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8, 2014

Gone with the Wind (1939)

01/26/2014
@ Corner House Martinee Classics

Gone with the Wind

Director : Victor Fleming 
Starring : Clark Gable, Vivien Leigh


1. 총 240분, 인터미션도 한 번 있던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Ash', 'Ashley'하고 애간장 녹듯 말하던 비비안 리의 목소리였다. 나도 저런 애교를 연습해야하나, 비비안 리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목소리, 손동작을 보면서 저건 배워야겠다 하는 생각이 수십, 수백 번 오갔다.

2. 원작을 읽은 지 하도 오래된데다가 책이 문고판이라 앞뒤내용 싹둑 잘라버리고 정말 condense 한 내용만 담고 있어서 영화가 오히려 설명이 더 자세한 느낌이었다. 

3. 이 영화에서 회자되는 건 비비안 리가 코르셋을 조이던 모습, 그리고 Rhett의 "Frankly dear, I don't give a damn"하고 내뱉고는 유유히 타라를 떠나는 장면이다. 사실 커튼을 가지고 만든 초록 드레스도 클리셰로 커스텀 역사에서 회고되지만, 난 그 허리의 태슬이 너무 내 취향이 아니라 (정직하게 나 커튼이오! 라고 써있는 옷) 그닥 와닿지 않았다. 사실 가장 마음에 들던 커스텀은 타라에서 일하면서 입던 옷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베이지색의 타이트한 상의에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밑에는 푹 퍼진 스타일 옷을 보면서 역시 모든 패션의 완성은 몸매구나 하면서 잠깐 내 배를 내려다보니 (....)


3. 영화는 스칼렛 오하라가 'forever wild'하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이리저리 남자들한테서 불나방처럼 오가면서 자기미모를 과시하던 그 장면은 강하고 단단해보이는 스칼렛이 오히려 가장 불완전하고 애정에 굶주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4.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몇 가지 꼽자면 첫 번째는 인터미션 직전에 나오는 "I'll never be hungry again"이라고 스칼렛이 말하면서 페이드 어웨이 하는 샷이었다. 이건 아마 내 상황이랑 맞물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참, 별게 다 와닿는다. 죽어라 한 번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그 장면에서 이상하게 자기연민, 동질감, 다시 한 번 해보자 하는 정신 승리 등등 여러 감정이 함께 오갔다. 

또 하나는 스칼렛이 둘째를 갖게 되던 그날 밤이 지나고 아침에 침대에서 그 뿌듯한 표정. 스칼렛도 여자였구나, 여자로서 행복감을 표정으로 환하게 드러내보이던 그 장면이었다. 애를 낳고서 허리가 20인치가 되었다고 투덜대다가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룻밤이 그렇게나 행복했을까. 그러면서도 정작 이걸 레트한테 표현도 못하고 레트는 버니를 데리고 런던으로 떠난다. 이렇게 사람이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면서도 끝까지 엇갈릴 수 있구나, 사랑했어도 인연이 아닐 수 있구나. 그렇다면 인연,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그럼 내 인연과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혹여나 내가 스칼렛처럼 자기 오만에 빠져 정작 내 운명은 보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럼 그 지나간 운명은 어쩌지 하는 불안함까지 그 찰나의 순간에 왔다 갔다. (그만큼 요즘 간절하다...)

5. That's your misfortune이라며 작별의 말을 고하고 무심히 떠나는 레트가 가여웠다. 그 떠나는 순간, 아니 damn이라고 내뱉으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오히려 가장 사랑했던 스칼렛, 그리고 스칼렛을 똑 빼다 닮은 버니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다. 미친 듯 사랑했던 여자를 한 순간에 떠나보내는 순간의 마음은 어떨까? 근데 그게 돼나? 미련과 집착, 후회의 아이콘인 나로써는 도저히 상상조차 안된다.

