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1, 2018

만비키 가족 (Shoplifters, 2018)

1. 자본주의 체제 속 개인 삶의 파괴라는 주제는 이제 한 특정 국가에서만 나오진 않는다. '헬조선 종특'이라고 일컬어지는 문제들은 데칼코마니는 아니더라도 그라데이션으로 전 세계에서 나타난다. 흙수저, 레이버, 챠브, 레드넥, 뭐 어떻게 부르던간에 돈 없는 사람들 문제가 한국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2. '만비키 가족' 은 일본에서 가족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현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유교 영향권에서 家는 國家였고, 결국 기존 가족 체계의 파괴는 사회의 붕괴다. 이런 측면에서 비슷하게 떠오른 영화가 진부하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플로리다 프로젝트'. 좋은 사람과의 연대(다니엘-케이티), 개인의 노오력 끝에 자기파괴(케이티-무니), 그리고 만비키 가족은 기존에는 없지만 특이한 '가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각 문화권 특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영화에서도 보이는데, 나한테는 가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영화가 가장 힘들고 버거웠다.

3. 영화에서 가족의 탄생은 선택적이다. 기존 가족이 혈연이라는 '운명'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이 가족은 개인의 의지에 의해 탄생한 조합이다. 가장 어린 린조차 자신의 오빠와 보호자를 선택하고, 이름을 바꾼다. 어쩌면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이 조합은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아저씨도 아니고 아빠도 아닌, 엄마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지만 그게 무엇이건 상관없는 공동체. 생존을 위해 뭉쳐서 생존 그 이상의 관계를 맺은 이 관계는 기존 가족 시스템으로 보았을 땐 '유괴', '복지 도둑'으로 보일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건 그 할머니의 '연금'이 필요해서였고, 아이를 돌려보내지 않아도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범죄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를 따지는 경찰을 보여줄 때 '제도가 가지는 헛점'을 대변하는 위치로 그리려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불친절하게 그려지는 것은 경찰과 제도. 그리고 그 제도를 악용하는 빨래공장 동료같은 사람들이다.

4.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건성피부, 건조한 목소리라서 득 보는 영화라고 말하곤 했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어떤 인물에도 동감가긴 어렵다"라고 했다. 나는 그게 이 감독의 힘이자 특징인 것 같다. 한 인물에 빠지게 되면, 그냥 그 인물에 대한 '판가름'으로 끝이 나고 사건은 단편적으로 끝난다. 관조적인 시선, 대상과의 거리두기, 이렇게 한 인물에 빠지는 걸 감독이 적극 방어해나가면서 오히려 덤덤하게 전체 사건을 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기존 사회적 통념에 비추었을 때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지 않나. 나같은 꼰대가 삐딱하게 보는 걸 막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라고 설득하기 위해 감독은 계속 거리를 두고, 인물보다 전체 그림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이번 영화에서는 여름의 이미지까지 더해가면서 자칫하면 '막장'이 될 수 있는 이 얘기들을 잘 희석시킨다. 우악스럽지 않은 막장 - 멀리보면 예쁜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처절한 비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이 영화에서는 먹고 먹고 또 먹는다. 국수를 먹고, 라면을 먹고, 고로케를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먹고 사는 문제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먹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욕구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기본 생존 수단에 그치고 있다. 영화에서 밀개떡을 먹고 싶어도 제대로 표현 못하는 린의 표정, 도득질을 해서 '먹는다'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걸까? 쇼타가 일부러 잡힌 것도 이렇게 먹고는 살지만, '먹고 사는데에만 그치는' 삶을 동생 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이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수급자 애들이 감히 '돈까스'를 먹냐고 난리났다는 얘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가난하면 욕구조차 단순하게 채워넣어져야 한다는 믿음.

