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나 혼자 있으니까 한국 '가정'요리, 그러니까 김치전 불고기 이런 거 말고(물론 불고기는 우리집 단골메뉴다만)를 자주 해먹는 편이다.
며칠 전부터 동그랑땡이 너무 먹고 싶었다. 편식이 줄었지만 그래도 초딩입맛인지라 동그랑땡에 케찹찍어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앉은 자리에서 스무 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중학교때부터 급식이 맛없다며 엄마한테 도시락을 싸달라고 징징대면 엄마는 항상 동그랑땡을 넣어줬다. 수능을 볼 때도, 재수학원에서 밥을 먹을 때도, 다시 두 번째 수능을 볼 때도 엄마는 내 도시락에 따뜻한 밥과 동그랑땡, 아몬드멸치볶음, 시금치나물을 넣어줬다. 뭔가 잘되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빨리 뭔가 시험이든 면접이든 생겼으면 하는 바람인건지 동그랑땡이 정말 먹고 싶었다.
보통 해외 나오면 해먹고 싶어도 못해먹는다는데 나는 생기면 바로 시작. 어제는 테스코에서 반값할인하는 돼지고기 간 것도 사오고 오랜만에 타이판에 가서 두부도 사왔다. 12월 이후로 항상 시티 센터 차이나타운만 가게 돼서 타이판 가서 오랜만에 막 사진도 찍고, 처음 왔을 때 생각도 좀 해보고 그랬다. 중국슈퍼가 좀 짜증나는 게 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여긴 이게 있고 저긴 저게 있어서 다 돌아다녀야 필요한 걸 다 살 수 있다. 물론 이젠 안먹고 테스코가서 스테이크 먹고 만다. 오늘은 뭔가에 홀렸는지 막걸리랑 청하를 30분간 만지작대면서 살까말까 하다 내려놨다.
코스트코가 별거 있나
블랙아이드 피스가 신기방기
라면은 진짜 종류별로 다 있다. 근데 일년에 라면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나한테는 별반 도움이 안된다.
빼빼로 포장 왜때문이죠?
먹고 싶었지만 30일까지 금주하겠다는 약속도 못지키면 진짜 한심해질 것 같아서 내려놨다.
오랜만에 그 길을 걷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젠 모리슨도 안 가고 내가 뭘 먹을 수 있는지 뭐가 필요한 지 대충 익숙해졌는데, 익숙해지니까 딱 집에 가고 싶어졌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팠다. 그 길을 걷다보니 지난 겨울이 생각났고 그냥 무심하게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가 별 감흥없던 삼겹살.
여기 와서 요리를 하게 되면서 느낀 건 기본으로 보는 레시피 블로그가 하나 있으면 엄청 편하다는 것. 면류나 양식은 잘 안먹고 (해봐야 스테이크 정도?) 한식에 반찬종류가 필요해서 보통 김진옥 아줌마껄 이용하는 편이다.
중국두부 firm한것 우리나라 두부 크기로는 한 모 반, 돼지고기 500그램(소랑 돼지 섞었던데 여기는 단위를 작게 사기가 불편해서 그냥 돼지만), 소금 1ts, 후추 한 핀치, 스프링 어니언 5개, 다진 마늘 한 스푼. (타이판에 가면 좋은 게 다진 마늘을 판다! 물론 너무 곱게 minced 된 거라 약간 다르긴 한데 이정도면 감사)
반죽은 두부 물 짜고 으깨서 나머지랑 섞으면 끝...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두부가 한국두부랑 달라서 아무리 firm을 사도 firm하지가 않다.
우리집은 당근도 넣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 없는 당근 찾아가며 먹을 정도로 좋아하진 않아서 패스.
새로 보이길래 한 번 샀다. 이제 밥 비벼먹을 때도 이걸로 먹을 듯. 중국간장은 진짜 대륙 스케일로 짠데 한국 간장은 감칠맛이 강하고 일본간장은 좀 무거운 느낌.
그리고 밀가루 살짝 뭍히고 계란옷 입혀서 지진다.
근데 우리집 불은 정말 더럽게 약하고 팬은 더럽게 안좋다는 사실을 까먹고 거의 한 근에 가까운 반죽을 준비했으니. 이건 재앙의 시작.
남은 삼겹살이랑 냉동실에 있던 삼겹살까지 꺼내서 돼지 두루치기도 했다. 고추장1, 고춧가루1.5, 양파 반 개, 삼겹살 한 근 조금 안 되는 양, 얼린 마늘 큐브 하나(아마 밥숟가락으로 하나 정도?)
블로거들 신기한 게 어떻게 이 과정을 다 찍지?
다 하고 나니 큰 도시락으로 두 개, 작은 거 두 개(5개씩 들어가는 거) 그리고 내일 아침 먹을 거 5개+ 남은 계란물 지져놓은 거 하고 나니 끝.
...이 아니라 설거지 대박.
이거 하고 샤워하러 들어갔더니 뜨거운 물 run out...아
씻고 나와서 다시 밀린 빨래를 돌려놨고 내일은 다림질도 해야한다. 셔츠를 좋아하고 그게 제일 잘어울려서 한 번 빨면 거진 다섯 개? 그리고 옷을 다리지 않으면 안입어서 빨래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아빠가 셔츠를 빳빳하게 다려줬고 엄마가 빨래하기 전에 꾹꾹 밟아 널어서 이렇게 주름이 지는 줄도 몰랐다.
여기 와서 장조림할때도 그렇고 동그랑땡 할 때도, 오뎅볶음할때도 그렇고 엄마가 해준 반찬들을 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실감하게 된다. 난 매번 왜 이렇게 반찬이 성의가 없냐며,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빵을 구워주지 않을까, 왜 우리 엄마는 학교가 끝나고 나를 집에서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투덜댔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장을 봐서 동그랑땡을 부쳤고 밤새 장조림 국물을 타지 않게 지켜보고, 오뎅을 먹지 않는 딸에게 오뎅볶음을 했다며 타박을 받아도 그냥 "그럼 다른 반찬 해줄게 잠깐만" 하며 다시 부엌에 들어갔다. 그것도 모르고 난 힘들게 부친 동그랑땡을 한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기도 했고 겨우내 시금치철에 시금치 나물이 빠지면 짜증을 부리기도 했고 가끔 국수나 수제비를 먹자는 엄마에게 "그럼 난 안먹어" 하며 방에 쾅 들어가버렸다.
한국에 가면 꼭 엄마한테 도시락을 싸드려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사실 난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중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게 한 가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빠 출근 할 때 빳빳하게 풀먹여 셔츠도 다리고, 아빠랑 같이 출근하고 싶다.
엄마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정말. 힘들고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