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3, 2013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동생은 오늘 아침 열한 시 코치를 타고 런던으로 내려갔다. 엉덩이가 짓무르는 여섯 시간을 보냈을 걸 생각하면 올 초 내 생각이 나면서 그냥 웃음이 난다. 와있는 일주일 동안 내 불안함과 막연함때문에 잘해주지 못한 게 자꾸 걸린다.

동생은 책을 세 권 들고 왔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기형도 시집, 그리고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애란 책은 다시 들려보냈다.) 우선 동생이랑 나랑은 취향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나는 김훈'선생님'의 주어와 서술어가 가득한 문장을 좋아하고 동생은 조금 나보다는 섬세한 문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김연수의 글은 (김연수씨는 어색하고 요즘 대개 쓰는 ㅁㅁㅁ작가 라는 말은 뭔가 이상하다. 아니 왜 직업이 호칭이 돼나. 내 친구가 의사되면 ㅁㅁㅁ의사 라고 불러야 하나?) 대책없이 해피엔딩 이후로 처음이었다. 산문집은 좋았는데 소설은 그 호흡이나 주제가 나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중간에 몇 번 내려놨었다. 난 김연수의 친구 김중혁이 더 좋고 젊은 작가중에서 최고는 천명관'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동생이 떠나기전 며칠 밤부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에디 하민이건, 피노체트건, 우리 박선배건. 이명박선배라고 불평불만만 했지 실제로 내가 뭘 그렇게 잃었고 뭘 그렇게 투쟁했었나. 하다못해 내가 촛불이라도 들었거나 당비라도 내는 당원이길 했나. 그냥 나는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고 구차해보였고 우스워보여서 깔봤지.

그리고 그 어떤 것이 둘러싸고 있더라도 거기에 나를 내맡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감정적이다. 조그만 것에도 잘 휘둘리면서 정작 큰 일은 잘 알아보지 못하는 편이다. 감상에 빠지다보면 다른 것은 바라보지 못해 결국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올 연말도 그랬고 방금까지도 사실 그랬다. 지금도 별반 다른 건 없다만.

그냥 무던하게, 지금 이렇게 나와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기회일지 모른다. 물론 국제전화요금때문에 통장에 압류가 들어왔고 수중에는 단돈 5파운드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방인으로 살면서 다른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저널리스트로서는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섬세한 시선의 이방인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 나는 그 자리에 서있는 거다.

추억은 결국 다르게 적힌다는 걸 안다. 홍콩에서 있으면서 매일밤 울며 지옥같다고 괴로워했던 시간이 지금 돌아보니 내 인생의 花樣年華라고 기억되는 것처럼. 지금의 일들도 나중에는 인생의 brightest side가 되어 기억되겠지. 

(+) 책은 역시 gym에서 읽어야 제일 잘 읽힌다. 집에 오니까 단 한 글자도 더 읽히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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