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 2017

어느날 (One Day, 2017)

1.
당연하다는 것은 사람을 무디게 한다. 공기처럼 늘 기본값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이 당연함이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갑자기 한 감각을 느낄 수 없다면, 그 감각이 세상을 인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했는지 느낄 수 있고, 늘 옆에 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면 그들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 깨닫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소중해지는 것은 결국 늘 함께해온 것이다. <어느날>은 항상 당연하게 있기에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순간을 바라본다.  

2.
보험조사관 강수는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한순간에 잃었다. 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던  아내가 죽었지만, 그는 힘들어하는 내색 없이 다시 업무로 복귀한다. 처남에게 뺨을 맞고, 주변 사람에게 독하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의 슬픔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아내를 간병하며 지쳐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슬픔을 드러내는 순간 상실감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에서 아내와의 기억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가 마주하는 모든 일상은 이제 추억의 지뢰밭이 되어 그를 괴롭힌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는 슬퍼하지 않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슬퍼한다 해도 이미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시각장애인 미소는 평생을 보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도 목소리로만 기억한다. 자신을 돌봐주던 사람도 촉각으로만 기억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시각을 제외한 감각으로만 느끼고 인지한다. 불완전하던 미소의 감각은 교통사고로 죽음과 맞닥뜨리며 완전해진다. 코마 상태에 빠져 육체와 분리된 그녀의 영혼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눈부신 세상의 빛과 마주하게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매일 지나치기 때문에 놀랍지 않은 기차 같은 전철과 내달리는 오토바이의 모습에도 놀라워하고 기뻐하며, 불완전한 영혼으로나마 완전한 감각을 누린다. 그녀가 직접 보고싶었던 것은 살면서는 볼 수 없었던 블루하와이 색깔과 비슷한 바다일 수도 있고 영화관에서 두 눈으로 보는 영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보고 싶던 것은 목소리와 손끝으로만 기억하던 사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4.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처음 보고 기뻐하는 미소의 모습과, 이를 보면서 아내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강수의 모습은 각각 현재의 순간과 과거의 기억으로 대비된다. 미소가 느끼는 기쁨처럼 현재의 환희는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느끼는 미소는 완전한 삶도, 완전한 죽음도 아닌 그 사이에 놓였다. 현재의 기쁨도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소의 상태처럼 불완전한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결국 그 순간도 과거가 되어 기억이 돼버리고, 그 기억은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중했던 기억은 흐려질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내를 잃은 후 함께했던 기억을 억지로 눌러놓은 강수가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순간,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기억은 다시 현실이 된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좋았던 감정만을 떠올리기도 한다.

5.
<어느날>은 시각장애인이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세상을 본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일상의 특별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강수와 미소라는 두 주인공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일상적이지도,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상을 재발견하던 영화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이야기를 통속적으로 바꿔버린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와 보험사기꾼의 이야기는 영화에 가장의 의무감이라는 엉뚱한 주제를 덧대 무겁게 바꿔 극의 전체 흐름을 끊는다. 주인공 캐릭터에만 더 집중해 기억과 감각이라는 두 일상적인 가치를 강조했더라면 영화의 흐름이 더 일관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6.

사람은 당연한 존재, 당연한 상황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친 이들과 상황들이 사실은 매 순간이 특별했다는 것을 상실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강수와 미소의 만남은 일상의 당연함을 상실하고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여정이었다. 이 치유의 끝이 기억을 다시 현실로 되돌리거나 바람을 실재로 이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나간 것을 되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결국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다만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기억은 힘이 세지고, 모든 일상은 특별해진다

Thursday, March 23, 2017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1.
Penny Wise, Pound Foolish.

마이클 레젠데스라는 기자한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신은 탐사 보도의가치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탐사보도가 무척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 더이상 어떤 회사도 그렇게 수익성없는 사업에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 (플러스, 왜 신문사는 더이상 신입을 뽑지 않냐 라는 푸념도 했다. 세상에. 국제 진상이다.)

