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4, 2016

뭐라도 되겠지

학교에 감사한 게 있다면 도서관이 잘 돼있다.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지만 장서 종류가 꽤 다양했다. 없는 책은 신청하면 2주 내로 받을 수 있다. (경쟁 치열한 건 내가 1등으로 신청해야 받아볼 수 있지만) 학교에서 신청해서 본 책값을 따지면 한 18학점 어치? 그리고 학교에서 읽은 책들로 하면 한 3학기 등록금값은 했다.

2관 5층에서 나는 하릴없이 책을 읽었고 목적없이 '서가 뽀개기'를 해댔다. 어떤 영화감독이 자기네 학교에 있는 소설책을 다 읽었다는 카더라를 듣고서 질 수 없다며 그냥 책을 읽게 됐다. 이전처럼 독후감을 쓰지도 않았고, 독서노트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2관 5층에는 좌 소설 우 예술관련 책이 있었다. 대학에와서 지적 허세에 굶주렸던 나한테는 딱이었다. 6층은 여행이나 세계사라서 여기서 가지고 내려와서 읽기에도 편했다. (6층은 서가가 작다.)

무슨 작가의 책을 읽겠다가 아니라 오늘은 세 번째 서가 세 번째 줄을 한 번 작살내보자 하는 식이었다. 2관 5층에 그래픽 노블이랑 만화책도 있어서 그 줄이 걸리는 날은 그냥 쌓아놓고 읽었다. 한 시리즈를 다 대출해가면 지하철에서 무겁고, 만화책을 빌려가면 폼이 안나서 만화책 같은 건 학교에서 읽고 집에 갈 때는 좀 거리에서 읽을만한 책을 읽었다.

오른쪽에서는 영화나 현대 미술 (영국 yBa)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연극이나 공연은 그때도 좋아하지 않아서 감독 서평집이나 아니면 미술 화집을 봤다. 한창 허지웅씨가 시빌워를 얘기해서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 기억도 난다. (이게 도착하기 전에 난 영국으로 출국했다.........)

왼쪽은 문학이었다.  앞라인은 한국작가, 뒷라인은 외국작가였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 시리즈는 몇 번 읽었다. 김전일이랑은 비교할 수 없게 무섭다. 그림보다 더 심리적으로 쫄린다. 팔묘촌을 읽지 않은 자와는 김전일 할배 얘기를 할 수 없다. Fluke Joanne의 쿠키 시리즈(여자 주인공이 베이커인데 추리도 한다. 한 책마다 쿠키나 베이킹 레시피가 큰 축이 되고 거기에 맞춰서 살인사건이 터진다. )는 맨 윗라인에 꽂혀있었는데, 그 책이 인기있는 것도 아닌데 꽤 많아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소설은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박민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으면서 이게 무슨 소리지...? 했고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면서 아 내가 감성이 메말랐나? 하다가 신경숙의 책을 읽다 다시 팔묘촌을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을 용도로 에세이를 몇 권 빌렸다. 그때 읽은 기타노 다케시는 아마 내가 이렇게 '다 죽어라' 하고 삐딱해진 이유다. 그전까지는 소심하게 삐딱했다면 다케시 자서전 두 권을 읽고는 견고하게 삐딱해졌다.

한국 작가는 소설에 대한 편견이 에세이에도 작용해서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라도 되겠지>도 그 때 읽었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제목이 내 어깨에 내려진 짐을 툭툭 덜어주는 것 같아 술술 읽고, '어른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자의식에 빠져서 '난 특별하게 슬퍼' 하는 에세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니까 버텨' 하는 깨우침서를 보다 이런 책을 읽으니 그냥 편했다.

나처럼 듀데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 행오버나 쥬랜더도 봐야하는데, 보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트위터가 있었다면 분명히 '쥬랜더도 꼭 보세요' 라고 했겠지. (다행이다...그때는 트위터를 몰랐다!)

