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13, 2013

추억

1. 멍하니 지나가던 날들이 이렇게 끝나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일요일이 되어 있었다.  거실 쇼파에 누워 밀린 예능을 보면서 과자 하나를 집어먹고, 다시 모니터에 눈을 떼지 않다가 또 과일 하나 입에 물고. 그러다 창밖을 바라보니 벌써 가을은 사라진 것 같았다. 맨체스터에 와서 한 달동안 적응하면서 이제 좀 안정찾고 그러던 때가 어제같은데 이젠 벌써 이곳에서 지낸지 일년하고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2.전화기에 카메라가 안돼서 이 모습을 담지 못하는 게 조금은 아쉽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카메라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나. 어느새 버튼 하나에 모든 걸 다 담았다는 듯 바라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게 된 내가 낯설었다. 

3. 무한도전에 이번주에는 이상하게 홍대 부근이 많이 나왔다. 그걸 보면서 학교다니던 생각도 많이 나고 한국 생각이 간절했다. 성은이랑 준기도 갑자기 오늘 페이스북으로 먼저 얘기하다보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또 한 번 무너졌다. 나는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다양한 삶의 경험,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던 패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냥 한낯 계약직 직장인으로 시들시들해져가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4.1 준기랑 얘기하다가 대학교를 넘어 중학교, 고등학교때까지 돌아간 것 같다. 사실 고등학교 친구들보다 준기랑 놀고 전화한 시간이 더 많았고, 대학에 와서도 한참 밥 혼자 못먹고 그럴 때 준기네 학교 근처에서 밥먹고 그런 적도 많고. 내 흑역사의 팔할을 알고 있는 친구라 그런가 오늘 더 짠했다. 원래 이렇게 서로가 오글오글대게 보고싶다, 얼굴 까먹겠네 이런 말하는 사이도 아니고 그냥 개드립 막 날리는 그런 사인데 오늘따라 둘다 아주 장마철 댐 방류하듯 오글레임이 넘쳐났다. 

4.2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같은 학교 한 번 다닌 적 없고 동네도 완전 멀고, 얘 군대 제대하자마자 나는 다시 홍콩으로 날라가고 둘이 같이 학교 다닐만 하니까 난 다시 여기 오게 되고. 처음으로 20대 초반으로 돌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개풀면서 술먹을 거란 얘기에 얘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취소했다지만. (근데 그때 내가 좀....) 

4.3 특히 2008년 2학기, 학점 바닥 달리고 과외 네 개 학원 알바, 축구장, 그리고 우승하고 여러 행사다니고 술먹고 놀던 거. 지금 똑같은 상황이 오면 그때만큼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할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4.4 한국가면 닭발, 치맥먹기로 했는데 야밤에 갑자기 배고프네.

5.1 한국 친구들은 취업준비를 다 끝내고 이미 현장에 나서있는 친구들이 훨씬 많다. 그 고비를 함께 했더라면 더 많은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사망년이라고 불리는 삼학년도 외국에서 보내고 취업준비하는 동안 여기서 띵가띵가 노느라 또 한 번 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돌아가더라도 이미 그 친구들은 직장인이 되어있을테고 난 다시 바닥에서 시작해야하니까 서로 다른 인생의 단계를 걷겠지. 그런 생각에 또 혼자가 되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스트레스나 고민을 사람 만나는 걸로 푸는데 이젠 여기서도 거기서도 혼자가 되어가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이런 걱정이 또 다른 고민을 먹고 자라나 나를 먹어치워버리기 직전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오늘도 내 자신을 다잡는다. 

5.2 언제고 나를 기억해주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거면 된 거 아닌가. 한국에서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예쁘고 좋은 추억들이 많다. 그 추억으로 조금만 더 버텨보자. 삼순언니, 생각보다 추억이 힘이 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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