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콩에 가기 전에 스티브 잡스 뽕을 어마어마하게 맞았다. 그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 축사 영상에서 자기가 자퇴하기 전에 전공이랑 관계없는 타이포 수업을 듣고, 그게 결국 애플의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점을 여러 방면으로 찍어라 등등. 그걸 보고 "아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하면서(귀 얇음) 진짜 별 이상한 수업을 찾아 들었다. 우리 학교에는 미대도 없는데 디자인수업도 듣고, 심리학 수업도 듣고 (Positive Psychology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앨리스 교수님은 지금 학장이신 듯), 중국 '남방'의 사회학, 그러니까 남쪽의 제사가 어떻게 되나 하는 수업도 들어서 나중에 변환하는데 애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그걸로 인해 드라마티컬하게 창조적으로 변한 것도 없고, 진득하게 공부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데 그래도 디자인 수업은 나한테 꽤 큰 영향을 줬다.
수업은 실용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사조를 훓다가 그게 공공디자인에 어떻게 적용되고 각 나라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외국 교수였고 수업 절반은 교환학생이었는데 나는 이걸 가지고 소논문을 쓸 정도는 아니어서 결국 아무 말도 못했다. 대한민국 디자인이 없다고 생각했으려나?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연구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때 배운 디자인에 대한 기본 이론이나 배경 지식덕분에 미술관에 좀 더 진득하게 남아있게 됐다. 물론 15주 수업에서 7주 나가고 자체종강을 해버려서 Art Nouveau, De Stijl, Bauhaus 이 세 단어만 기억에 남는다.
2.
아르누보, 새로운 아트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예술은 지난 사조와 다른 '새로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사실 이건 개념어라고 해야 맞겠지만, 알폰스 무하 이후로 고유명사가 됐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아르누보 스타일 포스터가 기념품 가게에서 종종 보이고 벽에는 아르누보 장식이 들어간 벽화가 들어가서 이게 파리지앵처럼 보이지만 무하는 체코사람이다. 그리고 기존 화풍이랑 비교하면 동서양 통합에 (족자 스타일을 배경에 깔고, 의상은 파리에서 유행하던 것들) 자유로운 느낌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이 사람은 어마어마한 민족주의자고 프리메이슨이었다.
전시에서 프리메이슨 레터헤드도 있었는데 이걸 보고 나니까,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가입해본 적도 없는 프리메이슨의 자부심이 내 안에서 샘솟더라. 예술은 인간의 심리에 큰 영향을 준다.
3.
무하는 사람은 상업 디자인을 해서 그 '원본'과 '복제본'의 경계가 애매하다. 원본이라고 할 작품이라고 해봐야 스케치 연구나 초기 컬러페인팅 정도라 대부분이 대량인쇄본이다.
실제로 보면 색감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라고 할 만큼의 차이는 없지만, 그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물론 "오 이건 파리에서 인쇄한거군", "어 이건 뉴욕의 잉크느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keen eyes가 있다면 인정.
- 예술의 대량생산을 인정하냐 안하느냐는 개인차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쇄소에서 뽑아낸 그림과 화가의 붓터치가 살아있는 그림이 동급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복제미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워홀을 보느니 시체수집가 데미안 허스트를 보겠다 정도?
4.
그림을 보면 익숙한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내가 무하에 끌렸던 건 어릴 때 보고 좋아하던 게 다 무화 화풍 영향을 받은 것이라 그런 것 같다.
전시 마지막에는 무하의 영향이라고 해서 애니메이션 작화나 잡지같은 것도 전시돼 있었다. 오랜만에 뉴타입을 보니까 중학교때 그림그리던 친구들 옆에서 끄적이던 생각도 나고 만화에 미쳐서 몇 만원 맡겨놓고 빌려보던 생각도 났다.
5.
전시 구성은 솔직히 구렸다.
도슨트 설명은 안들어서 모르겠다만, 그 설명문에 오타도 많고 (eg. from 을 fromm이라고 당당히 써놓음) 비문도 많아서 읽다가 그냥 그림만 보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중섭때도 느꼈지만 왜 전시장에서 요상한 클래식 음악을 트는 거지? 아 이게 유럽 작품이니까? 파리느낌나라고?
