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30, 2016

이중섭, 백년의 신화(2016)

1.
유럽에서 전시가 좋았던 건 전시장의 형태였다. 
인테리어야 가지각색일 수 있겠지만, 우선 건물 층 높이가 넓어서 큰 그림도 '트인 느낌'으로 볼 수 있다. 한가람처럼 꽉꽉 들어차서 비좁은 느낌이 덜하다.

루브르나 내셔널갤러리처럼 밀도가 높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답답하다고 안느껴지는 게 층이 높아서 공간 활용을 가로와 세로를 둘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나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를 선호하는 편이다. 별로인 데는 한가람, 대림처럼 낮고 작지만 그림은 꾹꾹 눌러담는 곳들.

그리고 감각의 공해가 덜하다. 미술 전시면 시각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컨템포러리 한 경우에는 사운드가 잘 퍼질 수 있게 공간을 잘 쓴다.


2. 
덕수궁 미술관의 정확한 명칭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을 이제 미술관으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양식 건물이다. 즉, 층 높이가 다른 미술관보다는 좀 됀다. 

아빠랑 고려 삼계탕 한 그릇 먹고 서울시립에서 천경자 보고 덕수궁으로 갔다. 원래 계획은 플럭서스까지 다 보는 게 목표였는데 둘 다 천경자 하나 보고 "가자"

계획없이 봤던 전시지만 천경자 '뱀'과 스케치가 좋았다. 엽서가 몇 장 있었다면 사고 싶었는데 굿즈샵에는 드림웍스 그림밖에 안보였다.

나와서 체력 회복이 안돼서 시청 던킨에서 30분을 앉아있다 갔다. 이 체력으로 루브르를 지하부터 다 본 내가 자랑스럽고, 이제 곧 루브르를 갈 아빠가 걱정이다. 

3.
이중섭은 국어 교과서에서 봤다. 그리움을 머리에 진 사나이였나? 제주도에 살면서 아내는 일본에 있다. 요정도? 

우리나라 1등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전시답게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방학때 한가람에서 하는 인상주의 화가 특별전 보는 느낌이랄까. 다만 관객 연령층이 초중에서 우리 아빠 또래라는 게 달랐다.

4.
전시는 좋았다. 이중섭이 아들 태성, 태현 그리고 부인 남덕씨에게 쓴 편지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처럼 예술가와 생활인사이의 고민이 보였다. 아내한테 사랑합니다, 뽀뽀 이러면서 헌신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슬펐다.
예술한답시고 '모랄레스'한 건 동서양 불문하고 일반적이라 오히려 이렇게 헌신적인 사랑을 한 사람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편지 한 장에 정말 사랑과 부성애를 꾹꾹 눌러담은 느낌이 편지 한 장 한 장마다 느껴졌다. 편지에 작게 들어간 가족 그림이랑 '아빠가 자전거 꼭 사줄게'라고 매번 쓰는 걸 보면서 가장으로서 짠하게 보이기도 했다.

5..
다른 그림도 좋았지만, 저 전시장이 가장 좋았던 건 '소음공해'가 없어서였다.

이중섭의 그림은 좋았다. 복숭아밭과 가족, 포옹 은박화는 금속에서도 따스함이 보였다. 소 그림과 스케치는 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문제는 전시 소음이다.
왜 전시장에 이상한 영상을 틀어놓지 못해 안달이 난 건지....그리고 이중섭이랑은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배경음악을 깔아놔서 전시장 안을 더 갑갑하게 만든건지 이해가 안된다.

전시를 보면 시각이라는 감각을 사용한다. 만약 여기서 청각이라는 자극을 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보는 느낌이 다르다. 오롯이 시각적 즐거움만 누려야 할 '미술관'에서 왜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인간극장 류의 음악을 깔아놓은 건지 모르겠다. 

은박화 전시장에는 한 벽을 미디어 아트라고 해놨는데 거기서 이상한 음악을 깔아놔 정신이 사나웠다. 첫 전시장에도 무슨 영상을 틀어놨는데 클래식도 아니고 정말 BGM 스타일 연주곡을 내내 틀어놔서 화려한 색감에 집중해야 할 감각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컨템포러리 포스트 모던도 아닌데 내가 왜 어울리지도 않는 음악을 그림이랑 같이 강제로 들어야 하나.

그리고 왜 왜 왜 왜
오디오 가이드 이어폰을 빼고 듣습니까....?
여기도 이정재, 저기도 이정재, 이정재의 설명이 오버랩 돼면서 이 얘기 들리고 저 얘기 들리고, 전시장은 온갖 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좋은 展示였지만 제대로 視하려면 다른 자극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

끝나기 전에 다시 보고 싶은데 이 소리를 피하려면 이어플러그라도 가져가야겠다.

6.
그래도 좋은 전시였다. 엽서 은박화 몇 장 더 살걸.

Thursday, June 23, 2016

싸이코 (Psycho, 1960)

1. 지금 에서 면접을 볼 때 나의 전-전 매니저 아나 (Anna지만, 영국이니까 아나라고 읽도록)가 물었다.

"What is your weak point for this job?"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I cannot see any bloody, slash, gore, or any kind of horror movie. If I have to, or be forced to watch those kind of genre movies, I definitely will be unhappy."


다행히 우리 회사는 IFE여서 이런 장르를 선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밥벌이는 하고 산다. 가끔 호러 장르나 보기 힘든 영화를 봐야하는 경우 (ie. 손님, 곡성) 나는 그 작은 스크리닝 링크를 놓고서도 다시 눈을 가리고 낑낑대며 지나친다.