6. 보기 전에는 240분이라는 영화 시간이 엄두가 안났지만, 보는 내내 오히려 영화가 너무 빨리 흘러갔다. 레트 버틀러의 투박한 말투, 스칼렛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의 묘한 밸런스가 듣기 좋았고 영화 내내 보이던 미국 남부의 광활한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7. 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이 뻔뻔해서가 아니라 절망에 부딪혔다가 다시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자기에 대한 확신과 자기애가 기반이 되야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I'll think of some way to get him back , 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말하면서 또 한 번 부딪히자고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8. 누군가가 나를 레트처럼 미친 듯이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태양의 나만 바라봐 노래가사처럼 내가 뭘 하든지간에 나만 계속 쳐다봐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 셀프 쉴드. 내가 개를 풀건 내가 진상짓을 떨건 내가 개미짓을 하건, 뭘 어쨌건 간에 나만 봐라줄 사람이 한 번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9. 어째 영화평을 쓴다 해놓고 결론은 나 외롭다가 되는 거지?

Friday, January 24, 2014

겨울

1. 맨체스터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이다.

작년 이맘때는 한국 가겠다고 진짜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간 기분이었고 하루하루가 뼈가 스미도록 추웠던 것 같은데 올해는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정말 '드릅게' 바쁘다.


새해에는 좀 다시 규칙적으로 생활하겠다고 헬스 등록하고 일은 두 개, 아니 이제 한글학교까지 세 개구나. 월요일 아침 일곱시 땡- 하고 시작해서 토요일 밤 열두시까지 MCFC-영화사-한글학교까지 달리면 벌써 한 주가 지난다. 집에 오고 나면 저녁먹고 그냥 인터넷 좀 하다가 뻗으면 하루가 끝. 나도 모르게 불도 못끄고 스르르 잠드는 게 한두번이 아니다. 개츠비도 다시 읽겠다고 사왔는데 지금 아직도 그 유명한 대사
In my younger and more vulnerable years my father gave me some advice that I've been turning over in my mind ever since."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요기를 못넘기고 있다.

2. 그제는 팀장님이랑 팀장님 가족이랑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TGIF에 갔는데 한국보다 양이 많은 것 같다. 한국은 식전빵까지 무한대로 흡입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했던 게 내가 그 때 딱 프레셔 페어에 나갔다가 그 간판을 보고 그렇게 연락을 했던거, 그리고 그게 이렇게 이어지고 이어져 지금까지 오게 된 거. 참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

3. 어제 우리 매니저님 나이라가 갑자기 아침 아홉시까지 와달라고 했다. (새벽 한시정도에?) 메일 확인한 게 여덟시 반, 그때 막 일어난 참이라 열시까지 가겠다고 하고 부랴부랴 나갔는데 캐링턴을 가야한다고..

화장은 커녕 머리도 안감고 그냥 막 파이어버드에 청바지 입고 나갔는데 (동네 백수차림) 요정님이 오셨다. 그동안 추워서 영상팀이랑 축구하고 뛰어서 얼굴엔 개기름 번들번들하기까지. 

아무리 봐도 나보다 어리다고 상상하기 힘든 요베티치나 실제로 보면 더 고릴라상인 밀너, 그리고 '마이카'가 왔는데 흠. 
그냥 난 경기장에서만 보는 걸로.....요베티치도 사진이 낫....다.......실물은 두 번짼데 참, 사진이 잘받는 얼굴인 것 같다. 

캐링턴에서 선수들 기다리는데 옛날에 기흥에서 오빠 기다리던 생각이 났다. 이 오빠 잘 되고 있는거겠지.

4. 요즘 한 주가 지나는 걸 가장 실감나게 하는 건 '정!도!전!'
이제 내일 이 시간이면 미친개 정도전 또 한 번 보고가겠다. 

5. 침대에 누운지 10분만에 또 눈이 감긴다. 감길땐 자야지. 뭔가 좀 하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다. 후딱 자자. 

