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29, 2016

청와대게이트

1.
우리나라에서 놀랍고 신비롭고 경악할만한 일이 터졌다. 닉슨? 베트남 게이트? 역시 막장은 한국산이 제맛이다.


2.
대통령에 관한 (놀랍고 신비하고 상상 그 이상이라 현실감이 떨어지는) 얘기들이 매일매일 경쟁하듯 나온다.

무당한테 팔렸다느니 (뭐?) 모든 행동이 다 무당이 조종했다느니 (에?) 그래서 이모양이 된거라느니 (아...하고 이제 수긍), 2012년부터 이해안돼던 모든 행동이 이번 사건을 통해 납득이 됐다.

사건 초반에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면서 "나는 정의고 뭐고 다 떠나서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저 사람이 왜 최순실이란 사람을 저렇게 챙기는지 그게 궁금하다. 친자매도 아니고, 박근령이나 박지만은 내팽겨친 사람이 왜 저럴까?" 라고 정말 궁금해했다. 내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호기심도 나온 질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박 대통령은 답변을 공개적으로 해주셨다. 아 은혜가 하해와 같다.


3.
이번 사태를 청와대 게이트라고 쓴 건 단순히 최순실이라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봐서는 안됀다고 봤기 때문이다.

왜?
나머지 당원이 몰랐을까? 정말? 그렇다면 접싯물에라도 코박고 죽어야 한다.

이미 기사들이나 과거 발언을 통해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다는 게 나타났다. 결국 박근혜는 선택된 '액받이' 얼굴마담이었을 뿐. 다 자기 잇속 챙기자고 거기에 장단 맞춰준거지.


4.
불편한 건 이 얼굴마담이 유래없이 '여자'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제1조종자도 여자. 거기에 사고친 것도 여자다. 언론보도에 보면 무식한 사이비 종교 아줌마로 최순실을 몰아가는 듯 하고, 박근혜는 멍청한 여자, 정유라는 싸가지 없는 여자애. 결국 다 문제는 여자인가? 정말로 "암탉이 울어서 나라가 망한" 일이 21세기에 일어난다고? 레알?

오늘 이재명시장은 스피치에서 "저잣거리 아녀자"한테 문제를 맡겨서 시작됐다고 했다. 왜 굳이 그렇게 성별을 들먹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 그동안 머한민국 만든 장본인들은 다 여자였나?

대학 총학 성명에서도 서울대는 이화여대가 먼저 발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봉에 서겠다고 했다. 왜? 여자가 먼저 나가는 게 그렇게 고까운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사람과 그 상황,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에 집중해야 문제가 해결돼지 이렇게 '여자가 정치해서' 라고 하면 결국 여성은 2등시민이다.

나는 지금 현 정권에 대해 48%의 사람들과 같은 입장에 섰지만,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불편하다. 저 사람들이 바라는 정의에 내가 위치할 자리는 결국 2등이라는 게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이 식민지였을때 밑의 착취계급은 나랏님이 누구든 관심이 없었다. 여성을 이렇게 끝까지 2등으로 취급할거라면 51.6%가 계속 헤쳐먹든, 48%가 이기든 나는 2등이기때문에 무관심해질 지도 모르겠다. 왜? 위가 바뀌어도 내 삶이 바뀌는 게 없다면 굳이 힘뺄 필요가 있을까. 내 정체성에서 정치색은 바뀔 수 있겠지만, 여성이라는 조건은 바꿀 수가 없다.


5.
불편한 건 또 있다.

이번 일을 두고 사람들은 자꾸 '부끄럽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행동, 자신의 과오에 대해 쓰는 표현이 아닐까. 이번 사건는 '대통령과 집권 집단'의 과오다. 거기에 대해 '분노'하거나 '화'가 난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왜 부끄러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외신에 나와서 한국이 샤머니즘의 나라로 비춰지는 게 부끄러울 수는 있다. 근데 그게 내 정체성과 연결지어지나? 이번 사건을을 모두의 '방조'로 책임전가 하고 있는데, 왜 그러시나. 나 안뽑았고 나는 거기에 동조한 적이 없다. 나는 화가 날 뿐 부끄럽지는 않다.

