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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2, 2018

변산 (Sunset in My Hometown, 2018)

1.
음악방송이나 서바이벌을 안 좋아해서 온나라가 힙합 드랍더비트 열풍에 쿵기적댈 때도 나만큼은 여기에 휘둘리지 않고 있었다. 딘이랑 딘딘이랑 다르다는 걸 최근에 예능보고 알았다. 서른이 넘어가니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도 싫어서 플레이 리스트에는 여전히 2000년대 초반 노래로 가득하다. 나에게 마지막 랩퍼는 김진표였는데 엠씨를 보고 있더라?

2.
변산은 2000년대의 플레이리스트에 쇼미더머니를 끼워맞춘 듯한 느낌이 든다. 라디오스타에서 본 것 같은 음악으로 하나되는, 음악과 함께 음악에 녹여 소박한 마을의 아름다움에 진심의 변두리에 서있는 (실제로 나오는 가사)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이게 이준익 감독의 목표였던 것 같은데.

내가 이제 옛날사람이라 그런가, 사실 랩의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다. 뭐 저게 오오 할 부분인가? 랩이 저게 좋은거야? 이렇게 따지다보니 영화는 흘러가고. 랩 배틀이라는 장면도 뭔가 오글오글. 사실 이래서 음악영화는 썩 안좋아하는데.

문제는 모국어로 랩을 알아듣는 나한테도 이런데, 외국 사람들한테는 이게 그냥 염불로 들릴 수도 있다는 거다. 나랑 비슷하게 이 영화를 본  동료도 랩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이 영화가 와닿지 않았다고 코멘트했다.

랩 자체에서 감동을 전달하기 힘들다면, 랩에 담긴 라임이나 언어적 기교까지 섭으로 번역해서 '자막의 라임'을 만들어야 했을 것 같은데, 그냥 번역이어서 아쉬웠다. 나름 노력해서 짠 가사일텐데 영어로 퉁치니까 그냥 10대의 일기장같은 느낌?

그리고 사투리를 쓰다보니 이놈의 시끼, 야이 자식아 이렇게 다양한 비속어들이 오고가는데, 사실 시끼와 자식아, 이놈~ 이걸 일괄적으로 bastard로 통일하고, 사튈의 아우 그라씅께~ 뭐 이런 말들을 다 damnit으로 퉁치다 보니 자막만 보면 이 영화는 R이다.

영화 번역을 할 때 damnit이랑 darn it, darn 이런 식으로라도 수위 조절은 해야 자막이 더 와닿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damn하는데 감정이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무덤덤하다. 이건 뭐 느와르....?


3.
언제까지 시골=순박함, 도시=성공 하지만 결국 나는 작은 내 고오향이 조와아~ 이 감성이 통할까 싶고.

전북 부안이 그렇게 시골인가...그 와중에 미경이네 집은 갑자기 서래마을 감성처럼 보여서 영화 내부에서 살짝 튀는 느낌.


4.
영화 속에서 박정민은 집 근처에서 랩한다고 마이크 하나 들고 지나다니는 사람 닮았다. 전형적인 홍대 죽돌이 스타일. 상수동은 아니고 저기 합정역 3,4번 출구나 서교동쪽에서 자주 보이는 스타일. 영화에서 여전히 귀여웠고 재밌었는데, 다음번에는 다시 진지한 역할 한 번만 해주면 좋겠다.

김고은 노래방 장면 보고서 범계역 데몰리션 노래방에서 목청껏 질러대던 과거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같이 울부짖던 친구들은 지금 뭐하고 살려나.


5.
진심의 변두리. 이 단어 하나가 자꾸 입에 멤돈다. 요즘 메마른 느낌에 자꾸 정면은 아니고 주변에서 멤돌고 딱 9할의 삶을 사는 느낌이었는데 이 단어가 딱 그걸 요약한 것 같다. 

Wednesday, August 1, 2018

만비키 가족 (Shoplifters, 2018)

1. 자본주의 체제 속 개인 삶의 파괴라는 주제는 이제 한 특정 국가에서만 나오진 않는다. '헬조선 종특'이라고 일컬어지는 문제들은 데칼코마니는 아니더라도 그라데이션으로 전 세계에서 나타난다. 흙수저, 레이버, 챠브, 레드넥, 뭐 어떻게 부르던간에 돈 없는 사람들 문제가 한국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2. '만비키 가족' 은 일본에서 가족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현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유교 영향권에서 家는 國家였고, 결국 기존 가족 체계의 파괴는 사회의 붕괴다. 이런 측면에서 비슷하게 떠오른 영화가 진부하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플로리다 프로젝트'. 좋은 사람과의 연대(다니엘-케이티), 개인의 노오력 끝에 자기파괴(케이티-무니), 그리고 만비키 가족은 기존에는 없지만 특이한 '가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각 문화권 특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영화에서도 보이는데, 나한테는 가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영화가 가장 힘들고 버거웠다.

3. 영화에서 가족의 탄생은 선택적이다. 기존 가족이 혈연이라는 '운명'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이 가족은 개인의 의지에 의해 탄생한 조합이다. 가장 어린 린조차 자신의 오빠와 보호자를 선택하고, 이름을 바꾼다. 어쩌면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이 조합은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아저씨도 아니고 아빠도 아닌, 엄마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지만 그게 무엇이건 상관없는 공동체. 생존을 위해 뭉쳐서 생존 그 이상의 관계를 맺은 이 관계는 기존 가족 시스템으로 보았을 땐 '유괴', '복지 도둑'으로 보일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건 그 할머니의 '연금'이 필요해서였고, 아이를 돌려보내지 않아도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범죄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를 따지는 경찰을 보여줄 때 '제도가 가지는 헛점'을 대변하는 위치로 그리려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불친절하게 그려지는 것은 경찰과 제도. 그리고 그 제도를 악용하는 빨래공장 동료같은 사람들이다.

4.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건성피부, 건조한 목소리라서 득 보는 영화라고 말하곤 했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어떤 인물에도 동감가긴 어렵다"라고 했다. 나는 그게 이 감독의 힘이자 특징인 것 같다. 한 인물에 빠지게 되면, 그냥 그 인물에 대한 '판가름'으로 끝이 나고 사건은 단편적으로 끝난다. 관조적인 시선, 대상과의 거리두기, 이렇게 한 인물에 빠지는 걸 감독이 적극 방어해나가면서 오히려 덤덤하게 전체 사건을 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기존 사회적 통념에 비추었을 때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지 않나. 나같은 꼰대가 삐딱하게 보는 걸 막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라고 설득하기 위해 감독은 계속 거리를 두고, 인물보다 전체 그림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이번 영화에서는 여름의 이미지까지 더해가면서 자칫하면 '막장'이 될 수 있는 이 얘기들을 잘 희석시킨다. 우악스럽지 않은 막장 - 멀리보면 예쁜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처절한 비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이 영화에서는 먹고 먹고 또 먹는다. 국수를 먹고, 라면을 먹고, 고로케를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먹고 사는 문제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먹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욕구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기본 생존 수단에 그치고 있다. 영화에서 밀개떡을 먹고 싶어도 제대로 표현 못하는 린의 표정, 도득질을 해서 '먹는다'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걸까? 쇼타가 일부러 잡힌 것도 이렇게 먹고는 살지만, '먹고 사는데에만 그치는' 삶을 동생 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이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수급자 애들이 감히 '돈까스'를 먹냐고 난리났다는 얘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가난하면 욕구조차 단순하게 채워넣어져야 한다는 믿음.

6.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유럽과 미주에서도 이런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가 나왔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여기에 꼽을만한 사례가 없을까?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이 대기업의 자본에 잠식당해서? (GAGA, BBC를 마이너로 볼 수 있나?) 멀티플렉스에서는 인랑이랑 신과 함께만 틀어줘서? (CGV에서 노무현입니다랑 이상호 영화 한동안 주구장창 틀어줬는데)

Monday, June 18, 2018

Little Forest (2018) - KR

  YIM Soon-rye shows small but certain happiness (So-hwak-hang), a word from HARUKI Murakami’s essay that refers to a small affordable happiness in daily life, through her new drama movie Little Forest.

  After Whistle Blower (2014) which twisted chauvinism appeared in Korean society and media about the real-life issue about HWANG Woo-suk scandal, the name YIM Soon-rye is more seen in TV news and papers as an animal right activist. Indeed apart from her title as a movie director, she is also representative of KARA (Korean Animal Rights Advocates) and it seems like her interest and major field moved to animal rights. Four years later her new movie Little Forest, an adaptation from Japanese manga, the two-part film already released in Japan, certainly mirrors her lifestyle and admiration of slow living and it depicts the ideal society that the director yearns

   “When I was in Seoul, I always feel hungry”
  Hae-won (KIM Tae-ri) fails again to pass license exam for a teacher and has a problem with her boyfriend at the same time. She has been living in Seoul since freshman of the university, but she couldn’t feel settle down and feels the emptiness in that big metropolitan. Instead of struggling in that city, she returns to her small but beautiful hometown Uisung, a village in Northern Gyeongsang Province.

  Back home, she still lives alone as her mother left her when she was 18 (or with her dog O-gu), but she rarely feels hunger as she did in Seoul. She cooks local dishes with local ingredients such as pasta with wildflowers, cold been noodle, and makgori (Korean traditional rice alcohol). She reconnects with her childhood friends Jae-ha (RYU Jun-yeol) and Eun-sook (JIN Ki-joo) at the same time when she returns and accommodates herself to slow rural town life.

  There is no tricky plot that leads the movie. On the other hand, this movie chooses to go slow tone and fully shows the nature that is rarely seen in current intense Korean movies. This movie goes slow. No need to hurry up yourself to follow the complex movie plots, instead you can lay back in coach whilst enjoying the beauty of four seasons in Korea. Instead, the director tells the audience what she wants to say through the dialogues of the main characters.

  With mouth-watering cooking scenes, KIM Tae-ri adds more flavor to this film that might have been tedious rural life diary. After playing a strong solid girl in colonial era from The Handmaiden (2016), she becomes an ordinary graduate which has a common problem as the audience in the cinema have. Her time with her friends and her life as simple but satisfied is maybe a longing of city people such as caring each other instead of competing with each other, take your own time instead of fit in the timeline of fast-paced life. The solid attitude of Hye-won, even her current status seems deemed, hints the audience that there is no certain answer to life.


   Although only appearing in flashback, Hye-won’s mother (MOON So-ri) takes the key role to deliver what director YIM wants to provoke through this movie. ‘You need to learn how to wait, then you can enjoy the best of it’ ‘I truly believe it will be better (to do something) than just wait and do nothing’. These lines from the movie have been being repeated in director YIM’s movie, like Waikiki brothers (2001), Forever the Moment (2008), Rolling home with a bull (2010). Without her presence in the movie this movie could have been a typical coming-of-age movie which admires the beauty of youth, but having a character like her make this movie appeals to all people who feel as a hamster in the wheel of never ended competition. 

Friday, December 22, 2017

Year End 2017

1.
아홉수, 삼재, 뭐 아무 것도 없었고 서른 되는 거? 우습다고 생각하다 10, 11월에 엉망진창이 됐다. 너무 힘들어서 이때만큼 힘들었던 때는 아마 다신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삶은 또 어떻게 될 지 이제 모르니 이것보다 더 힘들면 하..)

마치 5월 우승하고 모든 걸 씹어먹을 것 같았지만 이빨 몇 개가 나가버린 (코스타!) 첼시마냥. 그래도 첼시는 우승이라도 했는데 나는 뭐...........하

작년의 마무리는 '그래도 모든 것에 감사하고,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였는데 지금은 다 필요없고 제발 지나가라. This too shall pass 이 마음으로 버틴다.

내 의지대로 흘러간 게 없어서 그런지 올해는 내가 뭔데? 나 자신의 한계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내려놓다 한 해가 끝났다.


