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0, 2017

단지 세상의 끝 (Juste la fin du monde, 2016)

1.
영화를 보면서 잘 만들어진 영화가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예술이라는 게 개인의 취향을 따라 갈리는 거라 어떤 사람에 따라서는 대부2보다 신세계가 더 좋을 수도 있는거다.

나는 자의식 과잉된 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영화는 보지 않는다. 주제나 이야기는 다를 수 있지만, 절제되서 꾹꾹 눌린 영화를 좋아한다.


2.
자비에 돌란은 정말 불호불호불호불호다.
예전에 영화 모임에서 술 마시면서 89년생이었던 영화쪽 지인이 "내 친구 돌란이" 하길래 나는 "내 친구 아델이"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던 기억이 난다.

자비에 돌란은 89년생이고 데뷔작이 우리나라 나이로는 스무살, 만나이로는 19살인가 18살인가 그렇다. (한국 나이 사라져라)

그리고 2016년에는 결국 깐느에서 상까지 받았다. 이 정도면 타이틀만 봐도 뭔가 대단한 게 있어야 하는데 나한테는 그냥 아직까지 감정 과잉으로만 느껴진다.


3.
이렇게 자비에 돌란=감정과잉, 자의식의 지나친 발현이라고 하는 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존경하는 정성일 선생님께서는 이날 본 무비토크에서 "자비에 돌란은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영화화하려는 감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심리적 상태를 둘러싼 건 자의식, 개인의 감정이다. 이게 영화 러닝 타임에 꾹꾹 눌러담겼으니 내가 싫어하는 게 모두 담긴 영화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영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미묘한 심리를 잡아내는 데에서 자비에 돌란은 천재적이다. 엄마와의 관계를 묘사한 I Killed My Mother를 보면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게 엄마라서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뭔가 먹는 데서 구역질을 느끼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혐오 감정의 핵심 아닐까.


4.
단지 세상의 끝은 프랑스어다. 퀘벡 프랑스어가 아니라 정말 authentic한 프랑스 배우를 데려다 놓고 프랑스어로 찍었다.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고 집에 돌아와서 그 소중한 순간을 가족에게 쓴다. 그런데 가족은? 가족들의 모습은 또 어떻냐면 엉망이다. ㅋㅋㅋ

이 영화에서 두 가지 가정이 있다.

1) 루이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다
2) 루이의 죽음에 대해 모른다

이건데 영화가 감정과잉, 정신병자의 이야기가 아니기 위해서는 1의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 알지만, 공식적으로 컨펌되지 않은 둘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하면 "어머 그래 힘들었지" "엉엉 그래 우리랑 같이 있자"라고 말하면서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서 눈치게임이 되버리는 거다.

그것도 프랑스어로. 역시 혁명의 나라답게 싸움을 하는 언어도 격하다. 계속 쏟아내는 대사들을 보다가 배우가 에너지 소진이 어마어마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흥미로운 캐릭터는 루이도, 여동생도 아니고 벵상 카셀이었다.

첫째, 책임감, 가장. 앙투안은 동생에게서 자기가 갖고 싶었던 능력, 자유로운 삶을 끊임없이 본다. 여동생과는 달리 터울이 얼마 없어서 옆에서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어릴적부터 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결국 좌절하게 되는 인물이다.

모질게 말하지 말라고 몰아붙이는 가족한테 오히려 소심하게 울면서 소리칠 수밖에 없는 건 아무도 내 편이 아닌 상황, 정말 모두가 사랑하는 똑똑하고 잘난 동생과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아니었을까.

마리온 꼬띠아르가 말을 순하게 해서 착한 인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유일한 악역은 마리온 꼬띠아르였다. 말 그대로 '빙썅'. 웃는 낯으로 후비는 말을 다 하는 사람이다.

"이번에 데려오는 건 적절치 않아서"
죽음을 앞둔 이에게 다음이 어디 있다고.

"게이라서 아이를 가지실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 차별까지 한다.

"앙투안이라는 이름은 별로였어요."
형제 사이에 이간질도 한다.

남편과 동생 사이를 화해시키려는 듯 하면서 계속 뭔가 하나씩 이간질하는 포인트를 던져서 결국 감정을 폭발시킨다.


6.
자비에 돌란을 보면 Years & Years 노래가 생각난다. 뭔가 계속 휘몰아치는데 끝나고 나면 텅 빈 느낌.