6.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유럽과 미주에서도 이런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가 나왔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여기에 꼽을만한 사례가 없을까?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이 대기업의 자본에 잠식당해서? (GAGA, BBC를 마이너로 볼 수 있나?) 멀티플렉스에서는 인랑이랑 신과 함께만 틀어줘서? (CGV에서 노무현입니다랑 이상호 영화 한동안 주구장창 틀어줬는데)

Thursday, July 5, 2018

First Half 2018

1.
이리저리 방황 많이 함
서울 시민이 되었음. 서울 서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
커리어에서는 ambivalent 한 것들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끝났음
4월에는 물리치료, 피부과 치료로 끝


2.
교토
후쿠오카
싱가포르
홍콩

통영
광주(일)
대구(일)

순서로 따지면 홍콩>>>>>>>>>>나머지는 다 그냥저냥

3.
올림픽 때는 거의 일본에 있어서 못 봄
월드컵은 잉글랜드랑 벨기에만 챙겨보고 있음

4.
지금 한 결정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deadlock 상태라 end game이 되려면 이 방법밖에는...?
fingers crossed 밖에 할 말이 없다 :/

5.
하프 마라톤 10분 단축
샤갈전
Lady Bird
고흐 (교토)

책은 꽤 읽었는데, 좋았던 책이 별로 없음.
하루키 책을 영어로 다시 읽는데, 확실히 한국어보단 낫다.
Factfulness - 실망


6.
하반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무섭다.

Monday, June 18, 2018

Little Forest (2018) - KR

  YIM Soon-rye shows small but certain happiness (So-hwak-hang), a word from HARUKI Murakami’s essay that refers to a small affordable happiness in daily life, through her new drama movie Little Forest.

  After Whistle Blower (2014) which twisted chauvinism appeared in Korean society and media about the real-life issue about HWANG Woo-suk scandal, the name YIM Soon-rye is more seen in TV news and papers as an animal right activist. Indeed apart from her title as a movie director, she is also representative of KARA (Korean Animal Rights Advocates) and it seems like her interest and major field moved to animal rights. Four years later her new movie Little Forest, an adaptation from Japanese manga, the two-part film already released in Japan, certainly mirrors her lifestyle and admiration of slow living and it depicts the ideal society that the director yearns

   “When I was in Seoul, I always feel hungry”
  Hae-won (KIM Tae-ri) fails again to pass license exam for a teacher and has a problem with her boyfriend at the same time. She has been living in Seoul since freshman of the university, but she couldn’t feel settle down and feels the emptiness in that big metropolitan. Instead of struggling in that city, she returns to her small but beautiful hometown Uisung, a village in Northern Gyeongsang Province.

  Back home, she still lives alone as her mother left her when she was 18 (or with her dog O-gu), but she rarely feels hunger as she did in Seoul. She cooks local dishes with local ingredients such as pasta with wildflowers, cold been noodle, and makgori (Korean traditional rice alcohol). She reconnects with her childhood friends Jae-ha (RYU Jun-yeol) and Eun-sook (JIN Ki-joo) at the same time when she returns and accommodates herself to slow rural town life.

  There is no tricky plot that leads the movie. On the other hand, this movie chooses to go slow tone and fully shows the nature that is rarely seen in current intense Korean movies. This movie goes slow. No need to hurry up yourself to follow the complex movie plots, instead you can lay back in coach whilst enjoying the beauty of four seasons in Korea. Instead, the director tells the audience what she wants to say through the dialogues of the main characters.

  With mouth-watering cooking scenes, KIM Tae-ri adds more flavor to this film that might have been tedious rural life diary. After playing a strong solid girl in colonial era from The Handmaiden (2016), she becomes an ordinary graduate which has a common problem as the audience in the cinema have. Her time with her friends and her life as simple but satisfied is maybe a longing of city people such as caring each other instead of competing with each other, take your own time instead of fit in the timeline of fast-paced life. The solid attitude of Hye-won, even her current status seems deemed, hints the audience that there is no certain answer to life.


   Although only appearing in flashback, Hye-won’s mother (MOON So-ri) takes the key role to deliver what director YIM wants to provoke through this movie. ‘You need to learn how to wait, then you can enjoy the best of it’ ‘I truly believe it will be better (to do something) than just wait and do nothing’. These lines from the movie have been being repeated in director YIM’s movie, like Waikiki brothers (2001), Forever the Moment (2008), Rolling home with a bull (2010). Without her presence in the movie this movie could have been a typical coming-of-age movie which admires the beauty of youth, but having a character like her make this movie appeals to all people who feel as a hamster in the wheel of never ended competition. 

