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7, 2017

Resolution 2017

양력 1월 1일은 연습기간의 시작이었고 약 27일간의 유예기간과 연습의 연습, 마지막 연습을 거쳐 2017년에는 어떻게 살 지 방향을 찾았다. 

이제 내일은 빼도박도 못하게 음력이고 새해다.. (만 태국력도 있고, 이슬람력도 있고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양심상 더이상의 대타협은 그만하기로 한다.)


미니멀리스트

내 삶은 맥시멀리스트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썼고 짜증을 풀기 위해 돈을 썼다. 나는 aa한 사람이니까 bb를 써야하고, cc를 쓰면 dd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물건이 나인양 살았던 것 같다.

요즘 드니까 참 허무하다. 돈을 못모아서 그런게 아니라(물론 브렉시트로 위기감이 든 것도 1%정도) 그냥 모든 게 다 재미없다. 새 화장품을 사도 그게 그거고 새 옷을 사도 그렇다. 물건에 대한 attachment가 없다보니 잃어버려도 그냥 그만..인가보다 하고 다시 바로 사버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똑같은 걸 사기도 한다. 대부분 화장품인데 그러다보니 몇 브랜드는 브압도 찍고 그랬다. 쓰지도 못해 발에 바르는 크림이 산더미인걸 보니까 반성도 됐다. 책도 사재기로 몇 권씩 사놓고 했는데 결국 읽지 않아서 먼지가 쌓이고 피부염만 더 심해졌다. 지인은 차라리 뷰티블로그를 해보라고 했는데, 그게 또 일이 되면 짜증이 날거고 그러면 또 새로운 걸 사겠지. 

너무 많이 쌓아놓고 살다보니 물건에 질식하는 느낌이고 모든 게 새롭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영국에서 캐리어 하나에 담길 짐만 가지고 가볍게 살 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언제든 떠날 각오를 하고 나한테 집중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쌓아놓은 물건들이 내 삶을 잠식한 느낌이다.

어쩌다보니 색조를 안산 지는 한달 반이 됐고, 책장 한 칸을 비웠다. 뭐 가끔가다 짜증이 나면 신촌 현백으로 달려가 그냥 아무거나 손에 쥐고 나오고 싶고 교보문고에서 가득가득 사오고 싶지만 그 거짓위안이 얼마가지 않는다는 걸 되새기면서 참는 습관도 들이고 있다. 쇼핑은 자본주의의 아편이라 단번에 끊기는 어렵다. (오늘도 한정판 광고를 몇 개 봤다. 세상에) 그래도 오롯이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할 것 같다. 물건도 내 삶도 가볍게.

(영국에서 사온 가향기간 지난 차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시네필

몇 주 전에 영화모임 하던 언니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시네필의 조건이 나왔다.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나온건데 조건은 세 개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볼 것, 영화 리뷰를 써볼 것, 그리고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볼 것.

작년에 앞의 두 조건은 많이 채웠다. 나름 영화노트를 만들어서 영화를 분석해보려고도 했고, 영상원이나 안보던 영화를 공부로 찾아가며 '뭐가 좋은 영화'인지 평론가 정성일 선생님의 마음으로 보고 썼다.

나는 창작에는 관심없는 사람이니 만드는 건 관심없다고 얘기했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내가 감독이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정 선생님이 갑자기 카페 느와르를 찍겠다고 나섰는지 이해가 되니까 내 얘기를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런 인물은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사실 시나리오의 ㅅ도 모르고 개연성이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보여야 할 지 감도 안오지만 그래도 올해 내 시나리오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게 다큐가 됐건 sf가 됐건 하나는 꼭 완성해봐야지. (물론 단편)

* 정성일 선생님이랑은 일면식도 없지만, 평론집을 읽었을 때 충격덕분에 많이 배워서 나한테는 선생님이다.


다리 180도 찢기

작년에 시작하고 아직까지 '너무너무너무' 재밌게 하고 있다.
자세가 짝다리, 어깨 구부림, 거기다가 엉덩이 빠지는 안좋음 3박자를 갖추고 있어서 운동을 꾸준히 해도 뭔가 몸이 안 예쁘게 컸다. 

두어달 거울을 보면서 내 몸을 어떻게 쓰고 있나 지켜보니까 그동안 몸을 어떻게 잘못 썼는지가 보였다. 가슴을 펴는게 어깨를 올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거라는 걸 직립보행 약 28년만에 깨달았다. 

나는 몸을 쓰는 데 젬병이라 발레를 하는 시간 동안은 온전히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바로 휘청이거나 동작을 틀린다. 빠르게 배우는 편도 아니라 같은 동작을 다섯 번은 해봐야 남들이 하는 만큼을 겨우 따라간다. 그래도 내 몸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게 재밌고 내 몸이 이런 모양이었다는 걸 보는 게 신기하다.