19살에 만든 I Killed My Mother 와 7년 후 단지 세상의 끝은 다를 수밖에 없다. 10대와 20대의 생각이 같다면 그건 더 쓰레기같을테니. 이걸 지켜본다면 다음 작품이 어떨 지 궁금하긴 한데, 또 보자니 썩히 안내키고. 나쁘진 않은데 보라면 보기는 싫은 그런 감독.

자비에 돌란은 그래서 재밌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버겁다.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 같은 감정을 꼬챙이로 쑤셔서 끌어내는 것 같아서 더 방어적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7.
정성일 선생님처럼 치열하게 영화를 봐야겠다는 반성과, 영화를 '보는' 게 정말 look이었는지 See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던 무비토크였다.

나는 시네필도 뭣도 못되는 그냥 영화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맞는 게 아닐까....

Friday, January 27, 2017

Resolution 2017

양력 1월 1일은 연습기간의 시작이었고 약 27일간의 유예기간과 연습의 연습, 마지막 연습을 거쳐 2017년에는 어떻게 살 지 방향을 찾았다. 

이제 내일은 빼도박도 못하게 음력이고 새해다.. (만 태국력도 있고, 이슬람력도 있고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양심상 더이상의 대타협은 그만하기로 한다.)


미니멀리스트

내 삶은 맥시멀리스트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썼고 짜증을 풀기 위해 돈을 썼다. 나는 aa한 사람이니까 bb를 써야하고, cc를 쓰면 dd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물건이 나인양 살았던 것 같다.

요즘 드니까 참 허무하다. 돈을 못모아서 그런게 아니라(물론 브렉시트로 위기감이 든 것도 1%정도) 그냥 모든 게 다 재미없다. 새 화장품을 사도 그게 그거고 새 옷을 사도 그렇다. 물건에 대한 attachment가 없다보니 잃어버려도 그냥 그만..인가보다 하고 다시 바로 사버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똑같은 걸 사기도 한다. 대부분 화장품인데 그러다보니 몇 브랜드는 브압도 찍고 그랬다. 쓰지도 못해 발에 바르는 크림이 산더미인걸 보니까 반성도 됐다. 책도 사재기로 몇 권씩 사놓고 했는데 결국 읽지 않아서 먼지가 쌓이고 피부염만 더 심해졌다. 지인은 차라리 뷰티블로그를 해보라고 했는데, 그게 또 일이 되면 짜증이 날거고 그러면 또 새로운 걸 사겠지. 

너무 많이 쌓아놓고 살다보니 물건에 질식하는 느낌이고 모든 게 새롭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영국에서 캐리어 하나에 담길 짐만 가지고 가볍게 살 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언제든 떠날 각오를 하고 나한테 집중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쌓아놓은 물건들이 내 삶을 잠식한 느낌이다.

어쩌다보니 색조를 안산 지는 한달 반이 됐고, 책장 한 칸을 비웠다. 뭐 가끔가다 짜증이 나면 신촌 현백으로 달려가 그냥 아무거나 손에 쥐고 나오고 싶고 교보문고에서 가득가득 사오고 싶지만 그 거짓위안이 얼마가지 않는다는 걸 되새기면서 참는 습관도 들이고 있다. 쇼핑은 자본주의의 아편이라 단번에 끊기는 어렵다. (오늘도 한정판 광고를 몇 개 봤다. 세상에) 그래도 오롯이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할 것 같다. 물건도 내 삶도 가볍게.

(영국에서 사온 가향기간 지난 차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시네필

몇 주 전에 영화모임 하던 언니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시네필의 조건이 나왔다.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나온건데 조건은 세 개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볼 것, 영화 리뷰를 써볼 것, 그리고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볼 것.

작년에 앞의 두 조건은 많이 채웠다. 나름 영화노트를 만들어서 영화를 분석해보려고도 했고, 영상원이나 안보던 영화를 공부로 찾아가며 '뭐가 좋은 영화'인지 평론가 정성일 선생님의 마음으로 보고 썼다.

나는 창작에는 관심없는 사람이니 만드는 건 관심없다고 얘기했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내가 감독이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정 선생님이 갑자기 카페 느와르를 찍겠다고 나섰는지 이해가 되니까 내 얘기를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런 인물은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사실 시나리오의 ㅅ도 모르고 개연성이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보여야 할 지 감도 안오지만 그래도 올해 내 시나리오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게 다큐가 됐건 sf가 됐건 하나는 꼭 완성해봐야지. (물론 단편)

* 정성일 선생님이랑은 일면식도 없지만, 평론집을 읽었을 때 충격덕분에 많이 배워서 나한테는 선생님이다.


