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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3, 2016

가족여행

1.
가족 여행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
항상 '가족이니까'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가족이라서' 맞춤을 당연히 여기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그래서 싸운다.

친구면 그냥 여행가서도 쌩하고 갈라서서 따로 다닐 수도 있겠지만 집에 함께 돌아가야 하는 가족은 그럴 수가 없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짜증과 불만을 내재화한 사람은 그냥 이 짜증을 사방팔방 다 튀겨내고 만다. 항상 그랬다. 내가 문제다.


2.
나는 여행이 새롭지 않다. 영국에 있을 때 석 달에 한 번은 외국을 나가려고 했고, 그게 아니면 런던이든 어디든 계속 돌아다녔다. 홍콩에 있을 때도 광저우를 가거나 마카오를 가서 내 여권은 다른 가족보다 좀 더 빼곡하게 채워졌다.

국내 여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ㅁㅁ, 제2의 ㅁㅁ라는 곳들이 넘쳐나지만 대부분 그 오리지널리티를 봤기 때문에 그냥 시큰둥하다. 비행기를 타거나 낯선 곳을 갔을 때 느껴지는 신선함이 별로 없고 모든 게 기시감이 느껴져서 재미가 없다.

가장 힘든 건 음식들. 나는 향이 풍부한 음식들보다는 플라스틱향이 느껴지는 정크푸드에 길들여진 입맛이라 생선도 안먹고, 향이 강한 김치도 못먹는다. 여행에서는 평소보다 음식을 덜 가리는 편인데, 생선만큼은 도저히 못먹겠어서 생선이 주류인 나라 (eg. 스페인, 포르투갈 혹은 이베리아 반도)에 가면 살이 빠져서 온다. 이번 여행지는 또 통영이었다. 통영은 바다고 바다는 생선. 또 고생할 게 보였다.


3.
아빠도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아빠는 새로운 걸 하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음식이 나오면 꼭 먹어봐야 하고 전시가 시작하면 꼭 가봐야 한다. 나름 '세련된'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내 감성을 기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아빠는 직접 하는 데 약하다. 그리고 '하고 싶다'는 사실이 앞서나가서 '같이 왔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종종 발생한다.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처럼 슝 혼자 나가는데 문제는 거기서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이런 점 때문에 여행에서, 특히 해외에서 아빠랑 꽤 트러블이 잦았고, 일본에서는 엄청 싸웠다. (속으로 내가 다시 가족여행을 오면 월북한다... 이 생각도 했다.)


4.
엄마는 여행을 가면 항상 준비가 완벽하다.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고, 가방에는 항상 우리 짐까지 들어가있다. 몇 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이제 니네 짐은 니가 들어'라고 하지만, 결국 엄마 가방에는 우리 신분증, 폰, 그리고 몇몇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엄마랑 부딪히는 경우는 사실 엄마랑 직접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하도 아빠한테 짜증을 내서 '지금 아빠한테 뭐하는 짓이야' 하면서 간접적인 문제다. 물론 내가 정말 싸가지도 없고, 그래서 아빠한테 오만상을 다 찌푸리면서 여행와서까지 짜증을 내고.. 그랬던 건 사실이지만 엄마랑 싸우면 그게 더 커진다.

불과 불이 맞붙으면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튀는데 그렇다... 엄마랑은 안싸우는 게 최선이다. 태국에서 엄마랑 정말 따로 갈뻔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엄마랑 붙을 징조가 보이면 이제 내가 피한다. 20년 이상 엄마랑 살면서 배운 건 이거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게 이기는 거다. 엄마한테는 이길 수가 없다.


5.
동생들은 사실 무난무난한 성격이다. 딱히 가리는 음식 없이 거기 가면 그거 먹고 저기 가면 저거 먹고, 어디서든 잘 자고,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휴가나온 이일병(인지 이병인지 여튼 군인)은 부대에서 대전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성심당 빵을 가득 안고 나타났고, 끊임없는 식욕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래도 이제 좀 컸다고 짐을 먼저 잡아들고 가는 거 보면 '애는 착하다.'

여동생은 그냥 잘 맞춰주는 성격이기도 하고, 여튼 나보다는 착하다. 다들 나보다는 착하다는 데 포인트가 있다. 이렇게 쓰고 보면 내가 문젠데...