자꾸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하는 걸 보면 조승희 총격사건때 갑자기 뻑하고 튀어나와서 사죄하던 그 일이 생각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다. 미국 애들이 트럼프가 멕시코 차별한다고 라티노한테 사과하는 일 없다. 왜 내가 대리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부끄러움의 정서가 나온 건 '우리가 남이가'라는 연결정신 그러니까 그 지긋지긋한 '연'에서 나온다.

서강대 운동권 애들이 기자들을 불러제껴놓고 '선배님이 서강의 이름에 먹칠을 하다니 부끄럽습니다' 라고 성명을 냈다. 기가 찼다. 스무 살도 넘은 성인이 환갑 넘은 사람과 '대학' 하나 같이 나왔다고 '우리'가 돼고, 그 우리라는 이유로 부끄러운가? 화가 나야지. 이 사람의 잘못은 대한민국의 주권통수자가 정치적으로 과오를 저질렀다는 거다. 내가 화나는 건 의무를 다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의 대리인이 저런 뻘짓을 하고 다니면서 (내 부모가 내는  세금을 펑펑 써대며 사는 모습을 봐서다. 저 사람이 내 대학 선배건 옆집 사는 이웃이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6.
지금 추잡한 드라마 하나 더 안다고 해서 이 문제의 답이 보일까. 물론 요즘 카톡방에서 '박근혜 카더라'는 꿀잼이고 그거때문에 낮에 일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정의로움'에 불탄 몇 사람들 보는 것도 불편하다. 당신 감정으로 판단한 대의를 전하지 말고 사건 관계로만 전하고 끝내줬으면 좋겠는데 자꾸 사족을 단다.

나는 이렇게 씹고 물고 뜯으면서 하는 게 얼마나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줄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일들을 몇 번이나 봐왔고, 결국 또 새로운 괴물이 나오지 않을까.

Monday, October 24, 2016

아쿠아리우스 (Aquarius, 2016)

1.
브라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최근 룰라의 비리때문에 브라질의 '좌파 파라다이스'가 허상이었다는 언론 보도만 본 기억이 난다. 그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도 못느꼈다. 나한테 남미는 너무 멀다. 내가 모르는 언어권에 대한 소식에 대해서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무식하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칸 경쟁작이었지만 사실 부산에 와서도 그냥 티켓시간이 맞고 아는 동생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예매할 생각도 없었을것 같다. 감독 이름도 아직까지 어렵다. (클레버 멘도사 필루! Kleber Mendoca Filho) 그래도 영화를 추천해준 아는 동생이자 브라질 덕후 감자한테 감사를.


2.
과거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과거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차곡차곡 쌓아놓는 사람이 있다. 영화는 과거가 된 공간에 대해 나타나는 다른 태도에 대해 말한다. 물론 중립적이진 않지만.


3.
주인공 클라라를 중심으로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뉜다. 대개 3부로 나뉘게 되면 길이도 얼추 비슷한데 여기는 1부가 제일 짧았고, 2부 3부가 좀 길다. 이렇게 똑같이 안맞춰놓은게 오히려 이 영화가 뻔하지 않게 흘러가게 해준 것 같다.

