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4, 2016

아쿠아리우스 (Aquarius, 2016)

1.
브라질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최근 룰라의 비리때문에 브라질의 '좌파 파라다이스'가 허상이었다는 언론 보도만 본 기억이 난다. 그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도 못느꼈다. 나한테 남미는 너무 멀다. 내가 모르는 언어권에 대한 소식에 대해서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무식하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칸 경쟁작이었지만 사실 부산에 와서도 그냥 티켓시간이 맞고 아는 동생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예매할 생각도 없었을것 같다. 감독 이름도 아직까지 어렵다. (클레버 멘도사 필루! Kleber Mendoca Filho) 그래도 영화를 추천해준 아는 동생이자 브라질 덕후 감자한테 감사를.


2.
과거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과거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차곡차곡 쌓아놓는 사람이 있다. 영화는 과거가 된 공간에 대해 나타나는 다른 태도에 대해 말한다. 물론 중립적이진 않지만.


3.
주인공 클라라를 중심으로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뉜다. 대개 3부로 나뉘게 되면 길이도 얼추 비슷한데 여기는 1부가 제일 짧았고, 2부 3부가 좀 길다. 이렇게 똑같이 안맞춰놓은게 오히려 이 영화가 뻔하지 않게 흘러가게 해준 것 같다.

공간을 지키려는 클라라는 저널리스트고, 비백인 (유색인이란 말이 싫어서 이 표현을 쓴다만 이것도 좀 그러네)이지만 집을 다섯 채나 가지고 있고 펜션도 받는 꽤 잘 사는 사람이다. 자기 성적 욕망에 충실해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만 클럽에 가서 춤도 추고 거리의 사람을 집에 부르기도 한다.



사회적 지위로 보면 굉장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지만 이 공간에 관해서는 보수적이고 고집이 세다. 바다가 보이는 아쿠아리우스라는 아파트에는 모두 떠나고 이제 클라라 혼자 남았다. 이곳에 정말 뿌리박은 건 클라라 하나지만, 살림을 봐주는 라잔, 그리고 과거의 기록이 필요할 때 찾아오는 가족과 조카들도 있으니 엄밀히 말해 혼자는 아니다. 물론 같은 공간에 대해 기억은 다르게 적히니까 애착도 다르다. 엄마는 집을 비웠고, 우리를 방임했다고 소리지르는 아나와 이 소중한 집을 팔려는 멍청한 딸이라고 꾸짖는 클라라의 모습에서 기억은 상대적이다. 이 집은 모두의 추억을 담고 있지만 그 추억의 밀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집을 지키는 것보다 '보상금'을 받고 빨리 재개발해서 뉴 아쿠아리우스를 만드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4.
영화를 보면서 용산 남일당과 강남 구룡마을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소수의견>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는 영화도 있고 <두 개의 문> 다큐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다 좋은 영화다. <소수의견>은 사건의 흐름을 '극화'시켜서 상업영화로 잘 바꿔놨고, <두 개의 문>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가해자의 목소리를 병렬적으로 담아내서 '주장'보다 '사건의 실체'를 보여줬다.

그래도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영화처럼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용한 지점까진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은유가 넘쳐난다. 서랍장, 수영, 유방암 걸린 왕년의 배우 캐스팅처럼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에둘러 수많은 장치를 쓴다.

배경음악도 신경쓴 티가 나서 단순이 웅장, 장엄을 떠나서 그 세월이 느껴지는 브라질 음악들 하나하나가 다 모이고 쌓여서 이 공간을 스쳤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http://blog.naver.com/dive_toblue/220834006490 에 가면 BGM 음악 리스트도 있고 브라질에 관해 좀 더 알 수 있다.


사회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좋다. 하지만 이걸 굳이 TV 다큐멘터리나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스크린으로 옮겨놓는다면, 영화가 갖고있는 특성을 조금이나마 써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다큐 영화나 고발 영화가 아쉬운 건 결국 진영논리에 갖혀서 '마이클 무어'에 그치고는 '봐야할 영화'라고 감성에만 호소해서다.


5.
안경을 안쓰고 왔더니 자막이 잘 안 보였다. 눈이 많이 나빠진 게 느껴진다. 특히 영화제에서 영자막/한국어 자막 두 종류가 필요할 때 한국어는 세로로 들어가는데 안보여서 그냥 포기하고 영어로 봤다. 스마트폰 줄여야겠다는 좋은 교훈도 주셨다.


6.
출장가서 몇 문단 썼는데 서울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날씨가 추워지니 남국의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는 영화가 자꾸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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