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30, 2013

9월의 마지막

회사때문에 오늘은 운동을 못갔다. 물론 1/2는 핑계지만. 그냥 오늘은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다. 사람냄새가 그리웠던 걸까. 헤디가 해준 저녁을 먹고 씻고 노닥대면서 회사에 잘생긴 스페인 인턴애 페이스북 캐고.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노닥댈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한 편으로는 편하다. 내일 보고서를 하나 내야할 것 같지만 우선 집에서는 절대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아빠가 회사 다닌 지 30년되었다고 메일을 보내는데 울컥했다.
아빠는 그렇게 묵묵하게 짐을 지고 한 번도 쓰러지지 않고 걸었구나. 나는 왜 이렇게 약한걸까, 나는 왜 이렇게 단단하지 못한 걸까.

뭔가 잘 하고 싶고,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되지 않아서 요즘 어지럽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내가 있는 곳은 어딘가, 모든 것에 확신이 하나도 없다.

호연이 줄 초콜렛을 잔뜩 사고 집에 오는데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나 갑자기 다 집어던지고 싶어졌다. 영국 생활이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이 순간, 나는 도대체 뭘 하려고 이러고 있는건가 싶어졌다. 분명 나는 한국에서도 똑같이 실증을 내고 짜증을 낼테지만. 지금 그냥 이 상황들이 너무 답답하고 서글프다. 남들이 더 공부하고 뭔가 배워나가고 있을 때 나는 자꾸 뒤쳐지는 것 같고 그래서 나중엔 말라비틀어진 대추처럼 쪼그라들 것 같아서 그런 게 견디기가 힘들다.

내 한계가 빤히 보이는 이곳에서 나는 지금 어느 방향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걸까.  김애란 작가의 말마따라 나는 고작 내가 되고 말았지.

Thursday, September 26, 2013

레즈 더비

어제 왜 내가 미쳤다고 맥주를 먹으러 갔을까.

집에 돌아오니 업무 메일이 이건 뭐 산더미를 넘어 아주 그냥 터진다 터져, 한글학교를 관둬야하나 진지하게 생각도 해봤지만 어제 통장 잔고 보고 나는 또 조용히 입을 다뭄^^;;

이번달엔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싶었는데 아 드디어 이번달부터 저축을 시작했구나. 그래도 택시비랑 이런 거 생각하다보니 뭐 여기 사는 거나 그 집 사는 거나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시티 센터를 나갈 수 있다는 게 우선 나한테 엄청 크다.

금요일에 파티 오라는데 이것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온뭄이 부서질 것 같은데 파티가 대수냐. 빨래도 해야하고 아오 집안일은 해도 티도 안나는데 안하면 티나고. 

엄마랑 연락 못한 지가 일주일이 좀 넘은 것 같다. 주말엔 무조건 전화해야지.

일하기 싫은 건 아닌데, 한 번 푹- 쉬었으면 좋겠다.

Wednesday, September 25, 2013

쉬고싶다

일 안할 때는 정말 밤새도 좋으니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9월 초부터 한글학교도 다시 시작하고 3주동안 7경기 커버를 하려니 죽겠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와중에 운동도, 요리도 해야하고 집 이사한 거 정리하고 다시 또 필요한 거 사고 그러다보면 하루가 끝난다. 요즘은 쇼핑도 귀찮고 그냥 먹을 거 사는 데만 돈을 다 쏟는 것 같다. 

회사에 핸드폰 놓고 왔다고 조나단이 자기가 가져다가 내일 주겠다고 하는데 아...나 정신 어디다 놓고 사나, 5파운드짜리 그냥 종이인 줄 알고 버리고. 

그래도 이젠 내가 뭘 하고 있는 진 좀 아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다.

빨리 자야하는 데 일하다가 잘 타이밍을 놓쳐버렸네. 좀 더 일하다 그냥 늦게 갈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빨리 잘까.

이런걸 고민이라고 하고 앉아있으니 아까 계속 쳐다본 그 사람한테도 말을 못걸지 이 등신.

내일은 일좀 하자. 내 일, 회사일 말고 내 일!

Sunday, September 15, 2013

1주년

인천공항에서 수하물 무게 초과때문에 이리저리 다시 짐싸고 멘붕와서 질질짜다가 잉글랜드 밟자마자 폰 분실. 

그리고 이렇게 벌써 일 년이 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31일에 이사를 다 마치고 짐 정리도 대충 다 하고, 열흘동안 인터넷 없이 살았더니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수천, 수백번은 외쳤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인터넷에 중독되어있었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드디어 처음으로 눈 파란 사람이랑 살아봤다. 중국, 홍콩, 태국 사람이랑 살아봤고 스페인 사람이랑 약 한 달?

뭐 제각기 다른 장단점이 있겠지만, 지금 이 커플이 나한테는 최상인 것 같다. 긍정적인 마인드, 유럽 탙이밍을 볼 수도 있고.

담요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ㅋ
쇼파에 누워서 여자친구 무릎에 다리 올리고 영화보는데 정말 눈물나게 부럽다. ^^

뭔가 해야할 것 같고 움직여야 할 것 같고 한데 역시나 귀찮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뭔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주에 야근과 야근 야근, 그리고 맥도날드와 칩스 깡와인으로 막판에 완전 컨디션이 망가진 후로 모든 게 귀찮다. 

이제 날씨는 추워졌고 다시 내가 힘들어하는 겨울이 왔다. 
빨래해야하는데 언니가 영활 보네. 그래도 저 모습이 눈물나게 부럽다 하하하

뭐라고 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 버티다 가겠다. 잘 부탁해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