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30, 2016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

1.
유럽에서 전시가 좋았던 건 전시장의 형태였다. 
인테리어야 가지각색일 수 있겠지만, 우선 건물 층 높이가 넓어서 큰 그림도 '트인 느낌'으로 볼 수 있다. 한가람처럼 꽉꽉 들어차서 비좁은 느낌이 덜하다.

루브르나 내셔널갤러리처럼 밀도가 높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답답하다고 안느껴지는 게 층이 높아서 공간 활용을 가로와 세로를 둘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나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를 선호하는 편이다. 별로인 데는 한가람, 대림처럼 낮고 작지만 그림은 꾹꾹 눌러담는 곳들.

그리고 감각의 공해가 덜하다. 미술 전시면 시각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컨템포러리 한 경우에는 사운드가 잘 퍼질 수 있게 공간을 잘 쓴다.


2. 
덕수궁 미술관의 정확한 명칭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을 이제 미술관으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양식 건물이다. 즉, 층 높이가 다른 미술관보다는 좀 됀다. 

아빠랑 고려 삼계탕 한 그릇 먹고 서울시립에서 천경자 보고 덕수궁으로 갔다. 원래 계획은 플럭서스까지 다 보는 게 목표였는데 둘 다 천경자 하나 보고 "가자"

계획없이 봤던 전시지만 천경자 '뱀'과 스케치가 좋았다. 엽서가 몇 장 있었다면 사고 싶었는데 굿즈샵에는 드림웍스 그림밖에 안보였다.

나와서 체력 회복이 안돼서 시청 던킨에서 30분을 앉아있다 갔다. 이 체력으로 루브르를 지하부터 다 본 내가 자랑스럽고, 이제 곧 루브르를 갈 아빠가 걱정이다. 

3.
이중섭은 국어 교과서에서 봤다. 그리움을 머리에 진 사나이였나? 제주도에 살면서 아내는 일본에 있다. 요정도? 

우리나라 1등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전시답게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방학때 한가람에서 하는 인상주의 화가 특별전 보는 느낌이랄까. 다만 관객 연령층이 초중에서 우리 아빠 또래라는 게 달랐다.

4.
전시는 좋았다. 이중섭이 아들 태성, 태현 그리고 부인 남덕씨에게 쓴 편지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처럼 예술가와 생활인사이의 고민이 보였다. 아내한테 사랑합니다, 뽀뽀 이러면서 헌신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슬펐다.
예술한답시고 '모랄레스'한 건 동서양 불문하고 일반적이라 오히려 이렇게 헌신적인 사랑을 한 사람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편지 한 장에 정말 사랑과 부성애를 꾹꾹 눌러담은 느낌이 편지 한 장 한 장마다 느껴졌다. 편지에 작게 들어간 가족 그림이랑 '아빠가 자전거 꼭 사줄게'라고 매번 쓰는 걸 보면서 가장으로서 짠하게 보이기도 했다.

5..
다른 그림도 좋았지만, 저 전시장이 가장 좋았던 건 '소음공해'가 없어서였다.

이중섭의 그림은 좋았다. 복숭아밭과 가족, 포옹 은박화는 금속에서도 따스함이 보였다. 소 그림과 스케치는 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문제는 전시 소음이다.
왜 전시장에 이상한 영상을 틀어놓지 못해 안달이 난 건지....그리고 이중섭이랑은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배경음악을 깔아놔서 전시장 안을 더 갑갑하게 만든건지 이해가 안된다.

전시를 보면 시각이라는 감각을 사용한다. 만약 여기서 청각이라는 자극을 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보는 느낌이 다르다. 오롯이 시각적 즐거움만 누려야 할 '미술관'에서 왜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인간극장 류의 음악을 깔아놓은 건지 모르겠다. 

은박화 전시장에는 한 벽을 미디어 아트라고 해놨는데 거기서 이상한 음악을 깔아놔 정신이 사나웠다. 첫 전시장에도 무슨 영상을 틀어놨는데 클래식도 아니고 정말 BGM 스타일 연주곡을 내내 틀어놔서 화려한 색감에 집중해야 할 감각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컨템포러리 포스트 모던도 아닌데 내가 왜 어울리지도 않는 음악을 그림이랑 같이 강제로 들어야 하나.