Wednesday, January 15, 2014

1월 15일

1. 요즘 가장 기다리는 영화는 The Wolf of Wall Street, Inside Llewyn Davis. Martin Scolsese 감독도 좋아하고 Coen brothers가 음악 영화를 만든다니까 어떨지 (상상은 대충 가고 나는 또 역시 내 취향은 아니네 할걸 알지만) 기대된다. 근데 한국에 둘 다 개봉했다며? 이거 뭐야.....

2. 요즘 본 한국 영화중에서 제일 좋았던 건 잉투기랑 사이비. 둘 다 큰 작품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뽑은 첫 스크리너가 이렇게 좋아서 더 기뻤고, 사이비는 돼지의 왕보다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구나 (그러니 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접자) 하고 감동했다. 

3.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라고 하면 오히려 못쓰겠다. 그냥 툭 까놓고 영화를 얘기하는 순간 너무 좋아서 내 느낌을 다 말하고 싶은데 주어진 창구는 그 중에 두세 개만 뽑아내라고 한다. 어떤 것 하나 빼먹지 않고 '나 이거 봤어요' 하고 하나도 빼지 않으려고 (aka 주제없이 산만한 교수님이 싫어하는 글쓰기) 끙끙대다보니 글이 만날 산으로 간다.

4. 영화를 좋아하고 지금도 관련된 일을 잠깐 하고 있지만 한국가서도 이 일을 진짜 '업'을 삼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더 많이 알 수록 더 실망하게 될까봐,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를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질까봐 조금 무섭기도 하다. 영화에 관한 글을 읽어봐도 내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eg. 정성일 (이제는) 감독님), 내가 정말 단 1%의 재능이라도 있을까 하는 고민은 끊이질 않는다.

5. 변호인은 커녕 설국열차도 보지 못했지만 이번달 말에는 'Gone with the wind' 재상영도 볼 수 있고, 이창동 감독님 영화 두 편, 그리고 김기덕 감독님 풀 세트 스크리너를 받게 된다.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항상 되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는 순간 만큼은 정말 순수하게 (=세상물정, 업계 사정 다 싸그리 밀어버린) cine kid로 있다 가고 싶다. 그리고 아직 내 펜대는 꺾이지 않았다. 

Monday, January 13, 2014

1월 13일

1. 주말 없이 계속 일만 하는 일상이 지속되다보니 '월요병'이 과연 뭔가 고민했다. 영화사 일을 하고 나서는 월요일이 생겼더니 이제 월요병까지 같이 겪고 있다. 클라이언트가 아시아에 있다보니 일요일 낮 두 시부터 머리가 아프다. 한국은 밤 열한 시니까 곧 출근이 얼마 남지 않았을테고, 월요일 아침 회의에 늦지 않게 서류 보내야 하니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숨이 턱 막힌다. 경기 시작할 때 [경기소식] 1. 킥오프 이 저장해놓은 트위터 멘션 엔터를 누를때 기분이랄까? 

2. 오늘은 새벽에 운동 못가고 퇴근하고 나서야 갔다. 취미생활을 갖자, 단단해지자 뭐 이렇게 해놓고 사이클 돌리고 샤워하고 나왔는데 어머, 폰이 없네? 
그때부터 손 떨리고 다리 후들거리는데. 그 와중에도 3초간 '이제 무슨 폰 사야하지, 신제품 뭐 나오지'하고 고민했던 나 자신을 반성중. 다행히 누가 카운터에 맞겨놔서 찾긴 했지만....나도 진짜 답없다.

3. 운동 끝나고 손발이 후덜덜 떨리면서(놀라긴 놀랐음) 집에 오는데 누가 뒤에서 툭쳐서 화들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엄청 예쁘게 차려입은 (펜슬스커트에 스팽글 잔뜩 들어간 가디건에 블레이저) 흑인 언니가 지팡이를 막 휘두르면서 "oh shit"하면서 엄청 급하게 가더라.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또 한 방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송혜교가 맹인으로 나왔는데 엄청 꾸미고 나와서 욕먹었다는 드라마가 그 겨울? 이었나. 여튼 이런 논란이 여긴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자리잡았다는 게 놀라웠다. 이런 면에서 그래도 우리보다 선진국인건가 싶고 그 급하게 가는 뒷모습이 인상적이어서 hmv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봤다.