6.
그래도 이번 여행은 신기하게 잘 흘러갔다.
국내외를 거치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래서 그런지 나도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회를 먹을 때는 옆에서 소세지를 구워먹었고, 생선탕을 먹을 때 옆에서 혼자 조용히 성심당 빵을 뜯었다.

아침에 커피 드리퍼까지 준비한 덕에 나름 만족할만한 시작을 해서 그런지 그냥 모든 게 아름다웠다. 바다가 보이는 콘도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다 참을만 하다. 아 이게 참 단순한거였는데 왜 지금까진 이걸 모르고 그냥 없는거에만 짜증을 냈을까. 결국 모든 건 다 커피의 문제였던건가. (마지막 가족 여행은 캄보디아였는데 그때 커피가 정말 최악의 커피 3선안에 꼽을 수 있다. 커피에서 오이향이 났다)

더웠지만 생각보다 버틸만 했고, 아빠도 앞서나가기 보다는 어느 정도 가족과 함께 속도를 맞췄다. 이제 엄마 가방에 모든 걸 구겨넣기보다는 각자 자기 취향대로 가방을 매거나 주머니에 넣는다.

같은 장소에서 3분 이상 못있고 짜증내던 나도 지쳤는지 그냥 털썩 주저 앉는다. 그러고 보니까 여러 모습도 보이고 낄낄대며 동생들이랑 사진도 찍는다. 아마 이번 여행이 가족이랑 사진을 제일 많이 찍은 것 같다. 아빠의 새로산 갤7로 사기도 몇 번 치면서 그렇게 하하호호 하다보니 싸움도 짜증도 줄었다. (없다는 아니다. 줄었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돌아가서 여행하면서 낯설 정도였다. 이제 한 번쯤 터질 때가 됐는데 왜지? 왜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엄마가 아팠던 걸 빼면) 너무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7.
결국 맞춰짐의 문제다.
요즘 내가 단체 사회성이 결여됐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동안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성불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내 중심으로 모든 걸 맞췄다. 나를 굽히기 싫어서 결국 혼자 떠나버리기를 반복했다. 조금만 더 이해하고 참았더라면 이런 정도까지는 안갔을 텐데. 맞춤을 강요하기 보다 내가 조금 더 맞춰졌다면, 계속 이런 후회가 든다.

그런데 장담컨데 나는 아마 다시 여행을 가면 또 싸우겠지. 아마 그럴거다. 사람은 쉽게 안변하니까.. 아 진짜 쓰고 나니까 내가 괴물같네. 

Tuesday, May 31, 2016

Let it go

파리에서는 폰 와이파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랩탑만 가끔 돌리고 폰은 그냥 데이터로만 썼다.

사진을 정리한다고 그냥 한 300장을 뭉텅이로 지웠다. 당연히 99달러 주고 프로로 업데이트한 드롭박스에 저장되었을거라 생각하면서 깡그리 지웠다. 썸네일 캐시 이런 것도 깔끔하게 지웠다.

문제는 내가 와이파이에서만 싱크를 하게 해놔서 저장이 하나도 안됐다. 
며칠전에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려고 봤는데 스페인 사진만 덩그러니 있고 파리는 아무것도 없다. 피카소 뮤지엄도, 세 번이나 허탕치고 가서 올라간 노트르담 꼭대도, 울면서 미사듣던 노트르담 성당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온리 스페인 저스트 스페인. 아 물론 스페인이 나쁘지 않았지만 심혈기울인 사진은 다 파리였는데. 공부하려고 찍어놓은 몇 장면도 있었는데 다 사라졌다.

완전 패닉... 어 뭐지? 내가 왜 이랬지 하는 생각부터 바로 데이터 복원을 뒤졌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끙끙대기도 하고 혹시 없을까 계속 드롭박스를 들락날락하고 그러다가 데이터 복원까지 찾아봤다.


국정원, 세월호 사건에서나 보던 데이터 포렌식을 검색해보니 꽤 업체가 많았다. 세월호 폰 복원 기사에서 많이 보이던 업체에 전화를 했다.

가입증서랑 신분증같은 걸 준비해서 찾아가면 된다고 해서

그냥
갔다.

프린터는 엄마아빠방에 있고 나는 올레에 가입하지 않아서 귀찮았고 가면 더 빠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갔다.