그리고 왜 왜 왜 왜
오디오 가이드 이어폰을 빼고 듣습니까....?
여기도 이정재, 저기도 이정재, 이정재의 설명이 오버랩 돼면서 이 얘기 들리고 저 얘기 들리고, 전시장은 온갖 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좋은 展示였지만 제대로 視하려면 다른 자극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

끝나기 전에 다시 보고 싶은데 이 소리를 피하려면 이어플러그라도 가져가야겠다.

6.
그래도 좋은 전시였다. 엽서 은박화 몇 장 더 살걸.

Thursday, June 23, 2016

싸이코 (Psycho, 1960)

1. 지금 에서 면접을 볼 때 나의 전-전 매니저 아나 (Anna지만, 영국이니까 아나라고 읽도록)가 물었다.

"What is your weak point for this job?"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I cannot see any bloody, slash, gore, or any kind of horror movie. If I have to, or be forced to watch those kind of genre movies, I definitely will be unhappy."


다행히 우리 회사는 IFE여서 이런 장르를 선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밥벌이는 하고 산다. 가끔 호러 장르나 보기 힘든 영화를 봐야하는 경우 (ie. 손님, 곡성) 나는 그 작은 스크리닝 링크를 놓고서도 다시 눈을 가리고 낑낑대며 지나친다.


2. 극장판에서 영화를 보는데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사이코'를 보게 됐다.
'복수는 나의 것'은 보다가 한 10분도 되지 않아 나왔다. 이미 본 영화여서 오히려 안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프닝이 시작돼고나서부터 내가 힘겨워하는 그 '지점'이 떠올랐다. 

그리고 10분만에 나와서 당당히 회사 랩탑(이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랩탑)을 켜고 일했다.

난 생각보다 겁도 많고 무서운 걸 잘 못본다.

볼드까지 쳐서 써놓는 이유는 그냥 그렇다고. 고등학교때 허세에 쩔어서 막 쏘우 이딴거 보고 그랬는데 집에 와서 맨날 불켜놓고 캐롤 부르면서 잤다. (유일하게 아는 찬송 which I refer as song of Priests')

3. 사실 사이코는 안무섭다.
워낙 그 영화 자체가 이미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져서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도 많고. 사운드트랙이나 효과같은 것도 익숙하다.

샤워 바스텁 안에서 꺅 소리지르는 것도, 너무 익숙한 상황이다. 오리지널리티가 이미 상실돼서 그게 그렇게 무섭냐? 이런 지점.

4. 근데도 무섭다.


이미 알고 있는 반전이라고 해도 그냥 오싹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에 나올까봐서 나는 온갖 힘을 다해서 이 표정을 안보려고 애쓴다.

5. 이런 무서움의 밑바탕에는 나도 어쩌면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을지 모른다. 도시괴담(장기밀매, 인신매매)부터 강남역 살인사건까지 이어져왔을 때 나는 항상 '당할 수 있는' 입장에 처했다. 

통제되지 않은 '변수'가 내 주변에 나타나서 내 생존을 위협한다는 '망상' (혹은 예측)을 항상 하고 살기 때문에 이런 영화도 허투루 지나치기가 어렵다. 

영화를 볼 때 타란티노처럼 공감이 안되는 영화는 깔깔 웃으며 지나칠 수 있지만, 블랙스완에서 손톱 뜯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고통은 뼈져리게 느껴지는 거랑 비슷한 이치랄까.


6. 그래도 이 영화에서 마리온 진짜 예쁘다.
흑백 영화가 좋은 건 각 캐릭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블러처럼 뽀샤시가 아니라 정말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 안에서 오롯이 자신의 '미'를 볼 수 있는 느낌.
(같은 맥락에서 오드리 햅번 로마의 휴일, 잉그리드 버그만 영화'들'을 좋아한다)

7. 영화 올리느라 영상 다시 보는데 아..... 표정이 안잊혀.

8.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하는 예술인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일반인으로만 남았다면 뭔가 '잊히지 않을 무서운 일'을 할 사람이 됐을지 모른다.

Friday, June 3, 2016

고등학교

1.
모교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다. 후배들 창의시간에 와서 얘기 좀 해달라고.
무슨 생각으로 하겠다고 한건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때 맨날 폰 걸려서 명심보감 끝판왕까지 가보고 (6개월 정지....ㅎ)
수업시간에 자다가 야자 땡땡이 치고 축구보러갔는데 내가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과연 그런 말 할 정도의 깜냥 혹은 achievement가 있나? 싶은거다.