다리 180도 찢기

작년에 시작하고 아직까지 '너무너무너무' 재밌게 하고 있다.
자세가 짝다리, 어깨 구부림, 거기다가 엉덩이 빠지는 안좋음 3박자를 갖추고 있어서 운동을 꾸준히 해도 뭔가 몸이 안 예쁘게 컸다. 

두어달 거울을 보면서 내 몸을 어떻게 쓰고 있나 지켜보니까 그동안 몸을 어떻게 잘못 썼는지가 보였다. 가슴을 펴는게 어깨를 올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거라는 걸 직립보행 약 28년만에 깨달았다. 

나는 몸을 쓰는 데 젬병이라 발레를 하는 시간 동안은 온전히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바로 휘청이거나 동작을 틀린다. 빠르게 배우는 편도 아니라 같은 동작을 다섯 번은 해봐야 남들이 하는 만큼을 겨우 따라간다. 그래도 내 몸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게 재밌고 내 몸이 이런 모양이었다는 걸 보는 게 신기하다.

올 한 해 다리를 180도로 쫙 찢고 2018년을 맞이해야지. 



매년 디폴트로 깔리는 책 많이 읽기, 커피 줄이기, 잠 늘이기 (6시간 숙면), 물 많이 마시기, 이직하기(ㅠㅠ)는 이제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이것도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이슬람력에 맞춰 새 계획을 다시 실행하는 일이 없도록 뷰티 블로거 리스트를 싹 지웠다. 몸이 기억하는 주소들이지만 앞으론 들어가지 말아야지. 

Friday, January 20, 2017

알폰스 무하展

1.
홍콩에 가기 전에 스티브 잡스 뽕을 어마어마하게 맞았다. 그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 축사 영상에서 자기가 자퇴하기 전에 전공이랑 관계없는 타이포 수업을 듣고, 그게 결국 애플의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점을 여러 방면으로 찍어라 등등. 그걸 보고 "아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하면서(귀 얇음) 진짜 별 이상한 수업을 찾아 들었다. 우리 학교에는 미대도 없는데 디자인수업도 듣고, 심리학 수업도 듣고 (Positive Psychology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앨리스 교수님은 지금 학장이신 듯), 중국 '남방'의 사회학, 그러니까 남쪽의 제사가 어떻게 되나 하는 수업도 들어서 나중에 변환하는데 애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그걸로 인해 드라마티컬하게 창조적으로 변한 것도 없고, 진득하게 공부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데 그래도 디자인 수업은 나한테 꽤 큰 영향을 줬다.

수업은 실용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사조를 훓다가 그게 공공디자인에 어떻게 적용되고 각 나라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외국 교수였고 수업 절반은 교환학생이었는데 나는 이걸 가지고 소논문을 쓸 정도는 아니어서 결국 아무 말도 못했다. 대한민국 디자인이 없다고 생각했으려나?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연구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때 배운 디자인에 대한 기본 이론이나 배경 지식덕분에 미술관에 좀 더 진득하게 남아있게 됐다. 물론 15주 수업에서 7주 나가고 자체종강을 해버려서 Art Nouveau, De Stijl, Bauhaus 이 세 단어만 기억에 남는다.


2.
아르누보, 새로운 아트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예술은 지난 사조와 다른 '새로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사실 이건 개념어라고 해야 맞겠지만, 알폰스 무하 이후로 고유명사가 됐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아르누보 스타일 포스터가 기념품 가게에서 종종 보이고 벽에는 아르누보 장식이 들어간 벽화가 들어가서 이게 파리지앵처럼 보이지만 무하는 체코사람이다. 그리고 기존 화풍이랑 비교하면 동서양 통합에 (족자 스타일을 배경에 깔고, 의상은 파리에서 유행하던 것들) 자유로운 느낌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이 사람은 어마어마한 민족주의자고 프리메이슨이었다.

전시에서 프리메이슨 레터헤드도 있었는데 이걸 보고 나니까,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가입해본 적도 없는 프리메이슨의 자부심이 내 안에서 샘솟더라. 예술은 인간의 심리에 큰 영향을 준다.


3.
무하는 사람은 상업 디자인을 해서 그 '원본'과 '복제본'의 경계가 애매하다. 원본이라고 할 작품이라고 해봐야 스케치 연구나 초기 컬러페인팅 정도라 대부분이 대량인쇄본이다.

실제로 보면 색감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라고 할 만큼의 차이는 없지만, 그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물론 "오 이건 파리에서 인쇄한거군", "어 이건 뉴욕의 잉크느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keen eyes가 있다면 인정.