당시 나는 몇 개의 국내 외 언론사 시험에서 줄줄이 떨어져서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 언론까지 모두 다 x까라는 식의 회의론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언론은 무슨, 다들 기레기야 라는 식의 허무론에 빠져 그냥 다시 하던 회사 일에 열심히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극장판 사람들끼리 서울극장에서 별 기대없이 이 영화를 보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건지 보스턴 글로브를 뒤져서 이메일을 찾았고 그날 폰으로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는 (기자답지 않게) 친절하게 바로 칼답을 보냈다.
(모든 기자가 친절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기자에게서 일반 독자, 혹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답변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힘든 길이고, 수익도 낮지만 결국 이런 돈을 아끼는 건 푼돈이고 그로 인해서 결국 독자라는 장기적인 고객을 잃는다고 했다. 탐사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특징이니까 이걸 안하면 결국 제 기능을 스스로가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다시 집에 와서 논술 퇴고를 하고 잠든 기억이 난다.


2.
톰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톤 글로브지의 탐사보도 팀 '스포트라이트' 이야기를 다뤘다. 미국 3대 일간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신문이 겪는 것처럼 수익 만들기는 어렵고, 광고나 독자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가 성추문을 저질렀다는 제보를 받으면서 이걸 기사화하는 게 영화의 큰 틀이다. 한 줄로 거칠게 말하면 '참기자 짱짱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단순하다.

우리나라에서 기자와 정치, 사회부조리를 다룬 영화들처럼 권모술수도 없고, 피바람도 불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자들이라면 저런 위험한 짓을 할 때 혼자 차가 쌩쌩 다니는 길거리를 걷지도 않을 것이며, 피자를 누가 가져다준다면 그 안의 내용물을 의심할 것이고, 기록해놓은 파일이나 기자수첩은 복제와 복제를 해서 분산시켜놓을텐데 이 영화는 그런 장면은 전혀 없다. 영화에서 마이크가 혼자 돌아다니고 자꾸 주인공들이 밤에 무방비로 있는 별것 아닌 장면에서 오히려 긴장하게 되는 건 우리나라의 이례적인 케이스에 익숙해져서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사주가 나타나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당장 나가" 식의 해고도 없고, 팀원들끼리 서로 내부 정치질하는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온 편집장 마티에 대한 경계심은 있지만, 그건 뭐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로 보고 넘어갈 정도로 미미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 사람들이 사건을 재연하는 모습도 담기지 않았다. 우리나라같으면 아래에서 찍는 샷으로 해서 최대한 '관음적'으로 재연했을 그 모습 대신 피해자들의 현재 모습과 그 순간을 되새기며 터지는 울음만 묵묵히 담았다.

기자들도 미드 뉴스룸에서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연설하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뉴스룸도 없다.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앉아 그저 이 사건에 왜 더 빨리 눈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하는 로비의 자괴감과 우리는 이런 타운에 살고 있었어 라는 맷의 공포(사건을 조사하며 자신의 애들한테 절대 *저기엔* 가선 안된다고 경고를 한다.) 정도가 영화의 변주다.

선배의 조리돌림도 없고, 국장의 쪼이기도 없다. 그냥 묵묵히 하나의 '진실'만을 찾는 기자들의 모습만 보인다. 2001년이다보니 기자들은 수첩을 들고 직접 도서관의 인명부를 줄쳐가며 조사를 한다. 소셜미디어? 인터넷 창 움직이는 걸 봐도 *속도감*이 넘친다.


3.
탈진실의 시대다. 진실도 아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으니 됐다는 모순형용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애매모호하다. 사람들은 더이상 언론을 믿지 않는다. 자극적인 탈진실에 눈길이 더 가다보니 수익원도 불분명해졌다. 소셜미디어다 1인미디어다 뭐다 하면서 정보에 대한 독점지배권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는 짧은 단타 수익에 빠지거나 (일명 기레기, 특종, 단독 저널리즘) 아니면 정파 저널리즘에 빠지거나 (NYT) 혹은 사라지기 일쑤다. 영국에서 좋아하던 인디는 이제 더이상 종이신문을 내지 않고, 라이프지는 2007년 사라졌다.

