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할머니는 정말 아기처럼 작아져 있었다.
영국에 가기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 잠깐 파리를 다녀올 때도 그랬고 항상 할머니는 어디 가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아현동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사랑도 많이 받았고 추억도 많다. 이를테면 내 입맛 (생선을 먹지 않음, 케찹을 좋아함)은 그때부터였다.어릴 때 물사마귀대문에 할머니 손잡고 병원에 가던 기억, 완두콩밥에 케찹을 뿌려 옥상으로 소풍갔던 기억. 아현동 집 옥상 한 귀퉁이에 텃밭들.
후회도 많고 허무하게 지나간 일들이 많아서 기분이 무겁다. 공원길에서 꼭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그 시험도 너무나 허무하게 망쳤고, 생활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냥 이렇게 끝인걸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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