나는 8중혁만큼의 글도 쓰지 않았고, 박재범이 나간 것에 대해 저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탈퇴 후에 그 간담회에만 집중했다) 하면서 이 책을 넘겼고 그렇게 흘려보냈다. 거창하지 않은 말투로 자기 얘기를 하는 또렷하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4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김중혁씨처럼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 시간을 선택했다. 이 사람은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치면서 부러울 게 없다고 했지만, 나는 세상 모든 게 다 부럽다. 시간은 있지만 한가하진 않다. 마음이 궁핍하다. 나는 김동현보다는 작은 짐짝이 돼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데 재능은 언제쯤 생길지 초조하게 나를 들볶았다. '뭐라도 되겠지'에서 뭐라도가 4년전에는 whatever였다면 지금은 what으로 변해서 '뭔가' 돼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목적없이 읽은 책은 기억에 남지만 뭔가 하기 위해 읽은 책은 잘 잊힌다고 했다. 졸업하고 일하다가도 전공책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고, 스터디 때문에 읽는 책은 장을 넘기면 다 까먹기 일쑤지만, 2관5층의 책은 가끔 떠오른다. 그때 아무 생각없이 오늘은 이 책장을 다 비우겠다던 목적없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지금은 목적으로만 가득차서 계산하고 재느라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겠다. 뭘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뭘 해야한다 생각에 굳어버려서 결국 계속 제자리다. 

Sunday, April 10, 2016

음식남녀 (Eat Drink Man Woman, 1994)

1.
영화를 아주 오래전에 보면 영화의 원래 내용과 내 기억 사이의 왜곡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나는 결론이 ㄱ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ㄱ은 그냥 단어 한 번이 나왔고, 전체 내용은 ㄴ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는 경우다.

내 기억의 음식남녀는 가족의 화합과 전통적인 음식 마스터 이런 얘기였는데.......말이다.


2.
음식남녀는 중화음식을 주로 다룬다.
주 사부의 호텔주방부터 집의 부엌, 그리고 작은 노점의 초우토우푸와 니우로우미엔까지 (나도 이렇게 원어로 써보고 싶었는데 아 오글) 중국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음식을 다룬다. (물론 쓰촨, 둥베이는 없었지만)

어릴 때 보고 충격받은 장면은 주 사부가 거위인지 오린지 모를 가금류를 붙잡고 거기에 풍선처럼 바람을 휙 넣는 모습이었다. 우선 음식을 저렇게 팡팡 불어댄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내가 먹는 음식에 남의 침이 들어갈 수도 있잖아 하는 까탈스러운 마음에 저런 건 절대 먹지 말아야겠다 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홍콩에서 지내며 매일 저 밥을 먹고 지냈다. 아주 맛있게. 지금도 그리운 음식 탑 3에 듬)

뜨거운 기름을 부어가며 익히는 생선요리, 샤오롱바오, 갈비탕, 동과탕을 보면서 내가 먹고 지내던 그 시절과 그 때 생각에 영화 이외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동시상영됐다. (영화를 보면서 쓸데없이 하이킥할뻔)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마시고 먹고 그리고 이게 결국 남녀간의 색정으로 이어진다. 세 자매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게 마치 사람이 하루 세 끼를 챙겨먹는 듯 했다. 거기에 주 사부마저. (여기서 내 기억과 실제 영화 간의 왜곡이 극대화됐다)

마치 언니의 연애 기억과 실제 상황이 달랐던 것처럼 내 기억의 음식남녀는 그냥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했다는 걸 깨달았다.


3.
중국어를 못했을 때는 이 영화가 왜 중화민족의 역사를 말한다는지 이해가 안됐는데 중국어를 하고 나서는 한 10퍼센트, 중화친구들한테서 여러 중국어를 배우면서는 한 80퍼센트 정도 이해가 됐다.

특히 영화에서 한 번 나온 타이와니즈(이게 하까였는지 아니면 자체 방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쓰는 만다린 차이니즈랑은 아예 발음이 다르다)를 보면서 중'화'가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영화에서 쓰는 만다린은 얼화도 없고 번체를 쓰는 타이와니즈 만다린인데, 이게 거의 미국영어/영국영어 이상으로 다르다.

양 부인이 자기는 창사출신이고 어떻게 내려오고 하면서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타이완이 이민자+원주민의 나라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좀 와닿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차이니즈는 민족이 될 수도 있고 국적이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차이니즈지만 타이와니즈다. 그리고 타이와니즈에는 호키안도 있고 원주민도 있고, 하까도 있고 캔토니즈도 있다. 거기에 미국으로 이민간 ABC까지 섞이게 되면 이걸 하나로 아우르는 차이니즈의 범위가 광대해진다.