 ▲ 프랑스 낭트에서 생산되는 Lefevere Utile 비스킷 패키지와 커머셜 이미지. 
지금도 생산되는데, 낭트에 가면 무하 그림이 들어간 패키지를 살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를 가야겠다!

▲ 모엣 샹동 커머셜 이미지. 
화려한 그림체랑 샴페인의 풍성함이랑 잘어울려서 무하의 커머셜중엔 가장 인상깊다.


- 예술의 대량생산을 인정하냐 안하느냐는 개인차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쇄소에서 뽑아낸 그림과 화가의 붓터치가 살아있는 그림이 동급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복제미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워홀을 보느니 시체수집가 데미안 허스트를 보겠다 정도?


4.
그림을 보면 익숙한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내가 무하에 끌렸던 건 어릴 때 보고 좋아하던 게 다 무화 화풍 영향을 받은 것이라 그런 것 같다.

▲ 무하 없으면 존재가 불가능했을 것 같은 클램프


전시 마지막에는 무하의 영향이라고 해서 애니메이션 작화나 잡지같은 것도 전시돼 있었다. 오랜만에 뉴타입을 보니까 중학교때 그림그리던 친구들 옆에서 끄적이던 생각도 나고 만화에 미쳐서 몇 만원 맡겨놓고 빌려보던 생각도 났다.


5.
전시 구성은 솔직히 구렸다.
도슨트 설명은 안들어서 모르겠다만, 그 설명문에 오타도 많고 (eg. from 을 fromm이라고 당당히 써놓음) 비문도 많아서 읽다가 그냥 그림만 보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중섭때도 느꼈지만 왜 전시장에서 요상한 클래식 음악을 트는 거지? 아 이게 유럽 작품이니까? 파리느낌나라고?

이상한 음악은 앵앵대고 전시장에서 통화하는 사람에 우는 애 소리에 (육아하는 엄마들도 전시를 볼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가 울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온갖 소리가 겹쳐져서 머리가 아팠다.

조명도 위치가 애매해서 그런지, 그림을 보는데 그림자가 져서 색깔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대개 그림 동선이랑 조명 동선, 그리고 사람이 서는 선을 계산해서 그림 주변에 조명을 치는데 이건 그냥 조명 레인따라 쭉 넣은 것 밖에 안됐다. 그게 또 충분한 것도 아니라 어떤 그림은 너무 어두워서 정말 코를 박고 봐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한가람이 좁아서 전시가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쓸거면 그냥 전시 다 DDP나 서울시립이나 이런 천장 높은 곳으로 다 옮겨가야 할 판이다.

근데 굿즈는 엄청 잘만들었다. 굿즈 사러라도 한 번 더 갈 것 같다.


6.
그림을 보다가 시력이 어마어마하게 나빠졌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스마트폰 줄여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끝났는데,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제대로 색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눈을 비비고 다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 보는 내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림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보고 싶은 건 많은데 눈은 점점 나빠진다. 뭔가 억울하고 슬프다. 이젠 눈까지 아껴써야 하다니.


7.
오랜만에 전시를 보니까 갈증이 해소된 것 같다. 영감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예쁘고 좋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수업을 듣고, 여러 점을 찍었지만, 나는 결국 스티브 잡스만큼의 인물은 못될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일상에서 왜 이게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런 걸 알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하다.


8.
작년에 유럽에 다녀온 아빠는 이거 보기 전에 오르셰展을 보고 시시하다고 했다.
열심히 돈벌어서 미국 한 번 보내드려야겠다. 

Friday, January 6, 2017

겨울나기

겨울의 나랑 여름의 나는 소금과 설탕마냥 보기에는 같아도 다르다.

여름에는 뭔가 나댐이 10000이라면 겨울에는 싸가지 10000이다. 그냥 다 짜증이 나고 아무런 의욕도 없다. 이게 SAD일 수도 있지만 내가 SAD가 있으니 이렇게 되겠지 하고 의식적으로 더 무기력함에 빠지는 것도 있다. 

감각적으로 많이 무뎌진다. 나는 사실 이게 제일 무섭다. 주변 사람들이야 이미 내 겨울나기를 몇 번씩 봐왔으니 쟤 또 저러네 하고 넘길거라 믿기 때문에 걱정이 크게 되진 않는다. 근데 내가 뭔가를 봤을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걸 알아채는 건 무섭다. 겨울의 내 뇌는 모든 주름이.펴져있고 감각기관은 무뎌져서 산은 산 물은 물 나는 아무 생각이 없고 그냥 눈뜬 장님이 된 상태다. 

