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감사한 게 있다면 도서관이 잘 돼있다.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지만 장서 종류가 꽤 다양했다. 없는 책은 신청하면 2주 내로 받을 수 있다. (경쟁 치열한 건 내가 1등으로 신청해야 받아볼 수 있지만) 학교에서 신청해서 본 책값을 따지면 한 18학점 어치? 그리고 학교에서 읽은 책들로 하면 한 3학기 등록금값은 했다.
2관 5층에서 나는 하릴없이 책을 읽었고 목적없이 '서가 뽀개기'를 해댔다. 어떤 영화감독이 자기네 학교에 있는 소설책을 다 읽었다는 카더라를 듣고서 질 수 없다며 그냥 책을 읽게 됐다. 이전처럼 독후감을 쓰지도 않았고, 독서노트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2관 5층에는 좌 소설 우 예술관련 책이 있었다. 대학에와서 지적 허세에 굶주렸던 나한테는 딱이었다. 6층은 여행이나 세계사라서 여기서 가지고 내려와서 읽기에도 편했다. (6층은 서가가 작다.)
무슨 작가의 책을 읽겠다가 아니라 오늘은 세 번째 서가 세 번째 줄을 한 번 작살내보자 하는 식이었다. 2관 5층에 그래픽 노블이랑 만화책도 있어서 그 줄이 걸리는 날은 그냥 쌓아놓고 읽었다. 한 시리즈를 다 대출해가면 지하철에서 무겁고, 만화책을 빌려가면 폼이 안나서 만화책 같은 건 학교에서 읽고 집에 갈 때는 좀 거리에서 읽을만한 책을 읽었다.
오른쪽에서는 영화나 현대 미술 (영국 yBa)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연극이나 공연은 그때도 좋아하지 않아서 감독 서평집이나 아니면 미술 화집을 봤다. 한창 허지웅씨가 시빌워를 얘기해서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 기억도 난다. (이게 도착하기 전에 난 영국으로 출국했다.........)
왼쪽은 문학이었다. 앞라인은 한국작가, 뒷라인은 외국작가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 시리즈는 몇 번 읽었다. 김전일이랑은 비교할 수 없게 무섭다. 그림보다 더 심리적으로 쫄린다. 팔묘촌을 읽지 않은 자와는 김전일 할배 얘기를 할 수 없다. Fluke Joanne의 쿠키 시리즈(여자 주인공이 베이커인데 추리도 한다. 한 책마다 쿠키나 베이킹 레시피가 큰 축이 되고 거기에 맞춰서 살인사건이 터진다. )는 맨 윗라인에 꽂혀있었는데, 그 책이 인기있는 것도 아닌데 꽤 많아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소설은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박민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지...? 했고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 내가 감성이 메말랐나? 하다가 신경숙의 책을 읽다 다시 팔묘촌을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을 용도로 에세이를 몇 권 빌렸다. 그때 읽은 기타노 다케시는 아마 내가 이렇게 '다 죽어라' 하고 삐딱해진 이유다. 그전까지는 소심하게 삐딱했다면 다케시 자서전 두 권을 읽고는 견고하게 삐딱해졌다.
한국 작가는 소설에 대한 편견이 에세이에도 작용해서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라도 되겠지>도 그 때 읽었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제목이 내 어깨에 내려진 짐을 툭툭 덜어주는 것 같아 술술 읽고, '어른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자의식에 빠져서 '난 특별하게 슬퍼' 하는 에세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니까 버텨' 하는 깨우침서를 보다 이런 책을 읽으니 그냥 편했다.
나처럼 듀데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 행오버나 쥬랜더도 봐야하는데, 보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트위터가 있었다면 분명히 '쥬랜더도 꼭 보세요' 라고 했겠지. (다행이다...그때는 트위터를 몰랐다!)
나는 8중혁만큼의 글도 쓰지 않았고, 박재범이 나간 것에 대해 저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탈퇴 후에 그 간담회에만 집중했다) 하면서 이 책을 넘겼고 그렇게 흘려보냈다. 거창하지 않은 말투로 자기 얘기를 하는 또렷하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4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김중혁씨처럼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 시간을 선택했다. 이 사람은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치면서 부러울 게 없다고 했지만, 나는 세상 모든 게 다 부럽다. 시간은 있지만 한가하진 않다. 마음이 궁핍하다. 나는 김동현보다는 작은 짐짝이 돼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데 재능은 언제쯤 생길지 초조하게 나를 들볶았다. '뭐라도 되겠지'에서 뭐라도가 4년전에는 whatever였다면 지금은 what으로 변해서 '뭔가' 돼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목적없이 읽은 책은 기억에 남지만 뭔가 하기 위해 읽은 책은 잘 잊힌다고 했다. 졸업하고 일하다가도 전공책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고, 스터디 때문에 읽는 책은 장을 넘기면 다 까먹기 일쑤지만, 2관5층의 책은 가끔 떠오른다. 그때 아무 생각없이 오늘은 이 책장을 다 비우겠다던 목적없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지금은 목적으로만 가득차서 계산하고 재느라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겠다.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뭘 해야한다 생각에 굳어버려서 결국 계속 제자리다.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지만 장서 종류가 꽤 다양했다. 없는 책은 신청하면 2주 내로 받을 수 있다. (경쟁 치열한 건 내가 1등으로 신청해야 받아볼 수 있지만) 학교에서 신청해서 본 책값을 따지면 한 18학점 어치? 그리고 학교에서 읽은 책들로 하면 한 3학기 등록금값은 했다.