들어가서 "데이터 복원때문에 왔는데요..." 했더니 "여기 번호랑 필요한 서비스에 체크만 해주세요" 하고 요금을 설명한다. 전화로 들었던 가입증서도 달라고 하지 않았고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거 하시면 삼성페이는 포기하셔야돼요"
편의점에서 쏠쏠하게 쓰고 있어서 아쉬웠는데, 어차피 곧 폰을 바꿀 것 같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절차는 간편했다.
기본 요금을 우선 내고 세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폰을 찾는다. 그 다음날 오후정도에 팀뷰어로 어떤 파일이 복원됐고 사진이 몇 장정도 됐는지를 듣는다. 그리고 결제하면 파일을 받는다.

팀뷰어로 볼때 어 파리 사진이 있다, 기쁜 마음에 바로 결제했다.

사진 파일을 쭉 받고 보는데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한 번도 본 적없는 카카오톡 대화상대의 프로필 사진이 다 저장돼있었고, 인스타에서 좋아요만 한 번 눌렀던 외국 사람의 사진이 저장돼있었다. 내가 올린 사진들의 썸네일이 부분부분 저장돼있었고 여러 메신저에서 나랑 얘기하던 사람들의 프로필이 차곡차곡 다 복원됐다.

결국 나는 내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정보를 그 사람들 모르게 복원해 갖게 된거다.

이건 그래도 내 폰이었지만, 대부분의 업체에서 문자 복원, 통화목록 복원, 아니면 메신저 대화 복원같은 서비스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보는 복원되고 기록될 지 모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은 내가 그 사람의 프로필의 변화를 다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겠지. 인스타에서 내가 본 모든 사진이 저장돼면서 내가 팔로우한 사람의 개인적 사진도 다 복원됐다.

결국 무작위로 복원시키는 이 기술 덕분에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복원돼고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엄청난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기술은 점점 더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개인의 정보가 '개인 정보'가 個人이 아니라 開人정보가 된거다.





파리 사진이 복원 됐는데.... 2016년 5월이 아니라 2015년 5월이다. 결국 이 사진은 증발해버렸고 나는 내가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무수한 사진과 내 돈, 삼성페이를 맞교환했다. 그냥 잃은 건 잡지 말고 Let it go해야 했다.

더 웃긴 건 2015년에 본 그림인데도 2016년에 하나도 기억 못하고 "이런 건 처음이다"라고 일기를 썼다는거다. 그니까 처음 봤다 이러면서 오오오 했지만 난 이걸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반복했다. 그림을 보고 내가 뭔가 달라지거나 미적 감각이 엄청나게 늘지 않는 이유인건가. 


이 일을 계기로 사진보다 직접 쓰고 보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이번 주말부터 동네 문화센터에서 뎃생을 배우기로 했다. 기록해서 붙잡고 있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젠 정말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기록을 하고 싶다. 

Tuesday, May 24, 2016

여행 준비

1. 
이번 여행은 많이 무모했다.

엄마아빠를 일본 보내드리고서 나도 뭔가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한 40퍼센트 정도는 차 있었지만 그래도 작년처럼 또 그런 '미친 짓'을 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참자 참자...했다.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 참다가 생일 즈음이 다가오면 혼자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맹렬하게 든다. 광저우-파리-베를린-파리 이렇게 몇 번을 혼자 지내고 나니까 더더욱. 이번에는 조용히 집에서 혼자 보내봐야지 했는데.


2.
시험에서 바라던 결과가 안 나왔다. 할일이 없어 책을 열심히 읽었다. 화집도 봤다.

우연히 사진을 보다가 피카소 그림을 봤다. Massacre in Korea (신천에서의 학살?)
스트라이프를 입고서 고집센 눈을 한 할배가 'I don't seek, I find'라고 말하면서 나보고도 발견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이 그림을 보고 두근댔던 게 기억났다. 다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말라가-파리를 가기로 했다. 오직 피카소 뮤지엄을 보려고. 니스쪽에도 하나 있는데 작년에 니스-칸을 갔을 때 도시 인상이 별로라서 거기는 뺐다. 

마드리드에서 게르니카도 볼까 했는데 스페인에서 너무 늘어질 것 같아서 그냥 바르셀로나-말라가로 만족하기로 했다. 게르니카는 마드리드에 있을 때 네 번이나 봤으니까 아직은 괜찮다 하면서 다음 여행(은 이미 확정된 것)으로 미뤘다.