며칠 전 (아이러니컬하게 제3의 언론인) 네이버에서 무료 영화로 이 영화가 풀리면서 다시 봤다. 여전히 좋았고, 네이버에 뜬 뉴스를 흘끗흘끗 보면서 영화를 보니 처음 봤던 때보다 더 슬펐다. 영화에서도 결국 사회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교구장은 다시 승진을 했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가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로 조금 나아갈 듯 하면 결국 빵빵 하나씩 터지고, 상상의 범주를 넘은 기괴한 일들이 기괴한 제목을 달고 매일 나온다. 나는 헌재 재판관 내정자가 왜 흙수저로 기사화되는지 모르겠고, 용의녀라는 단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MSG맛 가득한 기사들 사이에서 뭔가 하나를 찾기 위해 계속 읽지만 찾기가 어렵다.

이제는 더 이상 언론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읽지는 않는다. 그냥 습관이라서 읽고 읽지 않으면 어색해서 읽는다. 사람은 언젠가는 변하니까 내 습관도 곧 변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같은 Pound를 위해서 Penny를 쓸 수 있는 언론사들이 남아 내가 이 오래된 습관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4.
쓰고나서 포털 뉴스를 보는데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싶다.


5.
마티 바론은 WP에 갔다. 마이크는 여전히 보스턴에 남아서 열심히 글을 쓴다. 아마존을 업은 WP의 화려함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기사 자체는 보스턴 글로브가 더 재밌다. 미국 가게 되면 종이신문으로도 사서 읽고 싶다. (전자화 되기 전에 미국가겠단 소리다.)

Monday, March 20, 2017

小幸運

1.
이제 출장이 다 끝났다. 싱가포르, 공항들, 그리고 홍콩까지 왔다갔다하면서 몇 번의 리젝션 문자와 쓴 술을 비웠고, 몇 번의 회식과 술자리를 거치니 3월도 거의 끝나간다.


2.
2010년 8월, 홍콩 카오룽통 캠퍼스에서 이 친구들을 만난 건 우주의 기적같은 일이었다.

나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점수는 있었지만 어떻게 말하는 지 몰랐고, 플랫한 사운드였다. 그리고 나는 표정이 없었다. 티미드한 아시안 걸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였다. 이주현.

땀이 삐질삐질 나는 카오룽통 캠퍼스 거리에서 뭔가 말을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외국 애들의 제스처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교환학생 모임에서 뒤로 쳐졌다. 음식도 가리는데 첫날 먹은 음식이 KLC의 태국 생새우 요리였다. 집에도 가고 싶었고, 모든 게 다 싫었다. 나는 피곤한데 자꾸 디저트를 먹으러 (그놈의 망고푸딩) 새벽까지 그 더운 거리에서 망고푸딩을 (맥주도 아니고) 먹으면서 못 알아듣는 영어 대화에 희미하게 미소만 지어야 했다. 온지 일주일만에 유일하게 나한테서만 베드버그가 나와서 온몸이 가려워서 집에 가겠다고 스물셋의 나이에(거기 나이로는 스물둘) 엉엉 울며 집으로 전화를 했다. 홍콩 영화에서 본 푸르스름하던 홍콩의 모습은 그냥 곰팡이 냄새가 나는 퀴퀴한 더러운 도시였다.

만약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마리가 아닌 이주현으로 그저 그렇게 지내다 학기 중간에 그냥 돌아왔을 지 모른다. 아니 그랬을 것 같다.


3.
윙은 케이팝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빅뱅과 비스트를 좋아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그렇게 고마운 적이 없을 정도로,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이러저러한 케이팝 얘기를 했다. 그리고 윙은 친절하게 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기다려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친구 에미를 소개해줬다. 그 옆에 서있던 애거스와 함께 우리는 한 모임이 됐다.

브리티쉬 본 차이니즈, 홍콩 출신인 윙을 알게 돼서 모든 게 편해졌다. 음식을 직접 주문하지 않아도 윙은 내가 먹는 걸 귀신같이 잘 알아채 주문해줬다. 혼자 밥을 못먹어서 밥을 굷거나 징징대기 일쑤였던 나한테 어디 나갈까 하고 물어봐줬다. 내가 그때 얼만큼 진상이었냐면 아침도 혼자 먹기 싫다고 윙 기숙사방에 가서 (8층이었나....) 문 두드린 적도 있었다. 아침잠 많은 윙한테 아침 먹자고 징징댄 걸 생각하면 참 개진상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윙이랑 친해진 덕분에 한 학기동안 거의 매일매일 쇼핑을 다녔다. 그때 처음 내 옷 취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머리를 기르고 묶고, 힐을 신고 뛰는 것도 그때 익숙해졌다. 내 어설픈 요리를 좋아해준 윙 덕분에 지나고 나서도 요리에 취미를 붙였다. 맨체스터에서 내가 해준 야매 한식에 항상 쏘 나이스하다고 하더니, 우리집 와서는 엄마가 해준 달걀 프라이가 제일 맛있다고, 꼭 그거 다시 먹고 싶다고 그러더라.

