개 (Fundacio & Museo 이렇게 있음), 그리고 마레 지구의 피카소. 이거만 가면 되고 나머지는 알아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짐만 쌌다.

28리터짜리 캐리어를 들었다가는 욕하면서 올 게 뻔해서 20리터로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욕은 했다. 샹젤리제에서 리무진 타러가면서 "내가 다신 오나봐라" 이러면서 멍청하게 사재낀 나를 원망하면서.

Monday, May 2, 2016

식신 (食神, The God of Cookery, 1996)


1
코미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힘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을 줘서 세게 말하면 갑자기 사회극이 되어버리고, 또 너무 힘을 줘서 수위가 높아지면 싸구려가 돼버린다. 막 웃기게 치고 달리다가 툭 하고 빠지는 그 지점에서 웃음을 터지게 만들어야 다시 봐도 웃긴 장면이 나온다. <듀 데이트>나 <쥬랜더>같은 영화들이 다시 봐도 웃긴게 배우들이 정색하고 '난 웃기려고 하지 않아' 하고 미친 짓을 해대다가 어느 순간에 툭 끊는다. 그래서 터진다.

2.
주성치 영화는 어이없게 치고 달리다가 그 앞에서 툭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돼면 내가 이거 왜 웃지? 하고 웃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하면서 또 웃는다. 멋있는 척을 하는 것 같다가도 '어 이거 아닌데?' 하면서 되게 어이없는 말과 액션을 보여준다. 성룡이 그 어이없는 상황에서 아뵤 하면서 정의의 사도로 일어난다면 주성치는 '에이' 하면서 슬그머니 뒤로 빠지면서 살짝 훅을 날리는 스타일이랄까.

3.
주성치가 식신에서 쫓겨나게 된 계기도 엄청난 음식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탕면때문이고, 다시 올라서게 된 것도 오줌싸개 완자다. 엄청나게 대단한 음식이 아니라 그냥 정- 말 홍콩 길거리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요즘은 이런 음식 찾기도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포장마차가 쉽게 안보이는 것처럼) 음식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고간다. 정말 온몸으로 (콧소리를 홍홍 내면서) '헝-거엉'을 외치는 영화다. 소림사도 성룡이나 이연걸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 신성한 공간도 아니고. 영화에서 주성치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4.
캣스트리트도 이젠 조악한 관광객 시장으로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이 영화 안의 猫街는 강호의 도와 형제의 의리가 있다. 영화 느낌이랑 비슷한 곳을 찾으려면 캣스트리트보다는 오히려 야우마테이 뒷골목이 더 닮았다. 학교 다닐 때 자주 갔던 Mr.Wong도 뒷골목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가게 있는 골목이랑 비슷한 느낌? 음식도 딱 저 수준이었으니.

5.
막문위는 거의 '강호의 도가 바닥에 떨어졌다'를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알고보니 그게 義가 아니라 愛였다는 장면에서 한 번 웃겼다. 사랑밖에 모르는 나는 여자이니까....의 실사판이랄까. 

원래 예쁜 언니라 그런지 망가지는데 별로 두려움이 없었나보다. 젊은 여배우가 저런 분장하고 저런 역할 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애인이 감독이라 그런지 그렇게 추녀 분장을 해도 사랑스럽다. 특히 주성치를 잡으려고 아이섀도우 빡 하고서 눈 껌뻑이면서 나오는데 이게 그냥 일반적으로 찍었으면 으잉 이랬을텐데 사랑하는 마음으로 찍었을테니 '못생겼지만 귀엽다'. 마냥 예쁘게 나오던 열애상흔때보다 여기서 더 매력적이다.

6.
캔토니즈 영화는 자막이 안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1달을 1년이라고 하고, 대화 장면에서 약간 뉘앙스가 틀린 부분이 있었는데. 캔토니즈를 다시 시작해볼까 하다가도 쌓여있는 hsk 책을 보면서 저거나 하자 하고 책을 덮었다.

7.
내쫓기고 매맞던 주성치가 막문위한테 챠슈덮밥을 받아들고 '너무 맛있어' 하면서 허겁지겁 먹는데 그 마음이 1000000000000% 와닿는다. 다시 돌아가서 챠슈를 먹고, 커리를 먹어도 그때 그 맛이 안 느껴지는 건 내가 그때보단 마음이 덜 힘들어서겠지. 