올 한 해 다리를 180도로 쫙 찢고 2018년을 맞이해야지. 



매년 디폴트로 깔리는 책 많이 읽기, 커피 줄이기, 잠 늘이기 (6시간 숙면), 물 많이 마시기, 이직하기(ㅠㅠ)는 이제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이것도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이슬람력에 맞춰 새 계획을 다시 실행하는 일이 없도록 뷰티 블로거 리스트를 싹 지웠다. 몸이 기억하는 주소들이지만 앞으론 들어가지 말아야지. 

Friday, January 20, 2017

알폰스 무하展

1.
홍콩에 가기 전에 스티브 잡스 뽕을 어마어마하게 맞았다. 그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 축사 영상에서 자기가 자퇴하기 전에 전공이랑 관계없는 타이포 수업을 듣고, 그게 결국 애플의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점을 여러 방면으로 찍어라 등등. 그걸 보고 "아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하면서(귀 얇음) 진짜 별 이상한 수업을 찾아 들었다. 우리 학교에는 미대도 없는데 디자인수업도 듣고, 심리학 수업도 듣고 (Positive Psychology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앨리스 교수님은 지금 학장이신 듯), 중국 '남방'의 사회학, 그러니까 남쪽의 제사가 어떻게 되나 하는 수업도 들어서 나중에 변환하는데 애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그걸로 인해 드라마티컬하게 창조적으로 변한 것도 없고, 진득하게 공부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데 그래도 디자인 수업은 나한테 꽤 큰 영향을 줬다.

수업은 실용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사조를 훓다가 그게 공공디자인에 어떻게 적용되고 각 나라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외국 교수였고 수업 절반은 교환학생이었는데 나는 이걸 가지고 소논문을 쓸 정도는 아니어서 결국 아무 말도 못했다. 대한민국 디자인이 없다고 생각했으려나?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연구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때 배운 디자인에 대한 기본 이론이나 배경 지식덕분에 미술관에 좀 더 진득하게 남아있게 됐다. 물론 15주 수업에서 7주 나가고 자체종강을 해버려서 Art Nouveau, De Stijl, Bauhaus 이 세 단어만 기억에 남는다.


2.
아르누보, 새로운 아트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예술은 지난 사조와 다른 '새로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사실 이건 개념어라고 해야 맞겠지만, 알폰스 무하 이후로 고유명사가 됐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아르누보 스타일 포스터가 기념품 가게에서 종종 보이고 벽에는 아르누보 장식이 들어간 벽화가 들어가서 이게 파리지앵처럼 보이지만 무하는 체코사람이다. 그리고 기존 화풍이랑 비교하면 동서양 통합에 (족자 스타일을 배경에 깔고, 의상은 파리에서 유행하던 것들) 자유로운 느낌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이 사람은 어마어마한 민족주의자고 프리메이슨이었다.

전시에서 프리메이슨 레터헤드도 있었는데 이걸 보고 나니까,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가입해본 적도 없는 프리메이슨의 자부심이 내 안에서 샘솟더라. 예술은 인간의 심리에 큰 영향을 준다.


3.
무하는 사람은 상업 디자인을 해서 그 '원본'과 '복제본'의 경계가 애매하다. 원본이라고 할 작품이라고 해봐야 스케치 연구나 초기 컬러페인팅 정도라 대부분이 대량인쇄본이다.

실제로 보면 색감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라고 할 만큼의 차이는 없지만, 그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물론 "오 이건 파리에서 인쇄한거군", "어 이건 뉴욕의 잉크느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keen eyes가 있다면 인정.

 ▲ 프랑스 낭트에서 생산되는 Lefevere Utile 비스킷 패키지와 커머셜 이미지. 
지금도 생산되는데, 낭트에 가면 무하 그림이 들어간 패키지를 살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를 가야겠다!

▲ 모엣 샹동 커머셜 이미지. 
화려한 그림체랑 샴페인의 풍성함이랑 잘어울려서 무하의 커머셜중엔 가장 인상깊다.


- 예술의 대량생산을 인정하냐 안하느냐는 개인차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쇄소에서 뽑아낸 그림과 화가의 붓터치가 살아있는 그림이 동급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복제미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워홀을 보느니 시체수집가 데미안 허스트를 보겠다 정도?


4.
그림을 보면 익숙한 디자인이 많이 보인다. 내가 무하에 끌렸던 건 어릴 때 보고 좋아하던 게 다 무화 화풍 영향을 받은 것이라 그런 것 같다.

