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주위에는 자주 가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 삭막해보이는 건물 숲에도 가을은 찾아왔다. 건물 유리창위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은 어지러울 정도였고 질서정연한 도로며, 삼성역과 역삼역, 강남구청이 이어져있고 조금만 더 가면 잠실이라는 아찔한 사실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강남역에서 교보도 갔다가 로드샵도 가고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약속장소를 찾으러 강남역을 빙빙 돌았다. 강남역은 꽤 자주 다니는 편인데도 내가 모르는 골목골목이 많았다. 옷가게의 셔츠들은 '가을이에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고 특히 올리브그린톤의 셔츠는 나도 모르게 또 살 뻔 했다.
언니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술집을 나와 걷는데 거리의 네온싸인 불빛이 너무 환해서 가슴이 벅찼다. 가을 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얘기하고 연예인 얘기하면서 웃다가 갑자기 대통령 얘기도 하고, 연애얘기, 이집의 분위기, 내일 회사갈 얘기. 이런 것들을 다시 하려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 생각하니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아빠한테 문자를 받았다. 집에 가고 있다는 아빠의 문자가 오늘따라 너무나도 서러워서, 이렇게 이제 딸한테 나 집에 간다고 말할 수 없을 아빠한테 미안하고, 그냥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제 일주일 후면, 나는 어떻게 될까. 갑자기 빠져버린 사랑니처럼 휑하니 느껴질까. 그냥 아무 느낌도 없을까.
그 때 내가 영국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그냥 여기서 더 열심히 준비했더라면.
지금 나한테 주어지는 모든 게 다 아름답고 지나치게 소중해져서 자꾸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송별회라고 사람을 만나고 다 좋은데...
내 미래는 나도 잘 모르고, 가면 힘들 거라는 거, 이미 한 번 해봐서 잘 아니까 더 겁나고 무서운데 괜찮은 척, 씩씩한 척, 그리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는 척. 이런 걸 앵무새처럼 3주 넘게 하려니 힘들다.
오늘 이 노래를 얼마나 들었는지. 박정현 버전은 왜 안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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