Thursday, April 14, 2016

뭐라도 되겠지

학교에 감사한 게 있다면 도서관이 잘 돼있다.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지만 장서 종류가 꽤 다양했다. 없는 책은 신청하면 2주 내로 받을 수 있다. (경쟁 치열한 건 내가 1등으로 신청해야 받아볼 수 있지만) 학교에서 신청해서 본 책값을 따지면 한 18학점 어치? 그리고 학교에서 읽은 책들로 하면 한 3학기 등록금값은 했다.

2관 5층에서 나는 하릴없이 책을 읽었고 목적없이 '서가 뽀개기'를 해댔다. 어떤 영화감독이 자기네 학교에 있는 소설책을 다 읽었다는 카더라를 듣고서 질 수 없다며 그냥 책을 읽게 됐다. 이전처럼 독후감을 쓰지도 않았고, 독서노트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2관 5층에는 좌 소설 우 예술관련 책이 있었다. 대학에와서 지적 허세에 굶주렸던 나한테는 딱이었다. 6층은 여행이나 세계사라서 여기서 가지고 내려와서 읽기에도 편했다. (6층은 서가가 작다.)

무슨 작가의 책을 읽겠다가 아니라 오늘은 세 번째 서가 세 번째 줄을 한 번 작살내보자 하는 식이었다. 2관 5층에 그래픽 노블이랑 만화책도 있어서 그 줄이 걸리는 날은 그냥 쌓아놓고 읽었다. 한 시리즈를 다 대출해가면 지하철에서 무겁고, 만화책을 빌려가면 폼이 안나서 만화책 같은 건 학교에서 읽고 집에 갈 때는 좀 거리에서 읽을만한 책을 읽었다.

오른쪽에서는 영화나 현대 미술 (영국 yBa)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연극이나 공연은 그때도 좋아하지 않아서 감독 서평집이나 아니면 미술 화집을 봤다. 한창 허지웅씨가 시빌워를 얘기해서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 기억도 난다. (이게 도착하기 전에 난 영국으로 출국했다.........)

왼쪽은 문학이었다.  앞라인은 한국작가, 뒷라인은 외국작가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 시리즈는 몇 번 읽었다. 김전일이랑은 비교할 수 없게 무섭다. 그림보다 더 심리적으로 쫄린다. 팔묘촌을 읽지 않은 자와는 김전일 할배 얘기를 할 수 없다. Fluke Joanne의 쿠키 시리즈(여자 주인공이 베이커인데 추리도 한다. 한 책마다 쿠키나 베이킹 레시피가 큰 축이 되고 거기에 맞춰서 살인사건이 터진다. )는 맨 윗라인에 꽂혀있었는데, 그 책이 인기있는 것도 아닌데 꽤 많아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소설은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박민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지...? 했고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 내가 감성이 메말랐나? 하다가 신경숙의 책을 읽다 다시 팔묘촌을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을 용도로 에세이를 몇 권 빌렸다. 그때 읽은 기타노 다케시는 아마 내가 이렇게 '다 죽어라' 하고 삐딱해진 이유다. 그전까지는 소심하게 삐딱했다면 다케시 자서전 두 권을 읽고는 견고하게 삐딱해졌다.

한국 작가는 소설에 대한 편견이 에세이에도 작용해서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라도 되겠지>도 그 때 읽었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제목이 내 어깨에 내려진 짐을 툭툭 덜어주는 것 같아 술술 읽고, '어른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자의식에 빠져서 '난 특별하게 슬퍼' 하는 에세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니까 버텨' 하는 깨우침서를 보다 이런 책을 읽으니 그냥 편했다.

나처럼 듀데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 행오버나 쥬랜더도 봐야하는데, 보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트위터가 있었다면 분명히 '쥬랜더도 꼭 보세요' 라고 했겠지. (다행이다...그때는 트위터를 몰랐다!)

나는 8중혁만큼의 글도 쓰지 않았고, 박재범이 나간 것에 대해 저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탈퇴 후에 그 간담회에만 집중했다) 하면서 이 책을 넘겼고 그렇게 흘려보냈다. 거창하지 않은 말투로 자기 얘기를 하는 또렷하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4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김중혁씨처럼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 시간을 선택했다. 이 사람은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치면서 부러울 게 없다고 했지만, 나는 세상 모든 게 다 부럽다. 시간은 있지만 한가하진 않다. 마음이 궁핍하다. 나는 김동현보다는 작은 짐짝이 돼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데 재능은 언제쯤 생길지 초조하게 나를 들볶았다. '뭐라도 되겠지'에서 뭐라도가 4년전에는 whatever였다면 지금은 what으로 변해서 '뭔가' 돼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목적없이 읽은 책은 기억에 남지만 뭔가 하기 위해 읽은 책은 잘 잊힌다고 했다. 졸업하고 일하다가도 전공책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고, 스터디 때문에 읽는 책은 장을 넘기면 다 까먹기 일쑤지만, 2관5층의 책은 가끔 떠오른다. 그때 아무 생각없이 오늘은 이 책장을 다 비우겠다던 목적없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지금은 목적으로만 가득차서 계산하고 재느라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겠다.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뭘 해야한다 생각에 굳어버려서 결국 계속 제자리다. 