올해는 별로 춥지도 않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약속도 일부러 잡고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한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고, 뭘 해도 재미없다. 영화를 봐도 아무런 느낌도 없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냥 휙휙 넘겨 버린다. 감정이 메말라버리는 기분? 그림을 봐도 그림이구나... 책을 읽어도 아 그렇구나 라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몇주째다.  일부러 밤새 화보집도 보고 좋아하는 영화만 돌려보기도 하는데 눈만 아프고 피곤하다. 운동을 하고 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몸이 더 아프고 더 나른해진다. 

예민한 게 장점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내가 뭔지 모르겠다. 미각잃은 장금이마냥 아무 느낌이 없다. 작년까지는 일부러 코어트레이닝한다면서 꾸역꾸역 더 일부러 보고 공부하고 하는 열정이라도 있었는데 올해는 그것도 안먹힌다. 아니 그 열정은 중동갔냐고....?

예술로 밥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봐도 딱히 그게 나한테 크리티컬한 요소는 아니겠지만 아 그냥 지금 뭔가 감정 고갈된 이 상태가 너무 짜증난다


내가 이렇게 감정적 (감성적 아님)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 지 아직도 모르겠다. 따뜻한 나라로 동계감정훈련이라도 떠나야하나. 

Wednesday, December 21, 2016

2016 내맘대로 어워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쭉 정리해본다. 남은 열흘간은 이제 아무 특별한 일 안만들고 술만 마시고 놀 계획.



소설 - 거짓말이다 (김탁환), 댓글부대 (장강명)
이 두 사건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전해 듣고 간접적으로만 화를 냈다. 책을 읽으면서 사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생각도 들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사회과학-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파니 스털)
올 한 해 가장 큰 수확이 있었다면 페미니즘에 대해 좀 공부한 거? 주디스 버틀러는 아직 이해할 짬이 안되는데 이 책은 그냥 생활형으로 술술 넘겨 읽었다. 물론 글쓴 사람이 백인이고, 인종이슈에 대해서는 또 다른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현실적'인 고민을 학술적으로 정리해놓은 걸 보고 나니까 내 생각도 정리가 되는 느낌.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늦게 배운 하루키가 무섭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게으르지 않기가 힘들다. 여기서 게을러지면 나는 한량이고 백수고 건달이 되겠지만, 이 책 (추가로 장강명씨 페이스북) 보고 규칙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한 것 같다.

(+) 위험한 도덕주의자 (기타노 다케시), 정의에 대하여 (애덤 스미스)

영화

BOB -I, Daniel Blake 
I demand- 영국생활하면서 내가 느꼈던 무기력함을 고스란히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다. 켄 로치가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영화에서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토리 장기집권이 확정되면서 사회에 대해 엄청나게 긴장한 모습이 보인다.

상반기- 탐정 홍길동
잘생긴 남자, 화려한 촬영, 쉬운 스토리. 이거면 됐지 뭘 더 바라...

하반기 -걷기왕
귀여움이 모든 걸 이긴다. 노력 결핍과 과잉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영화.

(+) 재개봉 - 굿윌헌팅, 키즈 리턴
(++) 극장판 - 코미디의 왕, 질투 (필립 가렐)

-

스페인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
만나던 여자 사진을 쭉 전시해놓은 걸 보고 '한 번 살거면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과 부러움이 든 공간. 바르셀로나 미술관은 파리에 비해서 특색은 떨어지고 말라가처럼 개인의 느낌이 잘 안나온 것 같아서 그냥 그랬다. 니스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도 가보고 싶다.

퐁피두 센터 파울 클레 전시회
매표소 마감 시간이 지나서 못들어갈 뻔 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더니 살짝 들여보내줘서 겨우 본 전시. 못갔으면 파리에 체류할 생각까지 했어서 그런지 더 기쁘게 본 전시. 유머러스하고 단순한 선, 그 속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들.

발레
해본 운동 중에서 제일 재밌다. 마음과 몸과의 괴리감은 어쩔 수 없지만,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든 운동은 처음이다.

뎃생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는데 다시 시작하니까 아 그림을 보는 걸 더 좋아하는 구나 하고 알게 됐다. 선택 실패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내 취향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

쉑쉑버거 - 쉑스택
이거 먹으려고 MCR-LDN 왕복한 거 생각하면 아련하다. 고기에 치즈, 버섯까지 들어갔다니 맛없을 수가 없다. 비싼 것도 모르겠다. 맛있으면 그만. 언제 또 가지?

통영 가족여행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보낸 시간. 제일 가깝지만 제일 어려운 가족과 부딪히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중.