공간을 지키려는 클라라는 저널리스트고, 비백인 (유색인이란 말이 싫어서 이 표현을 쓴다만 이것도 좀 그러네)이지만 집을 다섯 채나 가지고 있고 펜션도 받는 꽤 잘 사는 사람이다. 자기 성적 욕망에 충실해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만 클럽에 가서 춤도 추고 거리의 사람을 집에 부르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로 보면 굉장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지만 이 공간에 관해서는 보수적이고 고집이 세다. 바다가 보이는 아쿠아리우스라는 아파트에는 모두 떠나고 이제 클라라 혼자 남았다. 이곳에 정말 뿌리박은 건 클라라 하나지만, 살림을 봐주는 라잔, 그리고 과거의 기록이 필요할 때 찾아오는 가족과 조카들도 있으니 엄밀히 말해 혼자는 아니다. 물론 같은 공간에 대해 기억은 다르게 적히니까 애착도 다르다. 엄마는 집을 비웠고, 우리를 방임했다고 소리지르는 아나와 이 소중한 집을 팔려는 멍청한 딸이라고 꾸짖는 클라라의 모습에서 기억은 상대적이다. 이 집은 모두의 추억을 담고 있지만 그 추억의 밀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집을 지키는 것보다 '보상금'을 받고 빨리 재개발해서 뉴 아쿠아리우스를 만드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4.
영화를 보면서 용산 남일당과 강남 구룡마을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소수의견>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는 영화도 있고 <두 개의 문> 다큐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다 좋은 영화다. <소수의견>은 사건의 흐름을 '극화'시켜서 상업영화로 잘 바꿔놨고, <두 개의 문>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가해자의 목소리를 병렬적으로 담아내서 '주장'보다 '사건의 실체'를 보여줬다.

그래도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영화처럼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용한 지점까진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은유가 넘쳐난다. 서랍장, 수영, 유방암 걸린 왕년의 배우 캐스팅처럼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에둘러 수많은 장치를 쓴다.

배경음악도 신경쓴 티가 나서 단순이 웅장, 장엄을 떠나서 그 세월이 느껴지는 브라질 음악들 하나하나가 다 모이고 쌓여서 이 공간을 스쳤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http://blog.naver.com/dive_toblue/220834006490 에 가면 BGM 음악 리스트도 있고 브라질에 관해 좀 더 알 수 있다.


사회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좋다. 하지만 이걸 굳이 TV 다큐멘터리나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스크린으로 옮겨놓는다면, 영화가 갖고있는 특성을 조금이나마 써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다큐 영화나 고발 영화가 아쉬운 건 결국 진영논리에 갖혀서 '마이클 무어'에 그치고는 '봐야할 영화'라고 감성에만 호소해서다.


5.
안경을 안쓰고 왔더니 자막이 잘 안 보였다. 눈이 많이 나빠진 게 느껴진다. 특히 영화제에서 영자막/한국어 자막 두 종류가 필요할 때 한국어는 세로로 들어가는데 안보여서 그냥 포기하고 영어로 봤다. 스마트폰 줄여야겠다는 좋은 교훈도 주셨다.


6.
출장가서 몇 문단 썼는데 서울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날씨가 추워지니 남국의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는 영화가 자꾸 생각나네. 

Thursday, October 20, 2016

걷기왕 (Queen of Walking, 2016)

1.
고등학교때부터 20대 초반까지는 일본 청춘영화를 정말 싫어했다. 왜 난 힘을 내기 싫은데 '발랄하고 명랑하게' 힘을 내라고 깔깔대며 웃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히토리나쟈나이' 류의 엔딩이 싫었지만 또 싫었떤 건 하루키식의 허무주의. 그냥 우린 그랬지, 아 아무 쓸모없어 다 필요없어 이러는 것도 그냥 싫었다. 청춘영화에서 느껴지는 그 '메가리 없는' 가벼움이 영화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유행은 한국을 거쳐 요즘 대만으로 넘어간 것 같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 올드독은 그 '대책없는 청순함'을 물고기떼같다고도 했다. 나도 이 목적없고 대책없는 발랄함이 싫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그게 '귀여워'보였다.

귀여우면 지는거고, 그냥 생각없이 이런 움직임들에 몸을 맡기면 나도 모르게 '청춘 파워'가 샘솟는다. 세상 살면서 8천원정도에 이정도 활력 얻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이후로부터 청춘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2.
<걷기왕>은 일본 청춘영화를 닮았다.

