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5, 2016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Phantom Detective (2016)

1. 
한국 영화에 대한 평가 기준이 꽤 높다.
헐리웃 영화가 그냥 저냥정도 하면 오 괜찮네 하고 넘어갈 걸 한국영화가 그러면 "아오" 하면서 욕이 튀어나온다. 

왜냐면 일이니까. 이걸 보고 나는 다시 어떻게 '이 영화를 선정해야 하는 이유'를 수북히 빼곡히 채워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하니까. 사실 상업영화는 그냥 '재밌다', '통쾌하다' 이정도가 다 아닌가. 근데 그걸 이 영화는 왜 이게 재밌고 왜 이게 이래서 이래야 하고... 아이고. 그냥 잘 때려부수고 재밌고 신난다. 이렇게만 쓰고 싶은데 그랬다가 나는 짤릴거야.

2. 
탐정 홍길동은 한 열 번 봤다. 첫 선재때, 그리고 지금 오늘 다시. (스크리닝이 싫은 게 아무리 별로인 영화라도 자막 검사+씬 검사 하려면 이만큼 봐야한다...)

올해 아까운 영화로 꼽으라면 1번은 아마 <탐정 홍길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괜찮다. (비밀은 없다랑 둘이 아마 싸우겠다. 그러고 보니 다 CJ네?)

씬시티 좋아하는데, DC 코믹스 느낌도 나고, 세트장 곳곳에서 늑대소년 느낌도 나고 (파스텔톤과 씬시티 흑백 씬이 섞인 느낌)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판타지' 랄까. 
이제훈이 영화 내내 나레이션을 하는데 시그널에서 보던 그 '쪼'가 없어서 좋았다. 내가 파수꾼에서 느꼈던 그 차가운 느낌이 여기서도 잘 나와서 이제는 말랑말랑한 첫사랑보다 이런 장르영화에서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순이는 민폐 캐릭터가 아니라 거의 먼치킨이다. 아니 그냥 존재감 1위. 짜장면 먹을 때랑 '박두칠' 대사는 영화에서 제일 웃겼다. 자막으로 잘 전달됐으려나, 이거 웃긴데 못알아들으면 어쩌지 발 동동 구를 정도.

3. 
영화의 배경은 분명히 가상의 공간이 맞는데 기시감이 느껴지는 사건들이 많다. 
광은회 (GU Group으로 자막처리 되어있던데 은이면 Eun일텐데 GE를 피하고자 하는 선택인가?) 장군과 뉴스 영상은 정말 대한민국에서 30년전에 보던 것과 똑같아보였고, 대의를 위해 짜고 사람을 학살한다는 건 근현대사에서나 보던 백색테러였다.

이런 면에서는 판의 미로랑 비슷하다. 직접 대놓고 '이 역사가~' 하면서 썰풀려면 왜 굳이 영화로 그 얘기를 하나. 다큐 찍으면 되지. 잘 찍은 기록영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상업영화에서 이런 얘기를 세련되게 하기 위해서는 홍길동 식 스토리텔링이 더 적합한 것 같다.

4.
사실 이런 얘기를 왜 홍길동을 차용해서 하나? 할 정도로 이해가 안됐는데 마지막에 오... 그래서였구나 하고 다 실타래가 풀렸다. 홍길동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가 '호부호형'인데 이것도 없이 그냥 이름만 홍길동이었나 했는데 마지막에 오.

약간 작위적인 느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요한 테마도 잃지 않고, 이제 이게 시리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5.
상업영화를 재밌게 보려면 아무 생각 없이 극장에서 제돈 주고 보는 건데. 이렇게 몇 번씩 사소한 자막에나 집중하면서 보니까 연기도 안보이고 화면 구성도 안보이고 스토리 전체도 안보이고. 언제쯤 재밌게 보려나.

Friday, July 22, 2016

피부

어제와 그제 약 끝난 기념으로 신나게 먹었다.

