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8, 2013

이상형

까만 티 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링 위의 잭 블랙, 위노나 라이더를 향해 현실은 이렇다고 변명하는 벤 스틸러 그리고 애드리안을 외치는 록키 발보아.

자기 삶에 스타일이 있는 사람.

Gran Torino, Nacho Libre, Reality Bites, Rocky 음악을 하루 종일 들었더니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뭘 해야하나.

Saturday, April 27, 2013

동그랑땡

주말엔 나 혼자 있으니까 한국 '가정'요리, 그러니까 김치전 불고기 이런 거 말고(물론 불고기는 우리집 단골메뉴다만)를 자주 해먹는 편이다.

며칠 전부터 동그랑땡이 너무 먹고 싶었다. 편식이 줄었지만 그래도 초딩입맛인지라 동그랑땡에 케찹찍어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앉은 자리에서 스무 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중학교때부터 급식이 맛없다며 엄마한테 도시락을 싸달라고 징징대면 엄마는 항상 동그랑땡을 넣어줬다. 수능을 볼 때도, 재수학원에서 밥을 먹을 때도, 다시 두 번째 수능을 볼 때도 엄마는 내 도시락에 따뜻한 밥과 동그랑땡, 아몬드멸치볶음, 시금치나물을 넣어줬다. 뭔가 잘되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빨리 뭔가 시험이든 면접이든 생겼으면 하는 바람인건지 동그랑땡이 정말 먹고 싶었다. 

보통 해외 나오면 해먹고 싶어도 못해먹는다는데 나는 생기면 바로 시작. 어제는 테스코에서 반값할인하는 돼지고기 간 것도 사오고 오랜만에 타이판에 가서 두부도 사왔다. 12월 이후로 항상 시티 센터 차이나타운만 가게 돼서 타이판 가서 오랜만에 막 사진도 찍고, 처음 왔을 때 생각도 좀 해보고 그랬다. 중국슈퍼가 좀 짜증나는 게 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여긴 이게 있고 저긴 저게 있어서 다 돌아다녀야 필요한 걸 다 살 수 있다. 물론 이젠 안먹고 테스코가서 스테이크 먹고 만다. 오늘은 뭔가에 홀렸는지 막걸리랑 청하를 30분간 만지작대면서 살까말까 하다 내려놨다.


코스트코가 별거 있나

블랙아이드 피스가 신기방기



라면은 진짜 종류별로 다 있다. 근데 일년에 라면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나한테는 별반 도움이 안된다. 

빼빼로 포장 왜때문이죠? 

먹고 싶었지만 30일까지 금주하겠다는 약속도 못지키면 진짜 한심해질 것 같아서 내려놨다.

오랜만에 그 길을 걷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젠 모리슨도 안 가고 내가 뭘 먹을 수 있는지 뭐가 필요한 지 대충 익숙해졌는데, 익숙해지니까 딱 집에 가고 싶어졌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팠다. 그 길을 걷다보니 지난 겨울이 생각났고 그냥 무심하게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가 별 감흥없던 삼겹살.

여기 와서 요리를 하게 되면서 느낀 건 기본으로 보는 레시피 블로그가 하나 있으면 엄청 편하다는 것. 면류나 양식은 잘 안먹고 (해봐야 스테이크 정도?) 한식에 반찬종류가 필요해서 보통 김진옥 아줌마껄 이용하는 편이다.

중국두부 firm한것 우리나라 두부 크기로는 한 모 반, 돼지고기 500그램(소랑 돼지 섞었던데 여기는 단위를 작게 사기가 불편해서 그냥 돼지만), 소금 1ts, 후추 한 핀치, 스프링 어니언 5개, 다진 마늘 한 스푼. (타이판에 가면 좋은 게 다진 마늘을 판다! 물론 너무 곱게 minced 된 거라 약간 다르긴 한데 이정도면 감사)

반죽은 두부 물 짜고 으깨서 나머지랑 섞으면 끝...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두부가 한국두부랑 달라서 아무리 firm을 사도 firm하지가 않다.


우리집은 당근도 넣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 없는 당근 찾아가며 먹을 정도로 좋아하진 않아서 패스. 

새로 보이길래 한 번 샀다. 이제 밥 비벼먹을 때도 이걸로 먹을 듯. 중국간장은 진짜 대륙 스케일로 짠데 한국 간장은 감칠맛이 강하고 일본간장은 좀 무거운 느낌.

그리고 밀가루 살짝 뭍히고 계란옷 입혀서 지진다.

근데 우리집 불은 정말 더럽게 약하고 팬은 더럽게 안좋다는 사실을 까먹고 거의 한 근에 가까운 반죽을 준비했으니. 이건 재앙의 시작.