2.
영화는 많이 봤는데 기억에 남는 한국 영화는 정말 없다. 매년 하는 말인데 올해는 더 심각할 정도.

한국 다양성 영화는 많이 안 봤고, 상업 영화는 일하면서 다 챙겨봤다. 택시운전사만큼이나 남한산성이 좋았다.

재개봉 열풍에 맞춰서 오래된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그 자체도 좋았지만, 지금 말고 저 시기에 태어났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다시 태어나면 역시 1990년대 미국의 뉴욕이나 버블 시대 일본 도쿄가 최고다. 영화에 쓰인 돈이나 저렇게 하찮은 데까지 신경 쓰면서 사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다양하게 여유롭다.


3.
홍콩 두 번, 싱가포르 한 번, 그리고 타이페이를 다녀왔다. 아시아에만 머무르니 아쉽다. 특히 4년 만에 파리를 안 가고 한 해를 보냈다. 보고 싶은 전시가 많았는데, 5월에 그냥 다녀올 걸 그랬나.


4.
Sum (기억에 남는 것들만)

나
렌즈와 안경 (시력이 점점 다 안 좋아지고, 전시회 가서 그림 라인이 뿌옇게 보이거나 영화 화면 색감이 잘 안 보이는 게 느껴져서 바로 했다. 렌즈를 끼고 나니까 세상이 밝고 눈부시다. 진작 쓸 걸)
아이폰 (넥서스 세 대 쓸 정도로 안빠로 살다가 드디어 사과를 들었다. 삶의 질을 올리다가도 떨어뜨리는 이상한 기계다. 아직도 작동법은 잘 모르겠는데 아이드랍이랑 애플뮤직이 좋아서 70퍼센트 정도 만족 중. 돈까지 내고 쓰는 아이클라우드 접속법을 아직도 모른다)
체지방 감량 (몸무게는 그대론데 근력 운동을 좀 챙겼더니 체지방이 22-3 정도로 맞춰졌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은 좋은데 조금만 과식하거나 운동을 빼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져서 오히려 더 예민해진 느낌. 수치는 낮은데 복부에만 몰려서 똔똔인가 싶기도 하다.)
타투 (좋아하는 영화랑 인생의 교훈을 새겼다. 라고 심각하게 말하지만 목 뒤에 해서 벌써 했다는 걸 까먹는다. 안 아픈 건 아니고 아픈데 또 하고 나니까 또 할 수 있을 정도의 아픔이니 그렇게 안 아픈건가? 근데 컬러넣고 크게 하면 비교할 수 없다고 하니 고민이다. 예약상담은 하나 더 받고 있는데 과연 내년에 어떻게 될지)

여행
9월 타이페이 (인생의 행복이 이건가 싶었음 18일 맥주가 htc보다 위대하다)
10월 홍콩 (이때 카오룽베이에서 물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지금은 카드값 할부가 나를 힘들게 한다.)

책
힐빌리의 노래 (통계 지표로 객관화되지 않는 삶)
냉정한 이타주의자 (감성보단 효율을 생각하고 일할 것)
The Road to Wigan Pier (차분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지 않는 자세)

영화
Paterson (권태에 빠진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법)
End of Summer (기쿠지로의 여름을 좀 더 귀엽게. 중국식 Coming of age?)
A Brighter Summer Day (처음은 위험하다. 비정성시보다 훨씬 더 좋았다.)
Ann Hui (홍콩을 중심으로 찍은 영화들은 다 좋다. 보통사람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는 게 더 좋은데 Our Times는 좀 실망했다. 물론 여기서도 나온 주인공들이 쑨옛산이나 아니면 창카이섹같은 거대한 영웅은 아니지 않냐, 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국가주의는 불편하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홍상수 영화는 '너무 좋다')

기타
Cold Brew (올 여름 맥주보다 많이 마셨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희석해서 물드와인보다 많이 마시고 있다. 텁텁하지 않아서 자꾸 넘어가다 보니 카페인 쇼크도 가끔 오는 게 함정)
bar Tilt (같은 곳 자주 안 가는데 하반기에 네 번 넘게 갔다. 단 칵테일 마시면서 쓰디 쓴 인생도 견뎌봐야지)
Runday (뛰는 걸 재밌게 규칙적으로 만들어줬다. 부산 출장에서도 했고, 홍콩 가서도 행오버에 죽어가면서도 뛰었다. 빨리 날이 좀 풀려서 밖에서 다시 뛰고 싶다.)
요가 (발레보다 조금 더 잘 맞는다. 발레는 리듬을 타야 하는데 이건 내 호흡에 맞추면 돼서 내 컨디션을 확인하는데도 좋다)
Coldplay Seoul (영상으로 볼 때는 크리스 마틴 저거 왜 저렇게 모지리처럼 흐느적대?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내가 노래 따라 부르면서 그러고 있더라)
apple Music (멜론이나 지니 같은데 없는 해외 음반이 많아서 좋다. 음질도 좋다.)
Netflix (잠은 안 오고 남들은 다 자는 시간에 혼자 우울해지려는 찰나 유일한 친구, 다음달에는 프리미엄으로 업그레이드 할 예정)
하프마라톤 (화장실만 안 갔어도 2시간 10분 끊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내년에는 하프, 풀타임 둘 다 도전할 거다.)


5.
올해 알게 된 내 취향과 호불호, 나를 힘들게 하는 것과 나를 기쁘게 하는 것
(+)
재개봉에서 발견한 좋은 영화, 영화제에서 본 좋은 영화와 gv
맛있는 싱글 드립 커피 (산미는 적게)
여름밤
쨍하고 더운 날씨 (타이페이 갔을 때 날씨가 제일 좋았다)
긴 소매 블라우스와 무릎보다 살짝 짧은 쇼츠
나이키 운동화 (이제 컨버스 신으면 좀 힘들다)
딥그린
코코넛, 바닐라향 바디로션

(-)
추운 날씨
겨울밤
(온도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피부 알러지
두피염
(힙하고 다 아는 것처럼 써 놓은) 재미없는 칼럼들
배부른 느낌
쓸데없이 보내야 하는 이메일 재촉
er과 ize로 가득찬 번역들
물향나는 향수들 (조 말론)


6.
내년부터 쓸 다른 개인 계정을 만드느라 좋아하는 장르에 대해 설명하려고 정리하다 보니

우디 앨런, 기타노 다케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Frat Pack
조지 오웰, 다자이 오사무, 김훈, 어니스트 헤밍웨이, 루쉰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헨리 마티스, 폴 고갱, 파울 클레,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진하고 선명한 걸 좋아하고 젠 체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그리고 영화는 1990년대 영화가 제일 좋다. 공터에서가 그렇게 난리가 났어도 나는 여전히 김훈이 좋다.


7.
내년에는 큰 욕심이 없다. 그냥 지금 준비하는 것만 잘 정리되면 좋겠고, 따뜻한 나라에서 더 많이 머무르고 싶다. 전시를 좀 더 많이 볼 수 있게 여행을 많이 갈 계획이고 나이키 하프랑 풀타임 한 번 뛰는 게 목표.

올해 남은 일주일은 아무런 사고 없이 조심조심 잘 넘어가면 좋겠다.

Wednesday, November 8, 2017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1.
초등학교 저학년때, 그러니까 아직 만화책을 읽지 않았을 때다.(나름 교사 자녀라 만화책은 엄마랑 학교 따로 다니던 5학년부터 읽기 시작했다.) 

주말의 상처럼 엄마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한 편을 빌려주셨다. 청구 아파트 비디오 가게 아저씨랑 친해져서 비디오가게에 들어오는 카달로그+일요일 아침에 영화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영화를 비교해가면서 도장 격파하듯 매주 영화를 봤다. 엄마꺼, 내꺼 해서 두 편씩 봤던 것 같다.

대개 15세까지는 보게 해줬는데, 이날 이 영화를 고른 엄마는 내 영화를 먼저 마치고 "넌 빨리 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할 만한 배우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엄마나 아빠는 "영화는 별로"였다고 했다.


2.
그리고 대학와서 1학년 즈음인가? 다시 지적 허세에 빠져서 영화 DVD 도장격파를 하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봤다.

보다가 껐다. 그 때 나는 A 아니면 B, 그러니까 모 아니면 도, 1 아니면 0, 흑과 백, 그렇게 분명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이런 'affair'가 왜 명작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가족은? 결국 다 속인 거잖아. 아니 그것보다 왜 남편도 있는 사람이 뭐가 좋다고 저런 깡마른 아저씨한테? 

'내가 좋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럴 리 없어' 라는 생각에 원작 소설도 읽어봤지만 '불륜 미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닌데, 역시 쯧쯧, 예술은 moral-less 라면서 끝까지 못 봤다. (비슷한 느낌으로 대학교 때는 화양연화에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


3.
오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잘 우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렌즈는 또 빠졌다. 일회용이라 다행이다.

몇 년 동안 또 몇 번 아프고, 좀 바닥도 치고 나서야 프란체스카가 왜 처음 만난 로버트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꿈을 물어봐 주길 원하고, 그 꿈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가족, 함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는 무관심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공기처럼 기본 값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묻지 않았고 알아채려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The old dreams were good dreams; they didn't work out, but glad I had them"
이라면서 처음으로 꿈을 말하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건다. 

우주의 먼지 마냥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자신에게 "you are anything but a simple woman"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4.
역시 그 빌어먹을 꿈이 문제다. 
내가 좋아했던 건 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내 꿈을 대신 봐준' 그 사람이었을까. 

Sunday, August 20, 2017

천수위의 낮과 밤 (天水圍的日與夜, The Way We Are, 2008)

1.
천수위라고 하니까 어디지 했는데 한자를 읽어보니 아 틴수이와이~

위엔롱에서 쫌 더 올라가면 있던 습지 공원 있는 동네라는 기억밖에 안난다. 사실 가보지도 않았다. 고작 1년 채 안되는 기간에 홍콩의 모든 동네를 다 돌아볼 수도 없고, 홍콩에서 그렇게 중요한? 곳은 아니라 가볼 일도 딱히 없다.

서울을 아무리 살아도 저기 중랑천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테고, 은평구 끝자락이나 금천구 끝자락을 안가본 사람도 있을테니까.

뉴 테리토리는 딱 그런 동네였다. 중국 넘어가기 전 지나가는 동네,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이민자 공용 주택이 밀집한 지역"이라고 설명돼 있고, 레드 하우스가 아니었다면 나도 굳이 찾아가진 않았을 동네다.

2.
천수위의 낮과 밤은 이상적인 홍콩 로컬의 모습을 보여준다.
홍콩하면 금융 허브, 외국인이 더 많은 곳, 국제 도시거나 아니면 침사추이 미라도-청킹처럼 보이는 아주 오래된 도시 이미지로 양분된다.

그런데 여기도 사람사는데라 이렇게 극단적이기보다는 중간의 쩜오같은 공간과 사람들이 더 많다. 로컬하면 생각하는 오래됨과 도시 하면 생각하는 화려함으로 양분하기 보다는 그냥 그 중간에서 보통 사람들은 먹고 자고 산다. 웡타이신이나 삼수이포로만 빠져도 생각보다 외국인 안보이고 영어가 잘 안통한다. 홍콩섬은 이런 지역이 적지만, 카오룽쪽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이런 동네가 흔하다.

영화가 촬영된 곳은 거의 다 틴수이와이고 주인공이 일하는 슈퍼도 시티나 m&s같은 느낌이 아니라 웰컴같다. 일본 홋카이도산 우유보다는 카오룽 우유 팔 것 같이 생긴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영화에서 외국인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영어 이름을 쓰지 않고 캔토니즈 이름을 쓴다. 아침마다 차찬탱 딤섬을 먹는 게 아니라 비닐백에 담긴 아침을 사다가 먹고, 신문을 살 때는 꼭 파란색 티슈를 챙겨받는 사람들의 모습. 귀여운 캐릭터에 환장하고. 정말 홍콩 로컬이라면 이런 사람들 같다.

