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에서 전시가 좋았던 건 전시장의 형태였다.
인테리어야 가지각색일 수 있겠지만, 우선 건물 층 높이가 넓어서 큰 그림도 '트인 느낌'으로 볼 수 있다. 한가람처럼 꽉꽉 들어차서 비좁은 느낌이 덜하다.
루브르나 내셔널갤러리처럼 밀도가 높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답답하다고 안느껴지는 게 층이 높아서 공간 활용을 가로와 세로를 둘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나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를 선호하는 편이다. 별로인 데는 한가람, 대림처럼 낮고 작지만 그림은 꾹꾹 눌러담는 곳들.
그리고 감각의 공해가 덜하다. 미술 전시면 시각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컨템포러리 한 경우에는 사운드가 잘 퍼질 수 있게 공간을 잘 쓴다.
2.
덕수궁 미술관의 정확한 명칭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을 이제 미술관으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양식 건물이다. 즉, 층 높이가 다른 미술관보다는 좀 됀다.
아빠랑 고려 삼계탕 한 그릇 먹고 서울시립에서 천경자 보고 덕수궁으로 갔다. 원래 계획은 플럭서스까지 다 보는 게 목표였는데 둘 다 천경자 하나 보고 "가자"
계획없이 봤던 전시지만 천경자 '뱀'과 스케치가 좋았다. 엽서가 몇 장 있었다면 사고 싶었는데 굿즈샵에는 드림웍스 그림밖에 안보였다.
나와서 체력 회복이 안돼서 시청 던킨에서 30분을 앉아있다 갔다. 이 체력으로 루브르를 지하부터 다 본 내가 자랑스럽고, 이제 곧 루브르를 갈 아빠가 걱정이다.
3.
이중섭은 국어 교과서에서 봤다. 그리움을 머리에 진 사나이였나? 제주도에 살면서 아내는 일본에 있다. 요정도?
우리나라 1등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전시답게 평일 낮인데도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방학때 한가람에서 하는 인상주의 화가 특별전 보는 느낌이랄까. 다만 관객 연령층이 초중에서 우리 아빠 또래라는 게 달랐다.
4.
전시는 좋았다. 이중섭이 아들 태성, 태현 그리고 부인 남덕씨에게 쓴 편지는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처럼 예술가와 생활인사이의 고민이 보였다. 아내한테 사랑합니다, 뽀뽀 이러면서 헌신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슬펐다.
예술한답시고 '모랄레스'한 건 동서양 불문하고 일반적이라 오히려 이렇게 헌신적인 사랑을 한 사람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편지 한 장에 정말 사랑과 부성애를 꾹꾹 눌러담은 느낌이 편지 한 장 한 장마다 느껴졌다. 편지에 작게 들어간 가족 그림이랑 '아빠가 자전거 꼭 사줄게'라고 매번 쓰는 걸 보면서 가장으로서 짠하게 보이기도 했다.
5..
다른 그림도 좋았지만, 저 전시장이 가장 좋았던 건 '소음공해'가 없어서였다.
이중섭의 그림은 좋았다. 복숭아밭과 가족, 포옹 은박화는 금속에서도 따스함이 보였다. 소 그림과 스케치는 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문제는 전시 소음이다.
왜 전시장에 이상한 영상을 틀어놓지 못해 안달이 난 건지....그리고 이중섭이랑은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배경음악을 깔아놔서 전시장 안을 더 갑갑하게 만든건지 이해가 안된다.
전시를 보면 시각이라는 감각을 사용한다. 만약 여기서 청각이라는 자극을 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보는 느낌이 다르다. 오롯이 시각적 즐거움만 누려야 할 '미술관'에서 왜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인간극장 류의 음악을 깔아놓은 건지 모르겠다.
은박화 전시장에는 한 벽을 미디어 아트라고 해놨는데 거기서 이상한 음악을 깔아놔 정신이 사나웠다. 첫 전시장에도 무슨 영상을 틀어놨는데 클래식도 아니고 정말 BGM 스타일 연주곡을 내내 틀어놔서 화려한 색감에 집중해야 할 감각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컨템포러리 포스트 모던도 아닌데 내가 왜 어울리지도 않는 음악을 그림이랑 같이 강제로 들어야 하나.
그리고 왜 왜 왜 왜
오디오 가이드 이어폰을 빼고 듣습니까....?
여기도 이정재, 저기도 이정재, 이정재의 설명이 오버랩 돼면서 이 얘기 들리고 저 얘기 들리고, 전시장은 온갖 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좋은 展示였지만 제대로 視하려면 다른 자극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
끝나기 전에 다시 보고 싶은데 이 소리를 피하려면 이어플러그라도 가져가야겠다.
6.
그래도 좋은 전시였다. 엽서 은박화 몇 장 더 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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