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떠들썩했다. 부조리한 우리 사회에서 '정의'라는 인사이트를 준다는 것,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강의라는 타이틀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화제가 됐다.
나도 한 때 이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먹고 '원서'로 주문을 했으나 한 챕터가 채 넘어가지 않았다. 영어의 문제인가 싶어 한글판도 다시 읽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이 그닥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요즘 화제가 되는 책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인듯 하다. 허핑턴 포스트에서는 피케티의 저서가 커버로 실리기도 했다.
(링크 : http://www.huffingtonpost.kr/2014/05/09/story_n_5293293.html?utm_hp_ref=tw)
피케티는 Thomas를 토마로 읽는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의 경제학자다. 영미권에서 주류 경제학을 쥐어잡고 오히려 대륙에서는 사민주의가 발달했던 걸 생각하면 약간은 의외다. (한 트위터에서 프랑스 경제학자가 일본인 목사만큼이나 어색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았고, 아마존에서 주문한 책을 받지 못해 HBR 코리아의 리뷰로 이 책을 먼저 접했다. HBR의 편집장 저스틴 폭스가 요약한 글이 이번 HBR 코리아 5월호에 실렸다.
피케티의 저서를 요약한 걸 다시 요약하면 자본의 성장은 전체 경제의 그것보다 빠르다. 이런 자본의 성장은 결국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 직전 불평등이 최고점에 이르렀고 1차세계대전 즈음부터 해소되었다 다시 최근 악화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였고, 결국 이는 자본파괴와 높은 세금이 있던 시기에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슈퍼매니저라던가 초대형 거대 자본같은 것들이 나타나면서 돈이 돈을 낳는 사회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방법론으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누진적 부유세를 제안한다. 2퍼센트의 부유세를 제안하자고 하는 주장은 사실 앞의 설명처럼 신선하거나 뭔가가 파격적이지만은 않다. 왜 2퍼센트인지 기사 요약문에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봐야 알 것 같다.
이 기사와 더불어 다른 기사를 찾아 책의 내용을 더 살펴보니 '마르크스'의 혁명도 부정한 점에 있어서는 제3의 길이라는 느낌도 준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4문단으로 정리했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HBR 편집장이 요약한 것과 많이 다르진 않았다. (http://www.economist.com/blogs/economist-explains/2014/05/economist-explains?fsrc=scn/tw_ec/thomas_piketty_s_capital_summarised_in_four_paragraphs)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전세계의 화두를 던졌고, 지금 다시 주류 경제학계 (a.k.a. 천조국)에서는 이 책에 실린 데이터의 오점을 찾는데 혈안이 된 상황.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이 책에 인용된 영국 소설 '제인 오스틴'에 나오는 모습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영국과 별반 다르진 않다. Posh하다는 말로 선을 그으며 '이건 내 클래스의 바운더리 안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나도 일상화된 이 사회가 과연 평등한 사회일까?
한국에서는 자본이 모든 계급을 대신했지만 이곳에서는 자본과 함께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적응이 안되고 (둘은 거의 같이가는 편) 그런 면에 있어서는 돈만 있으면 되는 우리나라가 나은건가? 하는 의문도 든다.
이 책도 결국 확실한 대안을 주진 못했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느끼는건 뭔가 모호한 문제가 전세계에 스며들어 분명하게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한 때 이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먹고 '원서'로 주문을 했으나 한 챕터가 채 넘어가지 않았다. 영어의 문제인가 싶어 한글판도 다시 읽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이 그닥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요즘 화제가 되는 책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인듯 하다. 허핑턴 포스트에서는 피케티의 저서가 커버로 실리기도 했다.
(링크 : http://www.huffingtonpost.kr/2014/05/09/story_n_5293293.html?utm_hp_ref=tw)
피케티는 Thomas를 토마로 읽는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의 경제학자다. 영미권에서 주류 경제학을 쥐어잡고 오히려 대륙에서는 사민주의가 발달했던 걸 생각하면 약간은 의외다. (한 트위터에서 프랑스 경제학자가 일본인 목사만큼이나 어색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았고, 아마존에서 주문한 책을 받지 못해 HBR 코리아의 리뷰로 이 책을 먼저 접했다. HBR의 편집장 저스틴 폭스가 요약한 글이 이번 HBR 코리아 5월호에 실렸다.
피케티의 저서를 요약한 걸 다시 요약하면 자본의 성장은 전체 경제의 그것보다 빠르다. 이런 자본의 성장은 결국 사회 전체의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 직전 불평등이 최고점에 이르렀고 1차세계대전 즈음부터 해소되었다 다시 최근 악화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였고, 결국 이는 자본파괴와 높은 세금이 있던 시기에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슈퍼매니저라던가 초대형 거대 자본같은 것들이 나타나면서 돈이 돈을 낳는 사회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방법론으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누진적 부유세를 제안한다. 2퍼센트의 부유세를 제안하자고 하는 주장은 사실 앞의 설명처럼 신선하거나 뭔가가 파격적이지만은 않다. 왜 2퍼센트인지 기사 요약문에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봐야 알 것 같다.
이 기사와 더불어 다른 기사를 찾아 책의 내용을 더 살펴보니 '마르크스'의 혁명도 부정한 점에 있어서는 제3의 길이라는 느낌도 준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4문단으로 정리했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HBR 편집장이 요약한 것과 많이 다르진 않았다. (http://www.economist.com/blogs/economist-explains/2014/05/economist-explains?fsrc=scn/tw_ec/thomas_piketty_s_capital_summarised_in_four_paragraphs)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전세계의 화두를 던졌고, 지금 다시 주류 경제학계 (a.k.a. 천조국)에서는 이 책에 실린 데이터의 오점을 찾는데 혈안이 된 상황.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이 책에 인용된 영국 소설 '제인 오스틴'에 나오는 모습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영국과 별반 다르진 않다. Posh하다는 말로 선을 그으며 '이건 내 클래스의 바운더리 안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나도 일상화된 이 사회가 과연 평등한 사회일까?
한국에서는 자본이 모든 계급을 대신했지만 이곳에서는 자본과 함께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적응이 안되고 (둘은 거의 같이가는 편) 그런 면에 있어서는 돈만 있으면 되는 우리나라가 나은건가? 하는 의문도 든다.
이 책도 결국 확실한 대안을 주진 못했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느끼는건 뭔가 모호한 문제가 전세계에 스며들어 분명하게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