홍콩이라는 이미지에 떨어지는 장면보다는 이렇게 사람사는 곳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다보니 가장 멀리 빠진 곳은 샤틴이다. 샤틴은 뉴테리토리랑 카오룽의 경계같은 곳인데 관광객을 위한 호텔도 이 이상은 넘어가지 않는다. 뉴타운 플라자나 만불사, 이케아를 가기 위해 가는 사람이 드물게 있겠지만...

3.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이번 특별전에서 두 번째로 좋았다. (제일 좋았던 영화도 역시나 허안화 감독의 심플 라이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박함이 구질구질함이 되지 않고, 착함이 호구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 남을 돕는 것에서 계산을 하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모자간에 대화가 흘러넘치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서로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배려심이 남아있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바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지금 이건 기적과 같은 동화다), 이 할머니는 비싼 버섯을 선물하고 다시 고맙다며 금반지 은반지를 선물하는. 너무 착하고 고요하게 흘러가서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모습이 판타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4.
2008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이 영화가 만들어질 즈음만 해도 세상은 이렇게까지 각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1000유로가 한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될 줄은 몰랐고, 월가를 점령할 지도 몰랐다.

홍콩의 경우는 그 변화가 더 크다. 점점 더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면서 뉴테리토리 슈퍼의 식료품이 다 사라지고, 집값이 폭등하고 우산을 들고 거리에 나서거나 피쉬볼을 던지면서 싸울 거라고 예상했을까? 아마 주인공 가온이 자랐다면 분명 우산을 들고 피쉬볼을 던지는 나이 또래였을텐데 착했던 그 주인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5.
영화에서 본 착한 홍콩 사람들은 사실 홍콩에만 있는 건 아니었을거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제 이게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 것 같지만) 친절한 동네 가게 아주머니는 프랜차이즈 가맹비에 헉헉대는 점주, 운이 나쁘다면 그 밑에서 일하는 알바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영화가 좋았던 건 홍콩을 봐서가 아니라 (사실 내 홍콩에 대한 기억은 뉴 테리토리보다는 부자동네인 카오룽이라 조금 다르다) 따뜻했던 그 시절을 볼 수 있어서인 것 같다.

이걸 정이라고 포장하지도 않고, 극적 사건들을 만들어가며 억지 감동 감정과잉 서사도 없지만, 잔잔하게 흘러가는 러닝타임동안 착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6.
영화 제목은 원제도 마음에 들지만 영어 제목도 마음에 든다. 천수위 사람들의 낮과 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법. 특별할 건 없지만 낮과 밤이 흘러가면서 잔잔히 보이는 그 사람들의 모습이 제목에 잘 담겼다.


Thursday, August 10, 2017

첨밀밀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1996)

1.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고 피천득 선생은 썼다.

이 구절을 처음 본 건 교환학생 끝날 즈음.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헤어지는 아쉬움때문에 매일을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러고 보니 나는 2011년에 이미 탈조선을 생각했던 거다.

나한테는 한 번 만난 것도 아니고, 다시 안 만나는 사이도 아니지만 항상 그리운 사람과 장소가 있다.


2.
첨밀밀을 볼 때마다 피천득 선생의 글귀가 겹쳐진다.

같은 마음이었고, 같은 장소에 있지만 자꾸 엇갈리는 둘을 볼 때마다 자꾸 "여기서 고개를 돌렸더라면", "그때 조금만 늦게 갔더라면", "그때 더 붙잡았더라면",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이교가 호출기를 받았더라면, 소군은 소정과 결혼하지 않았을거고, 이교가 대만행 배를 타지 않았더라면 멀리 떨어지는 일도 없었을 거고, 소군이 차찬탱 안에서 밖을 내다봤더라면 그 둘의 만남은 더 빨라졌을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탄 소군이 옆을 둘러봤더라면 간절히 내달리던 이교를 태워줄 수도 있었을 거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엇갈림이 있었지만 만났다.
만날 사람은 만나는 거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히게 극적으로 등려군 사망 방송이 나오는 가게 앞에서 만난다.

나는 이 때 여명의 표정이 제일 좋다. 살짝 떨떠름한 것 같은 표정 속에 너무 놀라지도 않고 너무 무심하지도 않게, 그냥 덤덤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담겨 있어서 장만옥의 울 것 같은 얼굴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4.

이 맥도날드를 같이 갔던 친구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위챗에서 방금까지도 낄낄대고 얘기했지만).

그냥 그 때 생각을 하면 '나만 이렇게 그리운가' 하는 서운함도 들고, 나만 계속 과거를 돌아보는 것 같아서 이젠 그만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5.
영화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중국어를 처음 시작할 때였다. 그때는 이 영화에 캔토니즈가 섞여있고, 장만옥이나 여명이 하는 중국어 발음이 내가 나중에 배울 보통화랑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도 몰랐다. 정말 '중알못'인 상태였지만 등려군이 대만사람이라 위에량다이비야오워'디'신이라고 배운 건 지금도 기억난다.

다시 보니까 그래도 쫌 짬이 찼다고 중국어 대사가 들린다. 캔토도 뭐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드문드문 단어가 툭 귀에 박힐 때마다 그동안 주워들은 게 공으로 날아가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고.


6.
사람과의 관계가 인연인건지, 아니면 나 혼자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꾸역꾸역 붙잡고 있는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다.

인생은 타이밍, 인연은 때, 호우는 지시절하는데, 이 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7.
첨밀밀이랑 비슷한 한국 영화는 호우시절이 최고다. 돌아오고 나서 두 영화를 같이 보면서 피천득 수필집 엄청 읽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걸 보니 주어진 인연보다는 내 의지가 좀 더 강한건가. 

Sunday, April 2, 2017

어느날 (One Day, 2017)

1.
당연하다는 것은 사람을 무디게 한다. 공기처럼 늘 기본값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이 당연함이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갑자기 한 감각을 느낄 수 없다면, 그 감각이 세상을 인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했는지 느낄 수 있고, 늘 옆에 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면 그들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 깨닫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소중해지는 것은 결국 늘 함께해온 것이다. <어느날>은 항상 당연하게 있기에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순간을 바라본다.  

2.
보험조사관 강수는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한순간에 잃었다. 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던  아내가 죽었지만, 그는 힘들어하는 내색 없이 다시 업무로 복귀한다. 처남에게 뺨을 맞고, 주변 사람에게 독하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의 슬픔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아내를 간병하며 지쳐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슬픔을 드러내는 순간 상실감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에서 아내와의 기억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가 마주하는 모든 일상은 이제 추억의 지뢰밭이 되어 그를 괴롭힌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는 슬퍼하지 않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슬퍼한다 해도 이미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시각장애인 미소는 평생을 보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도 목소리로만 기억한다. 자신을 돌봐주던 사람도 촉각으로만 기억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시각을 제외한 감각으로만 느끼고 인지한다. 불완전하던 미소의 감각은 교통사고로 죽음과 맞닥뜨리며 완전해진다. 코마 상태에 빠져 육체와 분리된 그녀의 영혼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눈부신 세상의 빛과 마주하게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매일 지나치기 때문에 놀랍지 않은 기차 같은 전철과 내달리는 오토바이의 모습에도 놀라워하고 기뻐하며, 불완전한 영혼으로나마 완전한 감각을 누린다. 그녀가 직접 보고싶었던 것은 살면서는 볼 수 없었던 블루하와이 색깔과 비슷한 바다일 수도 있고 영화관에서 두 눈으로 보는 영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보고 싶던 것은 목소리와 손끝으로만 기억하던 사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4.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처음 보고 기뻐하는 미소의 모습과, 이를 보면서 아내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강수의 모습은 각각 현재의 순간과 과거의 기억으로 대비된다. 미소가 느끼는 기쁨처럼 현재의 환희는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느끼는 미소는 완전한 삶도, 완전한 죽음도 아닌 그 사이에 놓였다. 현재의 기쁨도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소의 상태처럼 불완전한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결국 그 순간도 과거가 되어 기억이 돼버리고, 그 기억은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중했던 기억은 흐려질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내를 잃은 후 함께했던 기억을 억지로 눌러놓은 강수가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순간,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기억은 다시 현실이 된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좋았던 감정만을 떠올리기도 한다.

5.
<어느날>은 시각장애인이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세상을 본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일상의 특별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강수와 미소라는 두 주인공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일상적이지도,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상을 재발견하던 영화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이야기를 통속적으로 바꿔버린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와 보험사기꾼의 이야기는 영화에 가장의 의무감이라는 엉뚱한 주제를 덧대 무겁게 바꿔 극의 전체 흐름을 끊는다. 주인공 캐릭터에만 더 집중해 기억과 감각이라는 두 일상적인 가치를 강조했더라면 영화의 흐름이 더 일관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6.

사람은 당연한 존재, 당연한 상황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친 이들과 상황들이 사실은 매 순간이 특별했다는 것을 상실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강수와 미소의 만남은 일상의 당연함을 상실하고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여정이었다. 이 치유의 끝이 기억을 다시 현실로 되돌리거나 바람을 실재로 이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나간 것을 되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결국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다만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기억은 힘이 세지고, 모든 일상은 특별해진다. 

Thursday, March 23, 2017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1.
Penny Wise, Pound Foolish.

마이클 레젠데스라는 기자한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신은 탐사 보도의가치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탐사보도가 무척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더이상 어떤 회사도 그렇게 수익성없는 사업에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 (플러스, 왜 신문사는 더이상 신입을 뽑지 않냐 라는 푸념도 했다. 세상에. 국제 진상이다.)

당시 나는 몇 개의 국내 외 언론사 시험에서 줄줄이 떨어져서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 언론까지 모두 다 x까라는 식의 회의론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언론은 무슨, 다들 기레기야 라는 식의 허무론에 빠져 그냥 다시 하던 회사 일에 열심히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극장판 사람들끼리 서울극장에서 별 기대없이 이 영화를 보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건지 보스턴 글로브를 뒤져서 이메일을 찾았고 그날 폰으로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는 (기자답지 않게) 친절하게 바로 칼답을 보냈다.
(모든 기자가 친절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기자에게서 일반 독자, 혹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답변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힘든 길이고, 수익도 낮지만 결국 이런 돈을 아끼는 건 푼돈이고 그로 인해서 결국 독자라는 장기적인 고객을 잃는다고 했다. 탐사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특징이니까 이걸 안하면 결국 제 기능을 스스로가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다시 집에 와서 논술 퇴고를 하고 잠든 기억이 난다.


2.
톰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톤 글로브지의 탐사보도 팀 '스포트라이트' 이야기를 다뤘다. 미국 3대 일간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신문이 겪는 것처럼 수익 만들기는 어렵고, 광고나 독자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가 성추문을 저질렀다는 제보를 받으면서 이걸 기사화하는 게 영화의 큰 틀이다. 한 줄로 거칠게 말하면 '참기자 짱짱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단순하다.

우리나라에서 기자와 정치, 사회부조리를 다룬 영화들처럼 권모술수도 없고, 피바람도 불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자들이라면 저런 위험한 짓을 할 때 혼자 차가 쌩쌩 다니는 길거리를 걷지도 않을 것이며, 피자를 누가 가져다준다면 그 안의 내용물을 의심할 것이고, 기록해놓은 파일이나 기자수첩은 복제와 복제를 해서 분산시켜놓을텐데 이 영화는 그런 장면은 전혀 없다. 영화에서 마이크가 혼자 돌아다니고 자꾸 주인공들이 밤에 무방비로 있는 별것 아닌 장면에서 오히려 긴장하게 되는 건 우리나라의 이례적인 케이스에 익숙해져서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사주가 나타나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당장 나가" 식의 해고도 없고, 팀원들끼리 서로 내부 정치질하는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온 편집장 마티에 대한 경계심은 있지만, 그건 뭐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로 보고 넘어갈 정도로 미미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 사람들이 사건을 재연하는 모습도 담기지 않았다. 우리나라같으면 아래에서 찍는 샷으로 해서 최대한 '관음적'으로 재연했을 그 모습 대신 피해자들의 현재 모습과 그 순간을 되새기며 터지는 울음만 묵묵히 담았다.

