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18, 2016

The King of Comedy (1982)

Better to be king for a night than schmuck for a lifetime.


1. 
나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편이다. 항상 플랜 B, 아니 플랜 D까지는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일을 진행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가만히 있질 못한다. 그리고 100% 전력을 다하려는 순간 슬그머니 힘을 빼버린다. 그게 더 편하다. 나중에 실패했을 때 '아 나 대충했어'라고 쿨한 척 넘겨버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실패할 상황까지 가정하고 그 후의 나를 추스릴 꼼수까지 챙겨놓는다.

이 영화에서 루퍼트는 나랑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직업도 뭔지 모르겠고 (이건 나랑 비슷) 연기를 잘하는건가? 영화에서 루퍼트는 자기가 talented라고 하는데 이걸 인정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자기는 무대에 서서 코미디를 할 거라고 끊임없이 떠벌린다.

루퍼트가 제리의 사무실에 끊임없이 찾아가서 무한정 기다릴 수 있던 것도 자기의 '천재성'에 대한 믿음때문이었다. 그래서 플랜B나 실패를 예상하고 만든 핑계는 없었다. 그냥 하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납치극을 벌이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도 당당하다. 범죄자의 몸이지만, 자신은 무대에 올라야 하는 코미디언이라는 뻔뻔함이 부조리를 만든다. 죄를 지은 사람이 오히려 당당한 상황이고 죄를 안 지은 제리는 어떻게 보면 천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낡은 코미디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2.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루퍼트가 정말 너무 이해가 안갔다. 이 영화 자체가 그냥 이상했다. 행오버나 듀데이트처럼 아주 뻔뻔함이 흘러 넘치는 미국식 코미디같아서 온몸에 경기를 일으켰다. 

듀데이트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뻔뻔했던 에단의 모습이 루퍼트랑 겹쳐 보였다. 왜 저래? 미친 거 아냐?  열정도 나름이지, 니 열정에 남을 괴롭히지 말라고 속으로 백번 천번은 외쳤다.

몇년이 지나고 다시 보니 그런데 나는 저렇게 뻔뻔하게 내 길을 찾아간 적이 있었나 싶다. 내 길이 뭔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단 자꾸만 안전성과 불확실성을 머리로 계산했고 한 번도 순수하게 뭔가를 해본 적은 없다. 이성적이라는 틀 뒤에서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투자에서 최대 결과만을 바라던 참이었다.

3.
리타 패션과 1980년대 뉴욕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만 저 풍족했던 시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버블이나 이때처럼 풍요로움이 사회에 넘쳐 흘렀던 그런 사회에 살아보고 싶다. 

4.
하룻밤의 왕으로 살 용기가 나한테는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지만 글쎄..
지금까지도 뭘 하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 왕이 되기에 이미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그냥 이 생각을 하다보면 평생을 이런 멍청이로 비비적대다가 가는 건 아닐까.

Friday, February 12, 2016

검사외전(A Violent Prosecutor, 2016)

1.
뻔하게 웃기다. 내 예상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영화는 진행된다. 특히 법정씬의 경우에 증언을 받아내기 위한 그 트릭을 봤을때 속으로 '설마 ******하진 않겠지' '제발 **** 하지마'라고 간절히 바랐는데 영화는 그대로 끝났다.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허술함이 넘치지만 강동원이 이 허술함의 구멍을 외모로 메웠고 황정민이라는 중장년층에 잘 먹히는 카드 한 장, 그리고 박성웅이 조연에서 열심히 일한다. 감독이 황정민 강동원 캐스팅 됐다는 소리 듣고 10분간 울었다는데 10시간 울면서 감사기도 올려도 모자라다.

어디선가 인터넷에서 웃겼을 유머 (붐바스틱, 영호남+학벌 농담)와 어디선가 본 듯한 뻔뻔한 사기극(캐치미 이프유캔, 벽에 그리는 건 아주 좋게 봐서 프리즌 브레이크)이 배우들이랑 잘 맞아떨어졌다. 하나하나 왜 이건 이래?(칼빵은 어디로?) 하고 따지다보면 끝도 없겠지만 128분동안 감독이 '웃으세요' 하는 부분에서는 웃고 '그냥 보세요' 하는 부분에서는 그냥 웃다 나왔다. 연휴 내내 복잡한 머리를 식힌다는 목적에는 100000% 부합할 수 있는 영화다.

2. 
영화 배급사를 봤을 때부터 아 어느 정도 성공은 되겠구나 생각을 했다. 쇼박스는 2000년대부터 잘해온 회사다. 그동안 롯데가 뜨고 지고 씨제이가 몇 번의 큰 삽질을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중박 이상은 쳤고 상업영화로 해외 영화제에서도 먹힐 만한 작품을 몇 개 만들었다. 

문제는 영화 시간표다. 
트위터에서 버스 배차간격이라고 올라온 영화 시간표도 그렇고, 정말 왜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이 영화를 몰아주는 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몰렸다. CJ 계열 영화가 없기도 하고, 롯데는 로봇, 소리가 생각보다 너무 저조해서 여기에 내주고 자리 채우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러다보니 이 영화가 갑자기 '대형 배급사 빽을 받은 저질 한국 상업영화'의 대표주자로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상황이 돼버렸다.

천만이상의 영화가 하나 나오는 것보다 500만짜리 두 편이 나오는 게 시장에 선택할 '껀덕지'를 준다. 이 영화도 원래는 500짜리 선택지가 됐으면 이 엉성함도 데뷔작이라고 넘어갈 수 있었을 거고 줄거리의 뻔한 진행도 그냥 설날용 즐거운 오락영화로 하하호호 끝났을거다. 차기작에서도 꽤 괜찮은 감독이라는 인상을 남길만한 장면(교도소를 힙하게 꾸며놓은 건 감탄했다. 강동원의 외모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인건가)도 군데군데 있었다. 


