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18, 2016

Fantastic Mr. Fox (2009)

1.
영화에서 목소리만 듣고 사람의 얼굴이 보일 때가 있다.

Her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이 여자는 분명 핫할 것이라는 걸 속삭이면서 보여줬고,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톰 행크스는 '내가 미국이다', 'America, The Great Country' 정신을 말소리로 드러내놓고 보였다.

Fantastic Mr. Fox 에서 조지 클루니는 동물을 섹시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가족도 있고 이제 철좀 들어라 하는 마누라 앞에서 중저음으로  쭉 깔고선
"Because I am a wild animal"
하는데 정말 로맨스 드라마에서 남주가 여주한테 "난 나쁜남자니까" 이런 대사 치는 느낌?
대사로만 보면 짜증나는데 이 목소리로 들으면 수긍이 간다.


2.
영화는 미국 얘기다. 정작 원작자 로알드 달은 영국인이지만 말이다.

인디언 레저베이션같이 보이는 여우네 동네의 모습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농장 (카네기, 록펠러, 모건 or 로스차일드?)이 야생 여우랑 대립한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으며 싸우다 결국 여우는 대도시의 하수구에서 살며 농장주가 세운 대형 마트의 물건을 훔쳐먹으며 산다. 야생, 자연을 말하는 검은 늑대 (모노노케 히메의 늑대들이랑 닮았음)와 인사를 하고 여우는 자연을 떠난다. 영화 속 자본주의는 여우한테 사과 주스를 물리고 도너츠를 먹으라고 던진다.

이렇게 보면 여우가 참 불쌍해 보이는데, 자꾸 여우=둘리, 농장주=고길동에 비추어지면서 '여우가 잘못했네', '여우가 훔쳤잖아' 대도시의 하수구로 이전하는 건 자본주의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걸 말하려는 것 같았다. 분명 어릴 때는 둘리랑 희동이 편이었는데 지금은 길동아저씨가 짠하고 쟤네는 왜 저럴까 하는 걸 보면 내가 나이를 먹은 건 가 싶고. 저 어른이 죄가 있다면 이 사회에 적응해서 시시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뿐인데 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건지.


3.
웨스 앤더슨 영화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수평과 수직으로 데칼코마니를 만들어놓은 화면을 볼 때마다 가끔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다. 화면이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계속 눌러대는 느낌이랄까.


4.
메릴 스트립은 이번엔 별로였다. 히피에서 여피같은 느낌으로 변한 게 목소리에서 드러나야 하는데 시종일관 깍쟁이 미국 아줌마. 자꾸 "That's all" 하는 미란다 목소리가 겹쳐지면서 역할에 집중이 안되더라.

(목소리만) 조지 클루니한테 "우린 결혼해서는 안됐어" 라고 말하는데 이 목소리에서 아내가 아니라 누나나 이모같은 느낌이 들었다.

5.
극장판에서 영화를 보기로 한 건 꽤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누구랑 영화를 보고 의견을 주고 받다보니 내가 놓친 부분도 보이는 것 같고. 일하면서 보는 영화에 대해 "왜 저건 저렇게(저따구로) 만들었을까" 할 부분도 "아 저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줬다. 다 이유가 있다. 모든 건 이유가 있고 사람들은 다 제각각이니.

Monday, January 11, 2016

편식

  편식을 하는 사람은 그 나름의 기준이 있다. 생선이나 날것을 먹지 않는다던가, 향이 강한 음식, 혹은 특정 질감을 피해 먹는다는 등의 자신의 '합리적 기준'이 있다. 내가 편식을 하면서 욕을 먹는 건 이 '기준'에 논리성이 하나도 없어서 먹는 사람을 곤란하게 해서다. 

 
 내가 안 먹는 음식은 다양하다. 채소를 제외하고 날 음식은 먹지 않는다. 계란을 삶아 먹을 때도 완숙이어야 하고 쇠고기도 무조건 핏기없이 빳빳하게 구워야 한다. 파스타는 먹어도 밀가루 전분맛이 느껴지는 칼국수, 수제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피자나 햄버거를 좋아해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할 것 같지만 라면은 먹지 않는다. (레토르트 우동은 먹는다.) 이밖에 안먹는 건 머랭류의 디저트, 시트러스한 타르트, (최악은 레몬머랭타르트). 바게트나 치아바타, 베이글, 크루아상처럼 거기에 뭔가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빵을 제외한 모든 빵. 특히파운드케이크, 롤케이크, 카스테라, 머핀처럼 같은 맛이 혼자 계속 강하게 나오는 빵은 먹다가 질린다. 