재밌게 사는 삶에는 충실하지만 열심히인지는 그닥 잘 모르겠다.
지금 회사도 그렇고 이전 회사도 그렇고 운7기3이라는 취업시장에서 운을 다 쏟아부은 탓인지 최근 일들은 거의 운 0에 수렴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아 나는..."

지난주 내 입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다. ㅎㅎ


2.
EBS였나 뭐였나, 고등학교 마크 잠바에 새기는 거 하고 있다는데.
아 뭐 그럴수도 있지, 싶다.
유치하지만 뭐 그래...그래라 싶은 정도?

방송 보니까 그게 좀 과장된 면도 있는 것 같고, 뭐 내가 그 학교 비중 높은 하늘라인이 아니라 못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애들 말 들어보면 그러는 면도 있겠구나 싶다.

어제 영국에서 가르친 애들이랑 부모님 만나면서 느낀건데 이러는 게 과연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은 다 입시지옥 없이 자유롭게 놀아"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건지.
영국만 해도 사립 그래머스쿨이랑 공립이랑 하늘과 땅차이고, 거기서 옥스브릿지가 나오니까 기쓰고 시험봐서 가려는 애들이 많다. 미국도 솔직히 말해서 좋은 '동네'의 공립학교가 롤모델인거지 할렘의 공립학교를 보고 우리가 '와' 이러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럴거면 우리나라도 강남8학군 일반고 한정으로 하거나 좀 비교 대상의 범위를 어느 정도는 맞춰야지. 저기는 하이어퍼를 대상으로 잡고 우리는 전체로 잡으면 당연히 우리나라가 헬로 보일 수밖에.

유럽의 경우에도 아예 이 경쟁에서 나와서 대학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를 놓고 사회 전체로 환원하면 말이 안되는거 아닌가.
대륙에서도 결국 사립학교 타이틀이 필요하니까 대학은 이쪽으로 보내거나 아니면 미국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알던 유럽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은 모르겠으나 경영/경제는 거의 다 이런다고)

기회의 창이 명문대밖에 없는 게 문제인거지, 명문고-대학라인을 나와서 자부심 가지는 게 그렇게 조롱받고 촌스러운 일인가.

라고 비명문고-대학라인을 나온 나는 쓴다.

이것도 하나의 자기 성취인데 그거 자랑 좀 하면 어때. 그 나이에 유치하다고 하는데 그럼 그 나이에 유치하지 마흔 먹고 유치한 게 더 비참해... 그거만 가지고 평생 우려먹는 사람들.

인적 네트워크나 레퍼런스라는게 '불법화'된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잘난 척 하려면 결국 바닥에서 솟구친 용이 되는 길밖에 없는건가. 

Tuesday, May 31, 2016

Let it go

파리에서는 폰 와이파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랩탑만 가끔 돌리고 폰은 그냥 데이터로만 썼다.

사진을 정리한다고 그냥 한 300장을 뭉텅이로 지웠다. 당연히 99달러 주고 프로로 업데이트한 드롭박스에 저장되었을거라 생각하면서 깡그리 지웠다. 썸네일 캐시 이런 것도 깔끔하게 지웠다.

문제는 내가 와이파이에서만 싱크를 하게 해놔서 저장이 하나도 안됐다. 
며칠전에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려고 봤는데 스페인 사진만 덩그러니 있고 파리는 아무것도 없다. 피카소 뮤지엄도, 세 번이나 허탕치고 가서 올라간 노트르담 꼭대도, 울면서 미사듣던 노트르담 성당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온리 스페인 저스트 스페인. 아 물론 스페인이 나쁘지 않았지만 심혈기울인 사진은 다 파리였는데. 공부하려고 찍어놓은 몇 장면도 있었는데 다 사라졌다.

완전 패닉... 어 뭐지? 내가 왜 이랬지 하는 생각부터 바로 데이터 복원을 뒤졌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끙끙대기도 하고 혹시 없을까 계속 드롭박스를 들락날락하고 그러다가 데이터 복원까지 찾아봤다.


국정원, 세월호 사건에서나 보던 데이터 포렌식을 검색해보니 꽤 업체가 많았다. 세월호 폰 복원 기사에서 많이 보이던 업체에 전화를 했다.