사실 감독이 욕먹을 건 아니고 이건 회사들이 욕먹어야 한다. 앞으로 개봉 스케줄 봐도 그닥 좋지만은 않아서 이런 영화가 몇 개 더 나올 것 같다는 예상이 든다.


3. 
강동원은 그냥 경상도 대표미남배우로만 일해야 할 것 같다. 미국만 봐도 사투리 빡 쓰는 미남배우들 많은데 그 길을 이끄는 개척자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텐데. 적어도 표준어 쓰는 연기보다는 훨씬 보기 좋다.

황정민은 조연출연이더라도 곡성이 이 영화보다는 잘돼야 한다. 그래야 AAAAA 연속이던 필모에 적어도 뭔가 하나 다른 방점이 찍힐텐데. 

Thursday, February 11, 2016

자조론



금수저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흙수저라고 자조(自嘲)해본 적은 없다. 내가 원하는 행복은 내 능력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항상 있었다. 한국에서건 외국에서건 어느 정도로 바라던 만큼은 이뤘고 꽤 많은 경험을 단시간에 쌓은 편이니까.

요즘 몇 개월동안 몰려온 실패는 이십여년을 걸쳐 쌓아온 이 믿음을 와장창 무너뜨렸다. 왜? 왜 내가 안되는 걸까? 하고 묻다보면 그 이면에 뭔가 음모가 있을 거란 의심이 들었고 그렇게 음모에 이유를 덮어씌우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핑계를 주었고 나 자신을 그렇게 지켜나갔다.

이 글을 페이스북인가에서 보는데 많이 부러웠다. 뭔가를 미친듯이 해보라는 그 말투에서 건강한 용기와 씩씩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몇년 전의 나한테도 분명 있었을 모습인데.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행복했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모험이었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즐거워서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인 적도 종종 있었다. 물론 옛날일이다. 지금은 지친 눈을 하고 눈부비다 시간이 끝나면 노트북을 칼같이 접고, 동태눈을 하고 티비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들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꿈속에서도 소망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나 스스로를 위로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자조(自助)하면서 자랐던 걸 몇 달간 잊고 살았다.

올해 다시 나는 나를 도울 수 있을까.

Thursday, February 4, 2016

입춘

블로그를 하기로 했으니 뭔가 써야할 것 같은데 할 말이 없다. 말라 비틀어져가는 느낌이다.

겨울에는 항상 이런 느낌이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외롭고' '나만 이렇게 모자라고' '나만'의 연속. 이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서 나 스스로를 가여워하며 긴 겨울을 날려먹고는 허둥지둥 봄을 맞이하곤 했다. 이 때의 우울함이 힘들었지만 치열하게 고민한 덕분이 봄에는 손에 '뭔가' 잡히곤 했다. 

오늘은 입춘이고 내일모레면 음력 설이다. 이제 정말 움직여야 하는데. 나이 쫌 먹었다고 '아 이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움튼다. 예전에는 치열하게 사는 삶이 행복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처음인 것마냥 뭘 어떻게 해야할 지도 감이 안잡히는 상황. 이생망에 3포, 5포, 헬조선에..사회가 다들 '내려놓고' 사는 게  유행이 되버려서 열심히 살려고 하면 오히려 '뭘 그렇게까지 해야하나'하고 다시 나를 의심하게 된다.

경쟁에 지친 사람이 있다면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나다. 뭔가에 쪼이면서 극단까지 가서 '뽝' 일을 할 때의 긴장감이 너무 좋다. 현이 조여져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뭔가 자극과 압박이 있어서 각이 잡혀야 아웃풋이 나오는 성격인 것 같다. 문제는 지금 나한테 이런 조임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주변에서는 내가 유해져서 보기 좋다고 하고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는 웃지만 속에서는 애가 탄다. 이렇게 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흐물흐물 무너져버리는 느낌이다. 예전처럼 예민하고 날선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 동기를 도저히 못찾겠다. 


Monday, February 1, 2016

당신들의 적은 생각만큼 악하지 않다.

예전엔 이런 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왜? 왜? 내가 싫어하는 저 정당의 사람은 분명히 악질 쓰레기, 매국노에 상종못할 사람일거야라고 나누길 좋아했다.

내가 술만 마시면 맨날 얘기하던 4분면 인간론도 이런 내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4분면 인간론은 대학교 1학년때 (철없이) 내 인맥을 나눈답시고

도움이 되고 좋아하는 사람
도움은 되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
도움은 안되지만 좋아하는 사람
도움도 안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런 '칼로 물베기'를 사서 했다. 이걸 또 술먹으면서 냅킨에 써가면서 길길이 날뛰기까지 했다. 아 왜그랬지 싶지만 뭐 그때는 어렸으니까.

요즘 관계는 그 상황이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과 내가 지금 현재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평생 상종못할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이 사람한테 100% 동의한다 하더라도 내일이 되면 또 모르는 일이니. 유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그 상황에 충실해진 면도 있는 것 같다.

며칠간 정치 뉴스가 이런 느낌이다. 내 사람도 니 사람도 없고 그냥 꾼과 꾼들의 싸움.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칼을 찬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아 재밌다. 최고 어그로들끼리 모여서 제대로 싸우는 걸 보니까 내 적도 네 적도 다 없고 그냥 이기는 놈이 내 편이라는 말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