이상한 음악은 앵앵대고 전시장에서 통화하는 사람에 우는 애 소리에 (육아하는 엄마들도 전시를 볼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가 울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온갖 소리가 겹쳐져서 머리가 아팠다.
조명도 위치가 애매해서 그런지, 그림을 보는데 그림자가 져서 색깔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대개 그림 동선이랑 조명 동선, 그리고 사람이 서는 선을 계산해서 그림 주변에 조명을 치는데 이건 그냥 조명 레인따라 쭉 넣은 것 밖에 안됐다. 그게 또 충분한 것도 아니라 어떤 그림은 너무 어두워서 정말 코를 박고 봐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한가람이 좁아서 전시가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쓸거면 그냥 전시 다 DDP나 서울시립이나 이런 천장 높은 곳으로 다 옮겨가야 할 판이다.
근데 굿즈는 엄청 잘만들었다. 굿즈 사러라도 한 번 더 갈 것 같다.
6.
그림을 보다가 시력이 어마어마하게 나빠졌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스마트폰 줄여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끝났는데,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제대로 색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눈을 비비고 다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 보는 내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림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보고 싶은 건 많은데 눈은 점점 나빠진다. 뭔가 억울하고 슬프다. 이젠 눈까지 아껴써야 하다니.
7.
오랜만에 전시를 보니까 갈증이 해소된 것 같다. 영감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예쁘고 좋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수업을 듣고, 여러 점을 찍었지만, 나는 결국 스티브 잡스만큼의 인물은 못될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일상에서 왜 이게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런 걸 알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하다.
8.
작년에 유럽에 다녀온 아빠는 이거 보기 전에 오르셰展을 보고 시시하다고 했다.
열심히 돈벌어서 미국 한 번 보내드려야겠다.
홍콩에 가기 전에 스티브 잡스 뽕을 어마어마하게 맞았다. 그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 축사 영상에서 자기가 자퇴하기 전에 전공이랑 관계없는 타이포 수업을 듣고, 그게 결국 애플의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점을 여러 방면으로 찍어라 등등. 그걸 보고 "아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하면서(귀 얇음) 진짜 별 이상한 수업을 찾아 들었다. 우리 학교에는 미대도 없는데 디자인수업도 듣고, 심리학 수업도 듣고 (Positive Psychology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앨리스 교수님은 지금 학장이신 듯), 중국 '남방'의 사회학, 그러니까 남쪽의 제사가 어떻게 되나 하는 수업도 들어서 나중에 변환하는데 애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그걸로 인해 드라마티컬하게 창조적으로 변한 것도 없고, 진득하게 공부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데 그래도 디자인 수업은 나한테 꽤 큰 영향을 줬다.
수업은 실용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사조를 훓다가 그게 공공디자인에 어떻게 적용되고 각 나라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외국 교수였고 수업 절반은 교환학생이었는데 나는 이걸 가지고 소논문을 쓸 정도는 아니어서 결국 아무 말도 못했다. 대한민국 디자인이 없다고 생각했으려나?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연구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때 배운 디자인에 대한 기본 이론이나 배경 지식덕분에 미술관에 좀 더 진득하게 남아있게 됐다. 물론 15주 수업에서 7주 나가고 자체종강을 해버려서 Art Nouveau, De Stijl, Bauhaus 이 세 단어만 기억에 남는다.
2.
아르누보, 새로운 아트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예술은 지난 사조와 다른 '새로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사실 이건 개념어라고 해야 맞겠지만, 알폰스 무하 이후로 고유명사가 됐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아르누보 스타일 포스터가 기념품 가게에서 종종 보이고 벽에는 아르누보 장식이 들어간 벽화가 들어가서 이게 파리지앵처럼 보이지만 무하는 체코사람이다. 그리고 기존 화풍이랑 비교하면 동서양 통합에 (족자 스타일을 배경에 깔고, 의상은 파리에서 유행하던 것들) 자유로운 느낌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이 사람은 어마어마한 민족주의자고 프리메이슨이었다.