Sunday, April 10, 2016

음식남녀 (Eat Drink Man Woman, 1994)

1.
영화를 아주 오래전에 보면 영화의 원래 내용과 내 기억 사이의 왜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나는 결론이 ㄱ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ㄱ은 그냥 단어 한 번이 나왔고, 전체 내용은 ㄴ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는 경우다.

내 기억의 음식남녀는 가족의 화합과 전통적인 음식 마스터 이런 얘기였는데.......말이다.


2.
음식남녀는 중화음식을 주로 다룬다.
주 사부의 호텔주방부터 집의 부엌, 그리고 작은 노점의 초우토우푸와 니우로우미엔까지 (나도 이렇게 원어로 써보고 싶었는데 아 오글) 중국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음식을 다룬다. (물론 쓰촨, 둥베이는 없었지만)

어릴 때 보고 충격받은 장면은 주 사부가 거위인지 오린지 모를 가금류를 붙잡고 거기에 풍선처럼 바람을 휙 넣는 모습이었다. 우선 음식을 저렇게 팡팡 불어댄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내가 먹는 음식에 남의 침이 들어갈 수도 있잖아 하는 까탈스러운 마음에 저런 건 절대 먹지 말아야겠다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홍콩에서 지내며 매일 저 밥을 먹고 지냈다. 아주 맛있게. 지금도 그리운 음식 탑 3에 듬)

뜨거운 기름을 부어가며 익히는 생선요리, 샤오롱바오, 갈비탕, 동과탕을 보면서 내가 먹고 지내던 그 시절과 그 때 생각에 영화 이외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동시상영됐다. (영화를 보면서 쓸데없이 하이킥할뻔)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마시고 먹고 그리고 이게 결국 남녀간의 색정으로 이어진다. 세 자매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게 마치 사람이 하루 세 끼를 챙겨먹는 듯 했다. 거기에 주 사부마저. (여기서 내 기억과 실제 영화 간의 왜곡이 극대화됐다)

마치 언니의 연애 기억과 실제 상황이 달랐던 것처럼 내 기억의 음식남녀는 그냥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했다는 걸 깨달았다.


3.
중국어를 못했을 때는 이 영화가 왜 중화민족의 역사를 말한다는지 이해가 안됐는데 중국어를 하고 나서는 한 10퍼센트, 중화친구들한테서 여러 중국어를 배우면서는 한 80퍼센트 정도 이해가 됐다.

특히 영화에서 한 번 나온 타이와니즈(이게 하까였는지 아니면 자체 방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쓰는 만다린 차이니즈랑은 아예 발음이 다르다)를 보면서 중'화'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영화에서 쓰는 만다린은 얼화도 없고 번체를 쓰는 타이와니즈 만다린인데, 이게 거의 미국영어/영국영어 이상으로 다르다.

양 부인이 자기는 창사출신이고 어떻게 내려오고 하면서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타이완이 이민자+원주민의 나라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좀 와닿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차이니즈는 민족이 될 수도 있고 국적이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차이니즈지만 타이와니즈다. 그리고 타이와니즈에는 호키안도 있고 원주민도 있고, 하까도 있고 캔토니즈도 있다. 거기에 미국으로 이민간 ABC까지 섞이게 되면 이걸 하나로 아우르는 차이니즈의 범위가 광대해진다.

1994년, 주인공의 방에 '토토로'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보면 타이완-일본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식민지-지배자 관계랑은 또 달랐을 거고. (저 당시에 우리나라는 일본 문화 개방도 안돼있었으니)


4.
영화를 보고 나니까 또 다시 저쪽으로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 3할, 그리고 떠오르는 몇 얼굴 7할들.


5.
막내동생 패션이 낯설지 않은 걸 보니 유행은 역시 돌고 돈다. 그리고 오천련 언니는 넘나 예쁜 것! 나도 저런 비즈니스 우먼이 될 줄 알았으나......

Tuesday, April 5, 2016

Tangerine (2015)

1.
국가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헌법 2장 34조에서는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기했다.