'히토리쟈나이', '좀 느리면 어때', '내가 뒤쳐졌니?' 하는 얘기는 그 때는 정말 할 수 있는 얘기다. 저 나이를 거치면서 저런 질문을 해보지 못한 내가 아쉬울 정도로 영화는 계속 질문을 한다.

주인공 만복이는 교통편만 타면 멀미를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두 시간, 왕복 네 시간을 걸어 학교를 가지만 그거 외에는 하는 게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섬에 살아도 EBS는 봐야하겠지만, 영화에서 만복이 공부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꿈도 없고, 뭔가 목표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어보이는 만복이 앞에 자기계발서형 인간인 담임이 나타나서는 '그래 넌 걷기를 잘하는구나' 하면서 갑자기 경보를 시킨다. 경보가 뭔지도 모르는 애한테 그냥 뜬금포로 던졌는데 그게 훅 하고 들어간거다.

육상부에 들어갔더니 '이글이글 노력형' 수파르타 수지선배는 고깝다. "Everyone is all-in, except you"라고 자막처리된 대사 (한국어 영화지만 이 자막이 더 기억에 훅 들어옴)를 보고 요즘 뜬다는 자기 계발서 제목인 '당신은 겉보기에만 노력할 뿐'도 생각나고 김미경 이지상 등등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다.

수지가 나쁜 유형은 아니다. 다만 욕심이 있었고, 그 욕심을 위해 자기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근데 노력이 당연한 게 되고 노력이 한도를 초과하면서 자신을 헤치고 그러다보니까 피로가 쌓이는거지.


3.
영화는 뜬금없이 귀엽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청춘영화를 '오글댄다'는 이유로 거의 보지 않는다. 감정과잉, 자기연민된 영화나 소설에 몸서리쳐하는데 그래도 이 영화는 '귀여워'서 견뎠다.

심은경이 되게 귀엽구나 하는 걸 이 영화 보면서 느꼈고 주변 인물상들이 '과장'된 전형성을 연기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힙합하는 배달오빠도 귀엽다. 찌질하게 하는 랩 하나도 짜식, 귀엽다 하고 보게 되고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얘기를 하기 때문에 귀엽다. 애기들이 '하하호호'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땐 저랬나?"하면서 과거를 회상해보지만 내 과거는 저렇게 하하호호는 아니었고 상큼발랄하지도 않았다. 이런 대리만족이라도 뒤늦게 할 수 있어 다행인건지 모른다. 운동 모션도 약간 족구왕처럼 과장된 몸동작이 들어가서 만화같은 느낌을 줘서 귀엽다. 자꾸 반복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귀엽다. 수지 역할 한 배우는 뭔가 고등학교에서 있을 법한 포스있는 동아리 선배 느낌이 그대로 나서 그때 내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 보지만. 우리 동아리는 그냥 이나중 탁구부같네. 아다치 미츠루(대표작 - H2, 탓-치)일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후루야 미노루(이나중 탁구부, ) 스타일로 격하게 놀았네.



배경음악도 귀엽다. 페퍼톤스의 초창기 느낌도 나고, 홍대 2000년대 후반 (eg. 타루, 캐스커, 옥상달빛 등등) 음악처럼 '대책없이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싸이 bgm으로 쓰면 꽤나 상큼하면서도 센스있어보이는 그런 음악이다. 심은경이 엔딩송도 불렀네.