양수오에서 장이 꼬여 쓰러졌을 때는 윙이 우리 집에 전화해준 덕분에 부모님은 딸내미가 이역만리 중국땅의 병원에서 링거맞고 울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 일을 여전히 우려먹으며 내 생명을 살려줬다고 으쓱댄다. (물론 정말 고맙다만 이제 그만 좀 하자.)

윙이 아니었다면 맨체스터로 다시 갈 일도 없었을테고, 아마 그랬다면 내 삶은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지금도 영국을 다녀온 걸 후회하다가 또 만족하다가 오락가락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건 그만큼 함께 붙어 지낸 시간이 많아서일지 모른다. 내가 영어로 밥벌이는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제 홍콩 요리를 한식보다 더 좋아하게 된 것도 다 윙이랑 같이 지낸 시간이 만든 변화였다.

물론 같이 살다보니 (내 잘못이 컸지만) 윙이랑 부딪히는 경우도 많았고, 한 1년 정도는 거의 연락을 안하고 지냈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어렸고 철이 없었고 거의 다 내 잘못이었다. 내 위생관념이 아니라 거의 결벽에 가까운 진상짓이었고. 지난 겨울에 집에 놀러왔을때도 짜증 많이 냈는데 미안하네.

이번 출장 때 홍콩 친구랑 일요일에 배드민턴 쳤다고 하니까 지인은 "홍콩에 집있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나는 집은 없지만, 집처럼 의지할 친구 아니 그 이상의 시스터후드가 홍콩에 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4.
존이랑 친해진 건 진짜로 미라클 오브 미라클, 우주의 기적이다.

교환학생들 오티 모임에서 레인보우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내 테이블 대각선 앞에 앉아있던 존은 카이시라는 저장성 출신 애랑 앉아있었다. (나는 이 둘이 베프인 줄 알았는데 이날 처음 만났다고) 나는 무슨 말을 할 지도 몰랐고, 사실 존도 표정이 가만히 있으면 엄청 쎄-한 편이라 그냥 조용히 밥만 먹고 옆 테이블에 있던 친한 교환학생 모임 애들이랑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반에 얘도 좀 빻은 질문 (ie. 한국사람들은 진짜 공자를 니네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냐.. 왜 너네는 중국꺼를 다 가져가려고 하냐, 천안문 사태는 미국의 조작 아닐까 등등)을 많이 해서 "난 얘랑은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역시 네버 세이 네버.

가을 학기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매일 나한테 전화를 해준 건 존이었고, 매일 저녁 밥을 같이 제일 많이 먹은 건 존이었다. 전공이 비슷하다보니 수업도 학기마다 세네개는 같이 듣고 그룹 워크도 같이 했다. 나는 수업을 많이 째는 편이었고 존은 수업 예습을 많이 하는, 완전 다른 트랙에 서있는 스타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수업 째고 놀자고 진상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같이 미술관도 가고, 시위도 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첫날의 다짐과는 달리 매일 연락하던 친구가 됐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5월 22일, 그러니까 존이 돌아가는 날 기숙사 캔틴에서 다같이 밥 먹다가 내가 너무 울어서 카레가 넘쳤다. 윙도 아니고 로라도 아니고 존이 하루 먼저 간다는 소식에 너무 놀라서 펑펑 울었다. 주하이에서 온 부모님이랑 같이 돌아가는 존을 보면서 기숙사 앞에서 세상 무너지는 듯 울었고 그날 방안에 들어가서도 내내 울었다. 분명 다시 볼 수 있는 거리인데 왜 나는 다시 못 볼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중국까지 고작 해봐야 두 시간인데. 그때는 누구랑 헤어지는 게 무서웠고 끝을 보는 게 너무 버거워서 할 수 있는 건 우는 일밖에 없었다.