기자들도 미드 뉴스룸에서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연설하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뉴스룸도 없다.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앉아 그저 이 사건에 왜 더 빨리 눈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하는 로비의 자괴감과 우리는 이런 타운에 살고 있었어 라는 맷의 공포(사건을 조사하며 자신의 애들한테 절대 *저기엔* 가선 안된다고 경고를 한다.) 정도가 영화의 변주다.

선배의 조리돌림도 없고, 국장의 쪼이기도 없다. 그냥 묵묵히 하나의 '진실'만을 찾는 기자들의 모습만 보인다. 2001년이다보니 기자들은 수첩을 들고 직접 도서관의 인명부를 줄쳐가며 조사를 한다. 소셜미디어? 인터넷 창 움직이는 걸 봐도 *속도감*이 넘친다.


3.
탈진실의 시대다. 진실도 아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으니 됐다는 모순형용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애매모호하다. 사람들은 더이상 언론을 믿지 않는다. 자극적인 탈진실에 눈길이 더 가다보니 수익원도 불분명해졌다. 소셜미디어다 1인미디어다 뭐다 하면서 정보에 대한 독점지배권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는 짧은 단타 수익에 빠지거나 (일명 기레기, 특종, 단독 저널리즘) 아니면 정파 저널리즘에 빠지거나 (NYT) 혹은 사라지기 일쑤다. 영국에서 좋아하던 인디는 이제 더이상 종이신문을 내지 않고, 라이프지는 2007년 사라졌다.

며칠 전 (아이러니컬하게 제3의 언론인) 네이버에서 무료 영화로 이 영화가 풀리면서 다시 봤다. 여전히 좋았고, 네이버에 뜬 뉴스를 흘끗흘끗 보면서 영화를 보니 처음 봤던 때보다 더 슬펐다. 영화에서도 결국 사회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교구장은 다시 승진을 했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가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로 조금 나아갈 듯 하면 결국 빵빵 하나씩 터지고, 상상의 범주를 넘은 기괴한 일들이 기괴한 제목을 달고 매일 나온다. 나는 헌재 재판관 내정자가 왜 흙수저로 기사화되는지 모르겠고, 용의녀라는 단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MSG맛 가득한 기사들 사이에서 뭔가 하나를 찾기 위해 계속 읽지만 찾기가 어렵다.

이제는 더 이상 언론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읽지는 않는다. 그냥 습관이라서 읽고 읽지 않으면 어색해서 읽는다. 사람은 언젠가는 변하니까 내 습관도 곧 변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같은 Pound를 위해서 Penny를 쓸 수 있는 언론사들이 남아 내가 이 오래된 습관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4.
쓰고나서 포털 뉴스를 보는데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싶다.


5.
마티 바론은 WP에 갔다. 마이크는 여전히 보스턴에 남아서 열심히 글을 쓴다. 아마존을 업은 WP의 화려함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기사 자체는 보스턴 글로브가 더 재밌다. 미국 가게 되면 종이신문으로도 사서 읽고 싶다. (전자화 되기 전에 미국가겠단 소리다.)

Monday, October 24, 2016

아쿠아리우스 (Aquarius, 2016)

1.
브라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최근 룰라의 비리때문에 브라질의 '좌파 파라다이스'가 허상이었다는 언론 보도만 본 기억이 난다. 그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도 못느꼈다. 나한테 남미는 너무 멀다. 내가 모르는 언어권에 대한 소식에 대해서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무식하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칸 경쟁작이었지만 사실 부산에 와서도 그냥 티켓시간이 맞고 아는 동생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예매할 생각도 없었을것 같다. 감독 이름도 아직까지 어렵다. (클레버 멘도사 필루! Kleber Mendoca Filho) 그래도 영화를 추천해준 아는 동생이자 브라질 덕후 감자한테 감사를.


2.
과거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과거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차곡차곡 쌓아놓는 사람이 있다. 영화는 과거가 된 공간에 대해 나타나는 다른 태도에 대해 말한다. 물론 중립적이진 않지만.


3.
주인공 클라라를 중심으로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뉜다. 대개 3부로 나뉘게 되면 길이도 얼추 비슷한데 여기는 1부가 제일 짧았고, 2부 3부가 좀 길다. 이렇게 똑같이 안맞춰놓은게 오히려 이 영화가 뻔하지 않게 흘러가게 해준 것 같다.

공간을 지키려는 클라라는 저널리스트고, 비백인 (유색인이란 말이 싫어서 이 표현을 쓴다만 이것도 좀 그러네)이지만 집을 다섯 채나 가지고 있고 펜션도 받는 꽤 잘 사는 사람이다. 자기 성적 욕망에 충실해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만 클럽에 가서 춤도 추고 거리의 사람을 집에 부르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로 보면 굉장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지만 이 공간에 관해서는 보수적이고 고집이 세다. 바다가 보이는 아쿠아리우스라는 아파트에는 모두 떠나고 이제 클라라 혼자 남았다. 이곳에 정말 뿌리박은 건 클라라 하나지만, 살림을 봐주는 라잔, 그리고 과거의 기록이 필요할 때 찾아오는 가족과 조카들도 있으니 엄밀히 말해 혼자는 아니다. 물론 같은 공간에 대해 기억은 다르게 적히니까 애착도 다르다. 엄마는 집을 비웠고, 우리를 방임했다고 소리지르는 아나와 이 소중한 집을 팔려는 멍청한 딸이라고 꾸짖는 클라라의 모습에서 기억은 상대적이다. 이 집은 모두의 추억을 담고 있지만 그 추억의 밀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집을 지키는 것보다 '보상금'을 받고 빨리 재개발해서 뉴 아쿠아리우스를 만드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4.
영화를 보면서 용산 남일당과 강남 구룡마을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소수의견>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는 영화도 있고 <두 개의 문> 다큐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다 좋은 영화다. <소수의견>은 사건의 흐름을 '극화'시켜서 상업영화로 잘 바꿔놨고, <두 개의 문>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가해자의 목소리를 병렬적으로 담아내서 '주장'보다 '사건의 실체'를 보여줬다.

그래도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영화처럼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용한 지점까진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은유가 넘쳐난다. 서랍장, 수영, 유방암 걸린 왕년의 배우 캐스팅처럼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에둘러 수많은 장치를 쓴다.

배경음악도 신경쓴 티가 나서 단순이 웅장, 장엄을 떠나서 그 세월이 느껴지는 브라질 음악들 하나하나가 다 모이고 쌓여서 이 공간을 스쳤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 http://blog.naver.com/dive_toblue/220834006490 에 가면 BGM 음악 리스트도 있고 브라질에 관해 좀 더 알 수 있다.


사회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좋다. 하지만 이걸 굳이 TV 다큐멘터리나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스크린으로 옮겨놓는다면, 영화가 갖고있는 특성을 조금이나마 써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다큐 영화나 고발 영화가 아쉬운 건 결국 진영논리에 갖혀서 '마이클 무어'에 그치고는 '봐야할 영화'라고 감성에만 호소해서다.


5.
안경을 안쓰고 왔더니 자막이 잘 안 보였다. 눈이 많이 나빠진 게 느껴진다. 특히 영화제에서 영자막/한국어 자막 두 종류가 필요할 때 한국어는 세로로 들어가는데 안보여서 그냥 포기하고 영어로 봤다. 스마트폰 줄여야겠다는 좋은 교훈도 주셨다.


6.
출장가서 몇 문단 썼는데 서울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날씨가 추워지니 남국의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는 영화가 자꾸 생각나네. 

Thursday, October 20, 2016

걷기왕 (Queen of Walking, 2016)

1.
고등학교때부터 20대 초반까지는 일본 청춘영화를 정말 싫어했다. 왜 난 힘을 내기 싫은데 '발랄하고 명랑하게' 힘을 내라고 깔깔대며 웃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히토리나쟈나이' 류의 엔딩이 싫었지만 또 싫었떤 건 하루키식의 허무주의. 그냥 우린 그랬지, 아 아무 쓸모없어 다 필요없어 이러는 것도 그냥 싫었다. 청춘영화에서 느껴지는 그 '메가리 없는' 가벼움이 영화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유행은 한국을 거쳐 요즘 대만으로 넘어간 것 같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 올드독은 그 '대책없는 청순함'을 물고기떼같다고도 했다. 나도 이 목적없고 대책없는 발랄함이 싫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그게 '귀여워'보였다.

귀여우면 지는거고, 그냥 생각없이 이런 움직임들에 몸을 맡기면 나도 모르게 '청춘 파워'가 샘솟는다. 세상 살면서 8천원정도에 이정도 활력 얻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부터 청춘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2.
<걷기왕>은 일본 청춘영화를 닮았다.

'히토리쟈나이', '좀 느리면 어때', '내가 뒤쳐졌니?' 하는 얘기는 그 때는 정말 할 수 있는 얘기다. 저 나이를 거치면서 저런 질문을 해보지 못한 내가 아쉬울 정도로 영화는 계속 질문을 한다.

주인공 만복이는 교통편만 타면 멀미를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두 시간, 왕복 네 시간을 걸어 학교를 가지만 그거 외에는 하는 게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섬에 살아도 EBS는 봐야하겠지만, 영화에서 만복이 공부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꿈도 없고, 뭔가 목표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어보이는 만복이 앞에 자기계발서형 인간인 담임이 나타나서는 '그래 넌 걷기를 잘하는구나' 하면서 갑자기 경보를 시킨다. 경보가 뭔지도 모르는 애한테 그냥 뜬금포로 던졌는데 그게 훅 하고 들어간거다.

육상부에 들어갔더니 '이글이글 노력형' 수파르타 수지선배는 고깝다. "Everyone is all-in, except you"라고 자막처리된 대사 (한국어 영화지만 이 자막이 더 기억에 훅 들어옴)를 보고 요즘 뜬다는 자기 계발서 제목인 '당신은 겉보기에만 노력할 뿐'도 생각나고 김미경 이지상 등등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다.

수지가 나쁜 유형은 아니다. 다만 욕심이 있었고, 그 욕심을 위해 자기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근데 노력이 당연한 게 되고 노력이 한도를 초과하면서 자신을 헤치고 그러다보니까 피로가 쌓이는거지.


3.
영화는 뜬금없이 귀엽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청춘영화를 '오글댄다'는 이유로 거의 보지 않는다. 감정과잉, 자기연민된 영화나 소설에 몸서리쳐하는데 그래도 이 영화는 '귀여워'서 견뎠다.

심은경이 되게 귀엽구나 하는 걸 이 영화 보면서 느꼈고 주변 인물상들이 '과장'된 전형성을 연기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힙합하는 배달오빠도 귀엽다. 찌질하게 하는 랩 하나도 짜식, 귀엽다 하고 보게 되고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얘기를 하기 때문에 귀엽다. 애기들이 '하하호호'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땐 저랬나?"하면서 과거를 회상해보지만 내 과거는 저렇게 하하호호는 아니었고 상큼발랄하지도 않았다. 이런 대리만족이라도 뒤늦게 할 수 있어 다행인건지 모른다. 운동 모션도 약간 족구왕처럼 과장된 몸동작이 들어가서 만화같은 느낌을 줘서 귀엽다. 자꾸 반복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귀엽다. 수지 역할 한 배우는 뭔가 고등학교에서 있을 법한 포스있는 동아리 선배 느낌이 그대로 나서 그때 내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 보지만. 우리 동아리는 그냥 이나중 탁구부같네. 아다치 미츠루(대표작 - H2, 탓-치)일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후루야 미노루(이나중 탁구부, ) 스타일로 격하게 놀았네.