일본에 있는 엄마아빠한테도 거의 '카톡통보'로 "나 여행가" 라고 보내고는 여행을 질렀다.


2.
5월 5일

비행기표를 찾다보니까 중국항공사 제외하고, 영국 랜딩만 아니면 유럽가는 건 80이 적정선이 된 것 같다. 마지막 비수기인데다가 직항도 아니니 딱 이정도면 준수하네 하고서 BA로 끊었다. 
돌아오는 게 새벽 비행기라 공항 노숙을 해야할까 싶었는데 뭐 그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우선 질렀다.

Barcelona in- Paris Out, (transfer at LHR)

5월 6일
바르셀로나 숙소를 예약했다. 난생 처음 '호텔'로 여행을 간다. 세상 좋아졌다.... 돈 없다고 24인실 호스텔 쓰던 내가 5년도 안돼서 호텔이라니! 출장때는 몇 번 가봤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여행에서 호텔을 쓴다는 게 좋았다. 별 두개짜리 그닥 비싼 호텔은 아니었어도 혼자 방에서 뒹굴뒹굴할 생각을 하니 이베리아반도 공포증도 좀 사그라들었다.

말라가는 숙소가 호텔은 죄다 바닷가 근처고 시내 중심은 내 버짓을 너무 넘어섰다. 어쩌나..다시 원래대로 호스텔을 예약했다. 

파리는 자주 가던 수도원 호스텔로 가기로 했다. 3박을 하니 예약이 안되는데 2박+1박으로 쪼개서 넣어보니 됀다. 오 야-르. 아침마다 에펠탑 앞에서 산책해야지 하는 기쁜 마음으로 또 예약을 마쳤다. 
공항 노숙을 하면 분명 돌아와서 사나흘은 누워 골골댈 것 같아 마지막 밤은 샤를 드골 근처의 호텔을 에약했다. (이 호텔 절대 하지 말라고 나중 글에 꼭 써야지. 정말 아휴.....ㅋㅋㅋㅋ)

5월 7일
이동하는 비행기 예약을 마쳤다.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때만 타는 '피치 항공'보다 더 싫은 '라이언에어'를 한 번 타야한다는 게 좀 싫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돈 더 주고 좌석배정+짐 패키지로 했으니 좀 낫겠지. 

에어 유로파는 LCC인것 같은 데 스카이 팀이었다. 라이언에어로 좌석배정+짐 패키지 했을 때보다 한 10유로정도 비싼데 스카이팀 마일리지, 기내 음료까지 생각하면 이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환전은 인터넷으로 하고 공항에서 받기로 했다. 위비톡인가 광고에서 막 나오던 걸 처음 써봤는데 나쁘지 않다? 면세 적립금을 친구들한테 퐁퐁 나눠주면서 인심도 썼다. 


3. 
여행 준비는 가서 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뮤지엄이 하나, 말라가에는 두 개 (Fundacio & Museo 이렇게 있음), 그리고 마레 지구의 피카소. 이거만 가면 되고 나머지는 알아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짐만 쌌다.

28리터짜리 캐리어를 들었다가는 욕하면서 올 게 뻔해서 20리터로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욕은 했다. 샹젤리제에서 리무진 타러가면서 "내가 다신 오나봐라" 이러면서 멍청하게 사재낀 나를 원망하면서.

Sunday, April 19, 2015

봄나들이

중간고사 준비한다고 집에 안온 (우리집의 유일한 학생) 막내를 빼고 가족끼리 청산도에 갔다. 사실 청산도 가는 길이 세월호 사고지와 그닥 멀지 않은 곳이라 이 시기에 거길 가는 게 좋은 일일까 그런 생각도 많았고 2박 3일 걷기만 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숙소가 1박밖에 되지 않았고 1박만 하고 일요일은 집에서 일을 한다는 가벼운 계획 아래 남도에 갔다.

차를 타고 가는 건 이상하게 힘들다. 남이 몰아주는 차를 타는데도 (아빠 미안... 장롱면허만 8년차) 속이 미슥거리고 얼굴에 열꽃이 핀다.
해남까지 가는 길은 아침에 맥모닝을 사고 다시 집에 들러 빠진 짐을 챙겨갔는데도 불구하고 5시간? 정도가 걸렸다. 아빠가 자랑하던 떡갈비를 먹고 다시 서둘러 완도 항으로 갔는데 배까지 앞시간으로 당길 수 있었다.