밤에 호텔에서 다시 돌아온 존이랑 룸메였던 레이몬드, 우리 모임 페이슨 나 이렇게 넷이서 마지막날 밤 술을 마셨다. (이 멤버에 로라, 윙, 에미까지 더해서 우리는 아직도 단체 위챗방에서 여전히 헛소리를 한다.)

돌아와서 디비알 인턴을 하는 내내 매일 사무실에서 스카이프를 했고 대학원 얘기, 취업 얘기,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내가 영국 가기 1주일 전에 영국 근처의 쉐필드에서 존은 석사를 했다. 존이 있던 덕분에 윙이랑 싸우고 맨체스터가 싫어진 날에는 존이랑 만나서 리버풀도 가고,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던 2013년 내 생일 즈음에는 존이랑 내 인생영화인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일을 하게 돼서 좀 더 영국에 남게 됐고, 런던에서 내려갔을 때도 거기서 인턴하고 있던 존을 만나고, 피같은 오프를 내서 존 졸업식에도 다녀왔다.

지금도 존은 참 착하고 좋은 친구다. 매년 만날 때마다 배울 게 있는 친구고,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쓰레기처럼 놀기만 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5.
친구들에 대해서 쓰고 싶은 말은 더 많은데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게 참 답답하다.

다녀오고 나서 허한 마음이 더 드는 건 나는 그대로인데 친구들은 더 나아간 모습을 봐서 인것 같다. 내 마음은 여전히 카오룽통 워털루 로드에서 떠들던 그 때 그대로인데, 거기에 남은 건 나밖에 없는 느낌이다.

앞으로 1년, 3년, 10년 후 우리 모습은 어떻게 될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이제 하고 싶지 않은데.... 다녀오고 나서 자꾸 후회와 그리움만 남는다.


6.

친구들한테 이렇게 고마워하는 걸 보니 이제 철이 든 걸까 아니면 그냥 이것도 잡생각인가..

가까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게 참 많은 것 같다. 그때 기억도 지나고 나니까 좋은 것만 다 남는다. 빨리 다시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Friday, March 17, 2017

밤의 해변에서 혼자 (On the Beach, at Night Alone, 2017)

1.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 과연 그럴까.


2.
이 영화가 스크리닝 잡힌 날 한국에서도 언시가 있었다. 홍콩에서는 일부러 한국 신문을 찾아보지 않아서 감독 인터뷰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그날 아침부터 카톡방에 홍상수 얘기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사실 그런 큰 스캔들이 일어나면 영화보다는 영화 외적인 인터뷰가 더 그 영화를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피하게 되는데 다행스럽게 이번 출장에서는 로밍을 안했다. 내가 그 감독의 사생활에 대해 그렇게 알아야 하나?


3.
홍상수 영화를 보면, 뭐 이런 걸 이렇게까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할 정도로 그냥 이야기를 술술 푼다. 이게 맨정신인지 아니면 전날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이렇게 보이는 건지 헷갈리지만, 그래도 그렇게 술술 이야기에 빠져서 보고 나면 영화가 끝난다.

물론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말을 많이 하는 남자들의 맨스플레인과 거기에 '하'하고 마치 선생님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젊은 여자들의 모습은 불편하고, 그 나누는 대화들이 정말 자신들의 예술에만 갖힌 궤변이라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다..

진짜가 뭐고 가짜가 뭐고 진정성과 참예술에 대한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도 들면서 저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하진 않나 싶다가도 그게 홍상수라는 게 짜증이 나다가 또 영화를 보면 아.. 이러고 넘어가는 복합적 감정의 변화다.


4.
영화는 솔직히 지금까지 본 홍상수 감독 영화중에 제일 재밌었다. 막 극적인 사건이 없는 홍 감독 영화에서 자신의 실제 삶이 극적 효과를 더해서일지 모른다. 진짜 얘기였을까 하는 추측을 하면서 영희의 모습에는 김민희를 덮고 문성근의 모습에는 홍상수를 덮으면 된다. 그러면 갑자기 영화는 스포츠 ㅁㅁ가 돼고 연예가 소식이 된다.