배경음악도 귀엽다. 페퍼톤스의 초창기 느낌도 나고, 홍대 2000년대 후반 (eg. 타루, 캐스커, 옥상달빛 등등) 음악처럼 '대책없이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싸이 bgm으로 쓰면 꽤나 상큼하면서도 센스있어보이는 그런 음악이다. 심은경이 엔딩송도 불렀네.

여하튼 모든 건 다 귀여운 게 이긴다. 인간관계에서도 쟤 뭐야 하다가도 어, 귀엽네? 하면 지는거다. 라이언이 지금 한국 소비시장을 뒤흔드는 것도 귀여워서다. 모든 건 귀엽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4.
요즘 뜬금없이 노력충이 돼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열심히 해보고 있는데 잘 안됀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뒤쳐지는데 남들은 다 앞서나가는 느낌이라 지긋지긋하다. 다시 4년전처럼 다 내려놓고 비행기 타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자란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Am I lagging behind? Am I not good enough? 매일 이 질문을 수십 수백 번씩 나한테 던지는데 답을 잘 모르겠다. 나는 열심히 발버둥치는데 항상 10미터, 아니 그보다 더 뒤쳐져가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더럽다. 부산에서 마켓 시사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데 되게 찌질하게 울었다. 아는 사람들이 볼까 창피하지만 정말 끅끅대면서 울었다. 지금 내 상황이랑 오버랩되는 지점이 많아서 와르르 무너졌다.

이 영화 결론처럼 조금 느리게 가도 되겠지, 하다가도 자다가 소스라쳐서 깨고, 뭔가 다시 나가야 하나, 너무 한 곳에 오래 있었나 이런 생각도 들고. 복잡하다. 영화는 10대 얘긴데 이제 30을 앞두고 생각이 더 많아졌다. 정말 뒤늦게 사춘기라고 하기도 창피한 미숙한 불안함이 자꾸 올라와서 짜증난다. 

Wednesday, September 28, 2016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1.
What is the most disturbing film you've ever watched?

사람마다 호불호의 성격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명작이라고 생각할 영화의 경우도 최악의 영화가 될 수 있다.

예술이 다양해질 수 있는 건 이 호불호의 스펙트럼이 정말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한테는 안티 크라이스트같은 신성모독 영화를 보면 극장에서 뛰쳐 나가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한테는 인간지네같은 영화가 그럴 수도 있다. 칸에서 항상 모든 영화가 호평받는 것도 아니고 평론가들이 영화가 불쾌하다고 보다가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나는 앞에 말한 영화 둘 다 힘들고 가리는 영화가 보는 영화보다 더 많다. disturbing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 블랙스완같은 심리적으로 쪼는 영화도 내내 시달려서 나한테는 디스터빙하고 부산행같은 경우도 그냥 힘들다. 주온같은 건 상상도 못하고 쏘우? 어휴... 히치콕도 멘탈이 힘들다. 예전에 극장판에서 봤던 아모레스 페로스에서는 투견장면+뭔가 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이 힘들어서 보다 나왔다. 박찬욱 영화도 JSA 빼고는 다 후폭풍에 시달려서 복수는 나의 것은 한 번 보고 극장판에서 보다가 나왔다. 이렇게 쓰니 볼 수 있는 게 몇 없구나. 디즈니와 함께 동화의 나라에서 평생 살리라.


2.
극장의 경우라면 이런 영화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니까 박스 오피스로 그 선택의 답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일하는 업계처럼 선택권이 제한된 경우라면? 그리고 내가 그 영화를 틀거나 보지 않더라도 옆좌석에서 보는 게 내 시야를 침해한다면? 이럴 경우에는 더 예민하게 여러 사람의 '취향'과 '호불호'의 레벨을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종교, 민족, 인종, 성적 취향 등등 모든 게 다 고려돼야 한다.

최근에 Delta에서 Carol을 편집해서 선재해서 문제가 됐다.
http://www.huffingtonpost.com/entry/airline-carol-kissing-edited-out_us_57a62cc8e4b021fd9878cce8

사실 나는 이 선택도 이해는 간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오픈 마인드일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서 자기가 불쾌함을 겪었다고 생각할 경우 (선택하지 않은 영화에 대해 노출되면서) 생기는 컴플레인은 결국 항공사가 다 떠안아야 한다.


3.
<아가씨>도 사실 일하면서 당연히 안되겠지, 하고 그냥 선택지에서 생각도 안하고 넘어갔다. 나도 예전에 편집 안하고 넣었다 문제가 된 적 있어서 작년부터는 거의 안전빵인 옵션만 찾게 되고 몸을 사린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항공사에서 컨펌이 났다. 그리고 오늘 메일을 주고받다가 띵해졌다. 나는 당연히 몸을 사려야 하니 'LGBT' 슬레이트를 넣을까? 했는데

"if we state this movie as LGBT, some pax might be feel discriminated"

라고 답이 왔다. 그냥 영화는 영화지 이걸 LGBT라고 나누고 하는게 오히려 더 차별적이고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그냥 원래 기준대로 LGBT 성적 장면이 아니라 그냥 성적 장면이라고만 넣자고 한거다.

뭔가 띵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떠올리면 결국 동성애 영화라는 카테고리가 먼저 뜨는데 그냥 예술, 영화로만 보자..이러는 쿨함 앞에서 몸사리던 내가 멋쩍어진 기분이었다.


4.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이 영화는 정말 미장센에 매우 많이 힘줬다. 감독님은 문어괴수물이 뭔지 몰랐다고 인터뷰에서 그러셨지만 과연? 물론 미술팀이 잘 알았겠지만..



영화는 정말 잘 꾸며졌다. 이 시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는 감독들한테 매혹적인 시기다. 동서양의 이질성이 한데 모여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는 피지배인 조선인과 지배인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이라는 세 계급이 뭉쳐서 특이한 질서 관계가 나타난다.

어딘가에도 끼기도 애매한 이 시대에서 어떤 감독은 청춘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투사에 대해 말했고 어떤 감독은 예술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사실 이 시대에 '굳이' 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차이로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냥 지금 어디 개도국 한복판에 껴놔도 될 거 같고. '돈의 맛'이나 '하녀'처럼 지금 한국 사회로 껴놔도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로 끌고간 건 그냥 예뻐서? 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지난번에 쓴 <덕혜옹주>처럼 이 시기가 주는 묘한 분위기,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시기라 여기로 끌고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조선 얘기를 하면서 이런 이미지까지 끌어다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새로운 그림이 나올까 라는 생각을 감독이라면 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호불호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호도 아니고 불호도 아니고 그냥 음 괜찮네 하다가도 이게 박찬욱 영화라면 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박찬욱하면 떠올랐던 이미지랑은 정말 따로 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나한테는 아직도 복수 3부작의 박찬욱이 더 크게 자리잡혀서인지도 모르겠다. 박쥐나 스토커가 나한테 그렇게 감흥이 없기도 했고.

여성 해방적이라고 하는 부분도 이해는 가는데 또 어떻게 보면 그런가? 왜 굳이 그걸 저렇게 말하지? 이렇게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다. '굳이' 나와야 했나 싶었던 노출도 좀 있었고, 왜 이렇게 갑작스럽지? 할 정도로 감정이 설명 안되고 점프점프 돼는 것 같았다.

나는 히데코는 왜 타마코한테 관심을 '보였는지' 그게 이해가 안됐다. 감정이란게 점에서 점으로 레벨업해서 점프하는 게 아니라 선으로 이어져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방향성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더더욱.


5.
영화도 사실 외국 친구랑 봤다. 한국어를 잘하긴 하는데, 그냥 '이런' 한국 영화를 같이 봐도 될까? 라는 마음이 영화 내내 계속 눈치를 보게 했다.

이 영화에 관해 나는 결국 나는 '아무한테도 불편을 끼치지 않겠다'는 작은 친절을 가지고 결국 더 큰 차별과 불편함을 만들었던것 같다. 괜히 이게 거슬리진 않을까, 하나하나 괜히 움츠러들고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다. 남한테 거스르지 않고 그냥 저냥 모난돌이 안되어 가려다가 오히려 작은 친절 큰 민폐를 만드는 삶을 살면서도 나 스스로는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사려깊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Wednesday, September 21, 2016

덕혜옹주 (The Last Princess, 2016)

1.
국사를 공부하면서 '명성황후는 이미연이 아니다'를 외친 것처럼 이 영화를 볼 때는 '덕혜옹주는 손예진이 아니다'를 반복하고 시작해야 한다.

손예진이 아무리 눈물을 뚝뚝 흘리고 처연하게 쳐다보더라도 "저건 사실이 아니다" 라고 손예진 매직에 걸려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마지막 황녀라는 게 주는 신비감, 안타까움은 명운을 다한 나라에는 꼭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제정 러시아의 아나스타샤도 그렇고, 엘리자벳도 있다. 성별은 다르지만 청의 푸이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우 왕자 얘기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즈음만 하면 인터넷에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덕혜옹주는 소설로도 나와서 꽤 인기를 끈 걸로 안다. 망한 나라의 고명딸 얘기니 얼마나 짠하고 슬플까.


3.
영화 보는데 내가 알던 허진호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내 갸우뚱했다. "라면먹고 갈래요?"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만들었던 감독인데, 왜 이렇게 빤한 얘기만 하고 있는거지.

여기서 주인공은 여자지만, 전형적인 '공주마마', '핑거프린세스'다.

1919년 첫 씬부터 아기씨는 아바마마와 대신들이 있는 곳을 뛰어다닌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귀여운 내 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옹주인데 저렇게 상황파악이 안됐을까. 왕족이 가져야 할 규범 대신 전형적인 '막내 딸' 이미지가 이겼다.

영화에서 덕혜옹주는 아무 것도 아니다. 독립 운동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친일파도 아닌 정말 방관자, 투명인간처럼 보인다.

물론 손예진은 연기를 잘한다. 연애시대에서 보여줬던 등으로 우는 것 같은 느낌이 여기서도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비밀은 없다>가 개봉했는데 거기서는 빡 힘주고 날 세워서 연기했다면 여기서는 누르고 눌러서 '한국의 정한이 애이불비'의 감정을 표현했다랄까. (아 이 말 진짜 싫어하는데) 근데 나머지 배우들도 연기를 잘해서 덕혜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거나 이런 건 없다. 소설을 안 읽어서 모르겠는데 원작에서도 이렇게 그냥 아무런 존재감없고 관찰자로만 나오는 지 궁금하다. 영화에서 덕혜옹주가 그나마 능동적이었던 건 한글학교를 만들고, 연설 장면 정도?


4.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옹주마마' 하면서 무릎꿇고 큰절했을까도 의문이며, 아나키즘 혁명 계열들이 과연 앙시엥 레짐의 잔재인 '옹주'라는 존재를 환영했을까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덕혜옹주가 주가 돼야 할 영화에서 왜 애써서 이우 왕자의 영웅적인 면모를 끌어올렸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사실도 아님), 그에 반해 오빠인 영친왕은 너무 일본 만화캐릭터에서 주인공 옆 배경3정도로 나올 인물같은 캐릭터로 나와서 별로였다.

김장한이라는 충성심 넘치는 정혼자의 끝을 모르는 사랑도 음? 싶었다. 한택수라는 인물도 너무 전형적인 '악한' 일본인으로만 나와서 과연 저랬을까? 너무 스테레오 타입들을 두 시간동안 꽉꽉 눌러담아서 빤하고 빤한 영화같았다.