2. 극장판에서 영화를 보는데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사이코'를 보게 됐다.
'복수는 나의 것'은 보다가 한 10분도 되지 않아 나왔다. 이미 본 영화여서 오히려 안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프닝이 시작돼고나서부터 내가 힘겨워하는 그 '지점'이 떠올랐다. 

그리고 10분만에 나와서 당당히 회사 랩탑(이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랩탑)을 켜고 일했다.

난 생각보다 겁도 많고 무서운 걸 잘 못본다.

볼드까지 쳐서 써놓는 이유는 그냥 그렇다고. 고등학교때 허세에 쩔어서 막 쏘우 이딴거 보고 그랬는데 집에 와서 맨날 불켜놓고 캐롤 부르면서 잤다. (유일하게 아는 찬송 which I refer as song of Priests')

3. 사실 사이코는 안무섭다.
워낙 그 영화 자체가 이미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져서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도 많고. 사운드트랙이나 효과같은 것도 익숙하다.

샤워 바스텁 안에서 꺅 소리지르는 것도, 너무 익숙한 상황이다. 오리지널리티가 이미 상실돼서 그게 그렇게 무섭냐? 이런 지점.

4. 근데도 무섭다.


이미 알고 있는 반전이라고 해도 그냥 오싹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에 나올까봐서 나는 온갖 힘을 다해서 이 표정을 안보려고 애쓴다.

5. 이런 무서움의 밑바탕에는 나도 어쩌면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을지 모른다. 도시괴담(장기밀매, 인신매매)부터 강남역 살인사건까지 이어져왔을 때 나는 항상 '당할 수 있는' 입장에 처했다. 

통제되지 않은 '변수'가 내 주변에 나타나서 내 생존을 위협한다는 '망상' (혹은 예측)을 항상 하고 살기 때문에 이런 영화도 허투루 지나치기가 어렵다. 

영화를 볼 때 타란티노처럼 공감이 안되는 영화는 깔깔 웃으며 지나칠 수 있지만, 블랙스완에서 손톱 뜯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고통은 뼈져리게 느껴지는 거랑 비슷한 이치랄까.


6. 그래도 이 영화에서 마리온 진짜 예쁘다.
흑백 영화가 좋은 건 각 캐릭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블러처럼 뽀샤시가 아니라 정말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 안에서 오롯이 자신의 '미'를 볼 수 있는 느낌.
(같은 맥락에서 오드리 햅번 로마의 휴일, 잉그리드 버그만 영화'들'을 좋아한다)

7. 영화 올리느라 영상 다시 보는데 아..... 표정이 안잊혀.

8.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하는 예술인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일반인으로만 남았다면 뭔가 '잊히지 않을 무서운 일'을 할 사람이 됐을지 모른다.

Friday, June 3, 2016

고등학교

1.
모교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다. 후배들 창의시간에 와서 얘기 좀 해달라고.
무슨 생각으로 하겠다고 한건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때 맨날 폰 걸려서 명심보감 끝판왕까지 가보고 (6개월 정지....ㅎ)
수업시간에 자다가 야자 땡땡이 치고 축구보러갔는데 내가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과연 그런 말 할 정도의 깜냥 혹은 achievement가 있나? 싶은거다.


재밌게 사는 삶에는 충실하지만 열심히인지는 그닥 잘 모르겠다.
지금 회사도 그렇고 이전 회사도 그렇고 운7기3이라는 취업시장에서 운을 다 쏟아부은 탓인지 최근 일들은 거의 운 0에 수렴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아 나는..."

지난주 내 입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다. ㅎㅎ


2.
EBS였나 뭐였나, 고등학교 마크 잠바에 새기는 거 하고 있다는데.
아 뭐 그럴수도 있지, 싶다.
유치하지만 뭐 그래...그래라 싶은 정도?

방송 보니까 그게 좀 과장된 면도 있는 것 같고, 뭐 내가 그 학교 비중 높은 하늘라인이 아니라 못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애들 말 들어보면 그러는 면도 있겠구나 싶다.

어제 영국에서 가르친 애들이랑 부모님 만나면서 느낀건데 이러는 게 과연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은 다 입시지옥 없이 자유롭게 놀아"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건지.
영국만 해도 사립 그래머스쿨이랑 공립이랑 하늘과 땅차이고, 거기서 옥스브릿지가 나오니까 기쓰고 시험봐서 가려는 애들이 많다. 미국도 솔직히 말해서 좋은 '동네'의 공립학교가 롤모델인거지 할렘의 공립학교를 보고 우리가 '와' 이러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럴거면 우리나라도 강남8학군 일반고 한정으로 하거나 좀 비교 대상의 범위를 어느 정도는 맞춰야지. 저기는 하이어퍼를 대상으로 잡고 우리는 전체로 잡으면 당연히 우리나라가 헬로 보일 수밖에.

유럽의 경우에도 아예 이 경쟁에서 나와서 대학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를 놓고 사회 전체로 환원하면 말이 안되는거 아닌가.
대륙에서도 결국 사립학교 타이틀이 필요하니까 대학은 이쪽으로 보내거나 아니면 미국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알던 유럽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은 모르겠으나 경영/경제는 거의 다 이런다고)

기회의 창이 명문대밖에 없는 게 문제인거지, 명문고-대학라인을 나와서 자부심 가지는 게 그렇게 조롱받고 촌스러운 일인가.

라고 비명문고-대학라인을 나온 나는 쓴다.

이것도 하나의 자기 성취인데 그거 자랑 좀 하면 어때. 그 나이에 유치하다고 하는데 그럼 그 나이에 유치하지 마흔 먹고 유치한 게 더 비참해... 그거만 가지고 평생 우려먹는 사람들.

인적 네트워크나 레퍼런스라는게 '불법화'된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잘난 척 하려면 결국 바닥에서 솟구친 용이 되는 길밖에 없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