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사람은 영화나 예술 안했으면 큰일 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있다.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죽이고 총쏘고 하니까 (인명피해없이) 멀쩡하지, 안그랬으면 벌써 신문 1면에 실리고 한 30년 쯤 후에 서프라이즈 주인공이 되거나 이 사건을 가지고 다시 영화로 나올 인물들이 몇 있다.
다른 말로 돌리면, 예술한다는 이유로 별 기괴한 짓을 포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2.
'예술이냐', '외설이냐' 라는 퀘퀘묵은 논쟁은 끝이 없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표현은 가치를 갖는다는 입장과 사회적 관습과 윤리에 어긋난다면 외설이라는 입장은 항상 팽팽히 맞선다. 작년에 아이유 논쟁부터 시작해서 올해 여자친구의 교복, 로리타 문제로 이어지면서 과연 '롤리타', 소녀에 대한 미적 찬양과 추구가 과연 하나의 미의 추구로 받아들여져야 할 지가 논란이 됐다.
말이 격해질 것 같아서 꽤 다듬고 다듬었지만, 역시나 롤리타에 대해서는 참을 수가 없다.
왜 이게 '컴플렉스'일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3.
이 사람은 영화나 예술 안했으면 큰일 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있다.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죽이고 총쏘고 하니까 (인명피해없이) 멀쩡하지, 안그랬으면 벌써 신문 1면에 실리고 한 30년 쯤 후에 서프라이즈 주인공이 되거나 이 사건을 가지고 다시 영화로 나올 인물들이 몇 있다.
다른 말로 돌리면, 예술한다는 이유로 별 기괴한 짓을 포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2.
'예술이냐', '외설이냐' 라는 퀘퀘묵은 논쟁은 끝이 없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표현은 가치를 갖는다는 입장과 사회적 관습과 윤리에 어긋난다면 외설이라는 입장은 항상 팽팽히 맞선다. 작년에 아이유 논쟁부터 시작해서 올해 여자친구의 교복, 로리타 문제로 이어지면서 과연 '롤리타', 소녀에 대한 미적 찬양과 추구가 과연 하나의 미의 추구로 받아들여져야 할 지가 논란이 됐다.
말이 격해질 것 같아서 꽤 다듬고 다듬었지만, 역시나 롤리타에 대해서는 참을 수가 없다.
왜 이게 '컴플렉스'일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3.
영화 롤리타는 한국의 '로리타'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한국의 '로리'들이 수동적이고 '오빠'와 '삼촌'에 따라가는 존재라면 원작의 '롤리타'는 소녀와 요부라는 의외성이 결합되면서 매력적인 존재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롤리타는 중년남성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온 롤리타에서 험프리가 좀 더 '우아하게' 이 감정을 포장해 마치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오지만 큐브릭 버전 롤리타에서는 그런 게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는 집착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듯 하지만 결국 도망간다. 알고보니 사실 자신이 속아서 당한 거였으니까. 자기가 별것 없다고 생각한 남자때문에 결국 인생이 꼬이고 마는 걸.. '얘는 나를 사랑했지만 니가 얘를 속였으므로 나는 벌을 준다' 라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근거로 '이런 예술에서 사랑을 말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제레미 아이언스 말고 스탠리 큐브릭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게 사랑으로 보이는지.
사랑이라는 건 결국 양방이 통해야 하는건데 이 영화에서 롤리타의 '응답'은 없었다. 험프리는 롤리타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중이었지만, 험프리 본인 자신은 그게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뿐.
4.
우리나라에서 롤리타 신드롬이 지탄받아야 할 이유는 자신보다 약자인 소아를 상대로 '사랑'이라는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무조건 '사랑'이라고 포장한다. 문화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소녀소녀함을 강요하는 게 그 나이의 특성(순수함)이 아니라 순진함과 수동성을 내재화해 자기 뜻대로 움직여줄 인형을 원하는 거니까 문제라는 거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롤리타는 중년남성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온 롤리타에서 험프리가 좀 더 '우아하게' 이 감정을 포장해 마치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오지만 큐브릭 버전 롤리타에서는 그런 게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는 집착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듯 하지만 결국 도망간다. 알고보니 사실 자신이 속아서 당한 거였으니까. 자기가 별것 없다고 생각한 남자때문에 결국 인생이 꼬이고 마는 걸.. '얘는 나를 사랑했지만 니가 얘를 속였으므로 나는 벌을 준다' 라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근거로 '이런 예술에서 사랑을 말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제레미 아이언스 말고 스탠리 큐브릭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게 사랑으로 보이는지.
사랑이라는 건 결국 양방이 통해야 하는건데 이 영화에서 롤리타의 '응답'은 없었다. 험프리는 롤리타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중이었지만, 험프리 본인 자신은 그게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뿐.
4.
우리나라에서 롤리타 신드롬이 지탄받아야 할 이유는 자신보다 약자인 소아를 상대로 '사랑'이라는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무조건 '사랑'이라고 포장한다. 문화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소녀소녀함을 강요하는 게 그 나이의 특성(순수함)이 아니라 순진함과 수동성을 내재화해 자기 뜻대로 움직여줄 인형을 원하는 거니까 문제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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