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 페인트 칠해서 집에서 있으면 두통이 정말 심하다. 곰팡이 냄새냐 페인트 냄새냐 이걸 선택해야하는 건데. 아 둘다 없고 그냥 깨끗한 집은....휴. 이렇게 내 집 장만의 꿈을 또 꿔본다.
2.
지난주 수요일 경기가 끝나고 새벽 두 시까지 일하고 여섯시 반 차를 타고 카디프에 내려갔다. 가는 길에 계속 영화사 일도 해야하고 난 분명 MCFC 오프였는데 런던에서 전화가 오질 않나 매니저랑 서현씨랑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됐는지 그것도 처리하고. 안나언니랑 같이 있다가 갑자기 표정이 또 푹푹 꺼지면서 "아 또" 이러는데 그냥 왜 휴가왔나 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모간이랑 언니를 만나고 오면 힘이 난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맘껏 떠들 수도 있고, 적어도 카디프에서는 갓 구운 빵이나 (맨체스터보다는) 맛있는 음식이 많다.
3.
그런데 오는 기차가 연착돼서 맨체스터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한글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뭐가 또 이렇게 힘빠지는건지.
4.
영화사 일이 좀 어렵다. 잘하고 싶은데. 잉투기 스크리너랑 한국영화 스크리너 한 열 댓개가 지금 안와서 돌아버리기 직전. 이 업계가 이런건지 아니면 원래 배급과 판매가 다 이런건지, 라이벌사랑 경쟁하면서도 웃어야하고, 속도도 맞춰야하고. 지금 회사는 영국인데 스크리너는 미국이랑 싱가폴, 한국에서 오는거라 메일 오는 시간이 다 제각각이다. 그리고 오더(그냥 유통이라면 보통 발주?) 넣고 이거 체크하고 다시 컨텐츠 관리하고.
사무실에서는 폰으로 체크하고는 있는데 와 진짜....하루에 메일 100통까지 받아봤는데 토할 것 같았다. 좋아하는 영화 관련된 일이라 더 하겠다고 한 건데 입안은 다 부르트고 눈에 실핏줄은 터지고. 눈을 뜨고 있는데도 내가 뭘하고 있나 멍한 상태가 계속 된다.
5.
며칠전에는 회사에 완전 지각했다. 우리 회사야 뭐 자유로운 출퇴근과 일하는 장소가 딱히 명시된 건 아니지만, (그리고 새벽까지 초과 근무했으니) 그래도 집에서 열 시에 나갔는데 회사에 들어가니 열두시, 이러면 하루가 반은 날아간건데. 너무 졸려서 정말 머리가 멈춘다는 게 이런거구나 느꼈다.
6.
영화사 일...아마 요즘 내 스트레스의 칠할은 여기서 오는 걸텐데. 그래도 계속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게 신기하다. 일하는 걸 좋아하는 건 맞지만 요즘 문제는 내가 갈 길이 아닌 일에 열과 성을 지나치게 다해서 시간을 쓰고 그리고 나중엔 정말 완전 방전이 된다는 거다.
혜진이는 그러다가 와르르 무너진다고 걱정했는데 사실 내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 것도 그거다. 예전에 학교다닐 때도 맨날 이것저것 다 한다고 하다가 결국에 끝마무리를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하고.
7.
이거 쓰다가도 쇼파에서 한 30분 졸았다. 사실 타이핑 하면서도 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지 잘 이해가 안된다. 이게 오늘은 그냥 바로 자야지. 일곱시부터 잘 준비하고 다 씻은 내가 짱짱맨. 금요일이 다 무어냐. 난 자겠다. 조추첨 기사 쓰라고 해서 쓰긴 썼는데 눈뜨고 자면서 쓴 느낌이라 뭐라고 썼나 내가 쓰고도 기억에 안남는다. 지금 이 블로그도 쓰고는 있지만 뭐가 이렇게 군더더기가 많은건지. 글은 맑은 정신에 깨끗하게 쓰자.
8.
오늘 낮에 시준오빠 글에 코멘터리를 하다가 '그래서 너한테도 한 번 물어본거야'하는 말에 회사에서 정말 울뻔했다. 요즘 일은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이 길에 계속 있어야 하나 회의를 느끼던 중이었고 (물론 직업이 내 자아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쓸모있는 뭔가를 하고 있나 하는 의심까지 들던 상황이었다. 일상에 매몰돼 정작 많은 걸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함에 좇기고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아직 쓸만하구나 싶어 기뻤다.
그리고 시준오빠랑 얘기하다보면 사람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배우는 것 같다.
나는 못났지만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한테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성장하고 싶다. 일도 더 잘하고싶고 인격적으로도 내 플랫메이트 헤디처럼 더 단단해지고 싶고, 내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보고 싶다.
9.
희주오빠, 결혼 축하해요. 못가봐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