여하튼 모든 건 다 귀여운 게 이긴다. 인간관계에서도 쟤 뭐야 하다가도 어, 귀엽네? 하면 지는거다. 라이언이 지금 한국 소비시장을 뒤흔드는 것도 귀여워서다. 모든 건 귀엽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4.
요즘 뜬금없이 노력충이 돼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열심히 해보고 있는데 잘 안됀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뒤쳐지는데 남들은 다 앞서나가는 느낌이라 지긋지긋하다. 다시 4년전처럼 다 내려놓고 비행기 타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자란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Am I lagging behind? Am I not good enough? 매일 이 질문을 수십 수백 번씩 나한테 던지는데 답을 잘 모르겠다. 나는 열심히 발버둥치는데 항상 10미터, 아니 그보다 더 뒤쳐져가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더럽다. 부산에서 마켓 시사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데 되게 찌질하게 울었다. 아는 사람들이 볼까 창피하지만 정말 끅끅대면서 울었다. 지금 내 상황이랑 오버랩되는 지점이 많아서 와르르 무너졌다.

이 영화 결론처럼 조금 느리게 가도 되겠지, 하다가도 자다가 소스라쳐서 깨고, 뭔가 다시 나가야 하나, 너무 한 곳에 오래 있었나 이런 생각도 들고. 복잡하다. 영화는 10대 얘긴데 이제 30을 앞두고 생각이 더 많아졌다. 정말 뒤늦게 사춘기라고 하기도 창피한 미숙한 불안함이 자꾸 올라와서 짜증난다. 

Monday, October 17, 2016

BIFF 2016

1.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 작년 10월에도 출장다녀오자마자 다시 면접준비하고 시험보고 헥헥대다가 결국 내 체력을 내가 감당 못하고 녹다운 됐다. 올해는 미리 운동도 좀 해놓고 일도 미리미리 해놨더니 그나마 버틴 것 같다.

10월 초 스케줄
마감 - 출장 - 마감 - 면접 - 시험 - 시험 - 마감(오늘이다 ^^ 하기 싫어서 블로그에 손이 옴)

사실 사드 통역 가기로 했는데 취소된 게 정말 다행인건지. 이번주부터 또 한 주간 엘 문도 취재 돕기로 했는데 태국 국왕 사망때문에 태국으로 비행기를 틀었다. 싸와디캅-

2.
사실 올해 출장 다녀오고 나서 헥헥대지 않은 건 영화제가 생각보다 안힘들었다. PIFF 2008부터 시작해서 관객, 프레스, 마켓 세 번으로 갔는데 올해가 제일 한산하고 스산했다. 정말 이건 '정의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20년 전통의 아시아 최대 영화 축제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야 한다. 김동화 전 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그냥 냅뒀으면 2~3만에 그쳤을 영화를 갑자기 무슨 '꼭봐야 하는 영화', 참언론, 진실로 만들어 준 서병수 시장도 대단하다.


3.
영화제에서 눈에 띄는 건 한국 영화는 점점 어두워지고 우울해지는 반면에, 대만 영화는 굉장히 다양해진다는 점이었다. 허우샤오시엔이나 프룻챈, 에드워드 양 이런 감독들이 아니더라도 젊고 안젊은 여러 감독들이 특이한 영화를 꽤 잘만들었다.

중국 영화는 매너리즘에 빠진 지 오래됐고, 일본 영화는 이미 좀 시큰둥해진 상태였는데 대만영화가 다시 치고 올라와주니 즐겁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된 영화라 그런지 더더욱.


4.








부산에서 발견 1
나흘 지내면서 영화관이 어두워지고 시퀀스가 나오는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대는 걸 보면서, 아 그래도 내가 영화를 많이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찌들고 짜증만 늘면서 영화가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변한 건 내 태도였고 영화는 그대로 있었다.


5.
부산에서 발견 2.
부산에는 워낙 엔젤리너스가 많아서 (롯데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가야할 경우가 생기는데.. 오 나쁘지 않다? 무조건 구리다고 할 게 아니었다. 특히 아메리치노는 흑맥주 땡길 때 가끔 마시면 좋을 것 같다. 이게 엔젤리너스가 나아진 것도 있겠지만 스타벅스가 요즘 너무 물맛밖에 안나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6.
다음 영화제는 그래도 관객으로 가고 싶다. 이젠 마켓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