물론 이해로 영화를 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팩트인 척 하면서 픽션만 남아있는 팩'션'의 경우에는 저런 '픽션', 그러니까 역사적 가정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으며 왜 저러는 건지 의아하게 된다.

일본이랑 관계가 삐걱대면서 일제강점기 얘기를 다룬 영화들이 많다. 암살도 있고 밀정도 있고. 이 영화는 팩트보다는 그냥 이 시기의 안타까운 설정만 남고, 정말 그 시대에 대한 어떤 의미를 뒀는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 이 영화랑 비교하기에는 앞의 두 영화가 아니라 그냥 그 시대 분위기만 따온 '아가씨'같은 영화랑 비교하는 게 오히려 더 적절한 것 같다.


5.
손예진은 정말 미친듯이 연기를 잘한다. 영화에서 원래 이렇게까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정신병자처럼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깜짝 놀랐다.

남자 쎈 캐릭터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상업영화판에서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갈대같이 연약하고 힘없는 주인공이 아니라 뭔가 쎄거나 고집있는 역할로 한 번 보고 싶다. (연애시대같은 어른느낌 나는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Friday, September 16, 2016

밀정(The Age of Shadows, 2016)

1.
대학교 입학하고 김지운 감독의 자서전(김지운의 숏컷)을 읽었다. 지금도 뭔가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그 책을 읽는다. 세련됨이 뭔지, 차분하게 자기 얘기 한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내거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자, 감정과잉, 자기연민에 빠지면 까리함을 잃는다는 것도.

책 덕분에 커피를 마시는 것=세련된 어른 이라는 착각에도 단단히 빠져서 커피는 커피빈, 에스프레소 세가프레도라는 공식을 거의 신념처럼 따르기도 했다. (요즘도 세가프레도 있나?)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까리하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분명 잔뜩 뛰어다닌 장면인데 땀냄새보다 우디한 향수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놈놈놈의 장총씬에서 와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잘 빠진 화면도 나오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놈놈놈 보겠다고 부산극장 앞에서 밤을 샜다. (마지막 피프의 추억)


2.
가족끼리 밀정을 봤다.
오랜만에 나온 영화라 기대가 커서 예고편도 안보고 평도 최대한 안 읽고 갔다. (잊는다 라스트 스탠드. 악마를 보았다 이후에 첫 영화라고 나는 '믿는다')

여전히 까리한 어른 남자의 얘기는 여전했다. 근데 내가 나이가 든건지, 이 감독님이 나이가 든건지, 둘 다인건지. 그 스타일리시함이 이제 막 충격적으로 좋지가 않다. 그냥 잘 빠졌구나...

밀정은 베베 꼬인 영화다. 단순하게 보면 이중첩자와 속는자, 찾는 자의 얘긴데 그게 여러 인물이 한 번에 나오면서 꼬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얘기를 생략하고 최대한 화면의 화려함에 집중하거나, 얘기를 최대한 넣어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하거나.

후자의 경우로는 암살이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를 남겼다. 그런데 밀정은 정 반대다. 밀정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밀정에 대한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그 모여있는 장면을 최대한 길쭉길쭉 수직적으로 쫙 누르게 찍어서 분위기를 그림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모든 얘기에서 대사보다는 화면이 중요하고 이야기보다는 속도가 더 중요하다. 책에서 쓴 것처럼 집단적  슬픔에 빠지지 않고 영화라는 영상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과다한 감정은 걷어냈다. 우리 조국이, 민족이, 이런 얘기도 최소로만 하고, 그냥 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좇는 자와 그렇지 않은 편의 입장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지적, 여자캐릭터가 별로라는 지적은 이번에도 나올 것 같다. 겉멋들었다는 느낌도 여기서 나올 수 있다. 실제로 한지민 역할은 겉돌았고 (세모 집합에 동그라미가 있는 느낌), 몇 배우는 너무나 지나치게 세련된 이미지라 약간 시대에 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모두가 다 암살처럼 친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실 제국주의 시대의 스타일은 진짜 '까리함'이 넘치는 시대다. 모던 상하이, 모던 경성이 계속 영화화되는 것도 이때의 이질적인 느낌이 감독들한테는 뭔가 해보고 싶다는 도전욕구로 나왔을지 모른다.


3.
이병헌 송강호는 정말 아우라가 다르다. 놈놈놈때 이후로 이런 시기에 이런 역할 조합으로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나쁜놈과 이상한놈), 목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몸으로 삭제된 모든 이야기를 한다.

특히 이병헌은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감독님은 여기다가 나레이션도 넣은 것 같은데, 근데 난 그게 좀 별로였다. 담백하게 잘 가던 영화에서 마지막에 너무 심심할까봐 갑자기 조미료를 팍 넣은 느낌? 그냥 그 장면에서 덤덤하게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병헌은 신기한게 얼굴이 물론 잘생겼고 목소리가 멋있고.. 아 갖출 건 갖췄구나. 근데 키가 큰 편도 아니고 프로포션이 좋은 것도 아닌데 전신컷이 많이 나와야 하는 이런 영화에서 빛난다.

송강호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잊기 쉬운 '송강호는 키가 크다'는 사실을 이번에 반박이나 하듯 길게 늘어진 트렌치나 제복을 입고 나온다. 둘 조합이 나오는 '자' 부분에서는 그냥 별거 없이 웃기면서도 쫄린다.




이에 비해 다른 배우들이 좀 밀리는 느낌이었고 엄태구는 언제나 그랬듯 좋긴 한데 이번이 특별히 좋았나? 는 잘 모르겠다.


4.
영화 음악을 잘 쓰는 분이기도 하고 놈놈놈에서 워낙 잘 나와서 기대했는데 쏘쏘. 예측가능한 음악들이었고, 뭔가 싱겁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게 떠오르거나 (이상하게 마지막 장면에서는 헤이트풀8, 바스타즈가 강렬하게 겹쳐보였다).

엔딩 크레딧을 다 볼 정도로 영화 매니아나 애호가는 아닌데, 일이 일이다보니 아 이 영화는 여기꺼구나 하고 해외배급까진 보고 나오는데. 그때 나온 음악이 제일 신나고 좋았다. 당분간 노동요가 될 느낌.


5.
가족끼리 일요일이나 쉬는 날 조조 보는 게 좋다. 이런 시기에 이렇게 텐트폴 무비가 나오면 다섯이 쪼르륵 앉아서 보고 들어가는 게 좋다. 다음 이호연 휴가때는 뭐가 나오려나.


6.
공유는 감방안에 있는데도 카누 광고 보는 느낌 (그 커피갑 안에 있는 광고). 그래도 잘생김이 넘쳐서 보는 내내 시선고정.




Tuesday, September 13, 2016

김종욱 찾기 (Finding Mr.Destiny, 2010)

1.
하루키는 그랬다. "라오스에 가면 뭐가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도시에 여행을 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여행은 특별한 것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거기 있으면서 여행을 하면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한때 후지와라 신야처럼 뭔가 방랑하면서 영혼의 자유와 내면의 진리를 찾고자 했는데 여행하다보면 그런 건 없다. 그냥 세끼 밥 먹다보면 아 그냥 먹는구나..딱딱한 벙커베드가 지칠때쯤이면 방안의 푹신한 침대가 그립다. (그래도 요즘은 호스텔 안가서 벙커베드는 벗어났다.)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떠나지 않더라도 그냥 자기 마음을 어떻게 고쳐먹냐 그게 더 중요하다. 괜히 Traveler's heart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나 대학 입학즈음에는 한때 인도 여행 붐이 일었고 그게 산티아고 순례길, 그리고 요즘에는 제주도로 옮겨간 것 같다. 거기에 가면 내 영혼이 밑바닥부터 쫙 바뀔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가지만, 가면 한국 사람 동창회 할 수 있을 정도로 바글바글하다. 어딜 가도 한국사람은 많다.

2.
뒤늦게 김종욱 찾기를 봤다. 뮤지컬을 안좋아해서 원작도 안봤고 이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한국에 없어서 (홍콩에서 내 영혼을 찾고 있었으나 Fail...) 때를 놓쳤다.

김종욱이라는 첫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사실 내용이 별거 없고 공유가 내용이고 임수정이 개연성인것 같은 그냥 달달한 영화다.

왜 다들 조르푸르조르푸르 하는지 몰랐는데 이 영화가 조르푸르에서 만난 로맨스때문에 시작된 거였다. 역시 어딜 가도 한국인은 많다. 이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가지만 나는 여행가서 한국인을 만난 기억이 그닥 없다.

지금 기억해보면 싸이에 캡쳐되서 돌아다니던 대사가 꽤 많이 있었다. 끝내는 게 싫어서 마지막 음식은 남겨놓는다던가 (실제로 이런 사람도 있었음, 그땐 왜저래? 했는데 영화 하나가 사람 베렸다.) 인연을 붙잡아아 운명이 된다던가, 용기가 없는게 아니라 절실하지 않았다 뭐 이런 류.

여행에서 생기는 우연에 뭔가 가치를 부여하고 괜히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말랑말랑한 얘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포선셋, 선라이즈도 사실 '여행의 우연'을 부추기는 것 같아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별로다.) 나는 여행갈 때 스트레이트로 하고 싶은 거 하기 싫은 거 끝나면 바로 끝내고 오는 편이라 왜 저렇게 안하던 짓들을 해놓고 다들 낭만이니 청춘이니 하는건가 싶다. 운명이니 인연이니, 그런 것도 잘 안믿는다. 나는 친해지고 싶으면 대놓고 쓸데없이 말걸고 자꾸 들이대는 편이라.....

그래도 인도라는 잘 모르는 여행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물론 내용의 대부분은 한국이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적이다.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우유부단한 남주나 너무 '무례하고' '무식할' 정도로 막무가내인 여주는 이해가 힘들었지만, 마지막을 피해가려는 여주 모습에서 귀국일을 차일피일 미루던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결국 맞이할 마지막이라면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고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다. 어떻게 미뤄서 질질 끌어대더라도 어쨌든 아쉬움은 남고, 끝맺음은 해야 한다.

3.
영화에서 본 것처럼 여행을 다니면 내가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도 만나고 안해본 것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추억도 남기면 내가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여행광까지는 아니지만 안다니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대로다. 한국에서의 나와 타지에서의 '나'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영어로 말할 때 목소리가 좀 간사해진다는 걸 빼면 그냥 별반 다른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정적이 있는 걸 싫어하고, 낯을 어디서든 가리고, 카페에서 멍 때리면서 앉아있다 하루를 보내고.

그리고 그렇게 나는 계속 내 취향을 쌓아나간다. 아무리 새로운 나라에 가고 낯선 도시에 있더라도 내가 강아지가 바글바글한 공원에 앉아 선베이딩을 즐기며 여유를 부리진 않을 거고, 자연광경에 취해서 넝마같은 알라딘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싸돌아다니진 않을 거란 걸 잘 안다. 나는 여전히 도시가 좋고, 사람들의 북적임이 좋고,  잘 모르는 사람한테 낯을 가린다. 그러니까 여행 분위기에 취해서 비포 선라이즈처럼 낯선 사람이랑 쌩뚱맞은 도시에서 뻘짓을 할 그런 확률은 0에 수렴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여행을 하는 건 그런 내 취향을 계속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이 좋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뭘 싫어하는 지 확고해졌고, 이제 쓸데없는 돈낭비도 조금씩 줄어들게 됐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하나에 고정되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괜한데 힘빼지 않아서 좋다.


4.
다음 여행도 아마 파리나 맨체스터가 될 것 같지만, 좀 더 힘빠지기 전에 멀고 힘든 나라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은 든다. 안해보고 "난 싫어" 하는 것보다 해보고 "해봤는데 별로야"라고 해야 후회도 없으니.