현장 스태프와 자신의 연인인 감독님 얘기를 하면서 "감독님 잘 계셔요?"라고 살랑거리며 묻는 영희의 모습은 베를린에서 그 모습을 닮았다. 이게 사실인지 아니면 영화가 사실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역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되는 게 맞나보다)

자기는 남자 많이 만나봤고 놀건 다 놀았지만, 이제 더이상 얼굴 안본다는 영화 속 영화의 대사에서 그럼 당신은 이제 (홍상수 감독에게서) 뭘 보십니까...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90퍼센트였다.


5.
김민희의 목소리나 발성(쪼)를 안좋아해서 다른 영화보다 감동을 받지는 않았다. 아가씨때도 그랬고, 살짝 앵앵대는 목소리라 나는 흥이 깨졌다. 권해효의 너털 웃음도 괜히 개저씨의 너스레로 보이고, 정재영의 우물쭈물함은 답답한 중년 남자의 모습처럼 보이는 건 결국 내가 영화를 도덕에 맞춰 봐서 그런걸까?

영화가 도덕의 법칙을 따라야 할까. 간통이 도덕의 영역에서 어떻게 간주돼야 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홍상수 기사에 분통을 터트리던 지인의 카톡으로 (컨벤션홀은 와이파이가 터진다) 폰은 쉴새없이 울렸고, 영화에 빠져들려다가도 "간통"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며 나를 붙잡는 걸 보면서 과연 도대체 어디까지가 옳고 그른지 멍해졌다.




Wednesday, March 8, 2017

마른 손으로 모래알을 움켜쥐려는 것 같다. 아무리 힘을 쥐고 애써보지만 손을 펴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뻣뻣한 상태로 버티는 데 익숙해지다보니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도대체 뭐가? 왜?
감정이 들지 않고 그냥 무뎌지다가 이제는 메말라버리는 것 같아서 두렵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오늘부터는 일찍 자보기로 했다. 7시간이 기본형이라길래 그것보단 적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많은 5~6시간 정도로? 중간에 깨지나 않으면 좋겠다. 

Monday, February 20, 2017

단지 세상의 끝 (Juste la fin du monde, 2016)

1.
영화를 보면서 잘 만들어진 영화가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예술이라는 게 개인의 취향을 따라 갈리는 거라 어떤 사람에 따라서는 대부2보다 신세계가 더 좋을 수도 있는거다.

나는 자의식 과잉된 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영화는 보지 않는다. 주제나 이야기는 다를 수 있지만, 절제되서 꾹꾹 눌린 영화를 좋아한다.


2.
자비에 돌란은 정말 불호불호불호불호다.
예전에 영화 모임에서 술 마시면서 89년생이었던 영화쪽 지인이 "내 친구 돌란이" 하길래 나는 "내 친구 아델이"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던 기억이 난다.

자비에 돌란은 89년생이고 데뷔작이 우리나라 나이로는 스무살, 만나이로는 19살인가 18살인가 그렇다. (한국 나이 사라져라)

그리고 2016년에는 결국 깐느에서 상까지 받았다. 이 정도면 타이틀만 봐도 뭔가 대단한 게 있어야 하는데 나한테는 그냥 아직까지 감정 과잉으로만 느껴진다.


3.
이렇게 자비에 돌란=감정과잉, 자의식의 지나친 발현이라고 하는 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존경하는 정성일 선생님께서는 이날 본 무비토크에서 "자비에 돌란은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영화화하려는 감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심리적 상태를 둘러싼 건 자의식, 개인의 감정이다. 이게 영화 러닝 타임에 꾹꾹 눌러담겼으니 내가 싫어하는 게 모두 담긴 영화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영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미묘한 심리를 잡아내는 데에서 자비에 돌란은 천재적이다. 엄마와의 관계를 묘사한 I Killed My Mother를 보면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게 엄마라서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뭔가 먹는 데서 구역질을 느끼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혐오 감정의 핵심 아닐까.


4.
단지 세상의 끝은 프랑스어다. 퀘벡 프랑스어가 아니라 정말 authentic한 프랑스 배우를 데려다 놓고 프랑스어로 찍었다.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집에 돌아와서 그 소중한 순간을 가족에게 쓴다. 그런데 가족은? 가족들의 모습은 또 어떻냐면 엉망이다. ㅋㅋㅋ

이 영화에서 두 가지 가정이 있다.

