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0, 2017

단지 세상의 끝 (Juste la fin du monde, 2016)

1.
영화를 보면서 잘 만들어진 영화가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예술이라는 게 개인의 취향을 따라 갈리는 거라 어떤 사람에 따라서는 대부2보다 신세계가 더 좋을 수도 있는거다.

나는 자의식 과잉된 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영화는 보지 않는다. 주제나 이야기는 다를 수 있지만, 절제되서 꾹꾹 눌린 영화를 좋아한다.


2.
자비에 돌란은 정말 불호불호불호불호다.
예전에 영화 모임에서 술 마시면서 89년생이었던 영화쪽 지인이 "내 친구 돌란이" 하길래 나는 "내 친구 아델이"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던 기억이 난다.

자비에 돌란은 89년생이고 데뷔작이 우리나라 나이로는 스무살, 만나이로는 19살인가 18살인가 그렇다. (한국 나이 사라져라)

그리고 2016년에는 결국 깐느에서 상까지 받았다. 이 정도면 타이틀만 봐도 뭔가 대단한 게 있어야 하는데 나한테는 그냥 아직까지 감정 과잉으로만 느껴진다.


3.
이렇게 자비에 돌란=감정과잉, 자의식의 지나친 발현이라고 하는 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존경하는 정성일 선생님께서는 이날 본 무비토크에서 "자비에 돌란은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영화화하려는 감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심리적 상태를 둘러싼 건 자의식, 개인의 감정이다. 이게 영화 러닝 타임에 꾹꾹 눌러담겼으니 내가 싫어하는 게 모두 담긴 영화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영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미묘한 심리를 잡아내는 데에서 자비에 돌란은 천재적이다. 엄마와의 관계를 묘사한 I Killed My Mother를 보면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게 엄마라서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뭔가 먹는 데서 구역질을 느끼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혐오 감정의 핵심 아닐까.


4.
단지 세상의 끝은 프랑스어다. 퀘벡 프랑스어가 아니라 정말 authentic한 프랑스 배우를 데려다 놓고 프랑스어로 찍었다.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집에 돌아와서 그 소중한 순간을 가족에게 쓴다. 그런데 가족은? 가족들의 모습은 또 어떻냐면 엉망이다. ㅋㅋㅋ

이 영화에서 두 가지 가정이 있다.

1) 루이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다
2) 루이의 죽음에 대해 모른다

이건데 영화가 감정과잉, 정신병자의 이야기가 아니기 위해서는 1의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 알지만, 공식적으로 컨펌되지 않은 둘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하면 "어머 그래 힘들었지" "엉엉 그래 우리랑 같이 있자"라고 말하면서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서 눈치게임이 되버리는 거다.

그것도 프랑스어로. 역시 혁명의 나라답게 싸움을 하는 언어도 격하다. 계속 쏟아내는 대사들을 보다가 배우가 에너지 소진이 어마어마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흥미로운 캐릭터는 루이도, 여동생도 아니고 벵상 카셀이었다.

첫째, 책임감, 가장. 앙투안은 동생에게서 자기가 갖고 싶었던 능력, 자유로운 삶을 끊임없이 본다. 여동생과는 달리 터울이 얼마 없어서 옆에서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어릴적부터 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결국 좌절하게 되는 인물이다.

모질게 말하지 말라고 몰아붙이는 가족한테 오히려 소심하게 울면서 소리칠 수밖에 없는 건 아무도 내 편이 아닌 상황, 정말 모두가 사랑하는 똑똑하고 잘난 동생과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아니었을까.

마리온 꼬띠아르가 말을 순하게 해서 착한 인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유일한 악역은 마리온 꼬띠아르였다. 말 그대로 '빙썅'. 웃는 낯으로 후비는 말을 다 하는 사람이다.

"이번에 데려오는 건 적절치 않아서"
죽음을 앞둔 이에게 다음이 어디 있다고.

"게이라서 아이를 가지실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 차별까지 한다.

"앙투안이라는 이름은 별로였어요."
형제 사이에 이간질도 한다.

남편과 동생 사이를 화해시키려는 듯 하면서 계속 뭔가 하나씩 이간질하는 포인트를 던져서 결국 감정을 폭발시킨다.


6.
자비에 돌란을 보면 Years & Years 노래가 생각난다. 뭔가 계속 휘몰아치는데 끝나고 나면 텅 빈 느낌.

19살에 만든 I Killed My Mother 와 7년 후 단지 세상의 끝은 다를 수밖에 없다. 10대와 20대의 생각이 같다면 그건 더 쓰레기같을테니. 이걸 지켜본다면 다음 작품이 어떨 지 궁금하긴 한데, 또 보자니 썩히 안내키고. 나쁘진 않은데 보라면 보기는 싫은 그런 감독.

자비에 돌란은 그래서 재밌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버겁다.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 같은 감정을 꼬챙이로 쑤셔서 끌어내는 것 같아서 더 방어적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7.
정성일 선생님처럼 치열하게 영화를 봐야겠다는 반성과, 영화를 '보는' 게 정말 look이었는지 See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던 무비토크였다.

나는 시네필도 뭣도 못되는 그냥 영화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맞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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