가입증서랑 신분증같은 걸 준비해서 찾아가면 된다고 해서

그냥
갔다.

프린터는 엄마아빠방에 있고 나는 올레에 가입하지 않아서 귀찮았고 가면 더 빠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갔다.

들어가서 "데이터 복원때문에 왔는데요..." 했더니 "여기 번호랑 필요한 서비스에 체크만 해주세요" 하고 요금을 설명한다. 전화로 들었던 가입증서도 달라고 하지 않았고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거 하시면 삼성페이는 포기하셔야돼요"
편의점에서 쏠쏠하게 쓰고 있어서 아쉬웠는데, 어차피 곧 폰을 바꿀 것 같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절차는 간편했다.
기본 요금을 우선 내고 세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폰을 찾는다. 그 다음날 오후정도에 팀뷰어로 어떤 파일이 복원됐고 사진이 몇 장정도 됐는지를 듣는다. 그리고 결제하면 파일을 받는다.

팀뷰어로 볼때 어 파리 사진이 있다, 기쁜 마음에 바로 결제했다.

사진 파일을 쭉 받고 보는데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한 번도 본 적없는 카카오톡 대화상대의 프로필 사진이 다 저장돼있었고, 인스타에서 좋아요만 한 번 눌렀던 외국 사람의 사진이 저장돼있었다. 내가 올린 사진들의 썸네일이 부분부분 저장돼있었고 여러 메신저에서 나랑 얘기하던 사람들의 프로필이 차곡차곡 다 복원됐다.

결국 나는 내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정보를 그 사람들 모르게 복원해 갖게 된거다.

이건 그래도 내 폰이었지만, 대부분의 업체에서 문자 복원, 통화목록 복원, 아니면 메신저 대화 복원같은 서비스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보는 복원되고 기록될 지 모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의 프로필의 변화를 다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겠지. 인스타에서 내가 본 모든 사진이 저장돼면서 내가 팔로우한 사람의 개인적 사진도 다 복원됐다.

결국 무작위로 복원시키는 이 기술 덕분에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복원돼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엄청난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기술은 점점 더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개인의 정보가 '개인 정보'가 個人이 아니라 開人정보가 된거다.





파리 사진이 복원 됐는데.... 2016년 5월이 아니라 2015년 5월이다. 결국 이 사진은 증발해버렸고 나는 내가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무수한 사진과 내 돈, 삼성페이를 맞교환했다. 그냥 잃은 건 잡지 말고 Let it go해야 했다.

더 웃긴 건 2015년에 본 그림인데도 2016년에 하나도 기억 못하고 "이런 건 처음이다"라고 일기를 썼다는거다. 그니까 처음 봤다 이러면서 오오오 했지만 난 이걸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반복했다. 그림을 보고 내가 뭔가 달라지거나 미적 감각이 엄청나게 늘지 않는 이유인건가. 


이 일을 계기로 사진보다 직접 쓰고 보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이번 주말부터 동네 문화센터에서 뎃생을 배우기로 했다. 기록해서 붙잡고 있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젠 정말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기록을 하고 싶다. 

Tuesday, May 24, 2016

여행 준비

1. 
이번 여행은 많이 무모했다.

엄마아빠를 일본 보내드리고서 나도 뭔가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한 40퍼센트 정도는 차 있었지만 그래도 작년처럼 또 그런 '미친 짓'을 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참자 참자...했다.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 참다가 생일 즈음이 다가오면 혼자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맹렬하게 든다. 광저우-파리-베를린-파리 이렇게 몇 번을 혼자 지내고 나니까 더더욱. 이번에는 조용히 집에서 혼자 보내봐야지 했는데.


2.
시험에서 바라던 결과가 안 나왔다. 할일이 없어 책을 열심히 읽었다. 화집도 봤다.

우연히 사진을 보다가 피카소 그림을 봤다. Massacre in Korea (신천에서의 학살?)
스트라이프를 입고서 고집센 눈을 한 할배가 'I don't seek, I find'라고 말하면서 나보고도 발견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이 그림을 보고 두근댔던 게 기억났다. 다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말라가-파리를 가기로 했다. 오직 피카소 뮤지엄을 보려고. 니스쪽에도 하나 있는데 작년에 니스-칸을 갔을 때 도시 인상이 별로라서 거기는 뺐다. 