▲ 무하 없으면 존재가 불가능했을 것 같은 클램프


전시 마지막에는 무하의 영향이라고 해서 애니메이션 작화나 잡지같은 것도 전시돼 있었다. 오랜만에 뉴타입을 보니까 중학교때 그림그리던 친구들 옆에서 끄적이던 생각도 나고 만화에 미쳐서 몇 만원 맡겨놓고 빌려보던 생각도 났다.


5.
전시 구성은 솔직히 구렸다.
도슨트 설명은 안들어서 모르겠다만, 그 설명문에 오타도 많고 (eg. from 을 fromm이라고 당당히 써놓음) 비문도 많아서 읽다가 그냥 그림만 보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중섭때도 느꼈지만 왜 전시장에서 요상한 클래식 음악을 트는 거지? 아 이게 유럽 작품이니까? 파리느낌나라고?

이상한 음악은 앵앵대고 전시장에서 통화하는 사람에 우는 애 소리에 (육아하는 엄마들도 전시를 볼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가 울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온갖 소리가 겹쳐져서 머리가 아팠다.

조명도 위치가 애매해서 그런지, 그림을 보는데 그림자가 져서 색깔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대개 그림 동선이랑 조명 동선, 그리고 사람이 서는 선을 계산해서 그림 주변에 조명을 치는데 이건 그냥 조명 레인따라 쭉 넣은 것 밖에 안됐다. 그게 또 충분한 것도 아니라 어떤 그림은 너무 어두워서 정말 코를 박고 봐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한가람이 좁아서 전시가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은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쓸거면 그냥 전시 다 DDP나 서울시립이나 이런 천장 높은 곳으로 다 옮겨가야 할 판이다.

근데 굿즈는 엄청 잘만들었다. 굿즈 사러라도 한 번 더 갈 것 같다.


6.
그림을 보다가 시력이 어마어마하게 나빠졌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스마트폰 줄여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끝났는데,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제대로 색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눈을 비비고 다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해서 보는 내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림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보고 싶은 건 많은데 눈은 점점 나빠진다. 뭔가 억울하고 슬프다. 이젠 눈까지 아껴써야 하다니.


7.
오랜만에 전시를 보니까 갈증이 해소된 것 같다. 영감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예쁘고 좋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수업을 듣고, 여러 점을 찍었지만, 나는 결국 스티브 잡스만큼의 인물은 못될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일상에서 왜 이게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런 걸 알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하다.


8.
작년에 유럽에 다녀온 아빠는 이거 보기 전에 오르셰展을 보고 시시하다고 했다.
열심히 돈벌어서 미국 한 번 보내드려야겠다. 

Friday, January 6, 2017

겨울나기

겨울의 나랑 여름의 나는 소금과 설탕마냥 보기에는 같아도 다르다.

여름에는 뭔가 나댐이 10000이라면 겨울에는 싸가지 10000이다. 그냥 다 짜증이 나고 아무런 의욕도 없다. 이게 SAD일 수도 있지만 내가 SAD가 있으니 이렇게 되겠지 하고 의식적으로 더 무기력함에 빠지는 것도 있다. 

감각적으로 많이 무뎌진다. 나는 사실 이게 제일 무섭다. 주변 사람들이야 이미 내 겨울나기를 몇 번씩 봐왔으니 쟤 또 저러네 하고 넘길거라 믿기 때문에 걱정이 크게 되진 않는다. 근데 내가 뭔가를 봤을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걸 알아채는 건 무섭다. 겨울의 내 뇌는 모든 주름이.펴져있고 감각기관은 무뎌져서 산은 산 물은 물 나는 아무 생각이 없고 그냥 눈뜬 장님이 된 상태다. 

올해는 별로 춥지도 않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약속도 일부러 잡고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한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고, 뭘 해도 재미없다. 영화를 봐도 아무런 느낌도 없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냥 휙휙 넘겨 버린다. 감정이 메말라버리는 기분? 그림을 봐도 그림이구나... 책을 읽어도 아 그렇구나 라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몇주째다.  일부러 밤새 화보집도 보고 좋아하는 영화만 돌려보기도 하는데 눈만 아프고 피곤하다. 운동을 하고 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몸이 더 아프고 더 나른해진다. 

예민한 게 장점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내가 뭔지 모르겠다. 미각잃은 장금이마냥 아무 느낌이 없다. 작년까지는 일부러 코어트레이닝한다면서 꾸역꾸역 더 일부러 보고 공부하고 하는 열정이라도 있었는데 올해는 그것도 안먹힌다. 아니 그 열정은 중동갔냐고....?

예술로 밥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봐도 딱히 그게 나한테 크리티컬한 요소는 아니겠지만 아 그냥 지금 뭔가 감정 고갈된 이 상태가 너무 짜증난다


내가 이렇게 감정적 (감성적 아님)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 지 아직도 모르겠다. 따뜻한 나라로 동계감정훈련이라도 떠나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