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연하다는 것은 사람을 무디게 한다. 공기처럼 늘 기본값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이 당연함이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갑자기 한 감각을 느낄 수
없다면, 그 감각이 세상을 인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했는지 느낄 수 있고, 늘 옆에 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면 그들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 깨닫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소중해지는 것은 결국 늘 함께해온 것이다. <어느날>은 항상 당연하게 있기에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일상의 순간을 바라본다.
2.
보험조사관 강수는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한순간에 잃었다. 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던
아내가 죽었지만, 그는 힘들어하는 내색 없이 다시 업무로 복귀한다.
처남에게 뺨을 맞고, 주변 사람에게 독하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의 슬픔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아내를 간병하며 지쳐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슬픔을 드러내는 순간 상실감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에서 아내와의 기억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가 마주하는 모든 일상은 이제 추억의 지뢰밭이 되어 그를 괴롭힌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는 슬퍼하지
않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슬퍼한다 해도 이미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시각장애인 미소는 평생을 보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도 목소리로만 기억한다.
자신을 돌봐주던 사람도 촉각으로만 기억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시각을 제외한 감각으로만
느끼고 인지한다. 불완전하던 미소의 감각은 교통사고로 죽음과 맞닥뜨리며 완전해진다. 코마 상태에 빠져 육체와 분리된 그녀의 영혼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눈부신 세상의 빛과 마주하게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매일 지나치기 때문에 놀랍지 않은 기차 같은 전철과 내달리는 오토바이의 모습에도 놀라워하고 기뻐하며,
불완전한 영혼으로나마 완전한 감각을 누린다. 그녀가 직접 보고싶었던 것은 살면서는
볼 수 없었던 블루하와이 색깔과 비슷한 바다일 수도 있고 영화관에서 두 눈으로 보는 영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보고 싶던 것은 목소리와 손끝으로만 기억하던 사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4.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처음 보고 기뻐하는 미소의 모습과, 이를 보면서 아내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강수의 모습은 각각 현재의 순간과 과거의 기억으로 대비된다.
미소가 느끼는 기쁨처럼 현재의 환희는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느끼는
미소는 완전한 삶도, 완전한 죽음도 아닌 그 사이에 놓였다. 현재의
기쁨도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소의 상태처럼 불완전한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결국 그 순간도 과거가
되어 기억이 돼버리고, 그 기억은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중했던 기억은 흐려질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내를 잃은 후 함께했던 기억을 억지로 눌러놓은 강수가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순간,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기억은 다시 현실이 된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좋았던 감정만을
떠올리기도 한다.
5.
<어느날>은
시각장애인이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세상을 본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일상의 특별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강수와 미소라는 두 주인공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일상적이지도,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상을 재발견하던 영화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이야기를 통속적으로 바꿔버린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와 보험사기꾼의 이야기는 영화에 가장의 의무감이라는 엉뚱한 주제를 덧대 무겁게 바꿔 극의 전체 흐름을 끊는다.
주인공 캐릭터에만 더 집중해 기억과 감각이라는 두 일상적인 가치를 강조했더라면 영화의 흐름이 더 일관적이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6.
사람은 당연한 존재, 당연한 상황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친 이들과 상황들이 사실은 매 순간이
특별했다는 것을 상실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강수와 미소의 만남은 일상의 당연함을 상실하고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여정이었다. 이 치유의 끝이 기억을 다시 현실로 되돌리거나 바람을 실재로 이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나간 것을 되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결국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다만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기억은 힘이 세지고, 모든 일상은 특별해진다.