4월 1일 헌법재판소는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합헌판정을 내렸다.

2.
Tangerine은 작년 선댄스에서 개봉하고 독립영화제에서 꽤 핫했다. 아이폰으로 전체 영화를 찍었다는 점도 독특했고, 주제면에서도 정말 'West Coast'같았다.

아이폰으로 찍어서 그런지 초점이 굉장히 특이하다. 화면 모두에 힘이 빡 들어가있는 느낌이라 살짝 어지러울 때도 있다. 영화 크레딧에도 나오는 문독(맞나... 기억이 가물)이라는 앱때문에 촬영이 용이했다고 감독이 인터뷰한 걸 봤다. 

http://www.indiewire.com/the-app-that-made-it-possible-to-shoot-sundance-hit-tangerine-on-an-iphone

전체적으로 약간 오렌지톤이 돌아서 제목이 탠저린이라고 했다는데 오렌지면 오렌지지 왜 탠저린일까.

3.
트랜스젠더, 흑인, 성매매, 포주, 온갖 안좋은 '불법'으로 가득한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냥 일반 관점으로 보면 '이런 게 예술인가' '오 신이시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나머지 한 명 멀쩡한 줄 알았던 아르메니안 남편은 알고보니 성매매 구입자. (그것도 트랜스젠더....정확히 말하면 수술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용어가 생각 안나네) 가족과 함께 해야할 크리스마스에 길거리에서 여자를 사기 위해 택시로 돌아다니고. 정말 미국은 저런 나라일까 보는 내내 생각했다. (캘리포니아 버몬트? 라는데 내가 가봤어야 알지..)

4.
영화 줄거리는 그냥 친구간의 미묘한 질투에서 시작된다. 출소한 친구한테 '나 니 남친이 딴 여자랑 자는 거 봤음'이라고 해서 그 '년'을 잡으러 가는 크리스마스 하루.

여기서 환한 대낮인데도 왠지 어두워보이는 도시를 누비는 택시의 앵글, 머리채를 쥐어잡는 신디의 눈높이에서 본 도시는 어지럽고 흔들렸다. (내가 속이 미슥거렸던 건 중간에 이런 화면때문이었던 것 같다.)

5.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랑 얘기를 했는데 어떤 사람은 '성매매 불법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신디한테 끌려가는 바람에 결국 자기 방(방석집같은 방이었다)을 잃어버리고 길거리에 나앉은 다이나의 모습에서 약자를 범법자로 만드는 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6.
나는 정반대였다.
이 영화를 보고 성매매는 결코 합법화되선 안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성매매가 가능하다면, 결국 '사람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리에 잡히게 된다. 영화에서 신디는 지나가던 무리한테 오줌 세례를 맞는다. 나한테 돈을 벌기 위해 다가온 이에게 오줌을 붓고 조롱한다. 나의 쾌락을 위한 도구이므로 이들은 나한테 '을'이다. 내가 어떻게 하건간에 이들의 존엄은 보장받을 이유가 없다. 

7.
극장판에 가는 길에 방석집 언니(?)가 가게 문을 여는 걸 봤다. 나보다 한창은 어려보이던 금발의 언니는 지나가던 외국인한테 윙크도 하더니 입에 담기엔 뭣한 말을 내뱉으며 가게로 들어갔다.

이 사람들이 합법화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을까?
이제 경찰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인격적 존중을 받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돈이 없어서 이 일을 한 사람들한테.. 이 핑계는 대지 말자. 돈 없는 모든 사람이 성매매를 하는 건 아니니까.

8.
영화 주인공들은 실제 거리에서 성매매를 하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Monday, March 21, 2016

출장

홍콩 출장 완료.

보고서는 1/3정도 썼다. (우리 팀에서 5명이 함께 쓰는 거라 A4 2장 이내, 더블스페이스, Times New Roman이라는 아주 쉬운 거라 거의 안했다는 소리)

