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1, 2018

만비키 가족 (Shoplifters, 2018)

1. 자본주의 체제 속 개인 삶의 파괴라는 주제는 이제 한 특정 국가에서만 나오진 않는다. '헬조선 종특'이라고 일컬어지는 문제들은 데칼코마니는 아니더라도 그라데이션으로 전 세계에서 나타난다. 흙수저, 레이버, 챠브, 레드넥, 뭐 어떻게 부르던간에 돈 없는 사람들 문제가 한국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2. '만비키 가족' 은 일본에서 가족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현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유교 영향권에서 家는 國家였고, 결국 기존 가족 체계의 파괴는 사회의 붕괴다. 이런 측면에서 비슷하게 떠오른 영화가 진부하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플로리다 프로젝트'. 좋은 사람과의 연대(다니엘-케이티), 개인의 노오력 끝에 자기파괴(케이티-무니), 그리고 만비키 가족은 기존에는 없지만 특이한 '가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각 문화권 특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영화에서도 보이는데, 나한테는 가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영화가 가장 힘들고 버거웠다.

3. 영화에서 가족의 탄생은 선택적이다. 기존 가족이 혈연이라는 '운명'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이 가족은 개인의 의지에 의해 탄생한 조합이다. 가장 어린 린조차 자신의 오빠와 보호자를 선택하고, 이름을 바꾼다. 어쩌면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이 조합은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아저씨도 아니고 아빠도 아닌, 엄마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지만 그게 무엇이건 상관없는 공동체. 생존을 위해 뭉쳐서 생존 그 이상의 관계를 맺은 이 관계는 기존 가족 시스템으로 보았을 땐 '유괴', '복지 도둑'으로 보일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건 그 할머니의 '연금'이 필요해서였고, 아이를 돌려보내지 않아도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범죄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를 따지는 경찰을 보여줄 때 '제도가 가지는 헛점'을 대변하는 위치로 그리려고 하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불친절하게 그려지는 것은 경찰과 제도. 그리고 그 제도를 악용하는 빨래공장 동료같은 사람들이다.

4.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건성피부, 건조한 목소리라서 득 보는 영화라고 말하곤 했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어떤 인물에도 동감가긴 어렵다"라고 했다. 나는 그게 이 감독의 힘이자 특징인 것 같다. 한 인물에 빠지게 되면, 그냥 그 인물에 대한 '판가름'으로 끝이 나고 사건은 단편적으로 끝난다. 관조적인 시선, 대상과의 거리두기, 이렇게 한 인물에 빠지는 걸 감독이 적극 방어해나가면서 오히려 덤덤하게 전체 사건을 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기존 사회적 통념에 비추었을 때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지 않나. 나같은 꼰대가 삐딱하게 보는 걸 막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라고 설득하기 위해 감독은 계속 거리를 두고, 인물보다 전체 그림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이번 영화에서는 여름의 이미지까지 더해가면서 자칫하면 '막장'이 될 수 있는 이 얘기들을 잘 희석시킨다. 우악스럽지 않은 막장 - 멀리보면 예쁜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처절한 비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이 영화에서는 먹고 먹고 또 먹는다. 국수를 먹고, 라면을 먹고, 고로케를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먹고 사는 문제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먹는 것은 대부분 개인의 욕구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기본 생존 수단에 그치고 있다. 영화에서 밀개떡을 먹고 싶어도 제대로 표현 못하는 린의 표정, 도득질을 해서 '먹는다'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걸까? 쇼타가 일부러 잡힌 것도 이렇게 먹고는 살지만, '먹고 사는데에만 그치는' 삶을 동생 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이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수급자 애들이 감히 '돈까스'를 먹냐고 난리났다는 얘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가난하면 욕구조차 단순하게 채워넣어져야 한다는 믿음.

6.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유럽과 미주에서도 이런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가 나왔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여기에 꼽을만한 사례가 없을까?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이 대기업의 자본에 잠식당해서? (GAGA, BBC를 마이너로 볼 수 있나?) 멀티플렉스에서는 인랑이랑 신과 함께만 틀어줘서? (CGV에서 노무현입니다랑 이상호 영화 한동안 주구장창 틀어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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