브렉시트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다. 내 월급은 사라지고 세상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고 있다. 타임머신이 생겨서 올해 5월의 나에게 '브렉시트 통과돼고 트럼프는 대통령돼고 시카고 컵스는 우승한대' 이런다면 과연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첼시
무리뉴 감독이 돌아왔지만 그는 북쪽으로 떠났고, 콘테가 왔을 때 솔직히 음? 했다. 세리에를 많이 안봐서 믿음도 없었는데. 요즘 첼ㅅ1보는 맛에 산다. 코스타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앞에서처럼 올해 5월 나한테 '브렉시트 통과돼고 트럼프는 대통령되고 시카고 컵스는 우승한대.'까지는 그냥 넘어갔겠지만 '콘테와서 코스타 인성개조함'이라고 했다면 '미친x아, 그만해라' 라고 멱살잡았을지도. 내년 5월이 기대된다.

니트
2015년에 가장 골치였던 피부 알러지가 '좋아졌다.' (알러지엔 완치가 없다.) 두 달 동안 밀가루와 술과 고기를 끊으면서 약을 먹은 덕인지, 1년간 빠지지 않고 헬스장을 두드린 덕인지, 아니면 올해 내가 마음이 좀 편해져서인지 몸이 간지러워 잠못자는 일이 줄었다. 덕분에 올해는 니트를 마음놓고 입고 있다. 더이상 면직, 면 100%의 희쭈그레한 옷을 안입어도 된다. 아직 앙고라나 너무 fluffy한 (적확한 한국어를 못찾겠다) 니트나 퍼는 못입지만 그래도 이정도 입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통장이 탈탈 털리도록 예쁜 니트를 더 사야지.

인간관계
올 한해 최고 수확. 중요하고 좋은 거니까 특별히 제일 좋아하는 초록색으로 쓰는 중. 
혼자 있는 것도 별로 안좋아하지만 어울리는 건 더 못하는 편인데 올해 많이 나아진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학교다닐 때보다 신촌에 더 꾸준히 나갔고, 이런저런 모임도 많이 만들었다. 여러 사람 생각도 들어보려고 나름대로 애썼고 그 덕분에 예민한 성격이 좀 유해졌다. 한 해 더 거슬러 올라가 작년 5월의 나한테 '브렉시트 통과되고 트럼프 대통령되고 시카고 컵스 우승, 코스타는 갓스타된대'에 이어서 '이주현이 먼저 나서서 매일같이 약속을 잡는대'라고 했다면 "미친x아 그만해라"를 넘어 경찰서에 신고했을지도. 그만큼 놀랍다. 1년만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걸까? 나도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지 신기하고 기대된다. 

2017년이 빨리 와도 좋고 아니어도 그만일 것 같다. 이정도면 꽤 괜찮은건가? 2017년에는 ( 한국사는 청년으로서 대한민국 성장률과 발맞춰) 올해보다 딱 2.5%만 더 자란 내가 돼 있기를. 

Monday, December 12, 2016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

1.
<I Daniel Blake>는 느낌표, 궁서체 영화다. 켄 로치 앞에 당연한 수식어가 '좌파'인만큼 형식보다는 그 메시지가 중요하다.

영화는 아무런 인트로 음악없이 까만 화면에 나레이션만 나와서 NHS와 전화하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National Health Service는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이랑 비슷한데 이 번호가 있어야 학교도 갈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다. 병원에 가려고 해도 이 번호가 있어야 해서 이 번호가 있어야만 영국에서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상담원과 통화하다 "그 대답은 이미 52쪽에서 했는데"라고 하는 말을 듣자마자 영국에 처음 도착해서 빼곡한 서류를 채우던 생각이 나서 숨이 막혔다.

당신은 전문가냐고 묻는 다니엘의 말에 "우리는 아웃소싱한 전문가입니다"라고 하는데 영국에서 전화하던 생각이 났다. 대부분은 인디언이나 파키스타니들이 콜센터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영어도 제대로 된 게 아니라 뭔가 설명하려면 전화기를 잡고 몇 시간을 싸웠던 기억이다.


2.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치의는 소견상 휴직을 권한다. 하지만 NHS의 스탠다드에 따르면 다니엘 블레이크는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다. 일괄적인 평가기준은 개인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시스템은 최대한의 효용성을 추구하지만 그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은 결국 온전히 개인이 짊어져야 할 피해가 된다.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일을 하면 심장에 무리가 와서 살 수 없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다니엘 블레이크는 푸드 뱅크를 거부했다. 그는 시민이고 곧 일할 것이라고 믿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3.
케이티는 말투부터 다르다. Jordy 사이에서 확연히 구별되는 말투에서 외지인이라는 게 드러난다. 실제로 이 배우는 런던 출신이고 CHELSEA 팬이다 ktbffh!!