마드리드에서 게르니카도 볼까 했는데 스페인에서 너무 늘어질 것 같아서 그냥 바르셀로나-말라가로 만족하기로 했다. 게르니카는 마드리드에 있을 때 네 번이나 봤으니까 아직은 괜찮다 하면서 다음 여행(은 이미 확정된 것)으로 미뤘다.

일본에 있는 엄마아빠한테도 거의 '카톡통보'로 "나 여행가" 라고 보내고는 여행을 질렀다.


2.
5월 5일

비행기표를 찾다보니까 중국항공사 제외하고, 영국 랜딩만 아니면 유럽가는 건 80이 적정선이 된 것 같다. 마지막 비수기인데다가 직항도 아니니 딱 이정도면 준수하네 하고서 BA로 끊었다. 
돌아오는 게 새벽 비행기라 공항 노숙을 해야할까 싶었는데 뭐 그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우선 질렀다.

Barcelona in- Paris Out, (transfer at LHR)

5월 6일
바르셀로나 숙소를 예약했다. 난생 처음 '호텔'로 여행을 간다. 세상 좋아졌다.... 돈 없다고 24인실 호스텔 쓰던 내가 5년도 안돼서 호텔이라니! 출장때는 몇 번 가봤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여행에서 호텔을 쓴다는 게 좋았다. 별 두개짜리 그닥 비싼 호텔은 아니었어도 혼자 방에서 뒹굴뒹굴할 생각을 하니 이베리아반도 공포증도 좀 사그라들었다.

말라가는 숙소가 호텔은 죄다 바닷가 근처고 시내 중심은 내 버짓을 너무 넘어섰다. 어쩌나..다시 원래대로 호스텔을 예약했다. 

파리는 자주 가던 수도원 호스텔로 가기로 했다. 3박을 하니 예약이 안되는데 2박+1박으로 쪼개서 넣어보니 됀다. 오 야-르. 아침마다 에펠탑 앞에서 산책해야지 하는 기쁜 마음으로 또 예약을 마쳤다. 
공항 노숙을 하면 분명 돌아와서 사나흘은 누워 골골댈 것 같아 마지막 밤은 샤를 드골 근처의 호텔을 에약했다. (이 호텔 절대 하지 말라고 나중 글에 꼭 써야지. 정말 아휴.....ㅋㅋㅋㅋ)

5월 7일
이동하는 비행기 예약을 마쳤다.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때만 타는 '피치 항공'보다 더 싫은 '라이언에어'를 한 번 타야한다는 게 좀 싫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돈 더 주고 좌석배정+짐 패키지로 했으니 좀 낫겠지. 

에어 유로파는 LCC인것 같은 데 스카이 팀이었다. 라이언에어로 좌석배정+짐 패키지 했을 때보다 한 10유로정도 비싼데 스카이팀 마일리지, 기내 음료까지 생각하면 이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환전은 인터넷으로 하고 공항에서 받기로 했다. 위비톡인가 광고에서 막 나오던 걸 처음 써봤는데 나쁘지 않다? 면세 적립금을 친구들한테 퐁퐁 나눠주면서 인심도 썼다. 


3. 
여행 준비는 가서 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뮤지엄이 하나, 말라가에는 두 개 (Fundacio & Museo 이렇게 있음), 그리고 마레 지구의 피카소. 이거만 가면 되고 나머지는 알아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짐만 쌌다.

28리터짜리 캐리어를 들었다가는 욕하면서 올 게 뻔해서 20리터로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욕은 했다. 샹젤리제에서 리무진 타러가면서 "내가 다신 오나봐라" 이러면서 멍청하게 사재낀 나를 원망하면서.

Monday, May 2, 2016

식신 (食神, The God of Cookery, 1996)


1
코미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힘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을 줘서 세게 말하면 갑자기 사회극이 되어버리고, 또 너무 힘을 줘서 수위가 높아지면 싸구려가 돼버린다. 막 웃기게 치고 달리다가 툭 하고 빠지는 그 지점에서 웃음을 터지게 만들어야 다시 봐도 웃긴 장면이 나온다. <듀 데이트>나 <쥬랜더>같은 영화들이 다시 봐도 웃긴게 배우들이 정색하고 '난 웃기려고 하지 않아' 하고 미친 짓을 해대다가 어느 순간에 툭 끊는다. 그래서 터진다.