1) 루이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다
2) 루이의 죽음에 대해 모른다

이건데 영화가 감정과잉, 정신병자의 이야기가 아니기 위해서는 1의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 알지만, 공식적으로 컨펌되지 않은 둘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하면 "어머 그래 힘들었지" "엉엉 그래 우리랑 같이 있자"라고 말하면서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서 눈치게임이 되버리는 거다.

그것도 프랑스어로. 역시 혁명의 나라답게 싸움을 하는 언어도 격하다. 계속 쏟아내는 대사들을 보다가 배우가 에너지 소진이 어마어마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흥미로운 캐릭터는 루이도, 여동생도 아니고 벵상 카셀이었다.

첫째, 책임감, 가장. 앙투안은 동생에게서 자기가 갖고 싶었던 능력, 자유로운 삶을 끊임없이 본다. 여동생과는 달리 터울이 얼마 없어서 옆에서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어릴적부터 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결국 좌절하게 되는 인물이다.

모질게 말하지 말라고 몰아붙이는 가족한테 오히려 소심하게 울면서 소리칠 수밖에 없는 건 아무도 내 편이 아닌 상황, 정말 모두가 사랑하는 똑똑하고 잘난 동생과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아니었을까.

마리온 꼬띠아르가 말을 순하게 해서 착한 인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유일한 악역은 마리온 꼬띠아르였다. 말 그대로 '빙썅'. 웃는 낯으로 후비는 말을 다 하는 사람이다.

"이번에 데려오는 건 적절치 않아서"
죽음을 앞둔 이에게 다음이 어디 있다고.

"게이라서 아이를 가지실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 차별까지 한다.

"앙투안이라는 이름은 별로였어요."
형제 사이에 이간질도 한다.

남편과 동생 사이를 화해시키려는 듯 하면서 계속 뭔가 하나씩 이간질하는 포인트를 던져서 결국 감정을 폭발시킨다.


6.
자비에 돌란을 보면 Years & Years 노래가 생각난다. 뭔가 계속 휘몰아치는데 끝나고 나면 텅 빈 느낌.

19살에 만든 I Killed My Mother 와 7년 후 단지 세상의 끝은 다를 수밖에 없다. 10대와 20대의 생각이 같다면 그건 더 쓰레기같을테니. 이걸 지켜본다면 다음 작품이 어떨 지 궁금하긴 한데, 또 보자니 썩히 안내키고. 나쁘진 않은데 보라면 보기는 싫은 그런 감독.

자비에 돌란은 그래서 재밌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버겁다.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 같은 감정을 꼬챙이로 쑤셔서 끌어내는 것 같아서 더 방어적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7.
정성일 선생님처럼 치열하게 영화를 봐야겠다는 반성과, 영화를 '보는' 게 정말 look이었는지 See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던 무비토크였다.

나는 시네필도 뭣도 못되는 그냥 영화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맞는 게 아닐까....

Friday, January 27, 2017

Resolution 2017

양력 1월 1일은 연습기간의 시작이었고 약 27일간의 유예기간과 연습의 연습, 마지막 연습을 거쳐 2017년에는 어떻게 살 지 방향을 찾았다. 

이제 내일은 빼도박도 못하게 음력이고 새해다.. (만 태국력도 있고, 이슬람력도 있고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양심상 더이상의 대타협은 그만하기로 한다.)


미니멀리스트

내 삶은 맥시멀리스트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썼고 짜증을 풀기 위해 돈을 썼다. 나는 aa한 사람이니까 bb를 써야하고, cc를 쓰면 dd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물건이 나인양 살았던 것 같다.