싱글맘에다 런던의 렌트를 감당못해 노숙자 하우스 생활을 전전하다 겨우 집을 마련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 꿈을 찾고 싶지만 사는 건 쉽지 않다. 새로 찾은 집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냉골에 음식조차 넉넉하지 않아 푸드뱅크에서 베이크드 빈을 허겁지겁 퍼먹는다. 그렇지만 자신을 돕는 다니엘에게 토마토 파스타 한 접시를 양보할 수 있는 '시민'이다.

음식은 구할 수 있지만, 여자에게 필요한 용품을 살 수는 없다. 사치재라고 할 수 없는 생리대, 데오도란트, 면도기 (영국에서 제모와 데오도란트를 안하면 미개인취급받는다)를 훔치다 잡혔다. 이것도 극사실이라고 느낀게 테스코나 세인즈버리가 아니라 그냥 동네 슈퍼마켓이었다. 정말 저소득층 동네에는 체인 샵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만, 그곳에서 다니엘 블레이크가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4.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도 힘들지만 그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마지막 남긴 편지에서 그는 "나는 개도 아니고 구걸하지도 않았다. 나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한다"고 했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각자도생의 시대다. 신자유주의는 그 이름처럼 新하지 않은 시스템이 돼버렸다. 사람들은 국가 시스템보다 개인의 능력에 의존해 생존한다.

켄 로치 영화는 몇 편을 빼놓고는 너무 주장만 가득한 것 같아서 반감도 들었다. 그럴 거면 다큐를 찍고 프로파간다를 만들고 운동을 해라. (사실 대부분 주장만 남은 영화에 갖는 생각도 이것) 그런데 이 영화에서만큼은 간절히 호소하는 것 같다. 지금 복지가 과연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Humiliating 한 다음에 나락으로 밀어넣는 복지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영화에서 말한다.

펜션 수급자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잠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내 돈을 좀먹는 게으름뱅이. 신자유주의는 후자를 없애고 사회를 더 빠릿하게 움직여보자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물론 맞는 말이다. 영국에서 살 때 가장 견딜 수 없던 건 수급자들의 무기력함이었다. 안해도 죽지 않을 정도로 살 수는 있으니까 하지 않겠다던 그 사람들의 게으름과 늘어진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에서는 못살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모든 펜션 수급자를 다 '세금도둑'이라고 하는 순간 다니엘 블레이크같은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순간마저도 '게으름'으로 치부하고 왜 일하지 않냐고 몰아세우는 순간 개인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도움이 필요한 이를 몰아세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도와준다고 이것을 '베푼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그 누구도 돕지 못한다.


5.
영화를 보면서 영국 살던 때 생각도 나고 요즘 상황이랑도 겹치는 게 많아서 엉엉 울었다. 아마 올해 본 영화중에서 제일 많이 운 영화같다.

나는 연대라는 말을 싫어한다. 정치적 스탠스고 뭐고를 떠나서 우리나라에서는 연대가 이상하게 왜곡돼서 '대의'를 위해 개인을 억누르는 기제가 된 것 같아 '연대', '우리'라는 말을 들으면 거부반응이 먼저 든다.

하지만 기본적인 삶마저 보장되지 않는 사회라면 과연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삶의 기본적 권리를 이 국가 시스템이 해줄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고 멍해졌다. 영국에서 느꼈던 막연함을 수십년 살아온 내 나라에서 느끼게 될 줄이아야. 

Tuesday, November 29, 2016

키즈 리턴 (Kids Return, 1996)

1.
청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게 됐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이제 '힘내자'라는 말에 더이상 위안받을 만큼 힘이 넘치지도 않는다.

그냥 다 접고 나갈까, 아니면 다 때려칠까 하는 생각만 하다보니 한 달이 끝났다. 역시나 11월은 힘든 달이 맞고, 나는 정말 우주의 먼지만큼도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한동안은 잠이 안와서 고민이었는데 요즘은 눈이 안떠져서 힘들다. (사실 힘들지는 않는데 이 상황과 내 모습이 짜증난다.)

이 상황에서 청춘 영화를 본들 뭐가 달라질까, 그래도 기타노 다케시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별 기대없이 또 극장에 갔다.


2.
영화는 전체적으로 파란 톤이다. 대개 청춘영화들이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빛나는 햇살, 그리고 초록 톤의 화면인데 반해서 이 영화는 파랗다.