전시에서 프리메이슨 레터헤드도 있었는데 이걸 보고 나니까,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가입해본 적도 없는 프리메이슨의 자부심이 내 안에서 샘솟더라. 예술은 인간의 심리에 큰 영향을 준다.
3.
무하는 사람은 상업 디자인을 해서 그 '원본'과 '복제본'의 경계가 애매하다. 원본이라고 할 작품이라고 해봐야 스케치 연구나 초기 컬러페인팅 정도라 대부분이 대량인쇄본이다.
실제로 보면 색감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라고 할 만큼의 차이는 없지만, 그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물론 "오 이건 파리에서 인쇄한거군", "어 이건 뉴욕의 잉크느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keen eyes가 있다면 인정.
▲ 프랑스 낭트에서 생산되는 Lefevere Utile 비스킷 패키지와 커머셜 이미지.
지금도 생산되는데, 낭트에 가면 무하 그림이 들어간 패키지를 살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를 가야겠다!
▲ 모엣 샹동 커머셜 이미지.
화려한 그림체랑 샴페인의 풍성함이랑 잘어울려서 무하의 커머셜중엔 가장 인상깊다.
- 예술의 대량생산을 인정하냐 안하느냐는 개인차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쇄소에서 뽑아낸 그림과 화가의 붓터치가 살아있는 그림이 동급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복제미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워홀을 보느니 시체수집가 데미안 허스트를 보겠다 정도?
4.
그림을 보면 익숙한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내가 무하에 끌렸던 건 어릴 때 보고 좋아하던 게 다 무화 화풍 영향을 받은 것이라 그런 것 같다.
▲ 무하 없으면 존재가 불가능했을 것 같은 클램프
5.
전시 구성은 솔직히 구렸다.
도슨트 설명은 안들어서 모르겠다만, 그 설명문에 오타도 많고 (eg. from 을 fromm이라고 당당히 써놓음) 비문도 많아서 읽다가 그냥 그림만 보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중섭때도 느꼈지만 왜 전시장에서 요상한 클래식 음악을 트는 거지? 아 이게 유럽 작품이니까? 파리느낌나라고?
이상한 음악은 앵앵대고 전시장에서 통화하는 사람에 우는 애 소리에 (육아하는 엄마들도 전시를 볼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가 울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온갖 소리가 겹쳐져서 머리가 아팠다.
조명도 위치가 애매해서 그런지, 그림을 보는데 그림자가 져서 색깔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대개 그림 동선이랑 조명 동선, 그리고 사람이 서는 선을 계산해서 그림 주변에 조명을 치는데 이건 그냥 조명 레인따라 쭉 넣은 것 밖에 안됐다. 그게 또 충분한 것도 아니라 어떤 그림은 너무 어두워서 정말 코를 박고 봐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한가람이 좁아서 전시가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쓸거면 그냥 전시 다 DDP나 서울시립이나 이런 천장 높은 곳으로 다 옮겨가야 할 판이다.
근데 굿즈는 엄청 잘만들었다. 굿즈 사러라도 한 번 더 갈 것 같다.
6.
그림을 보다가 시력이 어마어마하게 나빠졌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스마트폰 줄여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끝났는데,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제대로 색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눈을 비비고 다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 보는 내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림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보고 싶은 건 많은데 눈은 점점 나빠진다. 뭔가 억울하고 슬프다. 이젠 눈까지 아껴써야 하다니.
7.
오랜만에 전시를 보니까 갈증이 해소된 것 같다. 영감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예쁘고 좋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수업을 듣고, 여러 점을 찍었지만, 나는 결국 스티브 잡스만큼의 인물은 못될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일상에서 왜 이게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런 걸 알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하다.
8.
작년에 유럽에 다녀온 아빠는 이거 보기 전에 오르셰展을 보고 시시하다고 했다.
열심히 돈벌어서 미국 한 번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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