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서 느는 건 살림솜씨만은 아니다.
이전에는 그냥 "음 나쁘지 않네"정도만 "음, 아무거나" 파였다면 (물론 이전에도 무난하게 다 받아들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게 명확하게 그리드가 나와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김훈, 기타노 다케시
- 보수라도 이런 보수라면 뭐, 매력이 넘치지 않나? 조금 다른 의미에서 우디 앨런도 같은 계열로 분류중. 각 하나씩만 뽑으라면 '그랜 토리노', '화장', '하나비'.
커피, 빵
- 밥을 먹지 않아도 좋다.... 대신 커피는 헤비하고 스모키한 걸로. 인도네시아나 동남아산 커피를 더 선호하는 편. 아이스 커피는 잘 안마시고, 프랍은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영국에 있으면서도 차는 안마신다. 모카포트나 에스프레소 기계로 뽑은 것볻나 핸드드립을 좋아하는데 맨체스터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한국에 있을 땐 핸드드립으로 하루에 여섯 잔 정도 마셨는데 요즘엔 다섯 잔 이내로 줄이려고 노력중.
빵도 뭔가 막 들어간 것보단 아무 맛이 없는 '밥'같은 빵을 좋아한다. 바게트나 깜빠뉴 종류. 과일 들어가고 라이트한 종류 (레몬들어간 것, 타르트)를 잘 안먹고 케이크를 먹더라도 당근케이크나 아몬드처럼 헤비한 맛...겨울 맛을 좋아한다. 싫어하는 빵은 물커덩한 머랭이나 레몬타르트...레몬머랭파이....아 생각만 해도 현기증.
고흐
- 유럽 여행을 하면서 제일 행복했던 건 고흐를 우연찮게 자주 볼 수 있단 것. 인상주의 화파를 가장 좋아하는데, 특히 고흐를 중심으로 '파리' 모임을 좋아한다. 유화 물감은 다 마르려면 100년 그 이상이 걸린다는데, 어디선가 아직 마르지 않았을 물감이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다.
중세시대 미술은 이상하게 무서워하고, 기독교적인 색채가 들어간 걸 엄청나게 무서워한다. 스페인에서 고야를 보고 헛구역질 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해할 순 없지만.
yBa
- 갤러리를 돌다보면 제목을 모르더라도 어 이거 괜찮은데? 하고 보면 yBa 출신이 많다. 현대 미술에서는 영미권 작가들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편. 현대 미술에서 언어가 채널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모르는 언어에 대한 '짜증'이 심해서 유럽어권 작가는 잘 찾아보진 않는다.
영화
-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은 누가 말을 걸고 그 분위기에 들떠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싫어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나 혼자 즐기고 작품 후 타자와 얘기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 시간 동안에는 아무 걱정도, 잡념도 없다. 잠잘때보다 더 무념무상에 빠지게 되는 시간.
여름
- 더위를 잘 안탄다. 햇빛 알러지가 생겨서 힘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난 쨍한 날씨가 좋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흐린 날이나 추운 날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지난 겨울 정말 회사 사람들이 이전에 같이 일하던 그 사람이 맞냐고 할 정도로 우울해했다. 대신 여름만 되면 그 쨍하고 뜨거운 공기 덕분인지 갑자기 밝아진다.
운동
- 의외로 운동하는 건 좋아한다. 다만 특정 종목에 한정. 운동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그냥 무작정 뛰기, 수영처럼 누가 나한테 말 안걸고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한다. 운동을 하다보면 그냥 숨막혀 죽을 것 같이 힘들 때가 오는데 그때가 지나면 또 한 번 열반에 오르곤 한다. 잡념이 많은 탓인지 이런 상태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이 좋다.
셔츠
- 우선 먼저...나는 옷을 안다리면 안입는다. 혼자 살면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습관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옷은 다려입으라고 배웠고 셔츠를 입을 때 깃이 구겨져 있으면 내 기분도 정말 구겨진다. 화려하진 않아도 깔끔하게 입으라고 우리 홍여사님은 누누히 가르치셨고,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셔츠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옷을 다 다리는데, (모든 옷 다 포함) 셔츠에 좋아하는 퍼퓸을 몇 번 뿌려놓고 장에 넣어놓으면 한 주간 회사 출근도 행복하다.
좋아하는 건 이렇게 길게 썼는데 싫어하는 것만 대보자면 '모르는 언어에 대한 짜증', '연어', '회', '조개', '흐린 날씨', '스페인 음식', '위스키', '진 밥' 정도? 물론 좋아하는 것 이외에는 거의 다 안좋아한다는 게 맞는 말일 지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