요즘 드니까 참 허무하다. 돈을 못모아서 그런게 아니라(물론 브렉시트로 위기감이 든 것도 1%정도) 그냥 모든 게 다 재미없다. 새 화장품을 사도 그게 그거고 새 옷을 사도 그렇다. 물건에 대한 attachment가 없다보니 잃어버려도 그냥 그만..인가보다 하고 다시 바로 사버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똑같은 걸 사기도 한다. 대부분 화장품인데 그러다보니 몇 브랜드는 브압도 찍고 그랬다. 쓰지도 못해 발에 바르는 크림이 산더미인걸 보니까 반성도 됐다. 책도 사재기로 몇 권씩 사놓고 했는데 결국 읽지 않아서 먼지가 쌓이고 피부염만 더 심해졌다. 지인은 차라리 뷰티블로그를 해보라고 했는데, 그게 또 일이 되면 짜증이 날거고 그러면 또 새로운 걸 사겠지. 

너무 많이 쌓아놓고 살다보니 물건에 질식하는 느낌이고 모든 게 새롭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영국에서 캐리어 하나에 담길 짐만 가지고 가볍게 살 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언제든 떠날 각오를 하고 나한테 집중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쌓아놓은 물건들이 내 삶을 잠식한 느낌이다.

어쩌다보니 색조를 안산 지는 한달 반이 됐고, 책장 한 칸을 비웠다. 뭐 가끔가다 짜증이 나면 신촌 현백으로 달려가 그냥 아무거나 손에 쥐고 나오고 싶고 교보문고에서 가득가득 사오고 싶지만 그 거짓위안이 얼마가지 않는다는 걸 되새기면서 참는 습관도 들이고 있다. 쇼핑은 자본주의의 아편이라 단번에 끊기는 어렵다. (오늘도 한정판 광고를 몇 개 봤다. 세상에) 그래도 오롯이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할 것 같다. 물건도 내 삶도 가볍게.

(영국에서 사온 가향기간 지난 차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시네필

몇 주 전에 영화모임 하던 언니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시네필의 조건이 나왔다.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나온건데 조건은 세 개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볼 것, 영화 리뷰를 써볼 것, 그리고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볼 것.

작년에 앞의 두 조건은 많이 채웠다. 나름 영화노트를 만들어서 영화를 분석해보려고도 했고, 영상원이나 안보던 영화를 공부로 찾아가며 '뭐가 좋은 영화'인지 평론가 정성일 선생님의 마음으로 보고 썼다.

나는 창작에는 관심없는 사람이니 만드는 건 관심없다고 얘기했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내가 감독이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정 선생님이 갑자기 카페 느와르를 찍겠다고 나섰는지 이해가 되니까 내 얘기를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런 인물은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사실 시나리오의 ㅅ도 모르고 개연성이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보여야 할 지 감도 안오지만 그래도 올해 내 시나리오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게 다큐가 됐건 sf가 됐건 하나는 꼭 완성해봐야지. (물론 단편)

* 정성일 선생님이랑은 일면식도 없지만, 평론집을 읽었을 때 충격덕분에 많이 배워서 나한테는 선생님이다.


다리 180도 찢기

작년에 시작하고 아직까지 '너무너무너무' 재밌게 하고 있다.
자세가 짝다리, 어깨 구부림, 거기다가 엉덩이 빠지는 안좋음 3박자를 갖추고 있어서 운동을 꾸준히 해도 뭔가 몸이 안 예쁘게 컸다. 

두어달 거울을 보면서 내 몸을 어떻게 쓰고 있나 지켜보니까 그동안 몸을 어떻게 잘못 썼는지가 보였다. 가슴을 펴는게 어깨를 올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거라는 걸 직립보행 약 28년만에 깨달았다. 

나는 몸을 쓰는 데 젬병이라 발레를 하는 시간 동안은 온전히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바로 휘청이거나 동작을 틀린다. 빠르게 배우는 편도 아니라 같은 동작을 다섯 번은 해봐야 남들이 하는 만큼을 겨우 따라간다. 그래도 내 몸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게 재밌고 내 몸이 이런 모양이었다는 걸 보는 게 신기하다.

올 한 해 다리를 180도로 쫙 찢고 2018년을 맞이해야지. 



매년 디폴트로 깔리는 책 많이 읽기, 커피 줄이기, 잠 늘이기 (6시간 숙면), 물 많이 마시기, 이직하기(ㅠㅠ)는 이제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이것도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이슬람력에 맞춰 새 계획을 다시 실행하는 일이 없도록 뷰티 블로거 리스트를 싹 지웠다. 몸이 기억하는 주소들이지만 앞으론 들어가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