수요일에는 구운 가슴살이 아니라 튀긴 치킨을 먹었고, 신나게 맥주를 마셨다. 목요일엔 스터디를 가면서도 신나게 빵을 먹었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또 신나게 소이밀크가 아닌 진짜 '홀밀크' (평소에도 사실 홀은 안마시는데...) 넣은 아이스 바닐라 라떼도 마셨다. 평소에 안마시던 아이스에 사이즈도 벤티로 추가 팍팍해서 막 먹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맥도날드에서 시그니쳐에 치즈 추가, 어니언 추가한 버거에 칩까지 먹었다.

그렇게 나는 잠시잠깐의 행복을 맛보고 저녁에 헬을 맞이했다.

안먹다 먹으니 온몸이 더 간지럽고 부풀고 난리가 났다. 귓속, 코구멍같이 온몸의 뚫린 부분은 다 간지럽고 접히는 부분은 다 간지러운 느낌. 정말 온몸을 다 한 번씩 사포로 밀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간지러웠다.

왜 미련하게 이걸 먹어가지곤.....이라고 약 한 달 전과 똑같은 후회를 온몸을 벅벅 긁으며 반복했다. 내가 이걸 먹으면 사람이냐, 짐승이지 하고 나는 또 다시 짐승이 됐다.

오늘 운동가서 재보니 몸무게는 1.5킬로가 늘었다.
그렇게 나는 1시간남짓의 짧은 세치 혀의 행복을 누리고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
이젠 먹지 말자.. 내가 또 먹고 이러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똥이다. 아...근데 왜 맛있는 건 다 몸에 안좋지?


Saturday, July 16, 2016

스트레스

1. 
어릴 때부터 성격이 욱하는 편이었다.
엄마 말로는 원하는 걸 안사주면 머리 쥐어뽑고 굴러다니는 건 예삿일이었다고 하니 그 성질이 어딜 가나 싶다. 좀 유해졌다고 해도 그 성질은 어딘가에서 자꾸 사고를 친다.

2.
중고등학교때는 위염, 장염을 달고 살았다. 조금만 스트레스 받으면 그냥 몸이 안좋다..를 넘어서 꼬인다.

그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 합법적으로 야자를 빼먹고 집에서 잘 쉬었다. 재수할때도 마찬가지. 대학에 와서는 공부로 단 한 번도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위염, 장염 이런 건 겪을 일이 없었다. 

3.
집에서 운동 제일 열심히 하고 (주7회), 음식도 제일 가려먹고 (라면, 레토르트 식품 안먹음, 매운 것 안먹음, 술집 안주 안먹음 등등) 하는데 잔병치레는 제일 심하다.

철마다 유행에 앞서 감기에 걸리질 않나, 먼지나 햇빛을 좀 받으면 온몸에 뭐가 난다.
(도서관에서 좀 오래된 책을 읽으면 눈물+재채기+피부 발진 쓰리 콤보라 그냥 사서 보거나 안읽는다. 이 핑계로 도서관은 잘 안가는 편.)

홍콩에 갔을 때도 첫 기억이 온몸에 알러지 반응이 돋아 울면서 "나 집에 갈래" 하고 엄마한테 진상부렸던 거다. 물론 그 이후에도 진상과 흑역사는 차곡차곡 적립해서 구이린 가는 길에 양수오에서 쓰러져서 중국 병원에도 입원도 해봤다.

영국에서도 피부가 문제가 많아서 칼라마인은 항시 가지고 다녔고, 와인을 먹으면 이상하게 반점이 생겨서 열심히 맥주를 마셨다. (이게 말이야 똥이야...)

4.
작년에 한창 공채 준비할 때는 두피가 짓무르고 온몸이 간지러워서 잠을 못잤는데, 이게 좀 시험보고 이래야 할 시즌만 되면 계속 이래서 약을 먹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다비씨가 한약불신론을 주입해주기도 했고, 그 약사가 좀 미덥지도 않았고, 그리고 한약을 먹으니 내가 사랑하는 음식 (밀가루+유제품)을 끊어야해서 그냥 내일까지만 먹고 끝내기로 했다.

여전히 피부는 간지럽고 맥박은 토끼맥이고, 여전히 부실하다.