2관 5층에서 나는 하릴없이 책을 읽었고 목적없이 '서가 뽀개기'를 해댔다. 어떤 영화감독이 자기네 학교에 있는 소설책을 다 읽었다는 카더라를 듣고서 질 수 없다며 그냥 책을 읽게 됐다. 이전처럼 독후감을 쓰지도 않았고, 독서노트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2관 5층에는 좌 소설 우 예술관련 책이 있었다. 대학에와서 지적 허세에 굶주렸던 나한테는 딱이었다. 6층은 여행이나 세계사라서 여기서 가지고 내려와서 읽기에도 편했다. (6층은 서가가 작다.)
무슨 작가의 책을 읽겠다가 아니라 오늘은 세 번째 서가 세 번째 줄을 한 번 작살내보자 하는 식이었다. 2관 5층에 그래픽 노블이랑 만화책도 있어서 그 줄이 걸리는 날은 그냥 쌓아놓고 읽었다. 한 시리즈를 다 대출해가면 지하철에서 무겁고, 만화책을 빌려가면 폼이 안나서 만화책 같은 건 학교에서 읽고 집에 갈 때는 좀 거리에서 읽을만한 책을 읽었다.
오른쪽에서는 영화나 현대 미술 (영국 yBa)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연극이나 공연은 그때도 좋아하지 않아서 감독 서평집이나 아니면 미술 화집을 봤다. 한창 허지웅씨가 시빌워를 얘기해서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 기억도 난다. (이게 도착하기 전에 난 영국으로 출국했다.........)
왼쪽은 문학이었다. 앞라인은 한국작가, 뒷라인은 외국작가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 시리즈는 몇 번 읽었다. 김전일이랑은 비교할 수 없게 무섭다. 그림보다 더 심리적으로 쫄린다. 팔묘촌을 읽지 않은 자와는 김전일 할배 얘기를 할 수 없다. Fluke Joanne의 쿠키 시리즈(여자 주인공이 베이커인데 추리도 한다. 한 책마다 쿠키나 베이킹 레시피가 큰 축이 되고 거기에 맞춰서 살인사건이 터진다. )는 맨 윗라인에 꽂혀있었는데, 그 책이 인기있는 것도 아닌데 꽤 많아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소설은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박민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지...? 했고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 내가 감성이 메말랐나? 하다가 신경숙의 책을 읽다 다시 팔묘촌을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을 용도로 에세이를 몇 권 빌렸다. 그때 읽은 기타노 다케시는 아마 내가 이렇게 '다 죽어라' 하고 삐딱해진 이유다. 그전까지는 소심하게 삐딱했다면 다케시 자서전 두 권을 읽고는 견고하게 삐딱해졌다.
한국 작가는 소설에 대한 편견이 에세이에도 작용해서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라도 되겠지>도 그 때 읽었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제목이 내 어깨에 내려진 짐을 툭툭 덜어주는 것 같아 술술 읽고, '어른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자의식에 빠져서 '난 특별하게 슬퍼' 하는 에세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니까 버텨' 하는 깨우침서를 보다 이런 책을 읽으니 그냥 편했다.
나처럼 듀데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 행오버나 쥬랜더도 봐야하는데, 보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트위터가 있었다면 분명히 '쥬랜더도 꼭 보세요' 라고 했겠지. (다행이다...그때는 트위터를 몰랐다!)
나는 8중혁만큼의 글도 쓰지 않았고, 박재범이 나간 것에 대해 저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탈퇴 후에 그 간담회에만 집중했다) 하면서 이 책을 넘겼고 그렇게 흘려보냈다. 거창하지 않은 말투로 자기 얘기를 하는 또렷하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4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김중혁씨처럼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 시간을 선택했다. 이 사람은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치면서 부러울 게 없다고 했지만, 나는 세상 모든 게 다 부럽다. 시간은 있지만 한가하진 않다. 마음이 궁핍하다. 나는 김동현보다는 작은 짐짝이 돼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데 재능은 언제쯤 생길지 초조하게 나를 들볶았다. '뭐라도 되겠지'에서 뭐라도가 4년전에는 whatever였다면 지금은 what으로 변해서 '뭔가' 돼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목적없이 읽은 책은 기억에 남지만 뭔가 하기 위해 읽은 책은 잘 잊힌다고 했다. 졸업하고 일하다가도 전공책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고, 스터디 때문에 읽는 책은 장을 넘기면 다 까먹기 일쑤지만, 2관5층의 책은 가끔 떠오른다. 그때 아무 생각없이 오늘은 이 책장을 다 비우겠다던 목적없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지금은 목적으로만 가득차서 계산하고 재느라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겠다.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뭘 해야한다 생각에 굳어버려서 결국 계속 제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