 싫어하는 걸 더 나열하자면 매운 김치, 갓김치, 굵은 멸치꽈리고추볶음, 가지무침, 무 무침, 골뱅이소면, 소주, 과일소주, 굴, 조개, 그래비 소스, 포도잼, 셔벗, 하드같은 빙과류, 과즙음료, 생당근, 크림 슈, 핑크레이디 사과, 국물이 많은 신당동 스타일 떡볶이, 지금 생각나는 건 여기까진데 아마 더 많지 않을까.


 여기에 최근 외식 트렌드랑은 많이 달라서 음식에 치즈를 찍어먹는다던가, 이상한 재료를 잔뜩 섞은 음료수라던가, 수북하게 쌓아서 파는 음식을 보면 기함을 하고 입맛을 잃는다. 하나하나 먹으면 맛있을 걸 왜 퓨전이랍시고 삼겹살에 치즈를 찍고, 음료수에 치즈케이크를 갈아넣고 그 위에 다시 마카롱을 붙이고, 줄을 서서 치즈를 잔뜩 쌓아 놓은 갈비를 먹는 건가. 치즈가 허용되는 범위는 볶음밥 위에 얹는 모짜렐라정도? 

 요즘 먹방을 보면서도 내 취향이 아닌 음식을 먹으면 그냥 아무 생각이 안든다. 많이 다양하게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먹는 게 더 중요한 건가. 

  이렇게 써놓고 나니 내가 무슨 황교익 선생마냥 재료의 맛 하나하나를 살펴 따지는 엄청난 고급 입맛인 것 같지만 또 그건 아니다. 가둬놓고 돈까스랑 피자,떡볶이, 치즈버거만 먹고 살라고 하면 아주 감사히 살 '서민'입맛이니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엄청나게 배가 고파서다. 그냥 해야할 일은 많은데 하긴 싫고 배는 고픈데 뭘 먹을 순 없고. 이 순간에 어드미럴티에 들어선 McDonald's Next 매장 정보를 봤다. 홍콩 출장에 가면 하루 세 끼는 저거다.

Friday, January 8, 2016

새해 다짐

매년 새해가 오면 새해 다짐을 한다. 신정이 아니라 구정에 맞춰서 조금 여유를 주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 시작한다고 하면 마음 속이 후끈거리는 건 똑같다.

물론 결심하는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운동하기, 영어 공부하기, 중국어 더 열심히 하기. 뭐 이정도? 집에 쌓여있는 책들을 다 읽고 올해는 새롭게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항상 다짐을 하고 그 다짐은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는 뭐 어떻게 해서 뭐가 되어보자 이런 건 이제 접어두고 하고 싶은 게 뭔지, 정말 어떻게 살 지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해야할 것 같다.

이쪽 일도 이제 2년이 됐고 (Jeez!) 회사에서는 자꾸 (바라지 않는 책임이 따르는) 승진을 해보지 않을래 하고 있어서 일도 어느 정도 이제 마음을 잡아야 할 시기다. 준비하던 공부는 올해까지만 해보자고 했으니 여기에 어떻게 더 매진할 지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한 해를 되새기면 남는 게 있었다.
2008년부터 하나하나 짚어보면 축구(2008), 술(2009), 홍콩 (2010), 홍콩과 귀국(2011), 영국(2012), 취업(2013), 귀국 (2014)처럼 뭔가 하나도 딱 정의할 수 있었는데 2015년에는 그게 없다. 완전 정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롭게 시작한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한 중간 상태로 1년을 달리고 나니 손에 쥐는 것 하나 없이 허무함만 남는다.

성격이 성취지향적이고 재밌는 지옥에 살고싶다고 말할 만큼 사서 고생하는 타입인데, 그렇게 고생한 것도 없고 accomplishment라고 부를 게 전혀 없는 한 해 였다.
이 나이에 나 영어점수 땄어 Yes!이걸 성과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공부를 더이상 한 해의 지표로 삼자니 삶이 너무 메말라지는 느낌이다.

영화를 더 열심히 보자고 마음을 먹기도 했는데, 지난해에 내 취향에 들어온 영화가 거의 없었다. 한국 영화 개봉작은 거의 안빠지고 봤는데, 양적 증가에 비해 나한테 질적으로 큰 영향을 준 영화를 보지 못해 아쉽다.

구정때까지 시간은 좀 있으니 다짐이나 해보고 싶은 것은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올해부터는 안경을 더 자주 써야 할 것 같은데 이건 또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