푸르고 젊은 색들 중에서 초록색은 생명을 담고 있지만 파란색은 그렇지 못하다. 영어에서 Blue가 우울함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처럼 이 영화 속 청춘은 우울하기만 하다. 어느 한 놈도 청춘의 '열정', '패기' 이런 건 없다. 베베 꼬이거나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거나, 아니면 남의 말에 홀린다. 자기 자신이 없다.

자기 아래로 봤던 신지가 복싱에서 재주를 보이자 마사오는 엇나간다. 내가 하자고 한 건데 나는 재주가 쥐뿔 없는 상황에서 마사오는 열등감에 빠진다. 신지는 야쿠자까지 돼버리고 마는 마사오가 낯설다. 하지만 복싱에 욕심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라 옆의 선배 하야시의 뀀에 빠져 술담배에 약물까지 손대며 스스로의 재능을 망친다. 이 둘처럼 극단적으로 나가지는 않아도 히로시도 마찬가지로 자기 주장이 없다. 좋아하는 여자한테 직접 고백도 우물쭈물, 회사에 입사해서도 결국 옆자리 동료의 말만 듣고 퇴사하고 택시 운전을 한다. 그런데 또 거기서도 회사의 압박때문에 야간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버린다.



다른 청춘영화들이 음악을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격렬하게 사랑을 하거나 뭐 이런 과잉된 에너지가 넘친다면 이 영화는 항상 100의 상황에서 90에서 멈춰버리는 청춘의 이야기다.


3.
영화의 마지막 장면 대사가 제일 유명하다. 결국 복싱도 관두고 야쿠자에서 내쫓긴 둘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옛날처럼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묻는다.

"Do you think we are already finished?"
"Hell no, we haven't even started."
(영어 대사로 외운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불법 영어자막이어서 그렇다.)

아직 이 둘은 시작도 안했다. 이게 희망적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항상 90에서 끝내버리고 실패하고도 "나는 노력을 덜했으니까 손해본 건 없어" 하면서 자기위안을 삼는다.

이때도 그렇다. 뭔가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을 위한하면서 "아직 내가 시작한 게 아니니까" 하면서 나의 실패를 위로하는 거다.

이렇게까지 비비꼬아가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었는데, 요즘 내 상황이 짜증나는 일로 가득차다보니 이렇게 보인다. 영화가 원래 그런거 아닌가. 좋을때는 좋게, 나쁠때는 한없이 나쁘게. 같은 영화라도 내가 만약에 조금 더 에너지가 넘친 상황이었다면 "오 역시, 다시 시작하자" 하며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을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힘이 단 1퍼센트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기타노 다케시도 이 둘은 시작도 안했지만, 다시 실패할 확률은 70퍼센트라고 나중에 인터뷰에서 말한 적 있다. 열린 결말인 것 같지만 이미 닫힌 결말인 게 인생이다.




4.
영화와 별개의 사족.
이날 영화는 아트나인에서 기타노 다케시 특별전 상영회로 상영했다. 아트나인에서는 항상 맨 뒷줄에 앉는데, 이날 내 라인의 맨 끝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지브이 하는 이해영 감독이었다. 옆자리가 비었길래 "어 그러면 여기는 변영주 감독?" 하는 내심의 계산을 하면서 '감독 옆에서 영화를 보다니'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그런데 앞으로 이 두 분이 하는 지브이는 안 갈 것 같다.

청춘영화니까 만능비기인 "아프니까 청춘이죠" 라는 식의 대답과 "감독님의 청춘은 어땠습니까"하는 질문들. 무슨 힐링캠프나 토크콘서트에서 볼 법한 질문들이 영화 지브이, 그것도 감독 특별전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나온다.

나는 이것보다 왜 이런 영화에서 이런 앵글이 쓰인 것 같고, 음악에 대해서도 더 얘기하고 싶었고 (음악감독이 히사이시 조다), 또 이런 '청춘 영화'를 뻔하지 않게, 다르게 보는 법같은 여튼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청춘영화라는 이유로 뭔가 '나는 이렇게 힘드니까 위로해주세요'하는 성토의 장이 된 것 같았다. 감정 과잉은 질색이고, 나를 설명하려는 가엾은 청춘 이야기는 질린다.


5.
11월이 끝나야 이 삐딱함에서 벗어나려나.
정말 계절도 힘들고 지금 상황은 더럽게 힘들다. 영화보는 데 이 주인공의 핑계들이 지금 내 모습 보는 것 같아서 보고 있는데 화가 치밀어서 뛰쳐나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