예전에 채현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여기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다는 얘기를 몇 번 들으면서, 그 때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배를 탔는데 마찬가지였다. 그 참사 이후로 배에 대한 무서움이 커졌는지 가방은 단단히 싸고, 주머니에 신분증은 군번줄처럼 빠지지 않게 단단히 넣어놨다.

청산도는 작은 섬이었고 제주도랑 비슷하지만 더 작았다. 유채꽃이 가득했고, 내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인 서편제의 배경이기도 해서 섬 곳곳이 서편제 관련 어트랙션이 많았다. 기억조차 안나는 봄의 왈츠? 라는 드라마를 찍었다고도 하고 분명히 들어는 봤는데 본 기억이 없는 드라마, TV의 로케이션 촬영지였다고...

결론은 잘 다녀온 것 같다. 오랜만에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었고, 숙소에서는 별도 보였다. 제주도가 외가이지만 유채꽃은 한 번 본적 없던 내가 원없이 유채꽃을 볼 수 있었고 밤에는 엄마, 아빠의 걱정어린 몇 마디를 (mostly about marriage.....) 들으며 '아....'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도돌이표 수백 번을 그렸다. 엄마아빠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음 그럼 나 유럽 잠깐 다녀올게" 이 말이 계속 맴돌았는데 나도 염치가 있는지라 목울대가 막혀오도록 꾹꾹 참았다.

여행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내가 바라던 형태는 아니었지만(I love CITY!), 잘 쉬고 왔다.


그런데, 모듬회 딱 한 점 먹은 나만 또! 또! 장염에 걸려서 일하려던 일요일을 다 날린 건 안 자랑..... 피부 알러지는 기본 옵션으로 달고 왔다. 다녀와서 흰죽에 섬에서 사온 느릅나무 껍질을 차로 끓여마시면 위와 장, 염증에 좋다고 해서 지금 그것만 마시고 있는데.... 왜 나만...? 캄보디아 다녀왔을 때도 노로 바이러스에는 나만 직쌀나게 걸렸는데, 정말 당분간 여행은 접어야하나.

Saturday, November 23, 2013

24시간이 모자라

1. 
암스테르담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걷고걷고 걸었다. 

먹는 건 대충 길거리에서. 레스토랑에 간 게 딱 한 번. 공항 오고갈 때를 제외하면 버스는 단 한번도 타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살은 좀 빠져온 듯한 느낌도. 

빈센트 반 고흐, 고갱, 램브란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CoBrA라는 새로운 학파.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약자라고. 느낌있는 그림이나 아티스트들이 많아서 검색하면 왜 자꾸 뱀이 또아리를 틀고 나타나는걸까. 

암스테르담에서도 사이트는 확인했고 암스테르담에서도 계속 업무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다. 와이파이가 콸콸콸 터지는 박물관에 들어설 때마다 업무메일을 체크했고 안나랑 인터뷰 프로세싱 확인만 했다. 이게 뭐지, 난 휴가였는데. 머리가 맑아지다가 다시 탁해지다가를 반복했던 5일. 

그래도 더 스테일 작품도 많이 보고 어느 정도 내 인생에 대한 방향은 잡은 것 같다.

2.
첫 미팅에서 느낌이 좋았는데 일도 재밌고 우선 내가 존중받는 느낌이라 좋다. 바쁘다고 하지만 채근대지 않고 내 일을 인정해주는 느낌. 내가 하는 일은 롱리스트 작성에서 숏리스트, 그리고 내 코멘트를 덧붙이는 것. 지난주에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벌써 세 편을 썼다. 그 중에 하나는 영화는 영화다. 평소같았으면 꽤 흥미로운 영화였을 것 같은데 피곤한 상태여서 그런지 그냥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나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영문 시놉시스가 영화 공홈에 엉망으로 되어있는 게 꽤 많아서 영진원 사이트에 앞으로 매일 들어가야 할 것 같다. 