2.
주성치 영화는 어이없게 치고 달리다가 그 앞에서 툭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돼면 내가 이거 왜 웃지? 하고 웃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하면서 또 웃는다. 멋있는 척을 하는 것 같다가도 '어 이거 아닌데?' 하면서 되게 어이없는 말과 액션을 보여준다. 성룡이 그 어이없는 상황에서 아뵤 하면서 정의의 사도로 일어난다면 주성치는 '에이' 하면서 슬그머니 뒤로 빠지면서 살짝 훅을 날리는 스타일이랄까.

3.
주성치가 식신에서 쫓겨나게 된 계기도 엄청난 음식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탕면때문이고, 다시 올라서게 된 것도 오줌싸개 완자다. 엄청나게 대단한 음식이 아니라 그냥 정- 말 홍콩 길거리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요즘은 이런 음식 찾기도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포장마차가 쉽게 안보이는 것처럼) 음식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고간다. 정말 온몸으로 (콧소리를 홍홍 내면서) '헝-거엉'을 외치는 영화다. 소림사도 성룡이나 이연걸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 신성한 공간도 아니고. 영화에서 주성치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4.
캣스트리트도 이젠 조악한 관광객 시장으로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이 영화 안의 猫街는 강호의 도와 형제의 의리가 있다. 영화 느낌이랑 비슷한 곳을 찾으려면 캣스트리트보다는 오히려 야우마테이 뒷골목이 더 닮았다. 학교 다닐 때 자주 갔던 Mr.Wong도 뒷골목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가게 있는 골목이랑 비슷한 느낌? 음식도 딱 저 수준이었으니.

5.
막문위는 거의 '강호의 도가 바닥에 떨어졌다'를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의리를 지키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알고보니 그게 義가 아니라 愛였다는 장면에서 한 번 웃겼다. 사랑밖에 모르는 나는 여자이니까....의 실사판이랄까. 

원래 예쁜 언니라 그런지 망가지는데 별로 두려움이 없었나보다. 젊은 여배우가 저런 분장하고 저런 역할 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애인이 감독이라 그런지 그렇게 추녀 분장을 해도 사랑스럽다. 특히 주성치를 잡으려고 아이섀도우 빡 하고서 눈 껌뻑이면서 나오는데 이게 그냥 일반적으로 찍었으면 으잉 이랬을텐데 사랑하는 마음으로 찍었을테니 '못생겼지만 귀엽다'. 마냥 예쁘게 나오던 열애상흔때보다 여기서 더 매력적이다.

6.
캔토니즈 영화는 자막이 안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1달을 1년이라고 하고, 대화 장면에서 약간 뉘앙스가 틀린 부분이 있었는데. 캔토니즈를 다시 시작해볼까 하다가도 쌓여있는 hsk 책을 보면서 저거나 하자 하고 책을 덮었다.

7.
내쫓기고 매맞던 주성치가 막문위한테 챠슈덮밥을 받아들고 '너무 맛있어' 하면서 허겁지겁 먹는데 그 마음이 1000000000000% 와닿는다. 다시 돌아가서 챠슈를 먹고, 커리를 먹어도 그때 그 맛이 안 느껴지는 건 내가 그때보단 마음이 덜 힘들어서겠지. 

Thursday, April 14, 2016

뭐라도 되겠지

학교에 감사한 게 있다면 도서관이 잘 돼있다.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지만 장서 종류가 꽤 다양했다. 없는 책은 신청하면 2주 내로 받을 수 있다. (경쟁 치열한 건 내가 1등으로 신청해야 받아볼 수 있지만) 학교에서 신청해서 본 책값을 따지면 한 18학점 어치? 그리고 학교에서 읽은 책들로 하면 한 3학기 등록금값은 했다.

2관 5층에서 나는 하릴없이 책을 읽었고 목적없이 '서가 뽀개기'를 해댔다. 어떤 영화감독이 자기네 학교에 있는 소설책을 다 읽었다는 카더라를 듣고서 질 수 없다며 그냥 책을 읽게 됐다. 이전처럼 독후감을 쓰지도 않았고, 독서노트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2관 5층에는 좌 소설 우 예술관련 책이 있었다. 대학에와서 지적 허세에 굶주렸던 나한테는 딱이었다. 6층은 여행이나 세계사라서 여기서 가지고 내려와서 읽기에도 편했다. (6층은 서가가 작다.)