1994년, 주인공의 방에 '토토로'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보면 타이완-일본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식민지-지배자 관계랑은 또 달랐을 거고. (저 당시에 우리나라는 일본 문화 개방도 안돼있었으니)


4.
영화를 보고 나니까 또 다시 저쪽으로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 3할, 그리고 떠오르는 몇 얼굴 7할들.


5.
막내동생 패션이 낯설지 않은 걸 보니 유행은 역시 돌고 돈다. 그리고 오천련 언니는 넘나 예쁜 것! 나도 저런 비즈니스 우먼이 될 줄 알았으나......

Tuesday, April 5, 2016

Tangerine (2015)

1.
국가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헌법 2장 34조에서는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기했다.

4월 1일 헌법재판소는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합헌판정을 내렸다.

2.
Tangerine은 작년 선댄스에서 개봉하고 독립영화제에서 꽤 핫했다. 아이폰으로 전체 영화를 찍었다는 점도 독특했고, 주제면에서도 정말 'West Coast'같았다.

아이폰으로 찍어서 그런지 초점이 굉장히 특이하다. 화면 모두에 힘이 빡 들어가있는 느낌이라 살짝 어지러울 때도 있다. 영화 크레딧에도 나오는 문독(맞나... 기억이 가물)이라는 앱때문에 촬영이 용이했다고 감독이 인터뷰한 걸 봤다. 

http://www.indiewire.com/the-app-that-made-it-possible-to-shoot-sundance-hit-tangerine-on-an-iphone

전체적으로 약간 오렌지톤이 돌아서 제목이 탠저린이라고 했다는데 오렌지면 오렌지지 왜 탠저린일까.

3.
트랜스젠더, 흑인, 성매매, 포주, 온갖 안좋은 '불법'으로 가득한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냥 일반 관점으로 보면 '이런 게 예술인가' '오 신이시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나머지 한 명 멀쩡한 줄 알았던 아르메니안 남편은 알고보니 성매매 구입자. (그것도 트랜스젠더....정확히 말하면 수술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용어가 생각 안나네) 가족과 함께 해야할 크리스마스에 길거리에서 여자를 사기 위해 택시로 돌아다니고. 정말 미국은 저런 나라일까 보는 내내 생각했다. (캘리포니아 버몬트? 라는데 내가 가봤어야 알지..)

4.
영화 줄거리는 그냥 친구간의 미묘한 질투에서 시작된다. 출소한 친구한테 '나 니 남친이 딴 여자랑 자는 거 봤음'이라고 해서 그 '년'을 잡으러 가는 크리스마스 하루.

여기서 환한 대낮인데도 왠지 어두워보이는 도시를 누비는 택시의 앵글, 머리채를 쥐어잡는 신디의 눈높이에서 본 도시는 어지럽고 흔들렸다. (내가 속이 미슥거렸던 건 중간에 이런 화면때문이었던 것 같다.)

5.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랑 얘기를 했는데 어떤 사람은 '성매매 불법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신디한테 끌려가는 바람에 결국 자기 방(방석집같은 방이었다)을 잃어버리고 길거리에 나앉은 다이나의 모습에서 약자를 범법자로 만드는 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6.
나는 정반대였다.
이 영화를 보고 성매매는 결코 합법화되선 안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성매매가 가능하다면, 결국 '사람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리에 잡히게 된다. 영화에서 신디는 지나가던 무리한테 오줌 세례를 맞는다. 나한테 돈을 벌기 위해 다가온 이에게 오줌을 붓고 조롱한다. 나의 쾌락을 위한 도구이므로 이들은 나한테 '을'이다. 내가 어떻게 하건간에 이들의 존엄은 보장받을 이유가 없다. 

7.
극장판에 가는 길에 방석집 언니(?)가 가게 문을 여는 걸 봤다. 나보다 한창은 어려보이던 금발의 언니는 지나가던 외국인한테 윙크도 하더니 입에 담기엔 뭣한 말을 내뱉으며 가게로 들어갔다.

이 사람들이 합법화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을까?
이제 경찰 앞에서 도망가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인격적 존중을 받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돈이 없어서 이 일을 한 사람들한테.. 이 핑계는 대지 말자. 돈 없는 모든 사람이 성매매를 하는 건 아니니까.

8.
영화 주인공들은 실제 거리에서 성매매를 하던 사람들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