3.
그리고 화요일 미팅에서 앞으로 프로베션(수습?) 끝내고 이제 퍼머넌트 정식 계약하자는 오퍼를 받았다.. 나이라는 내가 이런 소식에도 안웃어서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그 얘기를 듣고 그냥 나는 '음 고마워. 근데 이거 내가 작성한 기획안인데, 좀 봐줄래?'하면서 2주전에 자료 뒤져가며 만든 보고서를 제출했으니. 

감정표현이 많은 편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덤덤했을까. 나이라는 내가 그동안 다른 팀멤버들도 많이 도왔고 아이디어도 좋았고 마켓 크기에 비해 꽤 좋은 수치를 내고 있다고 칭찬해줬다. 앞으로 좀 더 많은 편집권이나 제작권한 준다고 엄청난 기회라고, 내 안에 더 많은 걸 보여달라고 그러는데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띵했다. 내가 뭘했던거지? 내가 뭘 더 해야하지? 그리고 내가 더 여기 살아야하는건가?

물론 그동안 업무가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갑작스레 외국 생활이 더 길어지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무섭기도 했다. 나는 이 나라에 뼈를 묻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리고 내 전공은 마케팅도 아닌데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갑자기 회의 아닌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4. 
그러던참에 맷이 와서 마음의 안정이 좀 됐다. 오랜만에 홍콩에서처럼 하루 두 탕 영화도 보고 (영화를 보고 온 사이 집의 인덕션이 사라졌다!) 집에 와서는 맥앤치즈+맥주에 밤새 얘기도 하고.

맷은 내가 너무 지레 겁먹고 걱정하는 게 아니냐고 그랬다. 음, 내가 그랬나? 맷은 내가 '이구역의 짱미친년'이었을 때 봤으니 지금의 내가 어색할수도. 

5.
예전의 나는 겁없고 그냥 무턱대고 들이댔다면 요즘은 재고 먼저 고민하고 먼저 끙끙대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텐데. 세상의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내가 다시 움직이고 부딪히며 그 과정이 결국 다시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돌아온다는 걸 배우고 있다. 아 지금 뭐라는거지? 졸려서 머릿속에 생각하는 말이 자꾸 엉키네. 

6.
안나한테 메일을 보내서 내가 지금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 메일로 집에서 일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원래는 안되지만 나를 잡고 싶으니까 예외적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제 wanted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 어느 정도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더 실감난다. 

6.
학부모들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구나.

7. 
여하튼 너무너무 바쁘고 피곤하다. 월요일 여덟시 십삼분 기차를 타며 시작한 한 주가 토요일 일곱시 사십오분에 마감. 그리고 내일 열한시면 또 다시 경기. 이 생활을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나라에 와서 남자복은 없어도 일복은 아주 터지는구나. 

도비는 양말을 받기 전까지 노예입니다. 그렇다면 내 양말은 언제쯤?

Friday, November 1, 2013

Amsterdam

1. 
어릴 때는 뭔가를 좋아하면 그 대상에 나를 내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 안되고 오직 그 특정 대상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조금만 고개를 돌려봤다면 더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대학교 과 생활에도 좀 더 참여하고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술은 더 많이 마셨겠지만.


2.
영화를 좋아하지만 내 자신을 영화랑 동일시하고 싶지는 않다. 
축구미디어에서 일한다고 내 삶이 축구로 가득찬다면 슬플 것 같다. 
머리가 좀 차고 나니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층위로 가득하다는 게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한 단면에만 매달려 다른 것을 놓치고 싶진 않다.

3. 
요즘 조금 동기부여도 안되고 내 자신이 일상에 너무 매몰되는 것 같아서 무턱대고 휴가를 썼다. 축구가 내 일상의 전부가 되었지만 그로 인해 내 삶은 더 메말라버린 느낌. 축구를 볼 때 전혀 즐겁거나 흥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에서 틈내서 힐끗힐끗 살피는 야구가 더 꿀맛이었으니.

리그 중에 휴가간다고 했더니 미친 거 아니냐고, 한국담당자가 한국선수 있는 팀이랑 할 때 자리 비우는 게 말이나 되냐고 그러지만 여기서 더 끙끙대면 남은 시간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그냥 눈 딱 감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Amsterdam, I Amsterdam, 이제 딱 열흘 남았다! 

4.
올해 생일에 파리에 있었을 때 MCFC 오퍼를 받았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벌써 기대가 된다.  물론 신용카드, 여권, 지갑 잃어버리는 건 이제 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