5.
회사 일로 보는 영화는 이렇게 길게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안드는데 공유매직은 무섭다.


노스페이스는 이제 좀 유행지났으니 파타고니아 플리스 입고 멀리 몸고생하는 여행이나 가볼까.

Monday, September 12, 2016

Cafe Society (2016)

1.
이 영화를 5월에 봐서 이건 일종의 '기억 복원'이다. 영화에 대한 얘기보다는 파리에 대한 기록에 더 가깝다.

프랑스에 가면 항상 영화를 한 편씩 본다. '영화는 유럽, 그중에서는 프랑스'라는 마인드가 있어서 그런지 꼭 현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물론 나는 프알못이고 프랑스는 자막을 싫어하지? 그래서 꼭 '영어'로 된 영화를 '자막'으로 하는지 확인하고 봐야한다. 작년에는 매드맥스를 프랑스어로 봤다가 한국 와서 다시 보고 '오오' 했다.

올해 5월에 칸느가 시작되고서 파리에 있었다. 운 좋은 건 아니다. 의도했으니까. 내 생일이 칸이랑 비슷해서 항상 그렇게 된다. 이건 자랑이다. 이렇게 자랑하려고 열일했고 여긴 내 공간이니 맘껏 자랑해야지.

퐁피두에서 전시를 보다가 비가 와서 앞에 있는 극장에 들어갔다. 칸느 스페셜이 한다고 했다. 경쟁작 몇 편, 비경쟁작 몇 편을 (먼저인지는 모르겠음) 상연했다. 아가씨는 없었고, 곡성은 한국가서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다 못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꺼는 상영 리스트에 아쉽게 없었고, 영어권 영화중에서 유일한 선택지는 <카페 소사이어티>였다.

프랑스인 티켓 판매원 아줌마는 "너 영어 알아들음?"라고 프랑스어로 나한테 물어본 것 같다. 물론 나는 프랑스어를 못하기 때문에 내 추측이다. 나는 아주 자신있게 내 유효기간이 2년이나 더 남은 국제학생증을 들이밀며 학생할인까지 받아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2.
나한테 우디 앨런은 뉴욕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 영어를 하고, 뉴욕을 담는다. 물론 이 영화도 그렇고 미드나잇 인 파리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처럼 뉴욕이 아닌 영화도 있지만, 그냥 이 사람의 영화는 다 뉴요커의 이야기같다.



처음 <애니홀>을 보고 이렇게 영화에서 말이 많을 수 있구나 했다. 대사를 글로 옮기면 다 말도 안되고 뭔 소린가 싶은 중언부언인데 그게 영화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사건을 만든다. 몸을 써가면서 낄낄대는 서부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랑은 조금 다른 지점은 여기다. 이야기를 생각하고, (마치 아재개그처럼) 들을때는 음..하다가 한 두 시간 지나거나 아니면 새벽 두 시쯤 혼자 그걸 떠올리고 낄낄 웃는다.

블루 재스민에서는 재스민이 자기의 사치를 포장하기 위해 이말저말 다 떠벌거리면서 결국엔 공허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들이 자기의 말에 더 귀기울여달라고 그렇게 건조한 말을 끊임없이 내뱉는다.

이 영화에서 그런 역할은 제시 아이젠버그다. 아직까지 소셜 네트워크의 너드가 더 익숙한데 여기서는 '그래도 그나마 조금은' 심각해보이는 역할이랄까. 근데 제시 아이젠버그도 어려보이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그냥 힙스터 조무래기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둘 다 역할에 딱 맞는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특히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맨날 떡진 머리에 삐딱한 차림을 하다가 여기서 '꿈에서나 볼법한 아름다운 미녀 첫사랑'이 돼서 짠 나타나서 더 역할에 몰입이 안된 것 같다. (근데 평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제일 좋았다.. 이상하네...)

둘 다 나한테 너무 어린 이미지라서 아직은 꿈을 좇고 '환상의 나라'에 살 것 같은 이미지인데 마치 불혹의 위기를 겪는 얘기를 하고 있어서 자꾸 케이트 블란쳇의 자스민과 비교됐다.


3.
바비는 꿈의 동산, 헐리우드로 왔지만 결국 한계를 깨닫고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꿈은 시들해지고 뉴욕의 현실에 발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러다 다시 첫사랑 보니랑 재회하다가 영화는 먹먹하게 끝난다.


4.
보니를 보자마자 생각난 건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였다. 비슷하다. 돈많은 남자와 순수한 사랑 사이에서 돈을 택하지만, 약간의 후회는 있는? 그런 캐릭터지만 보니는 그래도 데이지보다는 더 밍기적대는 게 심하다. 그래서 더 정이 안간다.

데이지는 결국 자기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감정을 버리고 이성적 판단을 하지만, 보니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멍하게 바라보면서 이도저도 모를..그런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비친다. 이건 마치 '나는 사랑은 하지만 욕은 먹기 싫어', 차라리 데이지처럼 b**ch가 되던가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내가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안좋아해서 보니를 싫어하는 걸 수도 있지만 역할 자체가 욕 먹기는 싫지만 사랑은 좋아. 그니까 eat and have a cake 하겠다는 이런 태도가 너무 싫다. 하나만 해라.

이에 반해서 바비는 개츠비보다는 현실적이다. 개츠비가 무조건 직진이었다면 바비는 우회도 하고 뒤로도 가고 아니면 다시 돌아가는 '유두리'있는 사랑을 한다. 베로니카한테 꿈은 꿈일뿐이라고 하면서 위로하지만 그 뒤의 표정은 과연 꿈이었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하니까.


5.
우디 앨런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사랑에 대해 예전같았으면 "부도덕", "불륜", "이런 더러운" 이랬겠지만, 살다보니까 사람 마음이 과연 그렇게 딱 잘라 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간통도 아니고, 도망가서 범법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냥 가슴 한 구석에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걸 어쩌겠나. 그게 있어도 잘 누르고 살 수 있다면 되는거지.

영화가 끝나고 바에서 혼자 술 마시면서 그냥 저런 추억 하나 없는 게 오히려 더 슬픈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6.
이 글을 쓰는데 여진이 났다. 괜히 앞에 도덕이고 뭐고 이런 얘기 했다가 벌받은 거 아닌가 무섭다. 착하게 살아야지. ㅎ



Wednesday, September 7, 2016

굿바이 싱글 (Familyhood, 2016)



1.
혜수언니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리고 머리는 꼭 기르시고 앞으로 시그널같은 드라마나 직장의 신같은 코미디 하나만 더 찍어주세요. 아니면 짝같은 로맨스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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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굿바이 싱글>에서 생각해 볼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1) 임신한 여자애는 안돼고 임신시킨 남자애는 되는 상황
- 임신할 때 여자는 자신의 몸을 내준다. 이건 희생과 모성애 이런 말로 감싸야 할 게 아니다. 여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제로 너무 어릴 때 임신하면 위험도도 커진다) 애를 '품는다'. 남자가 펭귄처럼 알 품어줄 거 아닌 이상 여자가 임신 안한다고 뭐라고 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2인1실로 10개월 사는 게 아니라 그동안 먹을거, 입을거 다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도 어느 정도 제한받으며 산다. 왜냐고? 숭고한 '출산'의 의무를 져야 하니까. 끝나고도 축 늘어진 살을 봐야 하며 이제 육아의 고귀한 의무를 지며 모성애를 뿜어내야 할 차례다.

여기서 중학생(예고 볼 때는 그래도 고등학생은 될 줄 알았는데)이 임신을 한다. 그런데 임신시킨 남자는 국가대표로 선수권에 나간다. 여자는 국내 미술대회에서 입장을 거부당한다. 보기 안좋으니까. 차라리 새처럼 알을 낳고 부화까지는 누구든 돌볼 수 있으면 여자의 희생은 좀 더 줄어들었을까. (이건 뭐 자연의 법칙까지 다 여자희생이네)


2) 나이든 여배우
여배우라고 하는 것도 사실 웃기다. Actor는 직업이지만 Actress는 '여자'의 직업이다. 모든 직업에서 기본형은 남성이며 여성은 예외적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이든 여배우의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여자'에 주어진 역할은 제한돼 있고, 배우 시장에는 뉴페이스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니까 대중의 관심 얻기란 더더욱 어렵다. 나이든 배우들이 더 자극적인 역할에 매달리고, 보톡스건 수술이건 어쨌건 보기좋은 외모에 집착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3.
영화는 그냥저냥 재밌게 볼만하다. 우리 회사에서 딱 좋아할 스타일이다. ife에서 걸릴만한 문제들이 하나도 없다. 자막에도 심해봐야 bastard고 f나 c는 거의 없다.

한국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좀 더 직관적으로 와닿았다. 이 영화는 결국 새로운 '가족형태'를 얘기한다. 여배우와 '불알친구' 매니저(영화에서 직접 이렇게 말함.. 난 이 단어도 너무 싫지만)와 그 가족이 거의 한 가족이다. 여기서 '이모'라는 한국 가족언어는 정말 위대하다. 아줌마도 아니고 아빠친구누구아줌마가 아니라 그냥 이모라는 말로 모든 여자사람관계를 퉁칠수 있다. 그리고 새롭게 들어온 중학생까지 한 가족이 되면서 1인가족, 싱글맘같은 새로운 가족 형태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나라 제목은 제일 중심돼는 고주연의 변화에 맞춰서 굿바이 싱글이라고 한 것 같은데, 애를 가졌다고해서 싱글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어쨌든 파트너가 없는 상태는 싱글이니까 애의 유무랑은 관계없이.

영어 제목처럼 새로운 '가족'에 중점을 둔 제목이었으면 좀 더 반응이 다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족의 탄생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그건 같은 영화가 있어서 패스...)


4.
마동석은 정말 천의 얼굴이다. 그냥 무식한 근육맨이 아니라 다정한 뭔가가 있다. 파트너로 정유미에 서현진에, 앞치마 잘어울리는 근육맨이라니. 신선하다. 당분간 Don LEE 들어간 크레딧을 더 많이 볼 것 같다.


5.
같은 영화 열 번 이상 보는 것도 지겹다....하........

Thursday, September 1, 2016

Good Will Hunting (1997)

1.
과거에 읽었거나 봤던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이 든다. 줄거리도 다 알고 반전도 다 알지만, 주체인 내가 바뀌어서다.

요즘 새로운 책 대신 5~6년 전에 읽던 책들을 다시 꺼내 보는데 (eg. 기타노 다케시, 김중혁, 허지웅) 분명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데 새롭다. 사실 수필이나 에세이는 그 시대 이슈에 영향받는 것도 커서 새로운 것보다는 그냥 술술 읽혀서 뭔가 하기 싫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나는 놀지 않는다의 핑계를 대기 위해서 읽는다.

가장 새로운 건 책이 접힌 지점을 보거나 책에 쳐진 밑줄, 메모를 볼 때다. 그때는 무슨 지적 허영이 그렇게 가득했는지 왜 이런 걸 좋다고 별표에 밑줄에 접어놓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한테는 이 책의 이 문장이 엄청난 ####였지만 지금은 아,... 요정도나 음....? 하는 의문을 남기는 것도 많다.


2.
요즘 한국 극장가는 재개봉 열풍이다. 뭐 특정한 장르, 감독, 국가를 따질 것 없이 다 재개봉한다. 동네 극장에서도 하루에 한 편정도는 재개봉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영화배급사 입장에서는 이미 검증도 돼서 리스크도 적다. 게다가 한국 영화 덕후들은 (사실 이건 영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예술 매니아 전반적으로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특정한 장르에 편식하기 보다 그냥 좋은 건 다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옛날 영화를 틀어주면 어느 정도 티켓 세일즈는 보장받는다. 브로셔도 새로 찍을 필요 없으니 비용도 절약된다. 팬 입장에서는 우리 오빠/언니의 뽀송한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서로 어느 정도 또이또이하게 계산이 맞는 장사다.


