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8, 2017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1.
초등학교 저학년때, 그러니까 아직 만화책을 읽지 않았을 때다.(나름 교사 자녀라 만화책은 엄마랑 학교 따로 다니던 5학년부터 읽기 시작했다.) 

주말의 상처럼 엄마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한 편을 빌려주셨다. 청구 아파트 비디오 가게 아저씨랑 친해져서 비디오가게에 들어오는 카달로그+일요일 아침에 영화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영화를 비교해가면서 도장 격파하듯 매주 영화를 봤다. 엄마꺼, 내꺼 해서 두 편씩 봤던 것 같다.

대개 15세까지는 보게 해줬는데, 이날 이 영화를 고른 엄마는 내 영화를 먼저 마치고 "넌 빨리 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할 만한 배우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엄마나 아빠는 "영화는 별로"였다고 했다.


2.
그리고 대학와서 1학년 즈음인가? 다시 지적 허세에 빠져서 영화 DVD 도장격파를 하고 있을 때 이 영화를 봤다.

보다가 껐다. 그 때 나는 A 아니면 B, 그러니까 모 아니면 도, 1 아니면 0, 흑과 백, 그렇게 분명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서 이런 'affair'가 왜 명작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가족은? 결국 다 속인 거잖아. 아니 그것보다 왜 남편도 있는 사람이 뭐가 좋다고 저런 깡마른 아저씨한테? 

'내가 좋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럴 리 없어' 라는 생각에 원작 소설도 읽어봤지만 '불륜 미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닌데, 역시 쯧쯧, 예술은 moral-less 라면서 끝까지 못 봤다. (비슷한 느낌으로 대학교 때는 화양연화에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


3.
오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잘 우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렌즈는 또 빠졌다. 일회용이라 다행이다.

몇 년 동안 또 몇 번 아프고, 좀 바닥도 치고 나서야 프란체스카가 왜 처음 만난 로버트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꿈을 물어봐 주길 원하고, 그 꿈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가족, 함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는 무관심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공기처럼 기본 값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묻지 않았고 알아채려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The old dreams were good dreams; they didn't work out, but glad I had them"
이라면서 처음으로 꿈을 말하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건다. 

우주의 먼지 마냥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자신에게 "you are anything but a simple woman"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4.
역시 그 빌어먹을 꿈이 문제다. 
내가 좋아했던 건 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내 꿈을 대신 봐준' 그 사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