5.
요즘은 귓속도 붓는다. 영국에서 매니저랑 트러블 있을 때 고름이 철철 나던 거에 비하면 그래도 아직은 버틸만 하지만 귀가 자꾸 간지러우니 집중도 안되고 머리도 아프고 왠지 졸린 것 같고. 그렇다. 그때 막 벽이 내려오는 것 같고 자다가 숨막혀서 깨고 그랬는데, 아직 그 상태는 아니니 다행이기도 하고. 더 심해지기 전에 이 상황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6.
그래서 결론은 지금이 제일 힘들다. 몸도 마음도. 
이렇게 여기다가라도 나 더럽게 힘들다고 지금 털어놔야 할 것 같았다.
나만 이렇게 재미없는건가. 

7.
스트레스 관리도 능력이라는데 나는 아마 그 능력치로 따지면 70억 인구 중에서 70억등 할 것 같다. 

Wednesday, July 13, 2016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동생이 영국에 와서 남겨준 책은 기형도 시집이었다.
그때 뭘 해도 안되던 때라서 이 시가 너무 아팠다. 
지금은 그냥 내 마음 복사해서 고대로 써놓은 것 같다. 

나는 대체적으로 용꼬리보다 뱀머리 포지션을 좋아하는데, 요즘 용꼬리는 커녕 우주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 힘들다.
뭘 하면서 이렇게 열등감에 사무친 건 중학교 이후로 처음인데, 그 열등감이 너무 쪼잔하고 어이없고 유치해서 그냥 할 말이 없다. ㅎ 나이도 이제 먹을 만큼 먹었는데 누군가에 비해 하찮아보이는 그 느낌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징징거림 증폭장치를 달아놨는지 조그마한 충격에도 와장창.

그래도 수요일 버텼으면 이제 1주일은 쉴 수 있다.
아, 왜 사냐. 


Sunday, July 10, 2016

Dirty

1.
이태원이나 홍대, 아니면 강남쪽에서 꽤 꾸민 (약 20대 초반) 남자들이 지나가면 열에 여덟은 러쉬 더티를 뿌린 것 같다.
잔향이 꽤 진한 데다가 거의 등산가방같은 커다란 백팩 사이드 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것도 종종 보인다.

이렇게라도 뿌리고 다녀줘서 고맙다. 지하철 2호선에서 빈자리보다 반가운게 향수 좀 뿌리고 땀냄새 가리려고 노력한 사람들.



2.
이 향에 호불호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전적으로 호다.
부산 어느 카페에서 더티 뿌린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데도 있다는데. 그 글을 보면서 더티가 그정도까지인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러쉬의 매력은 여름밤 분위기랑 찰떡같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샌달우드에 라벤더 향이 강해서 뿌리는 순간 '영국 여름' 느낌이다. 민트향이 강하다는데 그건 첫향에만 살짝 나고 잔향은 라벤더에 샌달우드만 남는다. 뿌리면 보디 스프레이인데도 불구하고 보통 하루 이상은 간다.

영국에 있을 때 여름밤에는 무조건 방에 이거 한 번씩 뿌리고 탄산을 마시면서 일했는데 그러면 풀밭에 나온 느낌이다. 피크닉 나갈 필요 없이 이렇게 뿌리고 시원한 거 마시면서 유투브로 좋아하는 '여름'음악을 들으면 체온이 한 1도는 내려가는 것 같다.
여름음악 eg. asoto union- think about chu, havard - clean and dirty (여기도 더티가!), free tempo- immaterial white


3.
물론 이 향을 퍼부으면 역하긴 하다. 우디한 향이 진해지면서 파우더리해질 수도 있고, 어쨌건 향은 취향을 많이 타는 거라 나한테는 가벼운 이 향이 남한테는 욱 할 정도로 무거울 수 있으니까.

하도 요즘 더티 뿌린 사람 오면 구역질 난다는 글을 많이 봐서 그런지 밖에 나갈 때는 조심스러워진다. (나는 향수는 좀 뿌린 티를 내는 편이라 내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을까.)