3.
물론 여기 나도 포함해서.

<굿 윌 헌팅>은 로빈 윌리암스 스페셜로 해서 재개봉 됐다. (근데 재개봉하려면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왜 없는거지?)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랑 묶여서 같이 주목받은 건 '세상에서 버림받은 천재'가 '자기를 이해해주는' "참스승"을 만나서 '세상과 화해'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라서 라고 생각한다. (위플래시-플래쳐같이 타이거 티쳐까지 '진정한 스승'이라고 해석되는 판국이니)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내가 무척이나 똑똑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때여서 나한테도 이런 '선생님'이 필요하다, 세상은 왜 천재를 알아봐주지 않는거지 이러면서 끄적였다.

몇년이지나고 내가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면서 자기위안을 수십 번이고 되풀이하고, 지금 다시 보니까 천재보다는 그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그니까 영화에서도 그렇게 크게 안나오는 사람들한테 더 시선이 간다.


4.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척이었다면 과연 윌과 저렇게 오랜 시간 같이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션 교수도 대놓고 말했다. "척은 너한테 형제지, 영감을 주는 사람은 아냐"라고. 그니까 둘은 다른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는 엄청난 천재, 하나는 그냥 아이리쉬 블루컬러. 둘이 같이 해온 세월동안 아무리 척이 아무리 멍청하고 배운 게 없어도 지내다보면 기본적으로 윌이 나랑은 다른 비범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질투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순수한 우정을 지킬 수 있었을까.

특히 "나는 차에서 내려서 너희 집 문을 두드릴 때까지가 가장 설레. 니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났으면"이라고 하는 대사를 보면 얘는 정말 천성이 에인절인건지 그냥 자기 친구가 잘되는 게 '악의없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다.

그냥 다 포기하고 대충 산다는 윌한테 오히려 "내가 너였으면 그렇게 안살았어. 내가 갖고 싶어도 못갖는 그런 능력을 그렇게 쓴다는 건 오히려 우리를 모욕하는거야"라면서 화내는 장면에서 맷 데이먼이랑 벤 애플렉이 정말 '우정'이 뭔지 이 영화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5.



램보 교수는 노력을 죽어라 했다. 주어진 능력도 있겠지만, 그걸 알고 깨우치고 이걸 빛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갈고닦아서 겨우 1캐럿 정도의 다이아몬드가 됐다. 아니 많이 쳐줘서 3~4캐럿이라고 치자.

그런데 자기 눈 앞에 지금 제일 적게 쳐도 50~60은 됄, 다이아몬드 원석, 그것도 아주 특이한 색깔을 품은 순수한 원석이 눈에 딱 보인거다. 갈고닦았을 때 뭐가 될지 모를 그 원석이 자기가 원석인 걸 알고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되는 걸 아는데도 그 능력을 허비하는 게 보인다.

이 사람은 질투도 났겠지만, 똑똑한 사람이니까 자기 주제 파악도 빠르다. 나는 안됀다. KO 패,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원석을 제대로 갈고 닦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학문적인 궁금함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학자니까 윌이 수학적으로 뭔가 하나를 터뜨릴 수 있는거고,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겠지.

그래서 자기딴에는 최선을 다하는데, 이 스무살 넘은 원석은 그냥 이걸 낭비한다. 자기한테 주어졌으면 좋았을 이 재능을 낭비하는 걸 보고만 있으니 속이 탄다. 내가 저 능력이 있었다면 더 갈고 닦아서 뭔가를 하나 딱 했을텐데 이런 간절함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질투도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램보 교수가 불타는 수학 수식을 겨우 붙잡고, 나는 이걸 풀 수 없다 라고 하는 장면에서 무장해제된 듯이 울었다. 누군가한테는 정말 간절했을 그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낭비돼고 있다는 사실에 나를 끼워넣어서 극장 안에서 혼자 울었다.


6.
요즘 내 한계, 내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 주제파악을 하는 과정중이다. 그냥 여기까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게 더 명확해지는 상황이 다가왔을 때 나보다 좀 더 잘난 누군가를 바라보며 나는 질투심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십년 후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면 또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7.
사운드 트랙도 어릴때 들었을때는 뭔가 밋밋했는데, 영화 다시 보고 와서 지금 사흘째 엘리엇 스미스만 무한 반복중. 

Friday, August 19, 2016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2016)

1.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2013년 11월이다. BIFF는 10월이라 다른 담당자가 마켓 자료를 보라고 전달해준 걸 봤는데 "족구왕"에 별 다섯.

그리고 족구왕은 1년뒤에 개봉됐는데, 그때 즈음 다시 보고 나서 아.. 이런 영화가 한국에 있다니 하면서 박수를 쳤다. 너무 좋아서 영어로도 리뷰쓰고 이리저리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블로그에 그 해의 한국영화 으뜸이로 족구왕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잉투기는 안되고 족구왕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다. 똑같은 심각한 이야기를 해도 재밌으면 본다. '상업영화'의 성공 1순위는 재미다.

2.
왜 범죄의 여왕 얘기를 하면서 족구왕 얘기를 꺼냈냐면 범죄의 여왕은 족구왕 제작사(광화문시네마)에서 만들었다. 작년인가 올 초였나 마켓에서 광화문시네마 신작이 나온다는 얘기 듣고 꽤 기다렸던 영화다.


영화가 족구왕처럼 밝거나 경쾌하진 않지만 그림이 좀 비슷하다. 만약 족구왕의 만섭이 세상의 풍파를 거치고 때묻은 상태가 돼, 결국 이 고시촌에 들어온다면 덕구같이 되지 않았을까?

복학이라는 1차 위기를 거쳐 졸업해보니 세상은 이미 3포, 5포, 헬조선, 이생망에 문송한 곳이 돼버렸다. 갈 곳은 이제 '개천에서 용날 수 있다는' 고시촌밖에 없다. 여기에는 경찰 공무원, 사시 같은 우리 사회의 '용'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고시촌이 희망의 공간이 아니라 도피의 공간, 생존의 공간인 사회 밑바닥 사람들도 같이 엮여 있다. 개태는 길거리 태생이다. 그냥 그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 여기가 고향인 사람이다. 뉴스에서도 고시촌 얘기가 나오면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린 사람과 여기가 생존의 공간인 사람들이 나오는데 영화에서 그 공간은 잘 분리돼있다. 빼곡한 포스트잇과 할 수 있다는 겪언이 이곳을 탈출하려는 '개천'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배달음식과 컴컴하고 퀴퀴한 방안의 모습은 여기가 그냥 삶이 돼버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

3.
영화 속 고시촌을 보면서 청킹 맨션이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녹색빛이 감도는 제한된 공간에서 주인공들은 뛰어다닌다. 미경은 임청하를 떠올리게 하는 무릎 기장의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이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 막 오 똑같아 이런 건 아닌데 갖힌 공간, 그리고 폐쇄적이고 희망없는 이미지가 청킹맨션을 닮은 것 같았다. (물론 홍콩 다녀온지 얼마 안돼서 모든 잔상이 홍콩이랑 겹쳐보일 수도 있다.)





4.
영화는 12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도요금이 나온 걸 이상하게 여긴 고시생 엄마가 고시촌에 와서 범죄를 밝혀낸다는 스토리다. 꽤 엮어놓으려고 했지만 사실 절반 지나면 범인은 누구겠구나 하고 답은 나온다.

그래도 끝까지 보고 싶은 건 왜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걸 만든 사회의 모습이 구석구석 잘 녹아있어서다.

5.
영화에서 사회 문제를 얘기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너무 단편적으로 '헬조선' 하고 외치는 것보다, 영화니까 우선 재밌게 즐기돼 아 이런 얘기아 이거였구나 하고 해석해갈만한 여지를 남기는 게 보는 사람도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출장 전에 밤새서 보고 너무 재밌어서 몇 번 더 봤는데,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다. (19세인데도 불구하고 결론이 너무 빤하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와서 '울어라' '슬퍼라' 하고 강요하는 영화들 사이에 뭔가 다른 움직임을 줬으면 좋겠다.


Tuesday, August 16, 2016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1.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이렇게 재지 않았을텐데, 내가 몇년전만 됐어도 그냥 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조금 더 움츠러들고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건 속물로 가득한 미친 세상에서 개츠비는 혼자만 다른 길을 걷고 있어서다.


2.
며칠전에 기내 영화에서 바즈 루어만의 개츠비가 있길래 공짜로 주는 화이트 와인 세 잔이랑 함께 영화를 봤다. 그리고 한국에 오자마자 또 다시 찾아 봤다.

이해갈 것 같지 않았던 데이지가 조금씩 더 이해가 됐고 개츠비의 안쓰러움보다는 데이지의 선택에 동감했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되는건가.

개츠비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라고"하는데 마음이 어쨌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는 데이지의 표정이 이해가 갔다. 다 내려놓기에 이미 쥐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 계산을 해야 한다. 그냥 던져버리기엔 위험이 너무 크다. 데이지를 욕하기에 이미 둘이 떨어진 시간은 너무 길어져버렸다. 그동안 개츠비는 "내가 성공해서 호강시켜줄게"라는 생각으로 불태우고 있었지만, 데이지는 이미 다른 삶에 적응해있었다. 사랑보다 사람이 옆을 채워준다는 게 생각보다 크다.

3년전 처음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을 때랑은 다른 느낌이라 놀랐다.


3.
바즈 루어만 버전 개츠비는 맨체스터에서 처음 봤다. 한창 너무 힘들어서 다 때려치고 집에 가자, 이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내 생일 한 1주 전이었나? 존이 맨체스터에 와서 밥먹재서 밥도 먹고 영화를 봤다.

영화가 막 슬픈 것도 아닌데 펑펑 울었다. 그리고 에라 망한 인생 어디 1년 더 논다고 더 망할까 하고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생일이 칸느 기간이라 파리에도 칸느 영화제 포스터가 가득 붙어있었고, 개츠비도 그 구석에 있었다. 파리에서는 프랑스어 더빙판으로 또 한 번 봤다. 영화에서 캐리 멀리건 머리가 너무 예뻐서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70유로였나? 주고 저 머리 했다가 또 울면서 맨체스터에 돌아왔던 기억도 난다. 동양인의 모질과 서양인의 모질은 다르다. 매우 많이 아주.


이 영화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고 하면 어색하겠지만, 그냥 나는 그때 개츠비처럼 되고 싶었다.

"왜 여기 와서 이 고생해요?" "빨리 돌아와" "너 돌아오면 나이 몇인줄 알아?" "한국에서 잘 안됐어요?" 이런 말들에 질려있을 때 개츠비처럼 그냥 한 번 끝이 보이더라도 밀고나갈 위안을 얻었다. 영국에 온 건 도망이 아니라 도전이었다는 걸 증명해보고 싶었다. 바즈 루어만 영화의 화려한 불빛을 바라보며 나도 어떤 방법이 됐든 내 방식대로 한 번만 더 해보고 가자, 그렇게 영화 한 편으로 1년 반을 더 버티다 왔다.



4.
영화가 책보다 좋은 이유는 사운드트랙 때문도 있다.



"나는 어리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넌 나를 사랑할 거야"하는 데이지 시점 가사를 듣다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다 이렇게 간사한 거 아닌가.. 사실 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마 이 가사도 처음 듣고 감탄했다. 세상은 내 중심이고 모두가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나는 변해도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이게 당연한 마음이니까.


5.
데이지의 마음이 이해가는 이 시점에, 나는 다시 또 개츠비처럼 무모한 도전을 할 것 같다. 사서 고생, 팔자 트위스트가 dna에 박혀있는건지 모르겠으나.  개츠비처럼 다 잃게 되더라도 혼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