남은 삼겹살이랑 냉동실에 있던 삼겹살까지 꺼내서 돼지 두루치기도 했다. 고추장1, 고춧가루1.5, 양파 반 개, 삼겹살 한 근 조금 안 되는 양, 얼린 마늘 큐브 하나(아마 밥숟가락으로 하나 정도?)

블로거들 신기한 게 어떻게 이 과정을 다 찍지?
다 하고 나니 큰 도시락으로 두 개, 작은 거 두 개(5개씩 들어가는 거) 그리고 내일 아침 먹을 거 5개+ 남은 계란물 지져놓은 거 하고 나니 끝.

...이 아니라 설거지 대박.
이거 하고 샤워하러 들어갔더니 뜨거운 물 run out...아 

씻고 나와서 다시 밀린 빨래를 돌려놨고 내일은 다림질도 해야한다. 셔츠를 좋아하고 그게 제일 잘어울려서 한 번 빨면 거진 다섯 개? 그리고 옷을 다리지 않으면 안입어서 빨래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아빠가 셔츠를 빳빳하게 다려줬고 엄마가 빨래하기 전에 꾹꾹 밟아 널어서 이렇게 주름이 지는 줄도 몰랐다.

여기 와서 장조림할때도 그렇고 동그랑땡 할 때도, 오뎅볶음할때도 그렇고 엄마가 해준 반찬들을 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실감하게 된다. 난 매번 왜 이렇게 반찬이 성의가 없냐며,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빵을 구워주지 않을까, 왜 우리 엄마는 학교가 끝나고 나를 집에서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투덜댔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장을 봐서 동그랑땡을 부쳤고 밤새 장조림 국물을 타지 않게 지켜보고, 오뎅을 먹지 않는 딸에게 오뎅볶음을 했다며 타박을 받아도 그냥 "그럼 다른 반찬 해줄게 잠깐만" 하며 다시 부엌에 들어갔다. 그것도 모르고 난 힘들게 부친 동그랑땡을 한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기도 했고 겨우내 시금치철에 시금치 나물이 빠지면 짜증을 부리기도 했고 가끔 국수나 수제비를 먹자는 엄마에게 "그럼 난 안먹어" 하며 방에 쾅 들어가버렸다.

한국에 가면 꼭 엄마한테 도시락을 싸드려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사실 난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중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게 한 가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빠 출근 할 때 빳빳하게 풀먹여 셔츠도 다리고, 아빠랑 같이 출근하고 싶다.

엄마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정말. 힘들고 지친다.



Friday, April 26, 2013

배우는 중

사람에 대한 배려, 그리고 기본적인 예절과 개념, 위생관념

Wednesday, April 24, 2013

근육통

온몸이 너무 쑤셔서 파스를 뿌릴까 하다가 아로마 오일 보는 중.

아베다 블루오일 잘 안썼는데 아플때 바르니까 아 ㅠㅠ 눈물나게 행복하다.
바디샵까지 갈 힘은 없고, 그냥 집앞 오가닉 마켓에서 몇 개 사다가 부비부비 해야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침대에 누워서 자도 끙 소리가 난다. 아스피린 하나 먹어야지.

Sunday, April 21, 2013

보고싶다

엄마 아빠 보고싶다
집에 가고 싶다
멍청하게 뭐하는거지

Wednesday, April 17, 2013

요즘

1. 이제 서류 안써, 이러고 있었는데 job mail 한 통에 또 어제 새벽까지 새로 커버레터 쓰고 CV 고치고. 올릴 수 있는 파일은 5개인데 그 회사에 쓴 서류만 해도 지금 다섯 개, 메일로 보낸 것 까지 하면 여섯 개라 회사 서버에 업로드 할 파일 정리하는 것도 하루 종일이었다. 계속 그 회사 페이스북에 문의했더니 거기서도 좀 짜증내는 느낌이 드는데 근데 12월에 서류 받아놓고 아직까지 결과 안냈다는 게 말이 돼? 그러고 2-4주 더 걸린다고? 진짜 놀고들 계시네요.