지금 쓰고 있는 것만 다 쓰고 다른 걸 쓸까 생각하다가도 이 영국 풀밭같은 느낌이 나는 향수를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첫향도 좋아하지만 잔향에서 나는 라벤더랑 우디함이 좋아서 자기 전에 보통 침대에도 뿌리고 입고 나갈 옷에도 뿌려놓고 잔다. (6월부터 9월 한정) 그러면 잘때는 시원한 느낌이어서 좋고 다음날에는 달달한 라벤더 향기만 남아서 하루가 상쾌하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이 다 싫어했으면 어쩌지. 지금 러쉬 더티 검색해보니까 호보다 불호가 태반인 것 같다. 도대체 왜...?

앞으로는 욕 안먹게 동네에서만 뿌려야 하나. 근데 지하철 꿉꿉한 냄새보다는 러쉬 더티가 오억배는 나은데.

4.
생각난 김에 향수 호불호 정리.

불호
제이로, 클린, 마크 제이콥스 데이지, 레인(스플래쉬), 쁘띠상봉, 아쿠아디지오, 존 바바토스 아티산, 랑방 에끌라드 아르페쥬 (를 비롯한 그 아류 향수들), 끌로에 잔느, 러브, 로, (사실 끌로에 라인 다.....) 겐조 전부.. 이세이 미야케 전부, 에르메스 쟈뎅 수르닐, 조 말론 미모사, 피오니& 블러쉬, 라임바질& 만다린, 얼그레이&큐컴버, 잉글리쉬 페어 &프리지아, 딥디크 롬브르 단 로


마크 제이콥스 우먼 (3병), 구찌 길티 (2병), 더티 (7병), 브리트니 스피어스 래디언스 (3병- 단종...), roger & gallet  Fleure de Figuier (Eau Fraiche로 3병- 지금 메인인데 한국에 안들어와서 어떻게 구할지 고민. 그나저나 이 브랜드 어떻게 읽는걸까), YSL Opium, 조 말론 넛맥& 진저, 우드 세이지 & 시솔트, 펜할리곤스 가드니아, 지조니아


생각보다 취향이 중구난방.

싫어하는 향수 쓰고 나니 러쉬 싫어하는 사람 마음이 이해간다.
새 향수 한 병 더 사고 싶다. 망할 환율. 브렉시트 망해라. 아니다. 이렇게 망해도 결국 나만 망하겠지. 그냥 망할 거 한 병 더 사서 향기롭게 지옥행 (파산행) 열차를 탈까.

Saturday, July 9, 2016

여름

4계절 중에는 여름이 제일 좋다.

돈없어 서러운 겨울, 괜히 나가야할 것 같은 가을, 생일주간이 있는 봄처럼 짜증나는 것도 없고.

여름이 좋은 이유를 100가지 대라고 하면 나는 1000사지를 댈 수도 있을만큼 여름이 좋다.

물론 장마나 태풍처럼 해가 안나는 날은 싫지만 오늘처럼 쨍하게 빛이 내리쬐면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한테 콧소리 섞어가면서 "일어나쏭~"하고 신나게 운동을 간다.

짙푸른 나무색도 좋고 바삭하게 잘 마른 수건에서 나는 햇빛냄새도 좋다.

새벽 한 시정도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유투브에서 옛날 노래를 흥얼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저녁 여덟 시쯤에 핑크 쿼츠 색을 한 하늘을 보면서 길맥하는 것도 좋고.

사실 요 며칠 사이에 자괴감? 내가 우주 먼지보다 작아진 느낌이라서 힘들었다. 주변에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걱정"만' 하고 있었으니 그 괴리만 커지고.

그래도 여름이라 멘탈 회복이 빨라 다행이다. 겨울이었으면 한 두 달 잠수타고 봄이었으면 다시 또 여권들고 나갔을 정도의 자괴감이었는데 어제는 맥주 댓 잔으로 끝냈다.

잘 될거야 잘 될거야 이생각은 하면서 요즘 주변 사람들한테 쓸데없는 말도 하고, 말이 많아져서 집에 와서는 다시 또 후회한다.

이제 이 여름이 끝나면 내가 웃을 수 있을까 벌써 창조적으로 걱정을 하겠지.

그래도 여름이라 행복하다. 길맥하고싶어 (기승전아무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