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을 하는 사람은 그 나름의 기준이 있다. 생선이나 날것을 먹지 않는다던가, 향이 강한 음식, 혹은 특정 질감을 피해 먹는다는 등의 자신의 '합리적 기준'이 있다. 내가 편식을 하면서 욕을 먹는 건 이 '기준'에 논리성이 하나도 없어서 먹는 사람을 곤란하게 해서다.
내가 안 먹는 음식은 다양하다. 채소를 제외하고 날 음식은 먹지 않는다. 계란을 삶아 먹을 때도 완숙이어야 하고 쇠고기도 무조건 핏기없이 빳빳하게 구워야 한다. 파스타는 먹어도 밀가루 전분맛이 느껴지는 칼국수, 수제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피자나 햄버거를 좋아해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할 것 같지만 라면은 먹지 않는다. (레토르트 우동은 먹는다.) 이밖에 안먹는 건 머랭류의 디저트, 시트러스한 타르트, (최악은 레몬머랭타르트). 바게트나 치아바타, 베이글, 크루아상처럼 거기에 뭔가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빵을 제외한 모든 빵. 특히파운드케이크, 롤케이크, 카스테라, 머핀처럼 같은 맛이 혼자 계속 강하게 나오는 빵은 먹다가 질린다.
싫어하는 걸 더 나열하자면 매운 김치, 갓김치, 굵은 멸치꽈리고추볶음, 가지무침, 무 무침, 골뱅이소면, 소주, 과일소주, 굴, 조개, 그래비 소스, 포도잼, 셔벗, 하드같은 빙과류, 과즙음료, 생당근, 크림 슈, 핑크레이디 사과, 국물이 많은 신당동 스타일 떡볶이, 지금 생각나는 건 여기까진데 아마 더 많지 않을까.
여기에 최근 외식 트렌드랑은 많이 달라서 음식에 치즈를 찍어먹는다던가, 이상한 재료를 잔뜩 섞은 음료수라던가, 수북하게 쌓아서 파는 음식을 보면 기함을 하고 입맛을 잃는다. 하나하나 먹으면 맛있을 걸 왜 퓨전이랍시고 삼겹살에 치즈를 찍고, 음료수에 치즈케이크를 갈아넣고 그 위에 다시 마카롱을 붙이고, 줄을 서서 치즈를 잔뜩 쌓아 놓은 갈비를 먹는 건가. 치즈가 허용되는 범위는 볶음밥 위에 얹는 모짜렐라정도?
요즘 먹방을 보면서도 내 취향이 아닌 음식을 먹으면 그냥 아무 생각이 안든다. 많이 다양하게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먹는 게 더 중요한 건가.
이렇게 써놓고 나니 내가 무슨 황교익 선생마냥 재료의 맛 하나하나를 살펴 따지는 엄청난 고급 입맛인 것 같지만 또 그건 아니다. 가둬놓고 돈까스랑 피자,떡볶이, 치즈버거만 먹고 살라고 하면 아주 감사히 살 '서민'입맛이니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엄청나게 배가 고파서다. 그냥 해야할 일은 많은데 하긴 싫고 배는 고픈데 뭘 먹을 순 없고. 이 순간에 어드미럴티에 들어선 McDonald's Next 매장 정보를 봤다. 홍콩 출장에 가면 하루 세 끼는 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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