무슨 작가의 책을 읽겠다가 아니라 오늘은 세 번째 서가 세 번째 줄을 한 번 작살내보자 하는 식이었다. 2관 5층에 그래픽 노블이랑 만화책도 있어서 그 줄이 걸리는 날은 그냥 쌓아놓고 읽었다. 한 시리즈를 다 대출해가면 지하철에서 무겁고, 만화책을 빌려가면 폼이 안나서 만화책 같은 건 학교에서 읽고 집에 갈 때는 좀 거리에서 읽을만한 책을 읽었다.

오른쪽에서는 영화나 현대 미술 (영국 yBa)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연극이나 공연은 그때도 좋아하지 않아서 감독 서평집이나 아니면 미술 화집을 봤다. 한창 허지웅씨가 시빌워를 얘기해서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 기억도 난다. (이게 도착하기 전에 난 영국으로 출국했다.........)

왼쪽은 문학이었다.  앞라인은 한국작가, 뒷라인은 외국작가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 시리즈는 몇 번 읽었다. 김전일이랑은 비교할 수 없게 무섭다. 그림보다 더 심리적으로 쫄린다. 팔묘촌을 읽지 않은 자와는 김전일 할배 얘기를 할 수 없다. Fluke Joanne의 쿠키 시리즈(여자 주인공이 베이커인데 추리도 한다. 한 책마다 쿠키나 베이킹 레시피가 큰 축이 되고 거기에 맞춰서 살인사건이 터진다. )는 맨 윗라인에 꽂혀있었는데, 그 책이 인기있는 것도 아닌데 꽤 많아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소설은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박민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지...? 했고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 내가 감성이 메말랐나? 하다가 신경숙의 책을 읽다 다시 팔묘촌을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을 용도로 에세이를 몇 권 빌렸다. 그때 읽은 기타노 다케시는 아마 내가 이렇게 '다 죽어라' 하고 삐딱해진 이유다. 그전까지는 소심하게 삐딱했다면 다케시 자서전 두 권을 읽고는 견고하게 삐딱해졌다.

한국 작가는 소설에 대한 편견이 에세이에도 작용해서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라도 되겠지>도 그 때 읽었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제목이 내 어깨에 내려진 짐을 툭툭 덜어주는 것 같아 술술 읽고, '어른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자의식에 빠져서 '난 특별하게 슬퍼' 하는 에세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니까 버텨' 하는 깨우침서를 보다 이런 책을 읽으니 그냥 편했다.

나처럼 듀데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 행오버나 쥬랜더도 봐야하는데, 보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트위터가 있었다면 분명히 '쥬랜더도 꼭 보세요' 라고 했겠지. (다행이다...그때는 트위터를 몰랐다!)

나는 8중혁만큼의 글도 쓰지 않았고, 박재범이 나간 것에 대해 저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탈퇴 후에 그 간담회에만 집중했다) 하면서 이 책을 넘겼고 그렇게 흘려보냈다. 거창하지 않은 말투로 자기 얘기를 하는 또렷하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4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김중혁씨처럼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 시간을 선택했다. 이 사람은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치면서 부러울 게 없다고 했지만, 나는 세상 모든 게 다 부럽다. 시간은 있지만 한가하진 않다. 마음이 궁핍하다. 나는 김동현보다는 작은 짐짝이 돼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데 재능은 언제쯤 생길지 초조하게 나를 들볶았다. '뭐라도 되겠지'에서 뭐라도가 4년전에는 whatever였다면 지금은 what으로 변해서 '뭔가' 돼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목적없이 읽은 책은 기억에 남지만 뭔가 하기 위해 읽은 책은 잘 잊힌다고 했다. 졸업하고 일하다가도 전공책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고, 스터디 때문에 읽는 책은 장을 넘기면 다 까먹기 일쑤지만, 2관5층의 책은 가끔 떠오른다. 그때 아무 생각없이 오늘은 이 책장을 다 비우겠다던 목적없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지금은 목적으로만 가득차서 계산하고 재느라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겠다.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뭘 해야한다 생각에 굳어버려서 결국 계속 제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