출장은 갈 때마다 내가 아주 약은 사람이 된 것 같다.
헛소리를 얼마나 뻔뻔하게 잘하는지 경쟁하는 것 같고, 회사 내부에서는 이리저리 합쳐진 팀들끼리 서로 말 안맞아서 이리저리 헤매고. 이번엔 IFE랑 IFP랑 같이 다니는 거라 와 회사가 엄청 다르구나 뼈저리게 다시 실감했다. 우리 회사(IFE)는 외국 회산데도 정이 철철 넘친다. 오늘만 해도 '내가 글루텐 프리 쿠키를 구워왔으니 와서 가져가' 라고 전체 메일을 친절하게 보내고 거기에 '오케이' '땡큐' '러블리' 이런 답변이 와르르 쏟아진다. 이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생일이면 생일이라고, 회사 입사 몇주년이면 또 몇주년이라고, 결혼하면 결혼해서, 애 낳으면 또 애낳아서 카드 돌린다고 메일오고 카드 어디있는지 확인하느라 또 오고. (나도 이 카드 받아봤는데 진짜 한 번도 본 적 없는 랩 팀에서도 나한테 구구절절 좋은 말 써줘서 감동먹었지만). 그런데 IFP는 좀 다르다. 그냥 칼같이 일이면 일하고 끝. 지금 보스는 IFP 사람이라 그런가 어렵다. 일만 하면 끝이라 깔끔하긴 한데 항상 긴장하게 되는 느낌.

업무도 버거운 건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그럭저럭 알겠는데 TV 콘텐츠쪽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거라곤 '에이시아 넘버원 채널' 이재한 형사님밖에 없는데 뭐 이렇게 쇼가 많냐. 한국 쪽 들어오려고 하는 distributor도 많아져서 이제 만날 사람이 처음 일할 때보다 한 세 배 정도는 늘었다.

그래도 애들이랑 오랜만에 학교도 가고, 오랜만에 KLC에서 밥도 먹고 좋았다. 얘네랑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특히 존...ㅎㅎ 술 안먹고 노는 거 안좋아하는 FM 타입이라 정말 만나면 할 말이 없었는데 매번 갈 때마다 저녁먹고 아침먹고 공항터미널앞에서 사진찍고 온다.)

다음 달 지나고 진짜 에어비앤비나 알아봐서 두어 달 거기서 지내다 올까. 여름에 어디 좀 나가있다 오고 싶다.

Wednesday, March 2, 2016

Lolita (1962)

1. 
이 사람은 영화나 예술 안했으면 큰일 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있다.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죽이고 총쏘고 하니까 (인명피해없이) 멀쩡하지, 안그랬으면 벌써 신문 1면에 실리고 한 30년 쯤 후에 서프라이즈 주인공이 되거나 이 사건을 가지고 다시 영화로 나올 인물들이 몇 있다.
다른 말로 돌리면, 예술한다는 이유로 별 기괴한 짓을 포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2. 
'예술이냐',  '외설이냐' 라는 퀘퀘묵은 논쟁은 끝이 없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표현은 가치를 갖는다는 입장과 사회적 관습과 윤리에 어긋난다면 외설이라는 입장은 항상 팽팽히 맞선다. 작년에 아이유 논쟁부터 시작해서 올해 여자친구의 교복, 로리타 문제로 이어지면서 과연 '롤리타', 소녀에 대한 미적 찬양과 추구가 과연 하나의 미의 추구로 받아들여져야 할 지가 논란이 됐다. 


말이 격해질 것 같아서 꽤 다듬고 다듬었지만, 역시나 롤리타에 대해서는 참을 수가 없다. 

왜 이게 '컴플렉스'일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3.
영화 롤리타는 한국의 '로리타'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한국의 '로리'들이 수동적이고 '오빠'와 '삼촌'에 따라가는 존재라면 원작의 '롤리타'는 소녀와 요부라는 의외성이 결합되면서 매력적인 존재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롤리타는 중년남성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온 롤리타에서 험프리가 좀 더 '우아하게' 이 감정을 포장해 마치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오지만 큐브릭 버전 롤리타에서는 그런 게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는 집착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듯 하지만 결국 도망간다. 알고보니 사실 자신이 속아서 당한 거였으니까. 자기가 별것 없다고 생각한 남자때문에 결국 인생이 꼬이고 마는 걸.. '얘는 나를 사랑했지만 니가 얘를 속였으므로 나는 벌을 준다' 라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근거로 '이런 예술에서 사랑을 말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제레미 아이언스 말고 스탠리 큐브릭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게 사랑으로 보이는지.

사랑이라는 건 결국 양방이 통해야 하는건데 이 영화에서 롤리타의 '응답'은 없었다. 험프리는 롤리타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중이었지만, 험프리 본인 자신은 그게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뿐.

4.
우리나라에서 롤리타 신드롬이 지탄받아야 할 이유는 자신보다 약자인 소아를 상대로 '사랑'이라는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무조건 '사랑'이라고 포장한다. 문화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소녀소녀함을 강요하는 게 그 나이의 특성(순수함)이 아니라 순진함과 수동성을 내재화해 자기 뜻대로 움직여줄 인형을 원하는 거니까 문제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