Wednesday, May 9, 2018

Resume

한동안 글이랑 관련된 건 쳐다보기도 싫어서 블로그도 끄고, 영화관에도 잘 안갔다. 책은 아마 열 권 읽었나?

며칠 전에 어세스먼트 하면서 뭔가 다시 치열하게 하다보니까 웃음이 나더라. 나는 치열하게 밤새고 일하는 거 좋아하는 전근대적 (꼰대)사람인데, 갑자기 너무나 여유로운 현대인이 되어버리니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작.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Friday, December 22, 2017

Year End 2017

1.
아홉수, 삼재, 뭐 아무 것도 없었고 서른 되는 거? 우습다고 생각하다 10, 11월에 엉망진창이 됐다. 너무 힘들어서 이때만큼 힘들었던 때는 아마 다신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삶은 또 어떻게 될 지 이제 모르니 이것보다 더 힘들면 하..)

마치 5월 우승하고 모든 걸 씹어먹을 것 같았지만 이빨 몇 개가 나가버린 (코스타!) 첼시마냥. 그래도 첼시는 우승이라도 했는데 나는 뭐...........하

작년의 마무리는 '그래도 모든 것에 감사하고,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였는데 지금은 다 필요없고 제발 지나가라. This too shall pass 이 마음으로 버틴다.

내 의지대로 흘러간 게 없어서 그런지 올해는 내가 뭔데? 나 자신의 한계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내려놓다 한 해가 끝났다.


2.
영화는 많이 봤는데 기억에 남는 한국 영화는 정말 없다. 매년 하는 말인데 올해는 더 심각할 정도.

한국 다양성 영화는 많이 안 봤고, 상업 영화는 일하면서 다 챙겨봤다. 택시운전사만큼이나 남한산성이 좋았다.

재개봉 열풍에 맞춰서 오래된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그 자체도 좋았지만, 지금 말고 저 시기에 태어났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다시 태어나면 역시 1990년대 미국의 뉴욕이나 버블 시대 일본 도쿄가 최고다. 영화에 쓰인 돈이나 저렇게 하찮은 데까지 신경 쓰면서 사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다양하게 여유롭다.


3.
홍콩 두 번, 싱가포르 한 번, 그리고 타이페이를 다녀왔다. 아시아에만 머무르니 아쉽다. 특히 4년 만에 파리를 안 가고 한 해를 보냈다. 보고 싶은 전시가 많았는데, 5월에 그냥 다녀올 걸 그랬나.


4.
Sum (기억에 남는 것들만)


렌즈와 안경 (시력이 점점 다 안 좋아지고, 전시회 가서 그림 라인이 뿌옇게 보이거나 영화 화면 색감이 잘 안 보이는 게 느껴져서 바로 했다. 렌즈를 끼고 나니까 세상이 밝고 눈부시다. 진작 쓸 걸)
아이폰 (넥서스 세 대 쓸 정도로 안빠로 살다가 드디어 사과를 들었다. 삶의 질을 올리다가도 떨어뜨리는 이상한 기계다. 아직도 작동법은 잘 모르겠는데 아이드랍이랑 애플뮤직이 좋아서 70퍼센트 정도 만족 중. 돈까지 내고 쓰는 아이클라우드 접속법을 아직도 모른다)
체지방 감량 (몸무게는 그대론데 근력 운동을 좀 챙겼더니 체지방이 22-3 정도로 맞춰졌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은 좋은데 조금만 과식하거나 운동을 빼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져서 오히려 더 예민해진 느낌. 수치는 낮은데 복부에만 몰려서 똔똔인가 싶기도 하다.)
타투 (좋아하는 영화랑 인생의 교훈을 새겼다. 라고 심각하게 말하지만 목 뒤에 해서 벌써 했다는 걸 까먹는다. 안 아픈 건 아니고 아픈데 또 하고 나니까 또 할 수 있을 정도의 아픔이니 그렇게 안 아픈건가? 근데 컬러넣고 크게 하면 비교할 수 없다고 하니 고민이다. 예약상담은 하나 더 받고 있는데 과연 내년에 어떻게 될지)

여행
9월 타이페이 (인생의 행복이 이건가 싶었음 18일 맥주가 htc보다 위대하다)
10월 홍콩 (이때 카오룽베이에서 물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지금은 카드값 할부가 나를 힘들게 한다.)


