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10, 2016

음식남녀 (Eat Drink Man Woman, 1994)

1.
영화를 아주 오래전에 보면 영화의 원래 내용과 내 기억 사이의 왜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나는 결론이 ㄱ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ㄱ은 그냥 단어 한 번이 나왔고, 전체 내용은 ㄴ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는 경우다.

내 기억의 음식남녀는 가족의 화합과 전통적인 음식 마스터 이런 얘기였는데.......말이다.


2.
음식남녀는 중화음식을 주로 다룬다.
주 사부의 호텔주방부터 집의 부엌, 그리고 작은 노점의 초우토우푸와 니우로우미엔까지 (나도 이렇게 원어로 써보고 싶었는데 아 오글) 중국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음식을 다룬다. (물론 쓰촨, 둥베이는 없었지만)

어릴 때 보고 충격받은 장면은 주 사부가 거위인지 오린지 모를 가금류를 붙잡고 거기에 풍선처럼 바람을 휙 넣는 모습이었다. 우선 음식을 저렇게 팡팡 불어댄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내가 먹는 음식에 남의 침이 들어갈 수도 있잖아 하는 까탈스러운 마음에 저런 건 절대 먹지 말아야겠다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홍콩에서 지내며 매일 저 밥을 먹고 지냈다. 아주 맛있게. 지금도 그리운 음식 탑 3에 듬)

뜨거운 기름을 부어가며 익히는 생선요리, 샤오롱바오, 갈비탕, 동과탕을 보면서 내가 먹고 지내던 그 시절과 그 때 생각에 영화 이외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동시상영됐다. (영화를 보면서 쓸데없이 하이킥할뻔)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마시고 먹고 그리고 이게 결국 남녀간의 색정으로 이어진다. 세 자매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게 마치 사람이 하루 세 끼를 챙겨먹는 듯 했다. 거기에 주 사부마저. (여기서 내 기억과 실제 영화 간의 왜곡이 극대화됐다)

마치 언니의 연애 기억과 실제 상황이 달랐던 것처럼 내 기억의 음식남녀는 그냥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했다는 걸 깨달았다.


3.
중국어를 못했을 때는 이 영화가 왜 중화민족의 역사를 말한다는지 이해가 안됐는데 중국어를 하고 나서는 한 10퍼센트, 중화친구들한테서 여러 중국어를 배우면서는 한 80퍼센트 정도 이해가 됐다.

특히 영화에서 한 번 나온 타이와니즈(이게 하까였는지 아니면 자체 방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쓰는 만다린 차이니즈랑은 아예 발음이 다르다)를 보면서 중'화'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영화에서 쓰는 만다린은 얼화도 없고 번체를 쓰는 타이와니즈 만다린인데, 이게 거의 미국영어/영국영어 이상으로 다르다.

양 부인이 자기는 창사출신이고 어떻게 내려오고 하면서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타이완이 이민자+원주민의 나라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좀 와닿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차이니즈는 민족이 될 수도 있고 국적이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차이니즈지만 타이와니즈다. 그리고 타이와니즈에는 호키안도 있고 원주민도 있고, 하까도 있고 캔토니즈도 있다. 거기에 미국으로 이민간 ABC까지 섞이게 되면 이걸 하나로 아우르는 차이니즈의 범위가 광대해진다.

1994년, 주인공의 방에 '토토로'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보면 타이완-일본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식민지-지배자 관계랑은 또 달랐을 거고. (저 당시에 우리나라는 일본 문화 개방도 안돼있었으니)


4.
영화를 보고 나니까 또 다시 저쪽으로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 3할, 그리고 떠오르는 몇 얼굴 7할들.


5.
막내동생 패션이 낯설지 않은 걸 보니 유행은 역시 돌고 돈다. 그리고 오천련 언니는 넘나 예쁜 것! 나도 저런 비즈니스 우먼이 될 줄 알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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