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22, 2015

덜 빛나는 정리

며칠전에 알라딘에서 산 책 중에서 가장 빨리 읽고 가장 빨리 알라딘 중고 서점으로 넘어갈 책.

이 책이 의미없다는 게 아니라 정말 실용서답게 필요한 문구 몇 가지만 정리하고 나니 이 책의 논지대로 버릴 지 남길 지를 선택한 결과다.

이 책은 정리의 목적을 이상적 생활이라고 한다.
나도 꽤나 물건을 쟁이고 (화장품) 쌓아놓고 (옷) 쑤셔넣는(서류들) 스타일인데 최근 몇 년에 두 번 정도 크게 이사를 했더니 어느 정도 이 습관은 줄었고 삶은 조금 더 단순해졌다. 안 보는 책은 무조건 알라딘으로 직행이고 안 입는 옷은 운동가기 전에 한 번 입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빨라서 리사이클 박스에 넣어버린다. (사실 아직도 홍콩에서 보낸 짐도 안 푼 게 조금 있고 영국 가기 전에 쌓아놓은 무더기들이 나를 노려보지만, 이것도 어느 샌가는 다 버리겠지...)

어제 마음먹고  정리를 했다.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부터 안 입는 옷, 신발, 포럼 자료, 통장 사본같은 게 끊임없이 나왔다. 끊임없이 읽고 찢고 담고 버리고 다시 서랍을 열면 또 같은 작업의 반복. 그래도 여기는 좀 빨리 진행된 편이다. 옷이나 화장품, 책 이런 건 버리기 쉬운데 내 얼굴이나 다른 사람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좀 버리기도 찝찝하고 처리도 애매하다. 특히 ('Long time ago, I was '개덕후' 임을 인정하고, ) 정말 전국 축구장에서 찍은 사진들과 이런 것들...은 버리기가 찝찝하다. 그때의 추억으로 갖고 있기에는 이미 차고 넘치고, 그리고 추억은 머릿속에서 'fantasized'되었을 때만 아름답지 사진같은 '자료'로 확인하면 그 미화된 기억마저 사라지게 된다.

책에서 본 대로 기억 안나는 사람들과 찍은 사진 (진짜 곰곰히 생각하고 한 10분 후 다시 봐도 이름이 절대 기억 안나는)은 미안하지만 잘게 찢어서 버렸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여러 개 찍은 사진 중에서는 하나만 남겼다. 동아리에서 찍은 사진, 베이징 수학여행에서는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은 건지 찢는데 손이 얼얼할 정도.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축구.
찍스, 스냅스와 인스탁스 필름에 쏟아 부은 돈을 생각하면 아마 DSLR 한 대 값은 나오지 않았을까.....열심히 찢고 찢어도 사진은 계속 나오고. 인스탁스에 폴라로이드에....아마 영국 가기 전에도 한 번 이렇게 버렸는데 또 나오는 걸 보면 왜 이랬을까라는 후회보단 그때는 참 재밌게 살았구나 하는 부러움이 든다. 아마 뭔가를 또 이렇게 좋아하긴 어렵겠지. (But never say NEVER)

기성용이랑 찍은 (아무리 내가 지우고 지워도 이제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다 나오는) 그 사진은 왜 이렇게 많이 굴러다니는거지.

앞으로는 모으는 건 통장에 찍힐 숫자들 뿐이겠지. (모여라 제발...) 생각하니 나이가 든 것 같기도 하고 벌써부터 삶의 재미가 50%는 감소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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