힐빌리의 노래 (통계 지표로 객관화되지 않는 삶)
냉정한 이타주의자 (감성보단 효율을 생각하고 일할 것)
The Road to Wigan Pier (차분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지 않는 자세)

영화
Paterson (권태에 빠진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법)
End of Summer (기쿠지로의 여름을 좀 더 귀엽게. 중국식 Coming of age?)
A Brighter Summer Day (처음은 위험하다. 비정성시보다 훨씬 더 좋았다.)
Ann Hui (홍콩을 중심으로 찍은 영화들은 다 좋다. 보통사람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는 게 더 좋은데 Our Times는 좀 실망했다. 물론 여기서도 나온 주인공들이 쑨옛산이나 아니면 창카이섹같은 거대한 영웅은 아니지 않냐, 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국가주의는 불편하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홍상수 영화는 '너무 좋다')

기타
Cold Brew (올 여름 맥주보다 많이 마셨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희석해서 물드와인보다 많이 마시고 있다. 텁텁하지 않아서 자꾸 넘어가다 보니 카페인 쇼크도 가끔 오는 게 함정)
bar Tilt (같은 곳 자주 안 가는데 하반기에 네 번 넘게 갔다. 단 칵테일 마시면서 쓰디 쓴 인생도 견뎌봐야지)
Runday (뛰는 걸 재밌게 규칙적으로 만들어줬다. 부산 출장에서도 했고, 홍콩 가서도 행오버에 죽어가면서도 뛰었다. 빨리 날이 좀 풀려서 밖에서 다시 뛰고 싶다.)
요가 (발레보다 조금 더 잘 맞는다. 발레는 리듬을 타야 하는데 이건 내 호흡에 맞추면 돼서 내 컨디션을 확인하는데도 좋다)
Coldplay Seoul (영상으로 볼 때는 크리스 마틴 저거 왜 저렇게 모지리처럼 흐느적대?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내가 노래 따라 부르면서 그러고 있더라)
apple Music (멜론이나 지니 같은데 없는 해외 음반이 많아서 좋다. 음질도 좋다.)
Netflix (잠은 안 오고 남들은 다 자는 시간에 혼자 우울해지려는 찰나 유일한 친구, 다음달에는 프리미엄으로 업그레이드 할 예정)
하프마라톤 (화장실만 안 갔어도 2시간 10분 끊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내년에는 하프, 풀타임 둘 다 도전할 거다.)


5.
올해 알게 된 내 취향과 호불호, 나를 힘들게 하는 것과 나를 기쁘게 하는 것
(+)
재개봉에서 발견한 좋은 영화, 영화제에서 본 좋은 영화와 gv
맛있는 싱글 드립 커피 (산미는 적게)
여름밤
쨍하고 더운 날씨 (타이페이 갔을 때 날씨가 제일 좋았다)
긴 소매 블라우스와 무릎보다 살짝 짧은 쇼츠
나이키 운동화 (이제 컨버스 신으면 좀 힘들다)
딥그린
코코넛, 바닐라향 바디로션

(-)
추운 날씨
겨울밤
(온도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피부 알러지
두피염
(힙하고 다 아는 것처럼 써 놓은) 재미없는 칼럼들
배부른 느낌
쓸데없이 보내야 하는 이메일 재촉
er과 ize로 가득찬 번역들
물향나는 향수들 (조 말론)


6.
내년부터 쓸 다른 개인 계정을 만드느라 좋아하는 장르에 대해 설명하려고 정리하다 보니

우디 앨런, 기타노 다케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Frat Pack
조지 오웰, 다자이 오사무, 김훈, 어니스트 헤밍웨이, 루쉰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헨리 마티스, 폴 고갱, 파울 클레,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진하고 선명한 걸 좋아하고 젠 체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그리고 영화는 1990년대 영화가 제일 좋다. 공터에서가 그렇게 난리가 났어도 나는 여전히 김훈이 좋다.


