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10, 2017

첨밀밀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1996)

1.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고 피천득 선생은 썼다.

이 구절을 처음 본 건 교환학생 끝날 즈음.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헤어지는 아쉬움때문에 매일을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러고 보니 나는 2011년에 이미 탈조선을 생각했던 거다.

나한테는 한 번 만난 것도 아니고, 다시 안 만나는 사이도 아니지만 항상 그리운 사람과 장소가 있다.


2.
첨밀밀을 볼 때마다 피천득 선생의 글귀가 겹쳐진다.

같은 마음이었고, 같은 장소에 있지만 자꾸 엇갈리는 둘을 볼 때마다 자꾸 "여기서 고개를 돌렸더라면", "그때 조금만 늦게 갔더라면", "그때 더 붙잡았더라면",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이교가 호출기를 받았더라면, 소군은 소정과 결혼하지 않았을거고, 이교가 대만행 배를 타지 않았더라면 멀리 떨어지는 일도 없었을 거고, 소군이 차찬탱 안에서 밖을 내다봤더라면 그 둘의 만남은 더 빨라졌을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탄 소군이 옆을 둘러봤더라면 간절히 내달리던 이교를 태워줄 수도 있었을 거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엇갈림이 있었지만 만났다.
만날 사람은 만나는 거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히게 극적으로 등려군 사망 방송이 나오는 가게 앞에서 만난다.

나는 이 때 여명의 표정이 제일 좋다. 살짝 떨떠름한 것 같은 표정 속에 너무 놀라지도 않고 너무 무심하지도 않게, 그냥 덤덤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담겨 있어서 장만옥의 울 것 같은 얼굴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4.

이 맥도날드를 같이 갔던 친구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위챗에서 방금까지도 낄낄대고 얘기했지만).

그냥 그 때 생각을 하면 '나만 이렇게 그리운가' 하는 서운함도 들고, 나만 계속 과거를 돌아보는 것 같아서 이젠 그만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5.
영화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중국어를 처음 시작할 때였다. 그때는 이 영화에 캔토니즈가 섞여있고, 장만옥이나 여명이 하는 중국어 발음이 내가 나중에 배울 보통화랑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도 몰랐다. 정말 '중알못'인 상태였지만 등려군이 대만사람이라 위에량다이비야오워'디'신이라고 배운 건 지금도 기억난다.

다시 보니까 그래도 쫌 짬이 찼다고 중국어 대사가 들린다. 캔토도 뭐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드문드문 단어가 툭 귀에 박힐 때마다 그동안 주워들은 게 공으로 날아가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고.


6.
사람과의 관계가 인연인건지, 아니면 나 혼자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꾸역꾸역 붙잡고 있는건지 요즘은 잘 모르겠다.

인생은 타이밍, 인연은 때, 호우는 지시절하는데, 이 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7.
첨밀밀이랑 비슷한 한국 영화는 호우시절이 최고다. 돌아오고 나서 두 영화를 같이 보면서 피천득 수필집 엄청 읽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걸 보니 주어진 인연보다는 내 의지가 좀 더 강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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