4.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랑 친할까. 걔가 이상한 게 아니라 결국 내가 이상한건가. 

Thursday, January 9, 2014

벌써 열흘

내일이면 2014년도 열흘이 지난다.
작년도 그랬고 대개 나는 구정을 기점으로 새해 다짐도 하고 뭔가 해보려고 하는 편이라 2014년도 그냥 그래, '스완지랑 경기 ㅇㅇ'이러고 말았다.

요즘 새벽에 운동을 가거나 아침에 운동을 꼭 간다. 가서도 제일 싫어하는 근력운동만 한 시간 빡세게 하고 온다. 이렇게라도 몸을 힘들게 하지 않으면 아마 또 이상한데다가 땅파고 삽질하고 징징 짜고 있을 걸 아니까. 요즘 온몸 근육이 정말 매맞은 것처럼 아프지만 다른 잡생각은 안들어서 다행이다. 오늘 스쿼트하고 윗몸일으키기 하고 웨이트를 좀 격하게 했더니 어깨가 장난이 아니다. 

새 플랫메이트 마르코는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것만 빼곤 다 괜찮다. 집에 있는 시간은 정말 열두시간이 채 안되는 것 같아서 그냥 아직까진 혼자 사는 느낌이다. 만치니 감독 얘기 듣고 웃겨 죽을뻔 했네. 나랑 공통점이라곤 '축구하는 90분에 우린 더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는 거. 한 마디로 축구 별로 안좋아한다. (내 경우는 I used to라고 하자...)

영화사 일은 이제 좀 속도가 붙는다.....가 아니다. 진짜 무지무지 바쁘다. 메일이 정말 아휴, 미친듯이 온다. 아르바이트라고 그냥 설설 할 게 아니다. 매일 30분 메일 확인은 꼭 하랬는데, 내가 컨택하는 담당자들이 미주, 아시아, 그리고 영국에 다 퍼져있다보니 그냥 24시간 메일을 붙잡게 된다. 그래도 좋은 건 여기서는 내 역할을 당당히 인정받는데다가 (Unlike MCFC)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다 본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잉투기 스크리너가 난 두 개나 있다. 사이비랑 용의자 오면 빨리 보고 싶다. 

작년처럼 뭔가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그냥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서 한국에 가고 싶다. 새해 들어서 엄마랑 전화도 한 번 못해봤고 블로그에 매일 글쓰기로 한 것도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할 건 많은데 자꾸 투덜대기만 하고 정작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나 자신이 답답하다. 


Thursday, January 2, 2014

1월 1일

수현이는 파리로 갔다. 

비가 좀 내린다고 기차가 다 취소되는 바람에 거금 27파운드나 주고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갔다. 나도 귀국할 때는 택시를 타야겠지만. 갈 날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 마음은 맨체스터가 아니라 서울 한복판, 평촌역 앞 우리집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 예전에는 감히 엄두도 못낸 작은 사치가 이제 일상이 됐다.

음식 하나를 먹어도 유기농을 더 찾게 되고 더이상 싼 슈퍼를 찾아 헤매지도 않고, 힘들면 가끔 택시를 타기도 한다. 옷을 살 때도 예전엔 2주를 고민했던 걸 이젠 사고 고민하는 예전의 내가 됐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과연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서른이 되어서도 마흔이 되어서도  잘 모를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때즈음에는 뭔가 희미한 선이라도 보였으면 좋겠다.

친선경기 또 한다고 하니까 진짜 눈물이 난다. 진짜 네이트 판에 회사 이름만 가리고 올리면 당장 노동청 신고하라고 할 법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