7.
내년에는 큰 욕심이 없다. 그냥 지금 준비하는 것만 잘 정리되면 좋겠고, 따뜻한 나라에서 더 많이 머무르고 싶다. 전시를 좀 더 많이 볼 수 있게 여행을 많이 갈 계획이고 나이키 하프랑 풀타임 한 번 뛰는 게 목표.

올해 남은 일주일은 아무런 사고 없이 조심조심 잘 넘어가면 좋겠다.

Wednesday, November 8, 2017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1.
초등학교 저학년때, 그러니까 아직 만화책을 읽지 않았을 때다.(나름 교사 자녀라 만화책은 엄마랑 학교 따로 다니던 5학년부터 읽기 시작했다.) 

주말의 상처럼 엄마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한 편을 빌려주셨다. 청구 아파트 비디오 가게 아저씨랑 친해져서 비디오가게에 들어오는 카달로그+일요일 아침에 영화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영화를 비교해가면서 도장 격파하듯 매주 영화를 봤다. 엄마꺼, 내꺼 해서 두 편씩 봤던 것 같다.

대개 15세까지는 보게 해줬는데, 이날 이 영화를 고른 엄마는 내 영화를 먼저 마치고 "넌 빨리 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할 만한 배우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엄마나 아빠는 "영화는 별로"였다고 했다.


2.
그리고 대학와서 1학년 즈음인가? 다시 지적 허세에 빠져서 영화 DVD 도장격파를 하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봤다.

보다가 껐다. 그 때 나는 A 아니면 B, 그러니까 모 아니면 도, 1 아니면 0, 흑과 백, 그렇게 분명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이런 'affair'가 왜 명작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가족은? 결국 다 속인 거잖아. 아니 그것보다 왜 남편도 있는 사람이 뭐가 좋다고 저런 깡마른 아저씨한테? 

'내가 좋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럴 리 없어' 라는 생각에 원작 소설도 읽어봤지만 '불륜 미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닌데, 역시 쯧쯧, 예술은 moral-less 라면서 끝까지 못 봤다. (비슷한 느낌으로 대학교 때는 화양연화에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


3.
오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잘 우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렌즈는 또 빠졌다. 일회용이라 다행이다.

몇 년 동안 또 몇 번 아프고, 좀 바닥도 치고 나서야 프란체스카가 왜 처음 만난 로버트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꿈을 물어봐 주길 원하고, 그 꿈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가족, 함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는 무관심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공기처럼 기본 값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묻지 않았고 알아채려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The old dreams were good dreams; they didn't work out, but glad I had them"
이라면서 처음으로 꿈을 말하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건다. 

우주의 먼지 마냥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자신에게 "you are anything but a simple woman"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4.
역시 그 빌어먹을 꿈이 문제다. 
내가 좋아했던 건 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내 꿈을 대신 봐준' 그 사람이었을까. 

Sunday, August 20, 2017

천수위의 낮과 밤 (天水圍的日與夜, The Way We Are, 2008)

1.
천수위라고 하니까 어디지 했는데 한자를 읽어보니 아 틴수이와이~

위엔롱에서 쫌 더 올라가면 있던 습지 공원 있는 동네라는 기억밖에 안난다. 사실 가보지도 않았다. 고작 1년 채 안되는 기간에 홍콩의 모든 동네를 다 돌아볼 수도 없고, 홍콩에서 그렇게 중요한? 곳은 아니라 가볼 일도 딱히 없다.

서울을 아무리 살아도 저기 중랑천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테고, 은평구 끝자락이나 금천구 끝자락을 안가본 사람도 있을테니까.

뉴 테리토리는 딱 그런 동네였다. 중국 넘어가기 전 지나가는 동네,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이민자 공용 주택이 밀집한 지역"이라고 설명돼 있고, 레드 하우스가 아니었다면 나도 굳이 찾아가진 않았을 동네다.