2. 이번주에 일이 바빠지면서 결국 공부는 하나도 못했다. 사실 핑계겠지. 다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할 수도 있을 텐데. 오늘은 테스코, 스타벅스에서 돈 쓰고 먹고 먹고 먹고. 정말 배부른 돼지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3. 집 청소를 하면서 느낀건데 나랑 같이 살 사람은 위생관념 철저하고(내가 그렇게까지 깔끔떨지는 않지만 과일을 씻어먹고 매일 한 번 바닥정도는 쓸고, 흐린 음식은 다 닦고 설거지하면 물 잘 빠지게 차곡차곡 잘 쌓고) 마작 안하고 음악 크게 안틀어놓고 목소리 작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Sunday, April 14, 2013

고령화가족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고령화가족, 천명관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정말 '지질'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어서 1파운드짜리 빵을 집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수준이지만, 이걸 감추거나 청춘으로 미화하고 싶진 않다. 배가 고플때 두 번 생각해야하고 새벽에 일을 해서 손등은 부르트고 왜 이걸 하는 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되지만, 글쎄. 버티다 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Tuesday, April 9, 2013

News room

Iron Woman's death
North Korea Bombast
Cyprus's economy crisis
Same-sex marriage

I feel I've been eyewitnesses to history.
In this moment, I should have written something, however I am nothing. 

Carl Bernstein, Bob Woodward, Anderson Cooper, Richard Engel...
I wish I could be like them but I'm getting faded away, rust at me up. Vocation, job, work, my way, goal of life, whatever I am nothing.

Saturday, April 6, 2013

예의없는 것

오늘 하루종일 머리가 아팠다.
카카오 70퍼센트짜리 초콜릿을 에스프레소 도피오랑 먹었더니 갑자기 머리가 띵하면서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벌렁벌렁대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일어나자마자 커피 두 잔을 마셨던 상태라 속이 메스껍고 진짜 죽을 것 같았다. 

급하게 점심을 챙겨먹고 그리고 다시 아스피린을 먹고 운동을 나갔는데(원래 아침 일찍 운동가려고 했는데) 손이 벌렁거리면서 머리가 아팠다. 낮잠을 좀 자보려고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운동을 한 시간도 채 못했다. 사이클 위에 삼십분은 그냥 빌빌 대면서 앉아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잠깐 가게에 들러서 책을 받을까 했는데 그 때 내일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 카페인에 계속 헤롱대며 집에 와서 라면을 끓여서 카페인 숙취로 쓰린 속을 달래다가 코너 하우스에 가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in the house를 봤다.

벨기에를 다녀오고 프랑스어권 나라에 대한 동경이 엄청 커져있는 상태라 영화도 재밌게 봤다. 영상도 예뻤고 프랑스어 대사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면서 감탄했다.

그 중간에 문자를 받았는데, 왜 나한테 명령이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건데, 내가 어려서? 난 정식 직원도 아니고 그냥 시간당 가서 일하는 것 뿐이라서? 그리고 지금 앞뒤가 말이 다 안맞는데 대충 그림은 그려지고, 그 상황에 너무 기가 막혀서 화가 났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건 아니지만 고작 몇 파운드에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는 (소위) 어른들이 싫었다. 성인 대 성인으로 만났다면 그 사람이 자기보다 어리다고 해도 예의를 지켜야하는 게 아닌가? 빤한 패를 던져대면서 권위로 밀어붙이는 느낌이라 너무 기분이 상했고 어이가 없었다. 정말로. 다 때려치고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안나언니한테 전화를 해서 얘기를 하는데 너무너무 화가 났다. 

테스코에서 내일 아침 먹을 요거트랑 바나나 몇 개를 사고 집에 오는데 들어오니 엉망이 됀 집. 하우스파티고 뭐고 다 좋은데 결국 뒷처리는 내 몫. 먹지도 않은 접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독한 사테이 소스 냄새와 해산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정말 이게 남의 집 살인가 싶다. 시집도 가기 전에 시집살이 하는 느낌이다. 초콜릿을 먹은지 이미 한창 지났지만 결코 두통이 가라앉질 않는다.

다음주에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Wednesday, April 3, 2013

계급적 한계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아마 이순재 할아버지 인터뷰에서 김태희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해할 수 없거나 경험할 수 없는 계급적 한계"가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였다.

처음에는 저 할배가 노망났나, 왜저래? 이랬는데 요즘 와서 제일 실감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특히나 문화적 경험의 측면에서 계급적 한계는 경험소비에 대한 태도 차이로 나타나는 것 같다. 박물관 6유로가 아깝다거나 새옷을 일부러 태그를 떼지 않고 입다가 환불하는 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박물관, 미술관이 보고 싶고 일광욕과 클러빙보다는 그늘진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싶었다. 대도시 지식중산층의 계급적 한계라고 하면 나의 오만함인건가. 이런 걸 일반화할수는 없겠지. 이거야 말로 부모 돈으로 배부른 소리 하는 철없는 투정으로 보이기 쉽겠다. 하지만 부르튼 손, 대량생산된 스파 브랜드 옷들(물론 한국에서 내가 명품족은 아니었다만), 책 한 권 읽을 나만의 공간이 없는 상황. 아마 이런 게 지금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