2.
천수위의 낮과 밤은 이상적인 홍콩 로컬의 모습을 보여준다.
홍콩하면 금융 허브, 외국인이 더 많은 곳, 국제 도시거나 아니면 침사추이 미라도-청킹처럼 보이는 아주 오래된 도시 이미지로 양분된다.

그런데 여기도 사람사는데라 이렇게 극단적이기보다는 중간의 쩜오같은 공간과 사람들이 더 많다. 로컬하면 생각하는 오래됨과 도시 하면 생각하는 화려함으로 양분하기 보다는 그냥 그 중간에서 보통 사람들은 먹고 자고 산다. 웡타이신이나 삼수이포로만 빠져도 생각보다 외국인 안보이고 영어가 잘 안통한다. 홍콩섬은 이런 지역이 적지만, 카오룽쪽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이런 동네가 흔하다.

영화가 촬영된 곳은 거의 다 틴수이와이고 주인공이 일하는 슈퍼도 시티나 m&s같은 느낌이 아니라 웰컴같다. 일본 홋카이도산 우유보다는 카오룽 우유 팔 것 같이 생긴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 영화에서 외국인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영어 이름을 쓰지 않고 캔토니즈 이름을 쓴다. 아침마다 차찬탱 딤섬을 먹는 게 아니라 비닐백에 담긴 아침을 사다가 먹고, 신문을 살 때는 꼭 파란색 티슈를 챙겨받는 사람들의 모습. 귀여운 캐릭터에 환장하고. 정말 홍콩 로컬이라면 이런 사람들 같다.

홍콩이라는 이미지에 떨어지는 장면보다는 이렇게 사람사는 곳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다보니 가장 멀리 빠진 곳은 샤틴이다. 샤틴은 뉴테리토리랑 카오룽의 경계같은 곳인데 관광객을 위한 호텔도 이 이상은 넘어가지 않는다. 뉴타운 플라자나 만불사, 이케아를 가기 위해 가는 사람이 드물게 있겠지만...

3.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이번 특별전에서 두 번째로 좋았다. (제일 좋았던 영화도 역시나 허안화 감독의 심플 라이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박함이 구질구질함이 되지 않고, 착함이 호구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 남을 돕는 것에서 계산을 하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모자간에 대화가 흘러넘치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서로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배려심이 남아있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바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지금 이건 기적과 같은 동화다), 이 할머니는 비싼 버섯을 선물하고 다시 고맙다며 금반지 은반지를 선물하는. 너무 착하고 고요하게 흘러가서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모습이 판타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4.
2008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이 영화가 만들어질 즈음만 해도 세상은 이렇게까지 각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1000유로가 한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될 줄은 몰랐고, 월가를 점령할 지도 몰랐다.

홍콩의 경우는 그 변화가 더 크다. 점점 더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면서 뉴테리토리 슈퍼의 식료품이 다 사라지고, 집값이 폭등하고 우산을 들고 거리에 나서거나 피쉬볼을 던지면서 싸울 거라고 예상했을까? 아마 주인공 가온이 자랐다면 분명 우산을 들고 피쉬볼을 던지는 나이 또래였을텐데 착했던 그 주인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5.
영화에서 본 착한 홍콩 사람들은 사실 홍콩에만 있는 건 아니었을거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제 이게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 것 같지만) 친절한 동네 가게 아주머니는 프랜차이즈 가맹비에 헉헉대는 점주, 운이 나쁘다면 그 밑에서 일하는 알바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영화가 좋았던 건 홍콩을 봐서가 아니라 (사실 내 홍콩에 대한 기억은 뉴 테리토리보다는 부자동네인 카오룽이라 조금 다르다) 따뜻했던 그 시절을 볼 수 있어서인 것 같다.

이걸 정이라고 포장하지도 않고, 극적 사건들을 만들어가며 억지 감동 감정과잉 서사도 없지만, 잔잔하게 흘러가는 러닝타임동안 착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6.
영화 제목은 원제도 마음에 들지만 영어 제목도 마음에 든다. 천수위 사람들의 낮과 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법. 특별할 건 없지만 낮과 밤이 흘러가면서 잔잔히 보이는 그 사람들의 모습이 제목에 잘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